준케이의 시간
9년 차 아이돌이지만,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남자.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2PM의 메인 보컬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가수 준케이가 곧 솔로 앨범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준케이가 쌓아온 음악과 시간들.
No Love, No Music. 사랑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대서사시처럼 웅장하게 드라마가 펼쳐지는 그의 솔로곡 ‘No Love’를 들으며 까칠한 완벽주의자 준케이를 상상했다.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꾹꾹 채워놓은 그 곡을 듣다 보면 음악에 대한 그의 욕심이 저절로 느껴졌으니까. 터질 듯한 비트와 조금씩 고조되는 리듬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흥분시키는 ‘미친 거 아니야’나 ‘Hot’은 또 어떠한가. 분명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영리한 뮤지션임이 틀림없었다. 무덤덤해서 더 서글픈 발라드 곡 ‘문득’을 듣다 보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남자 준케이의 서정적인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음악 스트리밍 앱에 준케이를 검색해 그가 만든 음악, 그가 부르는 노래를 쭉 듣다 보니 준케이가 더 궁금해졌다. 준케이를 그저 2PM의 메인 보컬로만 알기에는 그가 그동안 쌓아온 음악 세계가 너무도 깊고 넓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얼마 전 일본에서 아레나 투어를 끝냈고, <복면가왕>에 ‘네모의 꿈’으로 출연하기도 했죠. 지금은 정신없이 새로운 앨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얼굴은 야위었고, 몸매는 더 근사해졌네요.
올해 1월쯤이었나. 체력이 훅 떨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잖아요.(웃음)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한 적이 있는데, 안무 연습을 할 때마다 아프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하체 운동을 시작했어요. 유산소 운동을 하다 근력 운동도 병행하게 되었죠. 웨이트는 시작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건강 관리에 신경 쓰다 보니, 음식도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먹게 되었고요. 고구마 빵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찾아 만들어 먹을 정도예요.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어요. 전체적인 에너지가 건강해진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벌써 서른에 가까워졌네요.
10대의 시간을 세 가지 정도의 색깔로 설명할 수 있다면 20대는 3만 개쯤의 색깔로 표현될 거예요. 그만큼 정신없이 지내왔어요. 배운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죠. 잃은 거라면 가족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추억과 같은 소소한 일상들. 배운 거라면 음악과 경험, 그리고 2PM이라는 또 다른 가족을 얻었다는 거겠죠.
서른을 맞이하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그동안 뭔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해본 일이 별로 없어요. 정해진 일정을 따라가기에 바빴죠. 그러면서도 내 것을 지키려고 하니 뒤죽박죽일 때가 많았고요. 서른이 되면 제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가며 살고 싶어요. 인생의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요.
2PM은 멤버들끼리 사이가 돈독한 것으로 유명해요. 해체하는 그룹이 많은 요즘, 그래서 더 특별해 보여요.
초창기에 큰 사건을 함께 겪으며 마음의 끈이 단단해지기도 했고, 함께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개인적인 계기도 있었어요.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실감이 되지 않아 눈물도 흐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멤버들이 장례식장에 들어서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갑자기 주르륵 쏟아지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멤버들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요.
살다 보면 그처럼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생기곤 해요.
당연히 내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주변 사람들이 달리 보였어요.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더 고맙고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요. 2PM 멤버들과는 이제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을 것 같아요. 뭐랄까. 사회 생활을 하며 만났지만 고등학교 친구들 같은 끈끈함이 있죠. 유머 코드가 잘 맞는 친구는 우영이. 작업도 자주 같이 하고 놀러 다니기도 하며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요. 제일 웃기고 재미있는 친구는 찬성이고요. 제 엔도르핀이죠. 준호는 동생이지만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같은 친구예요. 쿤이는 착하고 사랑스럽죠. 조용히 멤버들을 지지하며 힘이 되어줘요. 택연이는 냉철하고 리더십이 있고요.
팬들에게는 김다정으로 통하더군요. 스스로 어떤 사람 같아요?
제가 다정한 편이긴 하죠.(웃음) 사람은 어떤 에너지를 뿜어내느냐가 중요한데 기왕이면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주말 아침 일찍부터 촬영해야 할 때, 지친 표정으로 만나면 더 처지잖아요. 그럴 땐 개그를 하며 분위기를 띄워요. 먼저 망가지죠.
원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가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외롭고 쓸쓸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거든요.
노력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정말 그런 성격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고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작곡가 친구들이 있는데, 가끔 그들이 제게 에너지가 너무 많아 기가 빨린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외롭고 우울한 날에는 어떻게 해요?
그런 날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보통 곡을 만들고 작업을 하면 회사에 가져가서, 사내 모니터 요원에게 들려줘요. 총 30명의 모니터 요원들의 의견에 따라 그 곡이 발매될지 말지가 결정되죠. 고심해서 만든 제 음악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게 꽤 힘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술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술을 마시면 그 순간뿐, 다음 날 힘듦은 여전하잖아요. 요즘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작업실로 향하곤 해요. 술도 끊었어요.
그래도 결국 ‘미친 거 아니야,’ ‘우리집’ 등 준케이의 곡이 2PM 앨범의 타이틀 곡이 되었잖아요. 승자인 셈이죠.
이 두 곡은 그냥 대략적인 느낌만 잡아서 회사에 가져갔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음악 자체로만 봤을 때는 ‘미친 거 아니야’가 더 좋고, 뮤직 비디오나 안무, 무대의상 등 전체적인 그림으로 봤을 때는 ‘우리집’이 2PM의 이미지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두 곡 모두 멤버들이 서너 번씩 회의를 해가며 함께 콘셉트를 만들어갔어요. ‘우리집’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레게 느낌의 멜로디였는데, 안무를 만들고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며 지금의 하우스 뮤직풍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만든 곡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 함께 만든 음악인 셈이죠.
직접 작사한 곡들을 들어보면 ‘No Love’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요.
그건 제가 만든 심벌 같은 거예요. 사랑하고 이별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내가 상처를 주기도 하잖아요. 그때마다 ‘이제 사랑 안 해!’라고 다짐하곤 하고요. 어릴 적 이런 생각을 하며 나중에 내가 직접 내 노래를 만들면 ‘No Love’를 심벌로 만들 거라 생각했었어요.
직접 만든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일본에서 발매한 제 솔로 앨범 타이틀 곡인 ‘No Love’와 2PM 노래 중‘문득’. ‘문득’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빨리 만든 노래예요. 2PM이 ‘Again, Again’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차 속에서 핸드폰의 음성 메모로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멜로디와 가사 그대로 한번에 만들었어요. 가사는 어때야 하는지, 음악적 장치는 어떻게 섞을 것인지 그런 계산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만들었죠. 지금껏 만든 음악 중 제 마음이 가장 진솔하게 담긴 노래일 거예요. 반대로 ‘No Love’는 가장 계획적으로 만든 곡이에요. 한 곡 안에 뮤지컬, 팝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음악의 변주를 시도했고, 무대 위 조명과 세트, 퍼포먼스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담았거든요.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이 쓰이는 곡도 있을 거예요.
‘미친 거 아니야’가 그래요. JYP 역사상 처음으로 진영이 형의 곡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만든 곡이 2PM의 타이틀 곡이 된 거였으니까요. 타이틀 곡으로 결정되던 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어요. 음악을 반대하던 아빠, 몰래 도와주던 엄마 그리고 고등학생 때 화성악 책을 껴안고 음악 공부하러 가던 모습들이 떠올라 꿈만 같았거든요. 행복했어요. 그런데 기대만큼 성적이 좋지 않아 늘 아쉽죠.
2PM의 다음 앨범에는 어떤 곡이 타이틀 곡이 될지 궁금하네요.
멤버들 모두 열심히 작업 중이에요. 대중이 2PM에게서 보고 싶은 건 뭔지,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게 뭔지 열심히 고민하면서요.
2PM 멤버들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어떤 건가요?
셔츠를 찢던 우리가 야성적인 섹시함을 보여줬다면 20대 후반이 된 우리는 좀 더 노련한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섹시함을 어떻게 음악과 무대로 표현하느냐가 멤버들에게 주어진 숙제죠.
음악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에 메모해둬요. 어떤 단어가 떠오르면 그 단어에 맞는 문장들을 만들어요. 어떤 단어에는 200줄이 넘는 글들이 더해지기도 하죠. 그림이나 사진을 저장해두기도 하고요. 나중에 그걸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가요. 아, 작년 12월 핸드폰의 메모장을 실수로 지워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어요. 망연자실해서 이틀 내내 술만 마셨어요.
최근에 영감을 받은 것이 있다면?
작업실 앞에 놀이터가 있는데, 미끄럼틀을 유심히 보다 그걸 음악으로 표현해봐도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미끄럼틀대의 굴곡이 여자의 S라인 같기도 하잖아요. 영어 단어인 ‘Slide’로 연상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팬들은 늘 소소한 것들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키우는 강아지들은 잘 지내는지, 커피는 어떤 걸 가장 좋아하는지.
얼마 전 배변 교육시키려 훈련소에 보냈어요. 커피는 진짜 많이 마셨는데 목이 건조해지는 것 같아서 끊었고요. 요즘은 칼라만시를 물에 타서 마셔요. 비타민 C 함유량이 레몬보다 높은 필리핀 과일인데 진짜 셔요. 그런데, 이걸 꾸준히 마셨더니 노래를 계속 해도 목이 안 쉬더라고요.
요즘 꽂혀 있는 것은?
계획적으로 사는 것. 하루하루 계획을 세우고 지켜가는 데 열중하고 있어요. 몇 시에 운동하고, 몇 시쯤 잠들지 그런 거요. 그런데, 문제가 있긴 해요. 계획을 지키다 보면 음악 작업이 뚝뚝 끊기거든요.
아티스트가 계획적으로 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녁 7시쯤 음악 작업을 시작해서 다음 날 밤 11시에 끝낸 적이 있어요.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그렇게 음악에 정신없이 빠져든다는 것은 정말 기분좋은 일이죠. 작년에는 이렇게 느낌 닿는 대로 불규칙하게 생활했는데, 덕분에 체력을 잃었잖아요. 중간을 찾기가 힘들어요.
스케줄이 없는 날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촬영이나 공연이 없는 날에는 음악 작업을 해요.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있다면 수영장에 가고 싶네요. 아, 여행도 가고 싶고요. 스위스로요.
국내 활동이 별로 없어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아요.
일본에서는 작년에 솔로 앨범 <Love & Hate>도 내고 솔로 투어도 했어요. 제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더 많았죠.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 준케이의 음악이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저를 더 많이 보여주려 노력해야죠.
곧 국내에서 솔로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떻게 알았죠? 아직 비밀인데.
새 앨범을 살짝 소개해줘요.
기반은 R&B인데 국내에서는 거의 시도하지 않은 스타일이에요. 처음 회사에 들고 갔을 때 대부분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는데, 진영이 형은 진짜 좋아했어요. 음악으로써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요. 저의 개성, 음악, 세계관을 망라한 곡이라 자부해요. 더 이상은 안 되요. 회사에서 스포일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든요. (웃음)
- 에디터
- 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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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Ji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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