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듣는 어떤 것
문화 콘텐츠는 우리의 현실과 이상을 담는다. 즐거움과 함께 때때로 질문을 던진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새삼스레 생각한다. 이들은 또한 섬처럼 혼자일 수 있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한다는 것을.
공감의 웃음
예능PD / 이관원
SBS에서 백종원과 함께한 모든 프로그램이 이관원 PD의 손을 거쳤다. 9년 차 PD로 현재 <맛남의 광장> 연출을 맡고 있다.
어떻게 예능 피디가 됐나?
피디가 되기 전에는 예능 피디가 행복한 직업일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을 고민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좋았다. 실제로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주변에서 누가 제일 부럽냐고 물어보면 내가 제일 부럽다고들 한다.
웃음을 고민하는 직업이라면, 예능인을 할 수도 있지 않나?
잘 웃긴다기보다는 잘 웃는 편이다. 그래서 대학 때 ‘웃보’라고 불렸다. 그게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잘 울기도, 잘 웃기도 한다. 예능 피디는 웃음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떨 때 웃고, 뭘 좋아하는지를 잘 아는 게 예능 피디로서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자연스럽게 방송국으로 왔다.
직접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같았나?
벌써 9년 차다. 흔히 예능 피디를 크리에이터, 기획자라고 생각하는데 조연출을 해보니 아이디어나 기획보다는 실행 능력이 더 중요하더라. 체력, 끈기, 집념이 중요했다. 아이디어가 많은 것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정글의 법칙>을 찍는다고 하면 정글에 가서 뭘 하고 싶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스태프들과 장비를 해외로 가져가서 현장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찍는 건 그 다음이다.
피디에게도 ‘입봉’이 있다. 뭐였나?
조연출 때는 회사 방침상 로테이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돈다. 본인이 어떤 프로를 잘하는지 모르니까 관찰 카메라도 해보고, 음악쇼도 해보고, 스튜디오 예능, 버라이어티도 해본다. 내 이름이 메인이 된 프로는 <골목식당>이다.
입봉작이 잘되어서 고무적이었겠다.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다. 3년 된 프로그램인데, 여기까지 오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처음에는 금요일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시간에 편성돼서 빛을 못 보다가 수요일로 옮기면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게 아이러니더라. 항상 같은 프로그램이었는데 편성이 바뀌면서 관심을 받는다는 게.
<맛남의 광장>은 어떻게 시작한 프로그램인가?
백 대표님과 매주 회식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다 같이 이것저것 해보자 한다. 대표님은 <삼대천왕>을 촬영할 때에도 꼭 그 지역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특산물을 둘러본다. 농수산물이 시장에는 싸게 나오는데 서울에서는 비싸다. 본인도 잊고 있던 재료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걸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소비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집에서 따라 하기 쉽게 레시피를 만들어주고 기업과 연계해서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SBS는 백종원과 벌써 다섯 번째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 다섯 개를 다 나랑 했다.
그래서 별명이 ‘백종원의 아들’이라던데?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위해 떤 고민을 했나?
그런가? 아들은 아니고 애증의 관계인데.(웃음) 백종원 대표님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좋아한 어른이다. 정말로 좋은 어른이다. 백 대표님은 본인이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식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조금씩 바꿔가는 식이다. 다섯 개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다른 게 아니라, 결국은 식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 <골목식당>에서는 식당의 식문화, <맛남의 광장>은 식자재를 활용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거고 <삼대천왕>에서는 그걸 만드는 장인들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관통하는 게 있다.
백종원 대표가 지난 연말 공로상을 탔을 때 뿌듯했나?
방송국 연말 시상식은 노고를 치하하는 예능인의 축제다. 모두 함께 모여 1년을 되돌아보는 자리인데 피디 입장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뭐가 있겠나.
<맛남의 광장>은 요즘 예능 중에서도 보기 편안한 예능이다. 불편한 지점이 많지 않은데.
원래 <골목식당>의 캐치프레이즈가 “이렇게 예쁜 골목, 우리 동네 하나쯤 더 있음 어떨까요?”였다. 하지만 <골목식당>은 한 분 한 분 인생이 걸려 있기에 마음이 무겁곤 했다. 나는 <맛남의 광장>처럼 밝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방송이 감성에 맞다.
패널들은 어떤 이유로 선정했나?
백 대표님은 연예인이 아니기에, 출연자분들을 쉽게 섭외하기가 어렵다. 대표님과 편하게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 아무래도 관련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양세형 씨는 백 대표님과 <집밥 백선생>을 함께 했고 원래 요리사가 꿈이었던 친구라서 섭외했다. <집밥 백선생>을 하면서 요리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 실제로 방송에서 백 대표님과 함께 요리 개발을 하는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와 동갑인데, 세형이를 알게 된 게 올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밝고 존경하는 친구다. 김희철 씨도 원래 백 대표님 팬이었다고 하더라. <골목식당>에 나온 곳을 찾아가서 먹고 인증샷을 남긴 걸 보고 연락을 했더니 대표님과는 무조건 하겠다 하더라. 원래 요리는 문외한이었는데 방송을 하면서 극적으로 요리 실력이 발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예능에서 활발히 활동하지만, 김동준은 새로웠다.
동준 씨는 내가 <스타킹> 막내 조연출이었을 때 처음 봤다. 10시간이 넘는 녹화 현장에서도 성실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 기억에 남아 연락했다.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창의적인 요리를 하는 걸 좋아한다. 흔히 엉덩이가 가볍다고 하는데 뒷정리를 할 때 가장 먼저 움직인다. 여성 패널로는 나은 씨가 있다. 해맑고 자유분방하다. 너무 귀엽다. 나도 방송하면서 입덕했다.(웃음) 현장에서도 다들 나은이를 보고 있으면 광대가 승천한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현장에도 제약이 생겼다.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 프로그램이 애초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장사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러면 안 되니 초청하는 걸로 바꾼 거다. 장사할 때만 축소된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피디가 ‘포스트 코로나’에 맞춰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도전이라고 생각하나? 위기라고 생각하나?
코로나 때문에 못 하는 건 기획자로서 핑계라고 생각한다. 예능 역시 지금까지 관찰 카메라나 버라이어티가 위주였던 게 스튜디오나 퀴즈쇼 형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한이 새로운 창작을 위한 영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맛남의 광장>의 취지 중 하나인 지역 농수산물 소비는 환경 이슈와도 연결돼 있다. 새롭게 느낀 점이 있나?
풍년이 들면 축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농민들은 가격 폭락을 걱정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수출이 막혀서 힘들어하신다. 아예 밭을 갈아엎는 경우도 있는데 내년에도 농민들은 그걸 해야 된다. 소득원이면서 삶 자체다. 그분들의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소비보다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TV를 보지 않는다는 게 지극히 도시적인 생각이라는 것도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았다.
농가나 어촌에서는 TV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한다.
지방 촬영할 때 저녁 8시에 시내에 나가면 거의 다 닫혀 있다. 다들 TV 보고 계신다. TV가 오랜 시간 동안 안방극장 역할을 했다. 이번에 <미스터 트롯> 열풍이 분 것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시청층이 찾은 것이라고 본다.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재미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돼지고기, 못난이 감자 같은 것도 사람들이 몰라서 못 해 먹고 버려졌던 걸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여주니까 좋은 것 같다.
스스로 <맛남의 광장>에 대해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말한다면?
방송은 사람들이 보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능 피디이다 보니 웃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건데 여기에 더불어 사회가 좋은 쪽으로 갈 수 있게 기여하는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한다. 마트에서도 농가가 어렵나 보다 하고 하나 더 사게 된다.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부모님과도 잘 지낼 수 있다. 건강해지고.(웃음) 아쉬운 점은 시청률이다. 그동안 <미스터 트롯>과 동시간대 편성이었다. 시청자들이 많이 봐야 농수산물이 홍보가 되는데 그런 면이 아쉽다.
실제로 편식하나?
나는 음식을 잘 모른다. 음식을 아예 모르는 내가 봐도 이해할 수 있고 먹고 싶어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몰라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어떤 게 재미있고, 어떤 걸 사람들이 안 불편해하는지를 주로 생각한다. 내가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내가 보기에 안 불편하게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유튜브의 속도감이 남다르다. 앞으로의 예능도 그렇게 될까?
오늘 여기에 오면서 차가 엄청 막혔는데 운전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라디오 듣는 것밖에 없더라. 유튜브는 그냥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20년 전에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도 20대 땐 TV를 안 보셨다. 생각해보면 원래 10대, 20대는 TV를 안 본다. 10대들은 공부하느라 안 보고, 20대는 노느라 안 본다. 이들이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유튜브를 보는 거다. 원래 TV를 보던 연령층은 40대 이상부터였다. <워크맨>을 만드는 팀도 결국은 기존 시스템에서 확실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은 유튜브와 TV가 다르지 않다. 콘텐츠의 여러 방식 중 유튜브라는 하나의 장르이지 다르거나 서로 영역을 침범하고 경쟁하는 구조는 아니라고 본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 힙합 앨범을 낸 뮤지션이기도 하다던데.
나영석 피디나 김태호 피디처럼 유명한 피디는 아니지만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이 피디 프로그램은 항상 흐뭇하게 만드는 건 있지”라고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뭐가 됐든 포맷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취향, 성격이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다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스튜디오 예능이 없어졌다. 나도 그 시기에 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라이어티를 하게 됐다. 앞으로는 음악프로도 하고 싶고, 힙합 좋아하니까 힙합프로도 하고 싶고 음악쇼도 해보고 싶다.
에디터 | 허윤선
절망 이후의 지금
미술가 / 전소정
제18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인 전소정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해석한다. 그가 영원히 늙지 않는 이상의 시를 통해 해석한 오늘날의 시간을 7월 5일까지 도산공원 앞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펼쳐 보인다.
수상자로 선정된 2018년 12월부터 수상자 전시 <새로운 상점>이 열리는 2020년 5월까지 짧지 않은 시간의 틈이 존재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길다면 긴 시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주로 작업에 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수상에서 전시까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 4개월 정도 파리에서 레지던스 생활도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작업 <절망하고 탄생하라>의 주요 작업 대부분을 파리 레지던스 생활 때 했다고 보면 된다.
시인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의 초기 시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하더라.
원래 아방가르드 사회에 관심이 많았는데 파리 레지던스 생활을 계기로 프랑스 아방가르드 신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초현실주의라든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같은 운동이 주장한 삶에서의 실천과 정치적인 부분, 나아가 미학적인 영역 사이의 밸런스까지 생각이 깊어질수록 한국의 아방가르드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까 식민지 역사 속에서 이상이라는 시인이 실천한 전위적인 글쓰기를 한국 아방가르드 역사의 직접적인 전환으로 읽을 수 있겠더라. 그때부터 이상의 시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비평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찾아 읽으며 리서치했다. 그의 시를 모더니즘 시로 보는 사람도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며, 지금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미래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 의견이 하도 다양해서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상의 시가 작업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이상의 초기 시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번 전시 제목인 <새로운 상점(Au Magasin de Nouveautes)>은 <조선과 건축>이라는 식민시대 건축 기관지에 실린 이상의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동명의 시 ‘Au Magasin de Nouveautes’에서 따왔다. 이 시는 당시 경성에 새롭게 들어선 미츠코시 백화점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 제목의 일본어로 쓰여 있지만, 중국어와 영어까지 등장하는 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온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다영역적이고 다언어적인 특성이 2020년 현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다양한 문제, 예를 들면 자연과 환경에 관한 문제라든가 자본주의의 이면에 관한 문제를 1930년대에 쓰인 시를 경유하는 시간 축의 이동을 통해 실험해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파리, 도쿄, 서울의 풍경과 낯선 언어가 뒤섞이는 영상 작업 <절망하고 탄생하라>는 그 실험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나?
맞다. 현재와 과거의 풍경, 1930년대의 푸티지들이 아무 지시나 상징 없이 교차하고 분리되는 식으로 이어붙였다. 관객이 과거와 현재가 마냥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연속성의 맥락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는 영상뿐 아니라 조각과 출판물로 이어진다. 각각 어떤 작용을 하길 바라나?
세 가지 형식의 작품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개별적으로도 관람이 가능하다. <ㅁ>이라는 제목의 출판물에 실린 <도회된 로봇>이라는 텍스트는 영상 작품의 각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글쓰기다. 주제를 해설하거나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이 되기를 바랐다. 책과 영상을 함께 놓고 봤을 때만 작동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조각 작품도 영상에 등장하는 가짜 돌에 관한 은유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하는 방식으로 연결성을 부여했다.
‘검은 밤’이라는 이름의 밴드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축이 넓어지는 이유는 뭘까?
전통적인 예술의 영역에서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모든 예술가를 대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작업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일이 꽤 자연스럽다. 어떤 이야기는 글로 썼을 때 효과적이고, 또 어떤 건 영상을 만들거나 조각을 통하는 게 효과적이다. 근데 그 모든 다양한 매체의 표현은 글쓰기라는 기본적인 행위를 바탕으로 한다. 텍스트를 기본으로 상황과 목적에 따라 더 파워풀한 매체를 선택하는 거다.
이상에 관한 공부를 통해 하나의 작업을 완성해낸 지금, 당신은 그를 어떤 예술가로 해석하게 됐나?
작업자로서의 공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자신이 처한 시대적인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애쓰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의 연장선에서 이상을 기억하고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명확히 그를 정리 혹은 해석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미스터리다.
당신의 작업을 따져보면 늘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인다.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나는 활동가가 아니라 예술가다. 단순한 발언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미학적 언어의 실험과 정치적인 몸짓이 균형을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내게 주어진 막중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 이후 예술은 달라질까? 당신의 다음 작업에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나?
분명히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에 출판물 <ㅁ>에 실릴 글을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필자에게 받기로 했는데 약속한 날짜에 원고를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정이 곳곳에서 터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과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가 도전받게 된 상황이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1930년대 갑작스럽게 맞이한 식민 근대라는 상황이 가져온 혼란을 100년 가까운 시차를 둔 지금 다시 겪고 있는 것인데, 그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오늘날 예술가로 산다는 건 어떤지 묻고 싶다.
모든 예술가가 자기만의 형식을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데,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뤘을 때, 다 버리고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작가는 끊임없이 채우고 비우는 반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시인 이상이 그랬던 것처럼.
에디터 | 최지웅
시작의 노래
밴드 / 루시
지난해 <슈퍼밴드> 준우승을 차지한 밴드 루시가 첫 번째 싱글 앨범 <DEAR.>를 통해 시작선 앞에 섰다. 루시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일 참이다. 여전히 뜨겁고, 언제나 생생하다.
3시간 전에 첫 번째 디지털 싱글 <DEAR.>이 공개됐다. 발매 기념으로 진행한 브이 앱 라이브를 마치고 스튜디오로 입장하는데 들뜬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원상 마치 영화 한 편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러 사건과 갈등을 겪은 다음 마지막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영화. 방금 그 마지막 장면에 머물다가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겠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챕터 1을 끝낸 기분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인 건 분명하다. 출발선에서 이제 막 발을 뗀 날이니까.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큰 것 같다. 브이 앱 라이브를 마치고 여기 오는데 벌써 다음 앨범, 다음 노래에 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왕 달릴 거 전력 질주해서 내달릴 참이다.
밴드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원상 프로듀싱과 베이스를 맡고 있다.
예찬 밴드의 리더다. 원래 어디 앞에 나가서 뭘 대표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 요즘 엄청난 노력을 하는 중이다.(웃음)
광일 팀에서 드럼과 막내를 맡고 있다. 드럼은 밴드에서 바탕이 되는 악기라 중심을 잘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상 광일이는 생활적인 면에서도 늘 중심을 잡아주는 친구다.
상엽 보컬이자 이성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 이성이 90이고 감성이 10인 사람이라.
음악도 음악이지만 비주얼이 흥미롭다. 오른손에는 아티스틱한 밴드를, 왼손에는 아이돌을 쥐고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원상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본격적인 아이돌로 나서기엔 좀 무리라고 생각한다.(웃음) 다만 멤버 모두 아직 젊고 활동적이라 아이돌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데다가, 모두 음악적인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게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밴드와 아이돌이 상관없이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 둘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힙합이 대세가 된 지금, 밴드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해 보인다.
상엽 그 말에 100% 동의한다. 처음 아이돌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끄럽기도 했는데, 이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밴드 음악에 대한 편견이나 이미지를 편안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타이틀 곡 ‘개화’는 어떤 노래인가?
원상 말 그대로 꽃이 핀다는 뜻인데, 루시의 데뷔곡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루시가 피어난다. 뭐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요즘 여러 이유로 많이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 않나. 지금을 추운 겨울이라고 봤을 때, 봄은 언젠가 온다. 무슨 일이 있어도 꽃은 필 거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추운 겨울을 잘 헤쳐나가자는 마음이 담겨 있는 노래다.
루시 음악의 특징으로 앰비언스 사운드와 바이올린을 들 수 있다. 밴드가 추구하는 장르는 무엇인가?
원상 장르적으로 한 가지만 고집하거나 규정할 순 없다. 루시의 음악은 그냥 루시의 음악이다. <슈퍼밴드>에서부터 개화까지 내놓은 곡이 많진 않지만, 그 노래들은 전부 다른 장르다. 펑크, 발라드, 록, 포크 송까지 다양하다. 앞으로 힙합이나 EDM도 다 해볼 생각이다. 어떤 음악, 어떤 장르를 만나도 거기에 루시의 색깔을 입히는 일, 딱 들으면 루시의 음악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바이올린이 지배하는 밴드 사운드가 참 아름답고 참신하게 들리더라.
원상 바이올린은 예찬이 형이 연주하고, 곡 전체 프로듀싱은 내가 맡아 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노래 개화까지는 바이올린이 루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올린을 가장 중심에 두고 나머지 사운드가 따라붙는 식으로 작업했다. 근데 앞으로는 꼭 그렇게만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전히 바이올린이 주축이지만 그걸 대놓고 내세우는 건 힙하지 않은 것 같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앰비언스와 노이즈는 다른가?
원상 완전히 다르다. 쉽게 말해 앰비언스는 생활 소음이라고 보면 된다. 듣기 싫지 않다. 반면, 노이즈는 정말 듣기 싫은 소리를 말한다. 근데 화이트 노이즈는 또 앰비언스에 속한다. 결국 작업자의 의도나, 듣는 사람의 반응과 해석에 따라 앰비언스와 노이즈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발디를 아침 알람으로 설정해뒀는데, 그 아름다운 연주가 내게는 괴로운 노이즈다.
원상 맞다.(웃음) 알람은 확실히 노이즈가 맞다. 근데 우리는 그 노이즈를 앰비언스로 사용한 적이 있다. ‘선잠’이라는 곡에 알람 소리를 사용했다.
앰비언스를 선택하고 이용하는 방식이나 기준은 무엇인가?
원상 철저히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 우리의 특색이 앰비언스 사운드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하진 않는다. 뭐든 어울려야 좋은 법이다. 나 같은 경우 곡을 만들 때 머릿속으로 영상 이미지를 상상한다. 어떤 공간을 떠올리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과 온도, 밝기 같은 걸 상상한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깔릴 음악을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노래에 어울리는 앰비언스를 찾아낼 수 있다.
뮤지션이 설 수 있는 무대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활동 방식도 달라지지 않을까?
원상 코로나19 때문에 앨범이 늦어지기도 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불리할 거라 생각했지만 좋게 생각하는 중이다. 오히려 가장 시의적절하게 데뷔한 느낌도 든다. 우리 노래를 들어보면 알 거다.
광일 온라인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거나 라이브하는 시간을 자주 만들 생각이다. 유튜브 채널에 브이로그도 열심히 올리고 있다.
이번 앨범의 테마가 트래블러 & 가이드더라. 나뿐만 아니라 많이들 여행을 그리워하는 지금, 루시의 음악이 신선한 위로가 됐다. 다시 여행을 꿈꾸며, 가장 떠나고 싶은 여행지는 어딘가?
상엽 동남아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는 전 세계인이 찾는 안식처이다 보니 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느낀 게 많다. 그전까진 좁은 책상 위에서만 살았다면 동남아를 다녀온 후 큰 문을 열고 나간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원상 완전 제대로 도시인 뉴욕에 갔다가, 남미의 자연에 가고 싶다. 180도 다른 풍경을 연이어 겪으면 감각이 확장되지 않을까.
예찬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웃음) 다른 나라에 가는 게 좀 무섭다.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아서 그걸로 만족한다.
광일 나도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 어린 시절 페루에서 6년 정도 살았는데 남미 스페인어와 스페인 본토의 스페인어가 얼마나 다른지 경험해보고 싶다.
더 하고 싶은 말 있나?
원상 우리 노래를 듣고 여행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위로받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고맙다. 그 말이 단지 좋은 마음으로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 진짜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루시의 노래가 정말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에디터 | 최지웅
문학과 라디오
시인 / 박준
시를 쓰는 박준이 라디오 디제이가 되었다. 밤 12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CBS 음악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에서 직접 쓴 원고로 세상을 향해 말과 음악을 전한다.
작가로서는 드물게 라디오 디제이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지가 않더라.
방송 제안이 오면 일단 두렵다. 내가 모르는 분야와 환경이고, 사람의 말이 전달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라디오는 문학과 닮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기뻤던 것 같다. 50일 정도 됐는데, 역시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어떤 점이 문학과 닮았나?
집에 혼자 있을 땐 침잠한다. 내 맘대로 내 감정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심야라는 시간도 그렇다. 방송에서 말을 해야 할 때는 걸러야 할 게 많더라. 어떤 감정을 타인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우울하다고 해서 우울한 걸 계속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밝고 희망찬 걸 할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그 온도 조절을, 어떤 온도를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오늘도 생방이 있다고 들었다. 새벽 2시까지 진행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3시 반이 넘을 텐데. 야행성인가?
주로 생방을 많이 하려고 한다. 원래 야행성인데 그렇다고 해서 밤에 활동한다는 얘기지 밤에 뛰어다닌다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나뭇가지에 웅크려 있는 것에서 지금은 들판을 뛰어다니는 기분이라 시차적응도 힘들다. 내가 직장인이다. 다른 라디오 진행자들도 연기나 노래처럼 다른 일들을 하지만, 아무튼 낮에는 실무자로 일하는 날이 있고 밤에는 시인도 아닌 진행자의 정체성을 하나 가져야 하니까 갈팡질팡하고 있다. 너무 힘들다는 얘기만 했나?(웃음)
처음에 어떻게 제의를 받았나?
지금 방송을 제안한 피디가 김현정 앵커가 하는 <뉴스쇼>의 피디였다. 정치시사방송을 5년 가까이 하다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것도 이 시대에는 필요할 거라는 생각으로 기획을 했다고 하더라. 이 시대의 문학을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소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게 있다. 종이매체, 라디오, 책이 대표적이다. ‘그것들끼리 만나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신남도 있었다. 현실의 대세와 조금 동떨어진 곳에서 더 자유롭게 해보자는.
매거진도 그렇다고 하니, 지금 ‘사양’의 세제곱이다. 라디오는 음악도 중요하다. 어떤 음악을 좋아했나?
내 주변 시인이나 작가는 대부분 다른 분야의 예술 장르에 비교적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그냥 ‘막귀’다. 그냥 좋아하는 뮤지션만 반복해서 들었다. 공통적으로 듣는 음악을 들으며 시기를 넘었고, 김현철, 윤종신, 박선주 같은 노래를 편식했다.
라디오를 들어왔다면 특별히 추억하는 프로그램도 있기 마련이다.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가장 열심히 들었다. 내가 라디오를 들을 때 뭘 좋아했는지 생각해봤다. 제일 좋아했던 코너가 ‘그 남자 그 여자’였다. 라디오에는 흥겨운 코너도 많지만 라디오 작가들이 쓴 텍스트도 있다. 귀로 들어야 하니 시나 소설에 비해서는 조금 가벼운 듯하지만 그때 이름도 모르는 많은 작가가 썼던 걸 들으면서 문학적 경험을 많이 한 것 같다. 허수경 시인이나 이병률 시인도 라디오 작가를 오래 하셨다. 그분들은 방송의 이름으로 썼지만, 우리가 분명히 귀기울여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라디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가장 변하지 않은 미디어다.
원하는 곡이 있으면 클릭해서 그냥 들으면 되는데 지금도 신청곡을 적어 보내는 사람도 있고 사연을 적어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늘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고종은 얼리어답터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전신기가 깔렸을 때 고종이 아침에 문안인사를 전화로 대신 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홍릉에 전화를 설치해서 3년상을 전화로 치렀다고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 신박한 물건도 저승과 이곳을 연결하지는 못하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건 본질적인 거다. 변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잡지나 문학, 라디오도 없어질 것 같지만 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혹은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혹은 내가 장악하지 않은 내 삶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는 거다. 음악을 내가 틀어서 들으면 그만인데 라디오에서 우연히 나오면 더 좋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해도 사라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라디오와 책이 비슷한 몰입의 순간을 준다고 생각하나?
라디오나 책의 공통점은 혼자 있을 때 방해가 안 되는 것이다. 혼자 있되, 타인이 개입한다. 타인의 정서, 목소리 등이 개입하는데도 이게 ‘혼자’를 방해하지 않고 더 혼자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하는 밤’이라는 이름은 직접 지었나?
직접 지었다. 원래는 ‘박준 시음회’였다. 시와 음악과 모임이 있다는 뜻인데 술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작하는 밤’은 여러 제목 후보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여러 후보가 있었다. 시로 통하다 ‘시쓰루’, 시의 나라 ‘시월드’도 있고 시가 사는 곳 ‘시공간’도…(웃음)
숫자로 정확히 나오는 청취율에 대한 부담은 없나?
작가들은 그쪽으로 단련이 되어 있다. 책을 쓸 때부터 판매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일말의 패배주의가 있으니까. 그래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누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을 하긴 한다. 사실 청취율에 대한 부담보다 ‘말’에 부담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면 안 될 텐데. 그게 가장 큰 부담이다.
라디오 원고를 직접 쓴다던데.
물론 훌륭한 작가 분들이 많지만, 한동안은 작가 없이 방송할 것 같다. 청취자가 사연을 보내면 약국에서 약 짓듯이 시로 처방하는 코너도 있고, 가요 속에서 어떤 것이 시적인지 역추적하는 코너도 있어서 직접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가사도 있다.
많은 사람이 “옛날 노래는 시였어”라고 한다. 옛날 노래뿐만 아니라 요즘 노래도 그렇다. 멜로디 때문에 가사가 잘 안 들리는 거다. 귀기울여 들어보니 좋은 것들이 너무 많더라. 러블리즈의 ‘아츄’도 그렇다.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라고 하는데 시는 말로 다 표현하는 게 아니거든. ‘사랑해’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재채기 한 번 하는 게 시다. 가사를 유심히 듣는데 시를 분석하는 것만큼 어렵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이게 가란 말인지 가지 말란 말인지 굉장히 애매하다. 노래도 그런 모호성이 있다. 좋은 노래란 명확한 노래가 아니라 추상적이고 친절하지 않아서 상상이 개입할 수 있는 노래가 좋은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방송에서 본인 목소리는 아침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더라.
어떤 분이 플로리다에서 매일 듣고 있다고 사연을 보내주셨는데, 우리 방송 시간이 거긴 아침이다. 이걸 들으면서 어떻게 활기찬 시작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이제 두 달쯤 되니 익숙해졌나?
운전처럼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일이 있다. 또 어떤 건 매번 낯선 일이 있다. 한 달쯤 지나니까 라디오는 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떠는 편인데도 엄청 떨린다. 밤 12시의 힘찬 목소리도 내야 되고.
힘찬 목소리였나…?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찬 목소리다.
토크가 적고, 음악이 많이 나와서 CBS 음악FM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점은 어떤가?
맞다. CBS 음악FM의 특성인데 그중에서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방송이다. 음악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분들도 있고 혹은 말을 더 많이 했으면 하는 분들도 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말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수다가 많은 사람이다, 내가.
적지 않은 시간을 라디오에 할애하고 있다. 작품활동과 병행하는 건 어떤가?
시를 쓰는 건 생활을 끊임없이 방해받는 일이라 이 정도 방해는 방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를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올까? 그런 시간은 안 올 것 같다. 그냥 노동을 하듯이, 직장을 다니듯이 쓰는 것 같다. 영화 <아가씨>에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대사가 있는데 나한테 일상 혹은 노동이 그런 것 같다. 없으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나를 망치고 있는 것 같지만, 없으면 나머지 쓰기도 무너질 것 같다. 무슨 말을 쓰겠나. 게다가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은 대부분 출근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나도 때로는 떠나고 싶다.(웃음) 하지만 그게 쉽지 않고 떠난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라디오를 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일을 할 것 같다.
라디오 대본은 처음일 텐데, 술술 써지는가?
라디오는 오프닝을 제일 신경 써서 쓰는데 속도감이 있어야 하니까 빨리 쓴다. 반면 시는 진짜 잘 쓰고 싶다. 시가 잘 안 써지면 화가 난다. 시가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시는 미학적인 것들을 중첩시켜야 되니까 오래 빚는 거다. 국수로 비유하자면 시는 면발이 같은 굵기로 여러 개 있는 거라면 라디오는 속도감이 있어야 하니까 칼국수처럼 그냥 숭덩숭덩 써는 거다. 거기서 쾌감을 느낀다. 내가 세상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되게 재미있는 경험이다. “우동도 그렇습니다. 저는 ‘우동’ 하고 발음 할 때 입술이 동그랗게 모이는 입술 모양을 좋아합니다. 이때 입 모양은 마치 한 가닥 남은 면발을 호로록 빨아들일 때와 닮아 있습니다. 우동은 사실 가락국수로 표기해야 하는 외래어지만 그래도 저는 우동이라는 말이 더 좋아요. 우동 우동 우동.” 이게 오프닝 멘트다. 너무 신난다.(웃음)
아까도 ‘신남’을 말했는데, ‘신남’이 느껴진다. 어떤 라디오를 만들어가고 싶나?
요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깊은 의미를 가진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의 실험이다. 하루에 두 편 정도를 라디오에서 읽는데 너무 어려운 시는 못 읽는다. 귀로 들으면 정리가 안 되니까. 그래도 점점 이걸 깊이 가볼까 하고 있다. 평소에 내가 말하는 게 답답하다고 본론부터 이야기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래서 이런 말하기도 있다는 것을 뽐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빙빙 에둘러서 “있잖아…이게 말이야…” 하면서 정서를 전달하는 말하기를 해봐야겠다는 것이 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목표다.
오늘은 라디오에서 어떤 얘기를 할 예정인가?
아직 대본을 덜 썼다.(웃음)
에디터 | 허윤선
좋은 사람들
드라마 작가 / 김은향
<아무도 모른다>는 특별한 작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드라마가 되었다. 좋은 연기, 뛰어난 연출 뒤에 훌륭한 이야기가 있었다. 첫 장편 데뷔를 한 김은향 작가의 말이다.
SBS홍보팀이 말하길, 당신이 신중한 사람이라더라. 인터뷰를 대부분 고사했다던데.
홍보팀이 나를 잘 모르니 포장을 잘해준다. 신중이 아니라 소심하다. 이번 인터뷰도 피디님(기획피디)의 장문의 문자가 아니었으면 거절했을 것 같다. 지면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는 내용인데, 그렇게 긴 문자는 일하면서 처음 받았다.
입봉작으로 안다. <아무도 모른다>는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
단막극을 했었고, 장편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여름에 감독님이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약자를 구원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드라마가 결정된 건 작년 5월이었다. 내가 이런 작품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연출을 맡은 이정흠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니 흥미롭다.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다. 전작 <조작>이 굵직한 사건 위주의 이야기다 보니 사람에 집중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더라. 처음부터 연쇄 살인이 나와 조금 당황했지만 꽂히는 부분이 있어서 진행하기로 했다.
여성과 약자. 감독이 시류를 읽은 걸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지금의 이야기가 짜여 있었나?
처음엔 7매짜리 기획안을 썼다. 인물 없이 맨 첫 장에 ‘아이의 추락과 그 비밀을 밝히려는 여자 형사’, 그리고 ‘좋은 파수꾼이 불운한 일을 쫓는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드라마 마지막에 이 문장을 넣어주셨더라. 내게는 말을 안 하고.(웃음) 영화 <글로리아>를 보시고 그런 강인한 여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도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하니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서 아이를 지킨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작가로서 짜릿하기도 했겠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초반에는 시청률 걱정이 많아 제대로 작품을 즐기지 못했다. 감독님이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올 수 없는 드라마라고 했었다. 초반에 잘 나오니 떨어질까봐 또 걱정이 됐다.(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너무 많지만 영진과 은호가 환하게 나아가는 장면이다. 이번 작품은 기대보다 훨씬 사랑을 많이 받아서 감사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기다리신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제 몫을 한다. 흔히 말하는 ‘민폐 캐릭터’가 없다. 악인은 악인의 몫을, 선인은 선인의 몫을 다한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감독님의 뜻과 제 성향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한국 드라마는 주인공의 드라마라고 하지 않나. 약점이 많은 드라마였는데, 그걸 배우들이 연기로 메워주고 감독님이 연출로 메워주는 것 같다.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쓰지 않고 개인적인 복수에 치중하지 않으려고 했다.
은호가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안갯속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청자들을 붙들어야 한다는 초조함은 없었나?
시청자 반응 중에 ‘희한하게 재미있다’라는 게 있었다.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한 드라마도, 이야기나 전개 방식이 대중적인 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엔딩’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디에서 끊어갈지도 고민이 많았다.
드라마에서 <자기 앞의 생>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많은 책 중 왜 이 책을 선택했나?
처음부터 생각하고 쓴 건 아니다. 영진이와 은호에게 식물과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어떤 책이든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 읽게 하는데, 나중에 사건을 쫓는 실마리도 책이 될 거니까. 거의 필연적으로 떠올랐던 것 같다. <자기 앞의 생>은 가족이 아닌 모모와 아줌마가 나오니까.
작가가 어떤 영화, 드라마, 책을 읽어왔는지 궁금하더라.
책은 잡다하게 보고, 드라마나 영화도 별로 보지 않는다. 드라마를 많이 안 본 게 티가 난다고 하시더라. 중고등학교 때 고전을 많이 봤고, 미야베 미유키나 요 네스베의 신작은 찾아서 본다.
처음 공개된 시놉시스처럼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끌어갔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 좋은 어른도, 나쁜 어른도 있기 마련이다.
좋은 어른과 아이로 표현했지만 아이만이 아니라 사람의 의미를 담았다. 아이는 조금 더 취약한 약자니까 그렇게 표현했지만, 약자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과의 유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차영진 역을 한 김서형부터 학생 역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고마운 사람은 없나?
인사치레가 아니고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차영진은 당연히 김서형 배우를 생각했다. 다른 배우의 차영진은 상상을 못 하겠다. 외형적으로도, 내형적으로도 완벽하다. 고은호 역의 안지호는 사실 분량도 굉장히 많고 어려운 연기인데 너무 잘해준, 복덩이다. 권해효, 류덕환, 박훈 배우. 신구의 조합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류덕환 배우는 중요한 역할이되, 희생을 많이 하는 역할이다.
맞다. 대본 리딩 끝나고 저녁 먹을 때 맞은편에 앉으셨는데, 분량은 신경 쓰지 말라고 자기는 대본이 좋아서 하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워낙 연기 장인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감사한 마음이다.
드라마는 ‘유사 가족’을 다루기도 한다. 가장 가족적인 유대를 보이는 관계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고, 실제의 가족은 상처를 준다. 대부분 가족적으로 마무리되는 주말 드라마 등과는 다른 지점이다.
세상에 없는 얘기는 아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그런 친구들로 쓸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보면 가족이 가장 상처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가족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 않나. 가족은 쉽게 버릴 수 없으니까….
종교와 사학재단 같은 한국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 원래도 관심이 있던 주제인가?
나는 무교지만, 종교가 어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지 않나. 종교의 순기능을 믿는다. 나쁜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비율로 있듯이, 종교도 그런 것 같다.
황인범이 끝까지 선인인지 악인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이름이 ‘범인’을 거꾸로 한 것이라는 거다. 의도한 걸까?
얻어 걸린 거다.(웃음) 황인범이라는 인물은 중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감독님은 그가 좋은 어른의 표본으로 끝까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문성근 배우님과 감독님은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라 함께할 수 있었지, 난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반전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시청자분들이 반전이 있는 드라마에 익숙하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문성근 배우님도 나중에 선한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더라.
황인범은 극중에서 “도리어 불운한 사람 곁에 너처럼 남의 불운을 안고 살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불운이 불행까지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거 아니겠니?”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가 각별하게 들렸다. 한국 사회에서는 불운한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시청자분들이 저희 드라마에 가치를 부여해주시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내내 감동적이었다. 그런 부분을 의도하진 않았지만, 불운한 사람들이 자기 탓을 많이 하지 않나. 그 점은 바뀌었으면 한다.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들 좋은 어른이 되었을 거라고 보나?
나는 성장 드라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계기가 있어도 사람은 바뀌기 쉽지 않다. 안에 선함이 있는데 환경이 너무 척박하면 그게 묻힌다. 태형이도 선우도 안에 선함이 있는데 억눌려 있다가 자기 안에 있는 걸 발견하는 거다. 차영진이라는 인물도 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완벽한 이상적인 인물이다.
다음 작품은 예정되어 있는가? 어떤 작품을 선보일 생각인가?
준비 중인데, 사실 겁이 많이 난다. 연출이 미쳤다, 짜릿하다, 작가가 천재다 이런 반응은 잠깐 짜릿한데 금방 휘발되는 감정이다. 오래 남는 반응은 ‘고맙다’라는 거였다. 드라마를 소비해주시면 우리가 감사한 건데 도리어 고맙다고 말씀해주신다. 그럴 때 약간 경이롭다. 다음 작품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못 들을 텐데, 욕심이 생길까봐 걱정이다.
에디터 | 허윤선
최신기사
- 에디터
- 허윤선, 최지웅
- 포토그래퍼
- KIM S. GON, CHANG KI R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