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PLAYING, 레드벨벳 슬기 [1]
시간과 함께 점점 단단해져가지만, 무대에 설 때면 늘 처음을 생각한다. 슬기란 사람은 그렇다.
어김없이 오늘도 비가 오네요. 이번 아이린&슬기의 유닛 활동은 마무리된 거죠?
네, 공식적인 활동은 끝나서 좀 여유가 있어요. 첫 유닛이고 시작이니까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요. 계속해서 뭔가가 나올 수 있으니까…(웃음)
작년보다 콘텐츠 소비가 많은 해라고 하죠. 그래서인지 올해 ‘Psycho’와 ‘Monster’를 엄청 들었어요. 특히 마감 때면 편집장의 방에서 ‘Psycho’가 무한재생으로 들려오곤 했어요.
하하! 저희보다 많이 들으신 거 아닌가? CD 하나 드리고 싶어요.
곡도 좋고 안무도 멋졌는데, ‘Psycho’의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죠?
맞아요. 그게 저도 참 아쉽고, 모든 멤버가 아쉬워하는 부분이죠. 하지만 ‘Psycho’가 끝은 아니니까. 앞으로 콘서트나 다섯 명이서 할 수 있는 무대가 많기 때문에 계속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여드려야죠.
그래서 ‘Monster’로 무대에 오르는 게 더 즐거웠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느낌은 어땠어요?
진짜 오랜만에 하는 음악방송이었거든요. 너무 떨렸어요. 카메라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많이 되었고요. 오래 준비했는데도 아이린 언니랑 그런 얘기를 자주 했어요. 너무 떨린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럴 때면 아이린은 뭐라고 해요?
“잘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컴백해서 하다 보면 다 하고 있을 거야!” 나중에 보니 정말 그 말대로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설렜어요. 저희 컴백이 많이 밀렸거든요. 그 전에 맞춰서 예능도 찍고 그랬는데, 얘네 갑자기 왜 나왔지? 같은 상황이 된 거죠.(웃음)
유닛은 어떻게 시작되었어요?
처음엔 “오, 우리 둘이서 유닛이 나온다고?” 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엔 어떤 콘셉트일지 궁금했고요. 아이린 언니랑 오랜 시간 맞춰왔으니까 케미는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콘셉트가 궁금했어요. ‘Monster’가 나온 후에는 주변에 많이 물어봤어요. 처음 시도하는 거고 생각지도 못한 콘셉트라서 걱정이 됐거든요. 주변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너희 둘 아니면 이걸 누가 소화하겠냐는 말도 들었고요.
그런 예쁜 말은 누가 해줬어요?
멤버들. 두 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고 응원해줘서 힘이 났어요.
‘Monster’도, ‘놀이’도 안무가 주는 쾌감이 있어요. 두 명이라서 완성할 수 있는 안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주 어려워 보이고요.
처음에는 이거 우리가 할 수 있나…?(웃음) ‘터팅’이라는 안무는 기초가 확실히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중간하게 보일 수 있고 빈틈이 많이 보여요. 다시 연습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모양을 만들어가면서 기초부터 연습을 했어요. 초반엔 너무 힘들었죠.
작년에 만났을 때 ‘춤을 출 때 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던 게 기억 나요. 결국 손으로 끝장을 보았군요.
저도 손가락까지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냥 안무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리까지 써야 해서 정신을 못 차렸는데, 어느 순간 저희가 하고 있는 거예요. 자신감도 생기고, 이건 누구도 해보지 않은 시도고 이걸 우리 둘이 보여줬을 때 팬분들이 좋아하시겠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더 재미있게 했어요. 둘의 합을 보여주는 거라서 만족스러웠어요. 저도 이번 활동을 통해 더 배우고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무대를 보면 엄청난 집중력이 느껴져요. 집중력이 좋은 편인가요?
한번 집중하면 잘되는 편인 것 같아요. 이번 활동을 하면서, 보시는 분들도 집중해주신다는 걸 느꼈어요. 나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보시는 분들도 집중해서 봐주시는 거죠. 눈을 뗄 수 없이 계속 보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같이 느끼는 거구나 싶어서 되게 뿌듯했어요.
처음 ‘Monster’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조금 의아하기도 했어요. 엑소의 ‘Monster’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무대를 보면 ‘Monster’일 수밖에 없고요.
저희도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데모부터 이건 몬스터였어요. 눈을 감고 이걸 들으면 몬스터의 형상이 떠오르고 이미지가 떠오르는 노래예요. 그냥 이 곡은 몬스터다. 꿈속을 헤집고 다니는 몬스터. 비주얼을 연출할 때 했던 것도 쌍둥이적인 걸 계속 가져갔거든요.
자아와 초자아, 그런 걸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실생활에서 괴물이 될 수는 없지만 무대에서는 괴물이 될 수 있죠. 그런 식으로 상반된 자신을 표현할 때의 희열도 있나요?
그런 부분이 너무 재미있죠. 평소 제 모습은 안 그러니까. 무대에서는 괴물이 되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아이린&슬기의 앨범을 보면 긴장과 이완이 반복돼요. ‘Monster’와 ‘놀이’로 꽉 찬 퍼포먼스를 보여준 후에는 유려하고 자유로운 ‘Uncover’가 흘러나오죠. 검은 팬츠에 흰 셔츠를 입은 채로 혼자 춤을 춰요.
‘Uncover’는 콘서트 때 보여드린 안무에서 시작했어요. 슬기는 어떤 솔로무대를 해볼래 했을 때 저의 깊은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제 이야기이지만 모든 사람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거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걸 표현하지 못하고 안에 감정을 감춰두고, 웃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밑바닥에는 감정이 있고 소용돌이가 있고, 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갈망도 있죠. 저한테도 그런 게 있었어요. 저희 콘서트 무대에서는 웃는 얼굴을 찍으면서 시작이 돼요. 그렇게 탄생한 게 ‘언커버’였어요.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곡이군요. 한국인이라면 그런 보이지 않는 부담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런 내면의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무도 최대한 자유롭게 해보려고 했어요. (손으로 안무를 하며) 이런 선을 보여주고. 저도 누구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이에요. 그래도 무대를 할 때에는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3분 동안 다 할 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안 되거든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나를 벗어던지고 훨훨 날아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