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쓰리 너는 재밌었어? 재밌긴 한데 난 어쩐지 좀 시시하던데?

요즘 뭐 하냐고 물으면 집에서 콘텐츠만 본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뭘 봤을까? 기대 이상과 기대 이하의 작품을 가려봤다.

NETFLIX

GOOD  <다크>

어후, 인물이 너무 많다. 주요 인물만 15명이 넘는다. 자투리 인물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그리고 각 캐릭터가 저마다의 역할이 뚜렷하기에 그 이름과 역할도 외워야 한다. 이 독일 드라마는 타임 패러독스물이다. 33년 단위로 시간 여행을 하기에 각 인물의 33년 전 모습과 현재 모습, 33년 후 모습이 교차한다. 12살의 예쁜 소년 미하엘이 33년 뒤에는 우중충한 포스를 풍기는 아재가 되어 있다. 그러니 한 캐릭터를 최소 두 명 내지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라 가뜩이나 복잡한데, 배우들까지 3인 1역을 연기하니 시청자로서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꽤나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시즌1은 시청자의 호불호가 갈렸다. 뭔 소린지 몰라서 지루하다는 평과 열 손가락 바들바들거리며 전율에 휩싸였다는 찬양이 혼재해 있었다. 하지만 시즌 2에서부터는 복잡한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새로운 매듭을 발견하게 된다.
다 해결된 것 같은데, 아니야 이제부터가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대망의 시즌3에서는 각 캐릭터가 가진 비밀과 관계, 사소한 사건과 인류의 미래를 건 아포칼립스까지. 그 실타래를 모두 풀어내며 개운함과 충격을 동시에 선사한다. 맞다. 시즌3가 완결이다. 시즌1은 발단, 시즌2는 전개, 시즌3는 절정과 결말로 보면 되겠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진 않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신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크>를 시청할 때의 기분은 만화 <몬스터>의 몰입감과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여운과 유사했다.

BAD <리얼리티Z>

어디 뭐 새로운 좀비물 없나? 한동안 영화계에서 좀비를 우려먹을 대로 먹어서 이제는 뼈만 남은 것 같다. 브라질 드라마 <리얼리티Z>는 이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자신만만하게 내세운 좀비물로 지난 6월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설정은 참신하다.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했다. 맨션 형태의 스튜디오에서 각자 개성을 가진 참가자들은 여기서 먹고 자고 취하고 운동하고 할 거 다 하면서 생활하고,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쫓는다. <리얼리티Z>는 영국 좀비물 <데스 셋>을 각색한 작품이다. <빅브라더>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 등장한 드라마라 당시 유행하던 <빅브라더> 포맷을 차용한 것 같다. 어쨌든 참가자들은 리얼리티쇼에 한창인데, 스튜디오 밖에서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며 아포칼립스가 된다. 바깥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참가자들은 왜 사회자가 진행을 안 하는지만 궁금할 뿐. 하지만 이야기는 전개되어야 하니까. 결국 여차저차해서 좀비들을 겪게 되고, 이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설명을 듣자니 <워킹데드>가 연상되나? <리얼리티Z>는 그보다 유쾌하고, 전개가 빠르다. 팝컬처처럼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새로운 인물들도 빠르게 등장했다 빠르게 퇴장한다. 주인공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출연자들은 죽고, 새로운 출연자가 이야기를 이끈다. 이거 스포인가? 문제는 답답하다는 것. 인물들의 행동은 굼뜨고, 좀비들은 요즘 좀비답지 않게 느긋하다. 사람을 한 번 물고 도망가는 좀비도 기존 좀비의 설정과는 다르다. 반찬 투정하는 건가? 게다가 연출은 어색하고, 유치하다. 리얼리티쇼라는 포맷의 장점도 제대로 못 살렸다. 그럼에도 굳이 칭찬할 구석을 꼽자면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거스르는 방식이다. 그뿐이다.
– 조진혁(<아레나 옴므플러스> 피처 디렉터) 

TV

GOOD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올해 상반기 월화드라마로 방영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방영 전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단 제목이 좀 애매했다. 길기도 길거니와 줄여서 부르기에도 똑 떨어지지 않는, 최근 드라마 제목 트렌드와는 좀 거리가 먼 제목이었다. 마치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를 연상케 했다. 한예리, 추자현, 정진영, 원미경, 김태훈 등 연기파 배우들을 모아놓은 캐스팅 역시 모자랄 건 없었지만 스타 파워를 가지고 있는 원톱 혹은 투톱 주연의 캐스팅 구성과는 달랐다. 즉 눈길을 끌 만한 흥미 요소가 좀 부족했다. 트렌디한 미니시리즈가 주로 방송되는 평일 밤 편성 역시 경쟁력이 강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가족입니다>의 힘은 강했다. 마치 엄청나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였다. 먼저 꼼꼼한 대본과 세련된 연출이 국물 역할을 제대로 했다. 2020년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솜씨는 동시대적 호흡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치고 빠지는 감각적인 맛을 깊게 냈다. 거기에 더해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고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 아닌 듯한 열연이 더해지며 풍미가 극대화되었다. 각기 다른 고민을 간직한 개인이자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생동감이 넘쳤다. 어떤 캐릭터의 고민도 가볍지 않았고 농익은 배우들의 무겁지 않은 티키타카의 터치는 이 드라마의 앙상블 캐스팅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가족 드라마라는 다소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를 기본기에 충실하게 만들어낸 <가족입니다>는 그야말로 2020년 상반기의 필살기였다.

BAD <우아한 친구들>

제2의 <부부의 세계>를 노골적으로 염두에 둔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은 카피의 재앙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올 상반기 모든 이슈를 싹쓰리한 특급 히트작 <부부의 세계>는 성인 드라마의 자극과 배우 김희애의 힘이 근사한 시너지를 낸 작품이었다. <우아한 친구들> 역시 드라마 전회가 19금일 정도로 심야의 성인층을 타깃으로 삼은 전략적 작품이었다. 거기에 유준상, 송윤아, 배수빈, 김성오 등 인지도와 연기력이 조화로운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흥미를 모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금도 우아하지 못한 드라마가 나와버렸다. 호스트바와 에로 영화를 맥락 없는 양념처럼 뿌려대며 불륜과 발기부전, 자살과 원나잇을 말 그대로 소재주의적으로 활용한 이 드라마는 보는 내내 저 배우들이 왜 저런 연기를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안타까움, 그 이상의 감정은 들지 않는다. 매콤한 자극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 만든 대책 없이 맵기만 한 드라마의 맛은 심히 불쾌했다. 이 작품 때문에 한동안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질 성인 드라마 제작자들이 조금 더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아마 그 정도의 순기능이 이 작품이 존재하는 유일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 진명현(<무브먼트> 대표) 

GOOD  <굿걸>

애증의 tvN에서 여성 아티스트를 모아 뭔가를 한다는 데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악마의 편집? 캣파이트?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그 무엇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슬릭’의 출연에는 조금 구미가 당겼지만 어쩐지 이리저리 쓰이다 버려질 것만 같았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제까지 그래왔지 않은가? 그런데 웬걸, <굿걸>의 출연진은 <굿걸>이 만들어놓은 판을 뒤흔들 뿐만 아니라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느닷없이 돌올한 ‘퀸 와사비’에서부터 여성 아이돌의 고민을 진중하게 풀어나간 ‘예은’과 SNSD의 바이브를 온몸으로 보여준 ‘효연’과 어디에 내놓아도 찰떡처럼 음악에 붙은 ‘제이미’와 다재다능한 뮤지션으로서의 본모습을 이제야 선보인 ‘윤훼이’ 그리고 쓰이다 버려지길 거부하고, 프로그램을 자기에 맞춰 써버린 ‘슬릭’에 이르기까지…언급하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모두 ‘굿걸’이 ‘굿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걸과 보이, 우먼과 맨 통틀어 단연 베스트임을 증명해 보인 듯하다.

BAD <싹쓰리>

<놀면 뭐 하니?>에 대한 솔직한 감상평은 무한한 도전을 하는 데에 귀찮은 아저씨들을 모두 떨궈버리고, 도전하고 성공하는 역할에 최적화된 출연진 하나를 앞세워 쉽고 편안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의 도전은 어지간해서는 성공한다. 드럼을 쳐도 성공, 트로트를 불러도 성공, 라면을 끓여도 물론 성공이다. 최고의 뮤지션이 협연을 하고, 최고의 작곡가, 작사가가 노래를 만들어주며, 최고의 셰프가 레시피를 전수한다. 게다가 그걸 배우는 사람은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MC 아닌가. 그런 그가 혼성 그룹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의 실패를 예감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웃집 김 씨와 그의 처조카를 옆에 두어도 성공이 뻔한데, 그의 옆에는 이효리와 비가 서 있다. 유행하는 1990년대 감성을 콘셉트로 했고, 유명 작곡가에게 복수로 노래를 받아 그중 또 골랐다. 모두 알다시피 그들의 노래는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고, 아이돌의 무대인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먹었다. 여전히 이효리는 멋지고 비는 능청맞고 유재석은 친근하지만 이토록 쉬운 성과가 어쩐지 시시해서 재미는 없었다. 이 여름을 싹 쓸어버리고 있는 히트곡치고는 모든 게 놀랍도록 시시하다. 아, 여름이다! 앞에 ‘아’가 하품이 되어버릴 만큼.
– 서효인(<릿터> 편집장)

GOOD  <모범형사>

되도록 칩거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거의 모든 드라마를 본 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모른다>, <가족입니다>, <출사표>, <악의 꽃>,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 제각기 좋은 상반기 드라마 속에서 ‘기대 이상’ 상을 수여한다면 JTBC <모범형사>다. <모범형사>는 그야말로 조용히 시작했다. 사람 둘을 죽인 사형수가 있고, 그를 사형수로 만든 형사가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사형수가 누명을 쓴 것 같다. 두 줄짜리 줄거리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움을 주는 건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다. 히어로인 강도창(손현주)은 소박하고 정의로운 천생 형사다. 그의 파트너 오지혁 형사(장승조)는 경찰대 출신 엘리트로 늘 합리적이고 차분하며, 물려받은 거액의 유산을 물쓰듯 써가며 수사를 한다. 그의 약점은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기절한다는 것뿐이다. 두 형사가 속한 강력팀은 수사 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의리의 팀이고, 그렇게 악하지도 않고, 그렇게 선하기만 하지도 않은 경찰서장의 세치 혀는 정말이지 놀랍다. 악역도 그렇다. 청부살인업자인 조성대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되 양아치는 아니고, ‘상태 형’이 아닌 오종태(오정세)는 막강한 부를 가진 살인자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만 죽였다. 아직 한창 진행 중인 드라마라 결말까지는 봐야 알겠지만,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 때문에 계속 지켜보고 있다.

BAD <1호가 될 순 없어>

이른바 연예인 관찰 예능은 잘 보지 않는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남 사는 걸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연히 본 <1호가 될 순 없어>는 시선을 끄는 재미가 있었다. ‘코미디언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는다’라는 근엄한 대명제로 시작한 이 관찰 예능은, 유머가 부부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을 증명하듯 시종일관 빵빵 터졌다. 남편이고 아내이고 서로를 웃기고 싶은 욕심은 싸움 중에서도 빛났고, 그들의 티키타카는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듯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보지 않는다. 코미디언 부부의 장점이 부분부분 빛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설정해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하는 관찰 예능의 문법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자녀의 선행 학습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요즘 중학생은 고3 수학까지 선행한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왔다. 어느 지역, 어느 계층은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 순간 올해 코로나19로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저소득층의 학업 성취도가 급락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역시, 관찰 예능은 보지 않는 편이 좋다.
– 에디터 허윤선 

GOOD  <톰보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화제가 된 셀린 시아마 감독의 9년 전 영화라니, 자의식 넘치는 어설픈 영화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했겠지만, 그 반대였다. <톰보이>는 열 살 로레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구성한, 충격적일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남자 아이처럼 아무 때나 티셔츠를 벗고 마음껏 축구를 하고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싶은 로레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뒤늦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젠더는 누가 결정하는가? 특정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왜 행동에 제약을 받아야 할까?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왜 차별받고 고통받는 일이어야 할까? 머리를 다 쥐어뜯을 무렵, 로레의 여섯 살 동생 잔과 친구 리사가 아름답고 뭉클한 장면을 통해 어른인 우리에게 슬쩍 힌트를 준다. 흔히 남성의 색이라 불리는 파란색과 여성의 색이라 불리는 빨간색을 반대로 사용하고, ‘부족한 소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대신 영어 ‘Tomboy’를 제목으로 하는 등 미장센 및 영화적 장치, 촬영 과정까지도 주제와 일치시킨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도 영화의 여운을 연장시켜준다. 참고로 비꼬기 대마왕 박평식 평론가도 비꼬지 않았다.

BAD <마티아스와 막심>

일단 이 영화는 너무 시끄럽다. 다들 목소리가 짜증나게 크고 쓸데없이 말이 많다. 남자친구들 간의 왁자지껄 아무 말 대잔치 대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걸 모르는 관객이 있냐는 거다. 막심과 엄마는 또 왜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귀에 피가 날 지경이다. 퀴어 영화 속 도구로 전락한 여성 캐릭터도 지긋지긋하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이 영화는 ‘친구 사이의 마티아스와 막심이 뜻밖의 키스 이후 마주한 세상’이라고 하는데 보여준 세상이랄 게 딱히 없다. 엄마와의 복잡미묘한 관계, 퀴어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시선, 인물의 정직한 포트레이트 등 <마미>와 <로렌스 애니웨이>의 장점이 가끔씩 보이긴 하지만, 정신없는 이 영화를 참아줄 정도는 아니다. 장점도 있긴 하다. <마미>를 통해 셀린 디온을 재발견하게 한 그 음악 고르는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다 같이 차에서 아미르의 노래 ‘J’ai Cherche’를 부르는 장면만 보면, 원곡이 얼마나 구린지 알아채지도 못할 거다. 그리고 내 말은 귓등으로 듣겠지만, 자비에 돌란은 연기 욕심 좀 버리자.
– 나지언(프리랜서 에디터)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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