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DAWN / 던
뭐든 정의하기 좋아하는 세상,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던의 얼굴들.
지난해 6월 그늘 한 점 없는 사막 같은 벌판에서 봤는데 차가운 겨울에 가로수길 한복판에서 또 보내요.
벌써 반년도 더 지났죠? 시간이 되게 빨라요. 그때 막연히 앨범 준비 중이라고만 말했는데 여름이 지날 무렵 바짝 준비하게 됐어요. 10월에는 앨범을 냈고요. 제 첫 미니 앨범이고, 솔로로는 두 번째 활동이었어요. 2020년은 별거 없이 지낸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앨범 활동을 마치고 현아랑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요. 그랬더니 한 해가 갔네요.
<던디리던> 앨범은 어때요? 돌아보니 어떻게 남았나요?
자꾸만 욕심이 커져요. 스스로 만족을 잘 못 하는 편인데, 혼자서만 작업할 땐 좋은 면보다 모자라는 것만 보여요. 그러다 보면 자꾸 붙잡고 있게 돼요. 아마 이번 앨범도 혼자서만 쥐고 있었으면 그때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주변에서 많이 끌어주고 밀어줘서 나올 수 있게 된 거죠.
막상 앨범을 냈는데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을 직접 살필 수 없는 건 어땠어요?
전 이제 막 걸음을 내딛는 입장이잖아요. 제 음악을 적극적으로 좋아해주는 팬이 자리 잡고 있는 시점이에요.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는지 저는 다 알고 있어요. 하루에도 몇천 개의 디엠이 오거든요. 그걸 일일이 열어보려고 하는 편인데, 그들의 응원이 많이 힘이 돼요. 가끔 안 좋은 말도 섞여 있지만.(웃음) 팬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건 많이 아쉽죠. 그것 말고는 다 저한테 아쉬운 것들만 남은 거 같아요. 저는 늘 그래요.
지난여름 인터뷰에서 말했어요. “완성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의 이런저런 시간을 더 크게 간직한다”라고요.
여전해요. 앨범을 완성한 후의 시간보다 준비하던 시간이 더 선명하고 소중해요. 잘 타협하긴 했지만 노래나 콘셉트 가지고 회사 식구들과 싸우던 장면이 지금 막 떠올랐어요.(웃음)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런 장면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싶어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현아 씨도 그렇고 몇 번 겪었더니 사람과 함께하려는 게 보여요. 느껴지죠.
우리는 서로 자라온 환경을 알잖아요. 저희 둘 다 외로운 사람이었더라고요. 현아는 워낙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저는 타고난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잘 맞나 봐요. 외로움이 되게 크게 오는 사람들인데, 또 아주 사소한 기쁨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요. 저희는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없어요. 다 일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에요. 그들이 전부라서 더 소중한 거예요. 의지하게 되고요. 저는 지금이 행복한 것 같아요.
그 친구들과는 어떤 대화를 해요?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것에 관해서요. 음악뿐 아니라 사진이나 스타일 같은 거요. 똑같은 것만 좋아할 순 없잖아요. 현아랑 저는 특히 더 그래요. 요즘 뭐가 재미있는지, 뭐가 뜨고 있는지, 트렌드를 따르는 게 맞는지 그런 토론을 해요.
트렌드에 관한 당신의 입장은 어떤 편이에요?
때마다 변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여러모로 많이 열린 상태예요. 전에는 “유행은 무슨 유행? 내가 하면 그게 유행” 그런 마음이 있었거든요.(웃음) 남들이 다 하는 건 괜히 하기 싫은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어요. 요즘에는 상관없어진 것 같아요. 유행을 따르든, 말든 그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제가 그냥 좋은 걸 해요.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아무도 하지 않을 머리를 한다거나 뜬금없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 앞머리를 잘라보기도 하고요. 재미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비뚤비뚤한 앞머리가 눈썹 위까지 올라가 있네요.
그냥 잘라봤어요. 지금이 살면서 제일 많이 열려 있는 상태예요. 제 마음이요. 원래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어떤 틀 안에 갇혀 있었더라고요. 음악적인 부분도 그렇고, 그걸 벗어나는 게 중요해요.
촬영 중에 갑자기 그랬죠. “저는 뭐든지 다 열려 있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게 어떤 신호였군요.
우리가 여름에 만났는데 어느새 겨울이 왔잖아요. 저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고요. 이 젊음을 뭐 하나에만 꽂혀서 다른 건 보지 못한 채 보내버리기가 아쉬워요. 다 경험해보고 싶어요. 내 확신이 전부 편견일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도 진짜, 죽어도 하기 싫다는 건 없어요?
죽어도 하기 싫다? 진짜 싫지만 거절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일단 할 때가 많은 거 같아요. 그때 마음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알죠. 저도 저를 속일 수 없어요. 그 순간은 내가 참 싫고.(웃음)
오늘 촬영을 함께하기로 한 건 어떤 마음이에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겠다고 나섰어요. 완전한 뷰티 화보도 아니고 패션 화보도 아닌 이런 식의 화보를 찍어본 적은 없으니까요. 저는 오늘 같은 시간, 이런 날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나게 잘 놀았다는 느낌밖에 없어요.
기준에서 벗어나고 싶긴 했어요. 당신과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군진 모르겠지만 맨 처음 기준을 만든 사람은 그걸 만들 때 참 재미있었겠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기준이 꼭 정답은 아닌 거잖아요. 굳이 거기에 맞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기준은 우리가 만들면 되니까요.
그런 당신은 뭘 보면 아름답다고 확신해요?
역시 하나로 정의할 수 없어요. 테이블에 있는 이 종이를 이렇게 구겨서 던져둘 때요. 여기에 있는 거보다 저기에 있을 때 그냥 더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사람도 아름답고 자연도 아름답고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가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아름다움의 기준보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반대는? 추하게 여겨지는 건 좀 또렷하지 않아요?
오히려 분명하죠. 제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건 사람이에요. 알면 알수록 그래요. 사람을 새로 알아가는 일이 두려울 때도 있어요.
삶의 큰 모순이자 질문일 수 있죠.
모든 사람의 딜레마겠죠. 자기만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건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참 쉽게들 그러는 시대잖아요.
가장 최근 휴대폰 메모장에는 뭘 썼어요?
일기 대신 쓴 가사가 제일 많아요. 그때그때 끄적인 단어나 문장들.
주로 어떤 정서가 담겨 있나요?
서정적인 편인 것 같아요. 플렉스하고 허슬하고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움직이고 싶어요. 그게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예요. 신념.
구체적으로 뭐가 적혀 있는지 들려줄 수 있어요?
음, 지금 보니까 무슨 말인지 저도 알 수 없는 게 많은데요. 갑자기 ‘온다’ 이렇게 적혀 있네요. 뭐가 온다는 걸까요?(웃음) 또 ‘와인’, ‘의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어요.
휴대폰 케이스를 핫핑크색 하트 스티커로 도배했네요. 촬영을 위해 머리도 핑크색으로 바꿨다면서요.
되게 충격적이죠?(웃음)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요즘 다 충격적으로 컬러풀해요. 여름에 그랬잖아요. 밝은색을 좋아하려고 노력 중이라고요. 그 말이 현실이 됐어요. 요즘 제일 좋아하는 색인 핫핑크와 제일 싫어하는 색인 초록을 같이 두는 식의 배치가 재미있어요. 선명한 색과 색이 함께할 때의 느낌이요.
이렇게 쨍한 채도를 받아들이는 건 블랙 마니아에게는 사건이라 할 만해요.
사람들의 영향이 큰 거 같아요. 일단 현아가 워낙 컬러풀하잖아요. 모르던 사실인데 둘러보니까 제 주위 사람들이 다 그렇더라고요. 우리 가족도 그래요. 무엇보다 요즘 제 마음이 그런 것 같고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색을 보고 싶어요. 빨리 누가 만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셀린느를 입고 있어서 그런데 에디 슬리먼이 결단할지도 모르죠. 한창 과감한 색을 내놓고 있잖아요.
오,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에디 슬리먼이나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색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월엔 입춘이 있어요. 입춘을 믿어요. 여전히 춥겠지만 봄을 말하는 날이죠.
오늘이 새해 첫 촬영이에요. 추운 겨울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빨리 봄이 오면 좋겠어요. 그땐 이 지긋지긋한 상황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고요. 봄은 다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의 춥고 칙칙하고 외로운 느낌만 아니면 돼요.
봄이 와도 외로운 사람은 쭉 외로울 수도 있지 않겠어요?
오히려 봄에 더 외로운 사람도 많겠네요. 그래도 봄은 예쁘잖아요. 따뜻하고.
던과 효종은 모두 새벽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죠. 오늘 당신의 얼굴만 잔뜩 찍은 사진을 ‘새벽의 초상’이라 봐도 좋겠다 싶어요.
새벽은 두 개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가장 깊은 밤과 가장 이른 아침. 둘의 느낌은 되게 다르지만,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순간이라는 건 같아요. 뭐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고요. 사랑을 할 때도 그렇고, 꿈을 꿀 때도 그렇고. 새벽에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다들 스스로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주위 눈치 보고 신경 쓰느라 지치잖아요. ‘효종(曉鐘)’이 새벽에 치는 종이라는 뜻이거든요. 제가 새벽을 알리는 종을 칠 테니, 올해는 부디 모두들 자기 자신을 살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 에디터
- 최지웅
- 헤어
- 신효정
- 메이크업
- 박민아
- 스타일리스트
- 안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