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늘 정상에서, 늘 자기다움으로 있었다. 배우 김희선은 항상 그래왔다. 

슈트는 펜디(Fendi).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 슬리브리스 블라우스는 에센셜(Essential). 스커트와 브리프는 프라다(Prada). 슈즈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화이트 니트 톱, 니트 스커트, 슈즈는 모두 지방시(Givenchy).

드레스는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제 자리 뒤에 김희선의 지난 <얼루어> 화보가 액자로 걸려 있어요. 매일 출근할 때마다 김희선 얼굴을 봐요.
진짜? 저도 그 사진 좋아해요. 장미랑 가득 찍은 거 맞죠? 꽤 오래전인데, 이제 그럼 ‘대빵’이에요?

하하! 에디터 중에서는 고연차라고 할 수 있죠. 김희선의 데뷔작을 기억할 만큼.
이렇게 일하는 게 여전히 재미있죠? 그렇지 않아요? 현장의 재미와 소중함을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아까 촬영하면서도 이것저것 궁금해하더군요.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 보여요.
일할 때는 모르는데 일이 딱 끝나면 이것저것 궁금하고, 다양한 게 하고 싶어요. 갑자기 김중만 선생님께 “선생님, 저 사진 가르쳐주세요” 하기도 하고요. 딸 연아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가서 캔버스 100호짜리 사서 유화 물감을 쏟아붓기도 했어요. 또 어느 날은 갑자기 골프 한다고 우리나라에 있는 골프 클럽을 쫙 돌아요.

무엇이든 몰입해야 하는 사람인가요?
작품을 하면 석 달에서 여섯 달을 너무 열정적으로 매달리잖아요? 연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또다시 연기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연기를 하기 위함이군요. 그나저나 ‘연아 엄마’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면서요?
아우, 옛날에! 연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얘기예요. 아이가 손이 많이 가는 때니까. 물론 김희선이 싫은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만났는데 성격이 잘 맞으면 빨리 친해지는 편이에요.

그래도 연예인은 사람을 가리기 마련이잖아요. 열려 있는 거죠.
그럴 것도 없어요.(웃음) 연아도 벌써 중학생이에요. 이제는 공부하라고 해도 안 하는 애는 안 하고, 하는 애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때예요. 딸도 이제 내 손을 떠났어요. 작품의 시청률과도 같은 존재가 됐죠.

하하! 자녀와 시청률이 같군요.
마음을 비워야 해요.(웃음)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할 수 없어요.

시청률이 여전히 숙제인가요?
모든 일이 다 똑같을 것 같아요. 아무리 글 잘 써도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 어떡해요? 봐줘야 의미가 있어요.

이제 멜로를 할 때 상대 배우가 김희선보다 열 살이 적지만 그런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어요. 어찌 보면 김희선은 항상 주연이고 당대의 남자 배우들만 바뀌죠. 가장 인기있는 배우들과 함께해왔어요.
가끔 생각하면 신기해요. 민호(이민호)와 저도 열 살이고, 수혁(이수혁)이와 저도 열 살 차이가 나요. 제가 30대에 민호랑 하는 것과 40대에 수혁이랑 하는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요. 저는 다르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많이 그러죠? 김희선이 벌써 40대라니.
이번에 자른 머리를 원래대로 기르려면 3년 걸린대요.(웃음) 그럼 저 오십 살이에요.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오늘은 메이크업도 헤어도 최대한 덜어냈는데, 그러니 김희선이 더 잘 보여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모습을 보니까 저도 새로워요. 맨날 긴 머리 치렁치렁해서 스타일에 좀 한계가 있었는데, 머리를 자르니 다르더라고요.

 

화이트 드레스, 벨트, 슈즈는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드레스는 펜다체(Fendace). 슈즈는 지안비토 로시.

베스트는 YCH. 데님 팬츠는 에트로(Etro).

벌써 2022년 반이 지났어요. <내일>이 끝났고, 또 <블랙의 신부>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일 년 동안 너무 일만 했어요. 작품 두 개를 연달아 했으니까요. 일 년 동안 이렇게 일을 빡세게 한 적이 제 생에 통틀어 처음인 것 같아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다 헤어스타일 때문이죠.(웃음) <내일>은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자르면 <블랙의 신부>가 안 되니까, <블랙의 신부>가 <내일>보다 훨씬 뒤에 방영하는데도 급했어요.

<내일>로 OTT를 경험해본 건 어땠어요?
요즘 시청자는 몰아서 본다면서요? <내일>이 넷플릭스에서 반응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종영한 뒤에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몇 만씩 늘어서 깜짝 놀랐어요.

<블랙의 신부>에서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더 궁금해졌어요. 결혼 정보 회사가 등장한다고요?
결국은 인간의 욕망을 다뤄요. 결혼 정보 회사라는 건 외국에는 없는데요, 사람을 레벨에 따라서 나누고 매칭한다는 걸 외국인 시청자가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 ‘인간을 저렇게 등급으로 나눌 수가 있어?’ 하면서 외국 사람도 처음으로 욕하면서 보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쪽에는 그런 욕망과 바람이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품위있는 그녀>도 그런 욕망이 중요한 작품이었죠.
박복자가 그런 인물이라면, 제가 연기한 우아진은 그래도 약간의 정의와 인간성을 가진 캐릭터였죠. 그 작품도 실제 사건이 녹아 있기는 해요.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거 괜찮을까? 하지만 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어떻게 보면 막장 이야기도 다 현실에 있거든요.

<신의> <나인룸> <앨리스>와 <내일>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어요. 타임슬립물이거나 회귀물이거나 하죠. 좋아하는 장르인가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스토리와 그런 새로운 상상이 재미있어요. 제가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볼 때도 로맨틱 코미디보다 SF 장르를 더 좋아했거든요.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하면 이럴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럴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과 회의를 어느 작품보다 오래 했어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요.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다 봤어요?

다 봤습니다. 작품 선택이 자유롭고 흥미로워요. 얼마 전 “스물 몇 번째 재발견되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 배우 김희선의 진가는 시청자가 제일 잘 알지도 모르죠.
와, 진짜 좋은 말이네요. 끝나고 삼겹살 먹으러 가요!

하하! 5년 전에도 화보 촬영할 때 ‘끝나고 같이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왜 항상 삼겹살인가요?
하하하! 꼭 삼겹살이라는 게 아니라 상징적인 거죠. 살치살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이상하니까요. 저는 항상 진심이에요.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해도 좋지 않겠어요? 같이 일했는데, 맛있게 밥 먹고 헤어지면 좋죠.

다시 말하면 그게 정이고 배포 아닐까요? 예전에 트렌디한 드라마란 드라마는 다 하던 시절에 누가 와서 “30년 후에도 연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설마! 했을 것 같아요. 뭘 하나 깊게 못 파는 성격이라서.

그런데 연기 외길을 걷고 있어요.
뭘 하려고 했다면 안 되었을 것 같아요. 그냥 물 흐르듯 몸을 맡기고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 와 있는 거예요. 결혼하고 중간에 6년을 쉰 게, 제 나름대로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사실 너무 과분한 일이죠. 공백이 있다가 자기 커리어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가 이 일을 하면서 제일 감사한 부분이죠.

 

터틀넥은 프라다.

크롭트 재킷, 레더 팬츠, 슈즈는 모두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슈트와 니트는 MSGM. 슈즈는 컨버스(Converse).

20~30여 년 전 작품을 OTT로 볼 수 있는 시대예요. 어린 시절에 본 드라마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1990년대 레트로 무드와 패션이 다시 인기를 끌며 찾아 보는 사람도 있죠. 예전 작품 하나 추천한다면 무얼 하겠어요?
와, 지금도 그걸 보는 사람이 있다니. 뭘 해야 하죠? 그렇다면 <프로포즈>요. 음악도 인기가 많았어요.

“넌 언제나 나에게 우정 이상도 아닌”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죠? 배우 원빈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촬영지는 일산.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맞아요. 1990년대는 느려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좀 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연예인은 나 때문에 좀 편해졌을지도 몰라요. 하하하.

모든 걸 볼 수 있는데, 딱 하나 볼 수 없는 게 <와니와 준하>입니다. 그때도 김희선의 재발견이라고 했죠.
맞아요. 조승우 씨도 그땐 신인 배우였어요. 그때 머리 자르고 지금 자른 거네요. 그때 제가 주로 하던 역할과 다르게 내성적인 역할이었죠. 처음으로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맨얼굴로 찍었어요. 얘기하니까 정말 생각나네요. 그 영화도 시간이 지나서야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최근에 기사가 난 작품이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니에요. 사실 저는 아주 예전에 영화를 했던 사람인데, 그때는 흥행 결과에 대해 배우가 리스크를 많이 졌어요. 영화에 큰 흥행작이 없으니까 그것도 제 몫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선 트라우마가 약간 있어요. 안 되면 나 때문에 안 된 것 같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이미지의 김희선도 두려운 게 있군요?
두렵죠! 특히 관객 수는 두려워요.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실패하면 좌절감을 더 크게 느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요?
대중이 좋아해주는 거죠. 연기를 봐주는 시청자들이 없으면 할 이유가 없어요. 반응에 따라서 그날그날의 내 기분도 좌우되죠. 아무리 내가 만족하더라도 그건 내 문제고, 관객이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첫 번째예요. 봐주는 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기쁨이 비례해요.

배우는 관객이 존재해야 배우라는 것이군요. 오늘 같은 화보는 어떤가요?
예전에는 ‘화보는 모델이 아닌 내가 모델만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다 보니 재미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는 게 재미있고 좋아요. 분위기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내일> 촬영팀 분위기는 정말 최고로 좋았거든요.

그래서 자꾸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거군요?
맞아요. 나머지 얘기는 우리 삼겹살 먹으면서 하는 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