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등 5월의 달력은 기분 좋은 붉은 숫자로 가득하다. 모처럼 선물 같은 연휴를 누리게 된 당신에게 <얼루어>는 어디론가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준비한 1박2일, 혹은 2박3일의 국내여행 리스트.

1 경주의 오래된 시간
경주의 시간은 수심이 깊은 강물처럼 천천히 흐른다. 부드럽게 능선을 이루는 왕릉들, 잘 정비된 가로수와 거리 곳곳에 남은 한옥, 익숙한 관광지의 방향을 가리키는 커다란 표지판들까지. 차분한 풍경은 우리나라의 그 어느 곳과도 다르다. 이왕 경주에 왔다면 그 시간의 흔적에 몸을 푹 담그는 것이 좋다. 유네스코가 사랑한 양동마을은 지금도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는 마을이다. 두 가문의 종가와 함께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맞닿은 마을에는 새로운 토종견으로 등록된 경주개 ‘동경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50년 역사의 경주 최부잣집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다. 가양주 교동법주는 한 병 사들고 돌아가면 되고, 종갓집의 요리 솜씨가 궁금하다면 요석궁이나 최가밥상으로 향하면 된다. 천마총, 첨성대, 안압지 등 수학여행으로 찾았기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명소도 반드시 들러볼 것. 특히 불국사는 꼭 이른 아침에 들를 것을 권한다. 고요하고, 웅장하며, 청아한 전혀 새로운 절이 진면목을 드러낸다. 경주의 진짜 얼굴이다.

2 오래된 성당을 찾아서

성당은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근대건축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 동그란 첨탑,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잘 가꾼 정원은 요즘의 교회나 성당에서는 도통 보기 힘드니까. 특히 충청 지역에는 10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성당들이 근방 곳곳에 자리해 1박2일 코스를 잡고 성당을 순례하기에 좋다. 공주 중동성당, 부여 금사리성당, 옥천성당, 음성 감곡성당, 한국관광공사가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은 아산 공세리성당, 당진 합덕성당, 예산성당, 서산 동문동성당을 찾는 데에는 하루 일정이면 충분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일정을 하루 늘리고 싶다면 익산 나바위성당, 부안성당, 그리고 전주 전동성당이 있는 전라도로 향할 것. 종교인이 아니라도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즈넉한 성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거다.

3 서울여행

서울여행’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수많은 책이 서촌과 북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강의 소중함과 오래된 건축물과 사연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동만큼 인기인 가로수길이나, 게스트하우스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홍대 지역은 또 얼마나 볼 것이 많은지! 서울을 사랑하지만, 명소화된 곳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면 낯선 동네 이름을 찾아 걸을 때다.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지하철역에 내리거나, 스쳐 지나갔던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것으로 산책을 시작해도 좋다. 목적지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이나 여유로움을 실감하게 하는 일은 없다.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소박한 동네에 거주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이정표 삼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완서 작가가 실제로 살았고 그녀의 소설에도 등장한 돈암동, 화가 박수근이 오랫동안 머무른 창신동처럼 말이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 머문다면 진짜 여행자 기분을 낼 수 있을 거다.

4 서해 바다의 소리를 들어라 

찰싹찰싹, 파도가 모래사장에 몸을 부딪히는 해조음을 들으며 잠드는 것은 더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고가의 리조트나 펜션을 찾지 않아도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해조음을 들으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남 태안군의 천리포수목원은 수목원 내에 오래된 기와집과 초가집을 개조한 숙박시설이 자리한 곳. 수목원 가장자리의 데크로 나가면 바로 천리포 해변이 펼쳐져 있다. 개장시간에는 만날 수 없는 고요한 밤의 수목원을 감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인적 없는 수목원 길을 산책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마침 수목원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이기도 하고. 조금 더 먼 곳에는 가장 최근에 개장한 휴양림인 변산반도 자연휴양림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 휴양림 중 유일하게 해안에 자리한 곳이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돼 풍성한 숲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숙박 시설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 머무는 내내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곰소젓갈로 유명한 곰소해변, 걷기 좋은 전나무길로 유명한 부안 내소사도 가깝다.

5 충주와 제천의 어떤 날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충주는 보면 볼수록 풍요로운 도시다. 어디를 가든 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반드시 강이 흐르거나 호수가 있다. 봉황, 계명산, 문성. 휴양림만 세 개를 갖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음을 비우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이 직접 운영하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을 찾길. 열심히 살아온 20~40대 싱글을 위한 2박3일 프로그램, 오래된 연인과 부부를 위한 프로그램, 하루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용서하는 시간이다. 충주에서 ‘회’는 민물회를 가리킨다. 메기, 쏘가리, 항어, 송어 회를 콩가루, 다진 마늘, 초장, 야채를 함께 넣어 비빈 특별한 양념에 찍어 맛본다. 꿩요리도 충주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인데, 꿩을 부위별로 요리해 코스요리로 선보이는 대장군이 대표적이다. 물 좋은 충주에는 수안보 온천 등 온천장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시설이 다소 노후한 것이 사실. 지난 2월 충주역 근방에 문을 연 호텔 리버는 깔끔한 객실과 인테리어를 갖췄다. 옆 동네인 제천을 찾아도 좋다. 리솜 포레스트, 베니키아 청풍 등 고급 휴양 리조트부터 대형 리조트까지 조금 더 다양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족여행으로 찾는다면 충주와 제천 사이에 위치한 서유숙 펜션을 권한다. 단정한 한옥 객실과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가 있는 곳이다.

6 도시 중에 최고, 부산

당신이 잠시라도 도시의 안락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시형 여행자라면, 그럼에도 일탈의 기분은 만끽하고 싶다면 가야 할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 바로 부산! 제2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굳이 활용하지 않아도 부산은 놀고, 먹고, 즐길 것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황홀한 것은 바다와 시티라이프가 공존한다는 것! 부산 서면시장은 길거리 음식과 부산을 상징하는 돼지국밥을 맛볼 수 있는 곳. 쓰레기 오빠 정우가 영화 <바람>에서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거리도 이곳에 있다. 헌책방으로 유명한 책방골목, 자갈치시장, 족발을 맛볼 수 있는 남포동도 빼놓으면 섭하다. 동래파전과 씨앗호떡, 부산오뎅도 잊지 말 것. 해운대는 더 이상 ‘해수욕장’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하기 어려운 지역이 됐다. 쇼핑의 1번지인 부산 센텀시티는 해운대와 지척이고, 달맞이길, 또는 문탠로드라고 불리며 부산 최고의 갤러리와 파인다이닝이 들어선 거리도 이곳에 있다. 여름 성수기 시기만큼은 아니지만 해운대 클럽 역시 여전히 뜨겁다. 지나치게 달렸다 싶으면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숨 돌릴 것.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시기에도 소규모 영화와 특별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다. 5월에는 영화와 관계된 모든 것을 판매하는 시네아트마켓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