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영진은 반려견 크림이와 모든 것을 함께한다. 기쁨과 슬픔, 아픔과 희망까지도. 3개월령의 어린 강아지였던 크림이는 항암 치료를 하며 여전히 그녀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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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는 니나 리치(Nina Ricci).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카프는 디데무(D’deMoo). 귀고리와 뮬은 레지나 표(Rejina Pyo). 크림이가 쓴 실버 프레임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크림이는 당신의 첫 번째 반려견인가요? 
집에 반려견이 없었던 적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 제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항상 마당에 ‘똥개’가 있었거든요.

요즘 말로 하면 믹스견인데, 그때는 다 그렇게 불렀죠. 
엄마의 반려견이었던 시추 3대를 키웠는데 작년에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사실상 독립해서 제 손으로 키운 것은 크림이가 처음이에요.

크림이와의 첫 만남은 어땠어요? 
사진가 김태은 언니 소개로 알게 된 친한 디자이너 오빠가 있어요.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길에서 팔리는 개가 측은해서 샀대요. 그러다 몸집이 급격히 불어나는 것을 보고 찾아봤더니 차우차우였던 거죠. 개를 키우는 법에 대해 몇 가지 알려주러 갔더니 크림이가 난장판이 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오빠 말은 그렇게 안 듣는다던 애가 제 말을 너무 잘 들었어요. 오빠는 이미 데리고 가라고 짐 챙기고 있었어요.(웃음)

‘업둥이’처럼 만난 거군요. 
그렇죠. 저도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 전까지는 임보 정도로만 강아지를 돌보았어요. 반려견이 얼마나 손이 가는지 알고, 촬영도 있으니 잘 챙겨주지 못할까봐 걱정이었거든요. 운명인가 보다 하고 데리고 왔는데, 파보장염이었죠. 병원에서는 아이가 생후 3개월밖에 안 되어서 안락사를 권했어요. 그때 ‘가더라도 내 품에서 뛰놀다가 가라’라고 한 게 의외로 이겨내고 지금까지 쭉 살고 있어요.

3개월 때 만나 9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일이 기억에 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팠을 때. 그때 영화 <배심원들>을 찍고 있었는데, 크림이가 다리를 좀 절더라고요. 처음 3일은 지켜보다가 4일째 되는 날, 불안해서 병원을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어요. 8살 때였는데, 중대형 견들은 체중이 많이 나가서 발목에 무리가 더 많이 오니까 살을 빼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나아지지 않아서 시추들 때문에 오래 다녔던 병원에 갔더니 종양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그게 제일 속상해요.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해서 사료를 조절했는데, 사실은 잘 먹어야 했던 거예요.

반려견이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걸맞지 않게 우리나라에서 아직 동물은 조직 검사를 할 수가 없대요. 미국에 보내고 2~3주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방사선 치료가 가능한 곳도 서울에 세 곳뿐이에요. 암 센터에 급하게 갔더니 암이 이미 진행이 되어서 모르핀으로도 진정이 안 되는 고통을 겪을 거라며 다리를 절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한 이틀 후에 바로 절단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이미 림프에 전이가 됐다고 해서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개복을 해보니 상황이 좋지 않아서 치료를 받기로 했어요. 골육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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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는 니나 리치. 스카프는 잉크(EENK). 크림이가 맨 스카프는 골든 구스(Golden Goose).

항암 치료 과정은 어떤가요? 잘 버텨주고 있나요? 
지금은 5차 항암 치료가 끝났고, 다음 주부터 6차 치료를 시작해요. 좋은 소식은 전이된 암이 조금 줄어든 상태래요. 초음파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수술을 안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크림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는 건데, 이런 경우가 10%가 안 된대요.

반려견이 암에 걸렸을 때 예후는 좋은 편인가요? 
사람으로 따지면 3기 때 알게 된 건데, 보통 동물들은 말을 안 하니까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때, 발견하는 경우가 95%고, 손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 문제나 나이가 많아서 항암을 이겨내지 못하는 문제로 생존율이 높지는 않아요. 제가 걱정한 건 크림이를 고생만 시키다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버텨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치료를 시작했어요.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면서요? 
지금까지 2천만원 정도를 병원비와 약값으로 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돈 때문에 반려견 치료를 못한다는 건지 이제는 좀 알겠어요. 예전에 파보장염 치료할 때에도 6~7백만원 정도 썼거든요. 저야 운이 좋아서 모아놓은 돈으로 가능했지만 사실 적은 금액이 아니죠. 치료비는 소형견보다 대형견이 몇 배 더 많이 들어요. 의사 선생님도 몇 가지 선택을 이야기하며 치료를 멈춘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할지 상상이 가더라고요.

아픈 다음에 크림이와의 생활도 달라졌나요? 
일단 식욕은 확실히 없어져요. 크림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줘도 안 먹더라고요. 물도 안 먹어서 사료를 물에 적셔서 억지로라도 먹게 하고 그랬었어요. 이제는 저도 크림이도 적응을 좀 했으니까 치료 들어가면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해요. 항암 치료하면 진정제를 맞으면 당일과 다음 날까지 잘 때 많이 뒤척여요. 자는 자세를 잘 못 잡더라고요. 처음에는 일주일 내내 힘들어해서 그냥 계속 안아줬어요. 그래야 조금씩 잤어요. 산책 나가서 픽픽 넘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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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하이웨이스트 팬츠는 모두 잉크. 블라우스는 아워코모스(Ourcomos).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레이첼 콕스(Rachel Cox). 크림이가 쓴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

건강하던 크림이도 뒷다리 하나를 잃었는데요.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개는 다리 잃은 거에 대해서 사람이 느끼는 것만큼의 상실감을 느끼지는 않는대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주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개가 뭔가 잘못한 줄 알고 힘들어한대요. 그 말 듣고 힘들어도 크림이 앞에서 조심했더니 자기가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보는 것처럼 잘 걷고 잘 뛰어요. 이를 보면서 편견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산책할 때 보면 사람들이 혐오나 불편함을 여과 없이 내보이는데, 그게 크림이에게 좋지 않겠죠. 저는 제 자식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우리 크림이가 다리 세 개 있는 동물 중에는 가장 예쁘지 않아요? 하하하….

사실은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 키우고 있다면서요? 
두드러기는 그래도 잘 참는 편인데 천식이 올라오는 게 힘들어서요. 두드러기가 일어났을 때 금방 가라앉히는 요령도 있고, 손을 씻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됐죠. 다만 천식약을 항상 가지고 다녀요.

알레르기 때문에, 동거인 때문에 등등 파양이 많잖아요.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동거인이나 아이 때문에 파양하지 않을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입양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은 하죠

개를 키울 때 어리고 예쁜 모습만 기대하지만 개도 나이 들고, 병이 들죠.
반려동물과 어떤 룰이 생기고, 서로 익숙해지면서 정말 가족 같은, 반려인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눈 뜨면 크림이 약 챙겨주고, 밥 조금 챙겨 먹이고, 산책하면서 배변활동 시키고, 다시 들어와서 사료 조금 더 먹이고, 마사지도 좀 하고. 그 다음에 각자 시간을 갖고 쉬면 크림이가 꼭 8시쯤 저녁 먹자고 해요. 이런 규칙적인 일상을 같이하면서 교감이 깊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느낌이죠. 처음에 키웠던 친구는 20년을 살았는데 노환으로 세상을 떴고, 나중에 길렀던 친구는 심장 때문에 3년 산다고 했었는데 7년을 함께 살았어요. 이렇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진정한 반려견으로 생각하고 입양을 했다면 끝까지 잘 책임져주길 바라요.

크림이에게 어떤 바람이 있나요?
일단 지금은 상황이 좋아져서 수술을 안 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거죠. 예전에 수술을 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수술하는 것도 마음 아팠지만 그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4월 초가 지나면 여유가 좀 생기는데, 그때 크림이를 데리고 서해 쪽에 태안 같은 바닷가에 가고 싶어요. 예전에 남해에 갔던 기억이 정말 좋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