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사람들, 여섯 명의 젊은 디자이너 <1>

서울의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와 영향을 가질까? 여기 여섯 명의 젊은 디자이너가 보내온 답변이 있다.

김밥, 어묵, 떡볶이, 군밤과 군고구마, 호빵, 고추튀김, 이 모두가 맛테리얼의 주인공이 된다.

김밥, 어묵, 떡볶이, 군밤과 군고구마, 호빵, 고추튀김, 이 모두가 맛테리얼의 주인공이 된다.

맛테리얼 | 이동훈×송준호
맛테리얼은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을 주제로 한 캐릭터 제품을 만든다. 떡볶이와 호떡, 고추튀김과 김밥 등 늘 우리 옆에 있던 분식이 이렇게 귀여워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랄 거다.
맛테리얼의 시작 해외여행을 가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그 나라의 길거리 음식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음식을 말할 때 비빔밥이나 불고기, 김치 이야기만 하는 걸까? 오히려 분식이야말로 전통 식품에 비해 가볍게 접근할 수 있고, 스트리트 감성과도 잘 어울리는 친근한 소재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갖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영감의 근원 내가 잘 아는 소재에 관심이 많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졸업작품 주제도 ‘서울사람의 정체성’  에 관한 거였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고 추튀김이나 떡볶이 역시 내가 매일 먹고 자란 거니까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의 특별한 문화인 만큼 관광상품으로서의 가능성도 보고 있다. 작업의 방향 1980년대생 이전의 세대가 영화를 보고 자 랐다면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자란 세대라고 하더라. 맛테리얼의 감성에도 그런 부분을 녹이려고 한다. 맛테리얼 캐릭터들을 보면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데 이런 스트리트 감성을 반영한 것이다.
고민 우리나라 사람들은 캐릭터를 보는 순간 바로 분식이라는 것을 알아채지만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맛테리얼을 시작할 당시에는 고려하지도 않은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두는 것 자체가 고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국경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좋아할 어떤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기억에 남는 반응 우리 제품을 본 사람들이 ‘ 떡볶이 먹고 싶다, 분식 먹고 갈래?’라고 할 때.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도 다녔다. 상황이 녹록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직업 자체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디자이너가 대체 가능한 소품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욱 ‘내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 지난겨울에 군밤과 군고구마 캐릭터로 핫 팩을 만든 것처럼 시즌에 맞는 제품 제작을 고민하고 싶다. 맛테리얼 캐릭터를 테마로 한 분식점을 차릴 수 있다면 가장 재미있을 것 같다. 해피밀 세트 같은 것도 만들고 말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서울을 찾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장소가 되길 바란다. 런던에 가면 이름난 문화 유적지가 아닌데도 모노클숍을 들르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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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제품인 수줍은 튤립 시리즈와 과일 모티프의 오리지널 시리즈 등 자체 제작 상품과 바잉 제품이 어우러진 리리키친의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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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낙원상가 인근에 자리한 리리키친의 쇼룸에 가면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리리키친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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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키친 | 이선미
리리키친의 그릇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의 식탁과 분식집에서 보았던 식기와 패턴을 재해석해 낸 리리키친의 감성은 ‘코리안 레트로’라는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다.
리리키친의 시작 디자인 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근무했지만 요구에 맞춘 결과물만 내다 보니 내 자신이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그래머처럼 느껴졌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 친구와 함께 그릇을 수입해서 판매하다 보니 ‘생각보다 예쁜 그릇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2년부터 직접 그릇에 그림을 그려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혼자 리리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영감의 근원 외가가 재래시장에 자리한 건어물 가게였다. 재래시장에는 독특한 프린트의 천막을 포함해 오래된 것들이 워낙 많다. 20년 넘게 같은 주택에서 살았는데, 다락에 옛날 물건이 가득했다. 어머니가 결혼할 때 가져온 그릇 세트, 외할머니와 함께 자수를 놓은 방석 같은 것을 늘 보면서 자라다 보니 그런 감성을 좋아하게 됐다.
작업의 방향 친근하면서도 키치한 느낌을 가져가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해석은 거부하는 편이고, 꼭 직접 디자인한 제품만 선보여야겠다는 강박도 없다. 제품 제작을 맡기는 공장의 대표는 풍속도가 그려진 소주잔 세트를 선보인 분인데, 워낙 오래전부터 그릇 제작을 하신 분이다 보니 흥미로운 패턴이 많다. 과일 이미지를 그린 ‘오리지널’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유기 티스푼, 분식집 그릇과 양념통 등을 함께 판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민 ‘코리안 레트로’라는 콘셉트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익숙하다고 느끼면서도 새로운 감성을 찾기가 어렵다. 지금은 ‘수줍은 튤립’과 ‘해파리’ 같은 몇몇 히트작이 생겼다. 하지만 힘 빠지는 일은 여전히 있다. 소량 제작이다 보니 공장 쪽을 설득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애매한 카피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노르웨이, 일본, 중국에서 제품이 판매 중인데, 디자인이 아름답다면 언어나 감성의 장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우리끼리 농담으로 “50살 되면 돈 번다는데?”라고 이야기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을 때, 그걸 알아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작업의 원동력이다.
앞으로의 계획 구매층을 중장년층으로 확대하고 싶다. 세트 상품도 구상 중인데, 그렇다고 꼭 그릇에 한정된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패턴이나 제품을 책으로 만들어 ‘코리안 레트로’에 대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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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균형을 이루는 제로퍼제로의 작업물. 도시에 대한 관심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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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작업물과 엽서, 배지 등이 진열된 망원동 쇼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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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제로퍼제로의 가장 오래된 관심사 중 하나다.

제로퍼제로 | 김지환×진솔
대학 선후배로 만나 부부가 된 제로퍼제로의 두 사람은 도시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시작했던 제로퍼제로의 작업은 인포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폭넓게 아우른다.

제로퍼제로의 시작 교환학생 신분으로 도쿄에 머물 때, 도쿄 지하철 노선도를 통합하는 작업을 했다. 워낙 다양한 철도 회사가 노선을 운영하다 보니 보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외국인인 내 눈에도 알아보기 쉽게 제작한 노선도 작업의 반응이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서울과 오사카 노선도도 추가 작업했다. 아내와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원래 작업을 종종 함께 했었다. 특히 일러스트 작업에 능숙해서 시너지가 있다.
작업의 방향 ‘Earth, Travel, Love’가 우리의 슬로건이다. 사람들이 친밀감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지향한다. 노선도와 지도가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319호까지의 국보를 재해석해 그린 <대한민국의 국보>, 아내가 딸을 출산한 이후 느꼈던 순간을 작업한 <마더 앤 도터> 등은 일러스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는 우리 작업의 중요한 주제다.
대한민국의 국보 시리즈 김홍도의 그림을 그래픽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붓선이 남긴 검은 테두리가 우리가 하는 작업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도시를 주제로 꾸준히 작업을 해오다 보니 우리가 서울을 소재로 작업한 걸 보고 싶다는 주변의 의견도 있었다. 서울은 전통적인 요소가 매우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고, 많은 국보가 서울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우리는 서울이 가진 장점을 잘 이용해온 것 같다. 을지로나 방산시장만 가도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박람회나 디자인 페어 같은 공식적 루트를 제외하면 판매에 접근하기 힘든 다른 대도시에 비해 서울은 제품을 선보일 플랫폼도 다양한 편이다. 위탁 판매 방식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문턱은 낮은 셈이다.
앞으로의 계획 처음에는 국내 수요로는 판매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노렸는데, 가격 조정과 유통 관리가 결코 쉽지 않더라. 오히려 서울 시티맵과 전통적인 요소를 모티브로 만든 배지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최근 작업한 도쿄 시티맵이 도쿄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발견한 또 다른 수요층은 육아 시장이다. <대한민국의 국보>가 교육용 서적으로 판매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글로 만든 세계 지도도 반응이 좋다. 아이를 낳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에디터
    이마루
    포토그래퍼
    이정훈, 노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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