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아이들
찬혁과 수현은 언제까지나 순수한 음악을 만들고, 또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은‘ 어리다’가 아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 노래임을 설명한다.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해사한 표정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인터뷰이를 선정하며 악동뮤지션을 빼놓긴 곤란한 일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세우면서 뮤지션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스물한 살과 열여덟 살은 흔치 않으니까. 악동뮤지션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다. 어린 남매는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며 매력과 본능의 관계를 정리하고, 계란말이로 긍정을 전파하며, 다리를 꼰 상대에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과정을 여과 없이 들려줬다. 기발한 상상과 재치는 대중을 물들이기 충분했다. 정규앨범<사춘기-상>을 발표한 현재, 음원 사이트에는 남매의 이름으로 완성된 51곡이 등록되어 있다. 두 남매는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표현 거리를 찾았을 거라며 미래를 상상한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철저하고, 열정은 아낌없이 탄탄하다. 사이다처럼 싱그러운 청량감은 인터뷰의 행간마다 흘러넘쳤다.
2012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어요. 통통 튀는 특유의 음악적 색깔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그 뒤로 많은 변화가 생겼죠?
수현 네, 이전까지 저희에게 음악이란 놀이나 다름없었어요.< K팝스타> 에 출연하면서부터 갑자기 저희 노래를 많은 사람이 듣게 된 거죠. 적응 기간이 필요했어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 출발한 게 아니라, 별 생각없이 발을 들였다가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재미있기도 하면서 부담과 책임감도 생기고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르고 싶진 않아요.
하하. 표정에서 힘들었던 시간이 묻어나네요. 무엇이 가장 힘들던가요?
수현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과 다수가 좋아하는 음악을 고민하는 거요. 대중의 입맛에 맞춰가다 보면 악동뮤지션의 정체성을 잃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뮤지션의 색만 고집하면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잖아요. 중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답을 모르겠어요. 그때도,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악동뮤지션과 대중의 취향은 어떤 방식으로 조율해요?
찬혁 일단 노래를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줘요. 계속 어떤지를 묻고 의견을 많이 반영해요.
이제는 앨범을 내면 음원 차트를 점령하는 뮤지션이 됐어요. 최근 발매한 앨범 <사춘기-상>도 마찬가지예요.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앨범에 속 시원하게 녹였어요?
찬혁 <사춘기>는 사회에 첫발을 들인 친구가 세상과의 타협과 나를 지키는 방법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내용이에요.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시점은 누구나 다를 거예요. 1집 <PLAY>를 발매할 때만 해도 저희는 너무나 어렸어요. 순수함은 악동뮤지션의 정체성이지만, 1집은 그 농도가 제일 짙어요. 하지만 1 집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싶진 않아요. 나이에 맞게 생각은 달라질 테니까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그게 악동뮤지션이 찾는 순수가 아닐까 싶어요.
수현 과거라 해서 현재의 나와 같을 수는 없잖아요. 오디션 노래와 1집의 노래가 인기가 있었다고 해서 그쪽으로 치중하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 같아요.
찬혁 순수한 척하는 것 같았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자주 나눠요?
수현 어쩌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완성된 앨범에서 아쉬움이 없을 순 없겠죠?
수현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진 늘 자신감에 차 있어요. 발매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오죠. 100%의 만족은 없나봐요. 하지만 오빠가 더 심해요.
찬혁 남들이 인정해줘도 제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많아요.
수현 고집이 엄청 세요. 모두가 칭찬을 해도 말이죠.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을 거듭해요. 별로 달라진 부분이 없어 보여도 혼자서 ‘이제는 됐다!’며 겨우 만족하죠.
자기만족감을 채워야만 마음이 놓이는 전형적인 아티스트군요.
수현 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찬혁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대중이 싫어하게 될까, 걱정돼요. 저도 모르게 고민을 거듭해요.
하반기에는 <사춘기-하>가 발매될 예정이라 들었어요. 상, 하로 나눈 이유가 따로 있나요?
수현 더 많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쉬면서 답답하고 지루했거든요. 정규 앨범으로 13곡을 꽉 채워서 나오려고 했지만, 요즘 가요계의 특성상 전곡을 듣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곡의 생명력도 짧대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앨범을 나눠 얼굴을 자주 비추는 방법을 택했어요. 전작과의 차별점은요?
찬혁 전작 <사춘기-상>이 쨍쨍한 햇살이 빛나는 원색의 여름이었다면, 이번에는 부드러운 우윳빛 같은 감성이 담겨요.
앨범이 공개되는 날은 시험 치르기 전날의 불안함인가요,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에 가까운가요?
수현 정말 설렜어요. 2년간 정성으로 빚은 앨범이라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잖아요. 성적도 잘 나와서 다행이었죠.
찬혁 오디션 때부터 악동뮤지션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가 높았어요.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부터 드라마 OST, 광고 CM송까지 음원 차트 1위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2위만 해도 사람들이 위로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된 거예요.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 부담감을 떨쳐야 마음이 편할 텐데요.
찬혁 성격상 순위 자체에 연연하진 않아요. 정말 괜찮거든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괜찮지 않아해요. 그걸 바라보는 저희도 부담스럽고요.
수현 뭐랄까, 가끔 순위가 파워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싶죠.
예를 들면요?
찬혁 인기에 따라 무대 시설이나 대우가 달라져요.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어요. 이를테면 대기실의 크기처럼요. 다른 건 상관없지만 무대의 완성도는 곡의 연장선이니까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순위를 무시할 순 없어요.
그럼 음악의 성패를 가르는 악동뮤지션만의 기준이 있나요?
찬혁 이번 앨범의 곡 ‘Rebye’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이하이의 노래 같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곧 악동뮤지션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졌어요. 제 작업 스타일이기도 해요. 다른 가수가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곡을 쓰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곡이 완성되거든요. 그렇게 매번 새로움을 추가하고 그걸 대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면 성공인 거예요.
땅 따먹기 하듯이 악동뮤지션만의 음악 세계가 넓어지고 있네요. 찬혁은 다른 가수의 앨범 프로듀싱에 관심이 커지지 않나요?
찬혁 최근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아 진행하고 있어요. 다양한 작업을 많이 해보려고요. 훗날 수현이가 솔로 활동을 하면, 전 다른 사람과 협업한 곡들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 같아요.
어째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상대가 수현인 것처럼 느껴지는걸요?
찬혁 맞아요. 상대는 수현이에요.(웃음)
수현 남매에게 승부는 중요해요. 가족이라도 용납할 수 없죠.(웃음)
각자 생각해둔 개인 활동은요?
수현 오빠가 언젠간 군대에 갈 텐데, 그동안 전 노래를 안하면 정말 힘들 거예요. 막연하긴 하지만 유닛이나 솔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려고요. 오빠는 토이 선배님처럼 객원 보컬과 협업하거나 프로듀서로 활동해도 멋질 것 같아요.
사춘기가 지나면 한 뼘 더 성장하겠죠. 악동뮤지션이 원하는 성장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수현 트로트, 재즈, 보사노바를 노래해도 ‘역시, 악동뮤지션이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장르의 구분이 없고, 틀의 한계가 없는 가수가 되고 싶고요. 슬픈 노래로 위로를 건네고, 신나는 곡에는 흥을 더하면서 사람들의 삶에 맞닿을 수 있었으면 해요.
찬혁 악동뮤지션에 붙은 ‘뮤지션’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계속해서 도전할 거예요. 가요계는 한 노래가 흥하면 비슷한 스타일을 고집하잖아요. 그런 풍토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성공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수현 지금은 오빠가 노래를 짓고, 전 노래를 부르지만 둘 다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올 수 있겠죠. 그래서 전 작사작곡 공부를, 오빠는 가창 연습을 시작했어요.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보려고요. 팀이라 다행이죠. 부족한 서로를 뒷받침해줄 수 있잖아요. 지루함도 없고요.
스물한 살인 찬혁은 본격적인 20대를 맞이하기 전에, 열여덟 살인 수현은 10대가 지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수현 풋풋한 나이에 걸맞은 순수한 짝사랑이요.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뜨거운 사랑이 궁금해요. 애가 닳아봐야 진정성 어린 가사가 나올 텐데, 겪어보질 않아서 잘 안 써지나 봐요.
찬혁 반면 저는 연애박사, 척척박사죠.(웃음) 그리고 제 주변 친구들이 최근 독립을 시작했거든요. 가족과 떨어진 삶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게 제일 궁금해요. 수현 자꾸 연애박사래요. 제가 그 연애사를 전부 아는데 말이에요.
30대가 된 자신을 상상한 적 있어요? 찬혁은 독립한 도시 남자, 완벽한 연애박사로 거듭났을지도 모를 일이죠!
찬혁 독립해서 음반 레이블을 차렸을까요? 재미난 일을 벌이고 싶어요.
수현 타블로 오빠처럼요! 오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럼 전 회사의 이사님을 할래요.(웃음) 그리고 전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역할은< 위키드>의 글린다예요. 밝고 발랄한 여왕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의 오디션 심사위원도 재미있겠죠. 어떤 방식으로든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었을 텐데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진다면 무얼 바꾸겠어요?
찬혁 성장기로 돌아가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멸치를 씹을래요. 농구도 열심히 배워서 키를 키워야죠.
수현 전 과거보다 미래로 가는 티켓이 더 궁금해요.
그럼 과거 대신 미래 열람권을 줄게요.
수현 스물셋을 엿보고 싶어요!
찬혁 젖살이 드디어 빠졌는지 보고 싶겠죠.
수현 맞아요. 살도 확인하고,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친구들은 잘 있는지를 살펴볼래요. 인기가 많은지도요! 오빠가 독립의 꿈을 이뤘는지, 드디어 연애박사가 됐는지도 확인해봐야겠어요.(웃음)
이 자리를 빌려 서로에게 부탁하고 싶은 걸 고백해보죠.
찬혁 오라버니 말씀을 잘 들어주렴.
수현 오빠는 허리를 쭉 펴고 걸었으면 좋겠어요. 오빠의 왜소한 체구 때문에 되레 제 덩치가 부각되잖아요. 그래서 살을 뺐지만 전혀 소용이 없어요. 여자인 나를 배려해 제발 ‘깔창’을 잊지 말아줘요. 하하. 뮤지션으로서 서로를 칭찬하며 마무리할게요.
찬혁 넌 천재를 이길 방법은 노력뿐이란 걸 잘 아는 동생이지. 그 말을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기특해.
수현 마지막에 ‘아름답다’는 말만 써주세요! 본인이 천재라는 걸 강조하는 거잖아요. 진짜 여우예요. 굉장히 지능적이죠. 칭찬하긴 싫지만, 타고난 음악적 재능은 인정해요. 그런데 연습을 안 해요. 곡을 반복해 수정하는 집착은 똥고집일 뿐이고요. 타고난 능력만 믿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절 통해 노력의 힘을 깨닫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남매 그룹은 토닥거리는 모습도 재미있네요. 덕분에 자주 웃었어요.
찬혁 어쩔 수 없는 가족이니까요.
수현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악동뮤지션에게 불화설이 일어나도 이해해야 한대요. 폭행시비가 붙어도 어쩔 수 없다고요. 현실의 남매란 그런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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