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의 항해술
비 때문에 한강이 바다처럼 변한 날, 검정치마 조휴일은 인터뷰를 위해 길을 나섰다가 유리문에 크게 부딪혀서 10분간 기절했다. 혹이 뾰족하게 솟은 얼굴을 하고 와서는, 이제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곧 발매될 새 앨범 제목이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이었지.
앨범 제목과 커버 디자인, 곡 전체가 바다, 항해에 맞춰 있어요.
콘셉트 앨범이에요. 보통 개인의 운명을 배로 표현하잖아요, 검정치마를 배로 비유하면 원맨 밴드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선장이 되죠. ‘검정치마 호’를 타고 항해를 하는 항해일지라고 생각해줘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앨범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 작업도 그랬어요?
사실 작년 미국으로 들어갈 날짜 잡고 한 달 안에 쓴 곡들이에요. 2009년은 내게 특별한 한 해였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많은 사건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처음엔 저만 들을 생각으로 만들었고,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이런 습작 같은 음악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죠.
보통 뮤지션들의 2집은 1집을 세련되게 바꾸거나, 아니면 정말 해보고 싶은 음악을 지르거나, 아님 좀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자 하죠. 어떤 전략을 세웠죠?
전략이 없는 게 전략이랄까? 초대중적인 노래를 만들어야지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건 대중성을 일부러 만드는 게 아니라 대중음악(팝)을 모방하고 싶다는 뜻이죠. 난 기본적으로 인디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공중파에 나가도 주류가 될 수 없는 인디 음악이죠. 결국 나온 이번 앨범은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실험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했어요.
1집으로 많은 인지도를 얻은 것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은데요.
앞으로도 너무 정교한 앨범은 나올 것 같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면서 만들지 않고, 늘 느낌으로만 작업하고 있거든요.
그럼 앨범의 완성도는 얼마나 솔직하게 감정을 추구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군요!
네. 앞으로도 그쪽 면에만 호소할 생각이에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적으로 점점 나아지긴 하겠지만 대단하게 일부러 만들 생각은 없어요. 1집은 뮤지션으로서의 조휴일을 보여줘야 하니까 멜로디나 편곡을 화려하고 좀 ‘달달하게’ 만들긴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뒀어요. 인트로가 있는 노래가 거의 없고, 편곡은 단순해요. 곡의 절반은 기타를 처음 배운 사람들도 다 칠 수 있는 쉬운 코드로 썼어요.
스토리텔링이라면, 가사에도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겠죠. 우리나라의 형, 동생의 문화를 뒤튼 ‘외아들’은 유쾌하지만, ‘음악 하는 여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음악 하는 여자’는 누굴 비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에요. 2009년에 있었던 일 중에 그런 영감을 주는 게 있었을 뿐이에요. 진심도 들어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썼다고 생각해주세요. 특히 후렴구는 기타를 치다가 저절로 나왔죠.
늘 가사와 멜로디를 동시에 만들어요?
어릴 때부터 그 부분을 항상 고민했어요. 처음엔 가사를 먼저 썼고, 나중엔 ‘멜로디가 중요해’ 하면서 멜로디 먼저 만들기도 했죠. 요즘은 같이 만들어요. 그게 나한텐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조휴일은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죠. 사람들은 천재의 유년시절을 궁금해할 거예요. 어땠어요?
펑크음악 했던 거 빼곤 평범했어요. 음악과 미술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예술 장학금도 받았죠. 음악을 좋아하지만 연주할 줄 모르는 애들을 모아 드럼 가르치고, 기타 가르치면서 ‘내 음악 간단해. 이렇게 하면 될 거야’ 라면서 밴드를 시작했어요. 내 음악 인생의 반은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미니멀한 펑크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주변에 더 좋은 뮤지션이 있다면 음악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은 늘 갖고 있어요.
왠지 검정치마는 ‘뉴욕 오타쿠’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도 곡 작업은 미국에서 할 건가요?
그러려고 미국에 갔던 게 아니라 엄마 아빠 보러 간 거예요. 그런데 막상 가니까 부모님은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셨더라고요. 사실 나는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에 살았는데, 뉴욕이 서울이라면 분당 같은 곳이죠. 지금도 분당에 살아요. 매일 강아지와 함께 탄천을 뛰어요. 아니, 걸어요.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안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