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관한 불편한 진실

평소 높은 신발을 즐겨 신고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면 당신의 발은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십 년 넘게 하이힐 중독자로 살아온 에디터가 마주한 불편한 진실은 이제 그만 하이힐에서 내려오라는 것이다.

무지외반증을 예방하는밴드와 굳은살과 발의피로를 줄이는 패드는모두 티타니아.

무지외반증을 예방하는 밴드와 굳은살과 발의 피로를 줄이는 패드는 모두 티타니아.

발단, 하이힐과의 첫 만남
어려서부터 보아온 엄마의 발은 명절에 가끔 신는 버선코와 비슷했다.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돌아가 뼈가 툭 불거진 모양새였다. 엄마는 언젠가 튀어나온 뼈를 없애고 뾰족한 하이힐을 마음껏 신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엄마와 내 발 모양이 붕어빵처럼 닮았다는 사실도 엄마를 통해 알았다. 가끔 내 발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 곤 했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걱정과 달리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내 발은 별탈 없이 잘 버텨줬다. 돌출된 뼈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 둥근 구두를 신어야 하는 것 빼고는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발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한창 어른 티를 내고 싶은 시절이었기에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고 싶었지 만 넓은 볼 때문에 신어보지도 못하는 신발이 많았으니까. 그럴수록 하이힐에 대한 집착은 더 커졌다. 처음에는 3cm 정도의 낮은 굽을 신고도 비틀거리며 걸었는데, 어느덧 익숙해지자 10cm 가까운 하이힐을 신고도 강의실로 가는 언덕길을 거뜬히 오를 수 있게 됐다. 학창시절 콤플렉스였던 통통한 종아리도 하이힐을 신으면 왠지 날씬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늘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긴 스커트를 입다가 무릎 위로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기 시작한 것도 하이힐을 신으면서부터다. 그렇게 한번 ‘높은 세상’의 달콤한 맛을 보자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전개, 킬힐에 중독되다
하이힐 인생의 2막은 사회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잡지사에 입사해서 만나게 된 패션 에디터들을 보며 킬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살짝만 삐끗해도 발목이 시큰거릴 정도였지만 킬힐을 신으면 휘어진 다리도 대나무처럼 쭉 뻗어 보였다. 매일같이 킬힐을 신다 보니 지하철로 하던 출퇴근도 택시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운동량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회사 체육대회를 한 날이었다. 달리기와 줄다리기 등 평소보다 심하게 운동을 했다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 걷지 못할 정도로 종아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걷기도 힘들뿐 아니라 근육이 딱딱하게 뭉치고 부종이 심해 평소보다 종아리가 1.5배는 두꺼워졌다. 이쯤 되면 하이힐을 신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도 했건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때부터 아예 운동화나 굽이 낮은 신발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수십 곳을 오가며 하루 종일 취재를 해야 하는 날도 10cm가 훌쩍 넘는 구두를 신고, 심지어 스키장에 갈 때도 하이힐을 신었다. 회사에서도 ‘늘 하이힐을 신는 기자’로 알려질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머지않아 허리에 탈이 난다며 염려했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킬힐 중독자로 살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 침대에 누워 벽에 발을 올리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발 모양이 변한 게 눈에 띄었다.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돌아가 두 번째 발가락과 2mm쯤 겹쳐 있고 엄지발가락 뼈가 바깥으로 튀어나온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발바닥 앞쪽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눈에 띌 때마다 잘라냈는데도 자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조금만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도 발이 아프다는 엄마와 달리 발이나 무릎에 느껴지는 통증이 전혀 없었다. 선천적으로 엄지발가락이 휘어진 것이 조금 심해졌을 뿐이지 별탈이야 있겠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후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체질이겠거니 했다. 문제는 발이 아닌 다리에 먼저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스키니 진을 입으면 다리가 많이 벌어져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똑바로 서서 양쪽 무릎을 붙여보고는 깜짝 놀랐다. 조금 휘기는 했지만 허벅지에 살짝 힘을 주면 무릎이 붙었는데 이제는 무릎을 붙이고 서 있으려면 식은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고 다리도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위기, 휘어진 발가락의 진실
병원을 찾으니 ‘무지외반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볼이 좁고 굽이 높은 신발을 자주 신어 엄지발가락 뼈가 바깥으로 돌출됐다는 이야기였다. “무지외반증은 20~30대 여성 중 20~40%가 앓을 만큼 흔한 질병이에요. 엄지발가락이나 새끼발가락 뼈가 돌출되는 것이 가장 흔한 증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 발이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김창우 원장의 말이다. 순간 못생긴 발을 평생의 짐으로 안고 살아온 엄마가 떠올랐다. 알고 보니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었다니. 초기에는 발 모양만 기형적으로 변할 뿐 큰 이상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발가락 변형이 심해져 점점 더 휘고 굳은살이 생기며, 균형을 잡고 똑바로 서 있는 것이 힘들어지거나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기도 한다. 심하면 무릎 관절이나 엉덩이 관절, 허리 통증은 물론 발가락 뼈를 둘러싸고 있는 골막에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고. 설명을 듣고 나자 무심코 지나친 미세한 변화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2주에 한 번꼴로 잘라낸 굳은살과 하루가 다르게 휘어지는 다리, 가끔 엉덩이 쪽에서 느껴지던 통증의 원인이 모두 휘어진 발가락 때문이었다니! 다행히 아직까지 심각한 통증은 없으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하이힐을 신는 횟수를 대폭 줄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휘어진 뼈를 교정하는 보조기를 사용하고, 굳은살이 생기는 부분에 패드를 붙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뾰족 구두를 신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엄마 생각이 나서 수술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통증이 느껴지면 수술이 필요하다는 신호예요. 엄지발가락 뼈의 일부를 잘라 휘어진 뼈를 똑바로 세우고 철심을 박아 고정하는 절골술을 시행하는데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수술은 아니에요. 발에만 국소마취를 하고 수술 시간도 30분 내외니까요. 하루 정도면 수술로 인한 통증이 가라앉고 일주일 정도만 입원하면 되요.” 수술 후 바로 걸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수술 후 3일째부터 특수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하는데 한 달 후부터는 운전도 가능해요. 3주 후에는 보통 신발로 갈아 신고 6 주 후에 철심을 제거하면 하이힐도 신을 수 있어요. 뼈를 자르는 수술이다보니 재발률도 낮은 편이에요.”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보다 수술 후에도 하이힐을 계속 신을 수 있다는 설명에 귀가 쫑긋했다.

절정, 심장보다 중요한 발
“하이힐을 오랫동안 자주 신어온 환자 중 운동화나 굽이 낮은 신발을 신으면 종아리가 땅겨서 걷기조차 힘들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이힐을 신으면 까치발을 든 것처럼 뒤꿈치가 항상 높아져 있는데 이 상태가 반복되면 아킬레스건의 근육이 수축되고 탄력이 줄어 굽이 낮은 신발을 신었을 때 통증이 느껴지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낮은 신발을 못 신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다. 하이힐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20~30대 여성 중에 엄지발톱이 유난히 두꺼운 경우가 많아요. 볼이 좁은 신발을 신으면 신발이 엄지발톱을 압박하기 때문이죠. 비좁은 공간에서 발가락들이 서로를 압박하다 보면 발톱이 안으로 휘어져 살을 파고들기도 하고요.”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리가 가늘어 보이라고 하이힐을 신는데 시간이 지나면 종아리가 탱탱하게 붓는 경우가 많아요. 이유는 혈액순환 때문이죠. 발은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에요. 발을 우리 몸의 또 다른 심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혈액순환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심장과 발이기 때문이죠. 심장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발에 도착하면 발에 존재하는 26개의 작은 뼈와 33개의 관절, 214개의 인대와 38개의 근육, 25만 개의 땀샘과 신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혈액을 심장으로 돌려 보내는 역할을 해요. 발끝으로 서면 다리의 동맥이 열려 심장에서 발로 혈액이 흐르기 쉽고, 뒤꿈치로 바닥을 디디면 정맥이 눌려 혈액이 심장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원리예요. 때문에 발가락 끝부터 뒤꿈치까지 발바닥 전체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발의 작은 움직임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자기 전 따뜻한 물에 허브 오일을 떨어뜨리고 15분 정도 발을 담그고 골프공을 넣어 발바닥을 이용해 2분 정도 굴리면 마사지를 한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발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게 되죠.” 상담을 하며 또 다른 이상은 없는지 몸 이곳저곳을 이야기하다 보니 얼마 전 종아리 혈관이 톡 불거져 나온 것이 생각났다.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고 오래 서 있는 시간이 많다는 얘기를 종합해봤을 때 하지정맥류의 초기 증상일 수 있어요. 종아리 부근에 라면 면발처럼 꼬불꼬불한 혈관이 튀어나오는 현상은 발과 다리의 순환이 잘되지 않는 것이 주된 원인이에요”. 순환이 잘되지 않아 특정한 혈관에 혈액이 급속도로 모이면서 혈관 벽을 밀어내 혈관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라고.“다리를 꼬고 앉는 것도 서서 일하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에요. 하지정맥류가 심해지면 발과 다리가 쉽게 피로해지고 붓게 되므로 오랫동안 서 있을 때는 수시로 까치발을 들어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고, 오래 앉아 있을 때는 다리를 쭉 뻗고 발목을 좌우로 돌려 운동하는 게 좋아요.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는 동작도 발의 순환을 돕고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요. 김연아 선수의 발 마사지법으로도 유명하죠.” 상담을 받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병원을 나서는 즉시 로퍼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걸까? “하이힐뿐 아니라 로퍼나 플랫슈즈처럼 밑창이 얇고 굽이 전혀 없는 신발만 신는 것도 문제예요. 최근에 발뒤꿈치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데 검사를 해보면 뒤꿈치에 생긴 염증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신발의 굽은 발바닥에 실리는 체중과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굽이 없는 신발을 신으면 과도한 체중이 모두 발바닥에 실려 염증까지 유발하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거나 오랫동안 앉아 있다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 통증을 느낀다면 염증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되요. 건강을 위해서라면 굽의 높이는 3~4cm가 적당한데 굽이 다른 여러 종류의 신발을 번갈아가며 신는 것이 좋아요.”

결말, 잠시만 안녕
의사에게는 차마 10년 가까이, 그것도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어왔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상담을 받는 동안 가장 겁이 난 건 나의 하이힐 인생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50대에도 킬힐을 신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주 3회 하이힐 신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날이었다

    에디터
    조은선
    포토그래퍼
    Jung Won Young
    모델
    주민희
    기타
    도움말 | 김승진(센트럴흉부외과 원장), 김창우(정동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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