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옷을 입어요
아동복을 즐기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동복은 사이즈가 작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에게 딱 맞는 사이즈라고 당당히 말하는 어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자벨 마랑과 H&M의 협업 컬렉션 중에서 패션 피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건 키즈 라인의 스웨터였어요.” H&M 홍보 담당자의 한마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단순히 조카나 자신의 아이에게 입히기 위해서 구입했던 게 아니다. 어른들이 자신이 입기 위해 아동복을 샀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주변의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꺼냈을 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아동복이 몇 벌 있다는 전언과 함께 김태희, 도희, 아이유처럼 몸집이 작은 스타들도 주로 아동복을 입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 아동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을까? 아동복이라고 하면 대략 사이즈가 얼마나 될까? 주로 어떤 브랜드에서 많이 나오는 걸까? 어른들이 입기 좋은 아이템은 어떤 것들일까?’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동복을 입는 이유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벗어나 아동복을 입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실제로 랄프 로렌이나 빈폴 키즈 같은 경우에 아동복을 찾는 여자들의 판매 비율이 전체의 20% 정도 차지한다고 한다. 키가 작고, 몸매가 마른 사람뿐 아니라 보통 사이즈(55 사이즈 정도)의 사람들도 아동복을 입는 경우도 많았다. 스타일리스트 윤슬기는 아동복을 즐겨 입는 이유에 대해서 털어놨다. “어깨가 좁은 편이라서 여성복 사이즈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팔도 짧은 편이라서 셔츠나 재킷은 꼭 수선해서 입었죠. 그런데 우연히 조카에게 선물로 줄 옷을 고르다 몸에 옷을 대봤는데, 생각보다 옷이 크다는 걸 알았어요. 아동복에서 10~12세 옷은 거의 대부분 제가 입으면 딱 맞아요. 그 후부터 상의를 고를 때에는 아동복도 눈여겨보게 되었죠.”
부모님들이 ‘어릴 때 잘 먹지 못했던 우리 때와는 달라서 요즘 애들은 키가 크고, 다리도 길어졌다’고 말하는 걸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식습관이 서구식으로 바뀌면서 어린 아이들의 평균 신장도 커졌고, 몸무게도 서양인에 맞춰 변화되고 있다는 건 이미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제 조카를 보면 요즘 아이들은 10년 전과 비교해봐도 몸이 많이 커졌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어요. 저는 그 나이 때는 키가 140cm밖에 안 됐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 조카가 이미 155cm예요. 몸무게도 저보다 많이 나가죠. 그런데도 반에서 제일 크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아동복에서 큰 사이즈가 나오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윤슬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건 주변에서 어른 키에 육박하는 초등학생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빈폴 키즈의 디자이너 이혜진은 “예전보다 아동복의 사이즈가 커졌어요. 같은 12~13세의 옷이라고 해도 예전에는 145~150m, 몸무게 40~45kg이 표준 사이즈였다면, 지금은 155~165cm, 몸무게 45~55kg으로 바뀌었어요. 예전 12~13세 사이즈는 지금은 11~12세로 한 치수 작아졌죠. 이 사이즈는 여성복 브랜드의 55사이즈와 거의 같아요. 2010년 기준 여성복 표준 55사이즈가 키 160cm, 가슴둘레 85cm이니까요.” <엘르> 패션 에디터 주가은은 여성복은 반대로 사이즈가 작아졌다는 흥미로운 의견을 전했다. “저는 살이 빠진 후에 아동복에 관심을 돌렸어요. 몸에 딱 달라붙는 사이즈보다는 넉넉한 사이즈를 좋아하는 편이라 남성복을 주로 입었죠. 하지만 몸무게가 5kg 정도 빠진 후에 남자 아이의 옷을 입어보니 제게 딱 맞더라고요. 매장 직원의 말이, 다이어트로 살을 빼고 아동복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아동복의 트렌드가 바뀐 것도 한몫했다. 어린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을 입거나, 어린이 만화 캐릭터 아이템이나 다소 유치한 느낌의 패턴으로 가득한 옷을 입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동복 트렌드는 어른과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이다. 톰 크루즈의 딸 수리가 하이힐 슈즈를 신었던 파파라치 사진이나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 로메오 베컴이 버버리 프로섬 캠페인을 찍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명 ‘미니미(Mini-me)’ 패션이라고 부르는 이 트렌드는 한 브랜드 안에서 똑같은 옷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사이즈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복 라인 옷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살 수 있다. 세인트 제임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세인트 제임스의 베스트셀링 아이템인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똑같은 소재와 컬러로 아동복도 선보인다. 하지만 어른 옷에 비해 정확하게 절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마르니, 스텔라 맥카트니처럼 아동복을 출시하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경우에는 가격 차이는더 많이 난다.
효율적인 쇼핑 방법
“해외 브랜드의 경우에는 국내 아동복 브랜드보다 사이즈가 더 다양해요. 큰 사이즈는 15세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죠. 같은 12세 옷이라고 해도 사이즈가 더 큰 경우도 있어요. 아동복을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 브랜드에서 구입하죠. 한 가지 아쉬운 건 국내에 들어온 해외 브랜드의 경우 키즈 라인이 다양하지 않거나 아예 키즈 라인은 수입하지 않는 브랜드가 많다는 거예요. 막상 키즈 라인이 있어도 사이즈가 8세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입하거나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 더 다양한 상품을 구입하기에 좋아요.” 키가 작고 마른 몸매라 아동복에서만 맞는 사이즈를 찾을 수 있다는 LG패션의 디자이너 정은영이 자신의 쇼핑 노하우를 알려줬다. “해외 브랜드 중에서도 미국 브랜드가 사이즈가 가장 커요. 유럽 브랜드들은 사이즈가맞아도 팔이 짧은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여성복과는 사이즈가 다르기때문에 상의는 소매 길이와 전체 길이를 잘 살펴봐야 하고요. 일단 가지고 있는 옷 중 팔 길이가 잘 맞는 긴팔 상의를 꺼내서 소매 길이를 재어보고 그 사이즈에 맞춰 구입하는 게 좋아요. 또 아동복이기 때문에 볼륨 있는 가슴을 생각하지 않고 제작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진으로 봤을때나 제품 설명에 적힌 사이즈를 봤을 때 길어 보이는 옷도 막상 입어보면 훨씬 짧거나 재킷이나 셔츠 같은 경우에는 가슴 부분에서 잠기지 않는 경우가 있죠.”
아무래도 성인 여자를 위해 만든 옷이 아니기 때문에 구입할 때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하의는 허리 사이즈로 표기하지는 않는데(국내 브랜드의 경우 아동복 허리 사이즈는 3~17호로 나온다), 보통 가장 큰 사이즈는 27인치까지 나온다. 12세 사이즈(17호)는 허리 사이즈가 23~25인치라 성인 여자들이 입기 가장 좋은 사이즈다. 상의에서 가슴 부분을 신경 써서 살펴봐야 한다면, 하의는 엉덩이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 막상 허리 사이즈는 맞아도 엉덩이 부분이 맞지 않거나 너무 딱 맞아서 보기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인 사이즈의 청바지는 대부분 길이가 길어서 수선해야 하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아동 사이즈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다리 길이에 딱 맞거나 구두를 신었을 때 끌리지 않는 길이가 대부분이다.
아동복을 입을 때 가장 많이 생각해야 하는 건 바로 상체와 하체의 균형이다. 머릿속에 항상 기억해야 하는 건 아동복끼리 매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아동복이 사이즈가 커졌다고 해도, 일반적인 55사이즈의 여성에겐 딱 맞거나 약간은 짧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넉넉한 사이즈의 옷과 함께 입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동복 스웨터를 입었다면 하이웨이스트 데님 팬츠나 스커트로 상체의 짧은 길이를 보완해주거나, 반대로 아동복 데님 팬츠에는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로 상.하의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좋다. 그동안 아동복이 너무 작아서 못 입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13세에서 16세의 청소년을 위한 주니어 라인을 추천한다. 일반 아동복보다는 사이즈도 크고, 성인 몸매에 가깝게 재단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쇼핑할 수 있다.
속이 깊고, 철이 든 아이를 ‘애어른’이라고 부른다. 패션계에 애어른은 아동복을 입는 똑똑한 어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아동복을 입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합리적인 쇼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맞는 사이즈, 트렌디한 스타일을 50% 정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똑똑한 쇼핑이 또 있을까.
WOMEN VS.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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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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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이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