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성욕은 어디로 갔나?
연애 초반에는 눈만 마주쳐도 불타오르던 그의 성욕이 잠잠해졌다. 더 이상 내가 매력적이지 않은 걸까, 권태기일까? 아니면 그냥 나이가 들어서? 사라진 내 남자의 성욕을 둘러싼 여자의 의심, 그리고 남자의 변명을 들으며 연인들이 풀어야 할 이 숙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성욕은 돌아올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시작됐다. 스물아홉. 소위 결혼 적령기인 여자들이 모인 만큼, 화제의 초점은 자연스레 서로의 연애사에 맞춰졌다. 얼마큼 수다를 떨었을까? 한숨 섞인 고백처럼 한 친구가 의외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자친구와의 섹스 횟수가 최근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사귄 지 1년쯤 된 친구의 남자친구의 나이는 30대 초반. 마침 남자친구와 꽤 오래 사귄 또 다른 친구가 ‘오래 사귀면 어쩔 수 없다’면서 자신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언뜻 내비쳤다. 어느덧 나 또한 2년 가까이 사귄 내 남자친구와 나의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횟수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일 때 역시 20대 초반인 남자친구를 뒀던 우리의 고민은 첫경험이나 상대방의 넘치는 성욕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상상이나 했을까? 1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남자친구의 감퇴한 성욕이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먼저 여자들의 증언부터 들어보자. 그녀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연애의 도입부는 20대 초반의 그것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는 진도를 나가기를 원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느긋하게 지켜보는 이른바 구애의 시기다. 물론 혼전순결 문제로 고민하거나 섹스가 어렵게 느껴졌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그 시기는 짧아졌고, 일을 먼저 치르고 그 다음 날이 사귄 지 1일이 되는 경우도 생겼지만 그래도 하나만은 확실했다. 이 시기의 남자는 ‘이 남자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강력한 확신을 준다는 것! 하지만 건장했던 어린 시절의 남자친구들과는 달리 20대 후반, 혹은 40대를 달려가는 지금의 남자친구들과는 차츰 관계를 하지 않고 잠드는 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 가지 말라’고 조르거나, ‘같이 있자’는 말도 차츰 줄어들고, 하루에 두세 번 하는 일도 사라진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꼭 껴안고 자자’는 말이 남자 입에서 나올 줄이야!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피곤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함께 껴안고 잠들 만큼 친밀해진 관계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그냥 잠드는 날이 많아질수록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더 이상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친구의 행동이 섭섭해지고, 내 자신이 성적 매력 없는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에 여름휴가를 남자친구와 다녀왔잖아. 그런데 그 일주일 동안 전날 했으면 그 다음 날은 안 하는 게 무슨 규칙처럼 되어버렸어. 사귄 지 이제 1년 좀 더 됐는데 의무방어전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친구 A의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친구와 A의 속궁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친구와의 속궁합은 이전에 만난 그 누구보다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A는 더 화가 났다. 대체 이렇게 좋은데도 안 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냐!
야근 많기로 소문난 업종에 종사한 남자친구를 둔 친구 B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남자친구가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 없긴 했어. 그래도 한 달에 두 번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싶더라고. 게다가 자기만 일하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바쁘거든?” 서른 살인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직전에 20대 중반의 연하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그녀는 이 상황이 더 당혹스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시 나이가 문제인 걸까? 시선은 친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를 사귀는 C에게로 쏠렸다. 사업을 하는 C의 남자친구는 C와 무려 띠동갑 차이. C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 남자친구는 너무 바빠서 일주일에 한두 번 잠깐 얼굴 보는 게 전부야. 횟수에 대한 고민도 일단 만나야 하는 것 아니니?” C의 대답은 우리를 더 큰 의문 앞에 데려다놓았다. 어쩌면 30대 이상의 남자에게 섹스는 성욕 외에도 다른 것들이 필요한 문제가 된 건 아닐까? 체력, 그리고 시간.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 절대적, 물리적 조건들이야말로 섹스의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피곤하다는 남자들의 말
이런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몇몇 남자가 소환되었다. 만으로 따지면 아직 스물여덟인 대학 동기부터 올해로 서른여섯이 된 예비신랑까지. 직장생활도, 연애도 큰 문제 없이 순탄한, 그야말로 일반적인 남자들이었다. 20대 초반과 지금의 성욕이 다르냐는 질문에 모든 남자가 ‘예스!’를 외쳤다. 사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호르몬은 25세 전후에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에는 1년에 1%씩 감소하며, 40세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든다고 하니까.
대학 동기인 D는 섹스 자체가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어릴 때는 섹스가 지상 최고의 과제였다면, 지금은 두 번째쯤 된다고 할까? 예전 같으면 한 번 할 수 있다면 앞뒤 안 보고 덤빌 텐데, 지금은 앞으로 이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책임질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좀 더 머리를 쓰게 되지.” 한마디로 성욕에 지배당한 원숭이에서 사회화가 됐다는 말이다. 이때 D는 한마디를 던졌다. “사실 이제 할 만큼 해본 것 같기도 해.” 이 말을 D의 여자친구한테 들려줘야 하는데! 마치 내 남자친구에게 들은 것처럼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예비신랑인 E의 대답은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섹스도 스포츠라고 하잖아. 심지어 분위기 잡고, 벗고, 씻고, 하고, 하고 나서 또 씻어야 하는 과정도 꽤 귀찮은 스포츠라고. 그리고 같이 한다고는 하지만, 남자가 체력적으로 훨씬 부담되는 건 맞지.” 섹스의 과정이 ‘귀찮음’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지만, 체력적으로 남자에게 더 부담스럽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여자를 비난하는 자는 드물지만, ‘네가 좀 올라가서 해’라고 등 떠미는 남자는 두고두고 저주받을 테니까!
만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자친구를 향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들의 요지는 여전히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친밀감은 깊어졌지만, 그녀와의 섹스가 굳이 피곤함을 감수하고 체력적으로 무리하면서까지 간절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걷다가 손만 스쳐도 하고 싶지.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잖아.”서른두 살의 헬스 마니아, 선배 F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일단 피곤하잖아. 연애 초반에는 안 하고 자는 게 남자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일단 하면 좋으니까 하긴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는 거야. 그냥 껴안고 편안하게 잠이나 자고 싶은 거지.” 듣고 있자니 짠하기도 했다. 상습적인 야근, 그리고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차라리 섹스를 포기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많은 전문의가 성욕 감퇴의 이유를 스트레스, 권태감, 우울감 등 심리적 요인에서 꼽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험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 심장, 근육으로 가는 혈류는 증가하는 반면, 위험 대처와는 관계없는 피부, 소화기관, 성기로 가는 혈류는 감소하며, 자연스레 성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스킨십과 친밀감의 상관관계
여전히 불만은 남아 있었다. 피곤함과 세월이라는 모든 이유를 포용하더라도 별다른 스킨십도 없이 잠든 남자를 보며, 섭섭하고 허전해지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냔 말이다. 몸매 관리를 하라는 둥, 새로운 유혹의 기술을 사용하라는 둥 잡지에 실린 ‘그의 마음에 불 지르는 법’ 같은 칼럼을 읽으면 더 화가 났다. 이런 문제에서조차 여자는 자신의 외모와 부족함을 탓해야 하는 걸까? 굳이 몸매 이야기를 하자면, 정작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생활로 한층 두루뭉술한 것은 남자들의 몸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남자들의 몸무게는 1.07kg 증가한 반면, 여성의 체중은 계속 감소한다는 발표도 있다!
그래서 결국, 이런 문제에 대한 정답은 대화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친구 A는 자신이 섭섭한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돌이켜본 결과 섹스의 주도권을 남자친구가 쥐고 있기 때문임을 발견했다. 남자친구가 분위기를 조성할 때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A와 달리, A의 남자친구는 A가 먼저 키스나 스킨십을 시도할 때면 피곤하다고 몸을 돌리거나, 다음에 하자며 A를 다독이기 일쑤였다. 결국 자신의 성욕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A를 속상하게 한 것이었다.
“나는 ‘꼭 하겠다’는 의미로 스킨십을 한 건 아니었어. 그런데 자기가 할 맘이 없는 날에는 스킨십 시도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거야. 그런 거절이 나한테는 상처가 되는데도 말이야.” A는 이 문제에 대해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남자친구는 그동안 자신의 발언과 행동을 사과했다. 당장 섹스 횟수가 연애 초기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섹스 없이 잠들 때면 마음속 한쪽이 섭섭함으로 가득 찼던 A는 그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반면 B는 남자친구가 최근 직장에서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로 부임한 상사와의 갈등, 친하게 지내던 입사 동기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업무 이외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것. “스쳐가는 말로 힘들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줄은 몰랐지.” 힘든 일이 있어도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던 남자친구의 고민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B는 남자친구와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연인 사이에 사랑을 나누는 것은 친밀감을 나눈다는 것과도 직결된다. 줄어든 ‘횟수’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섹스리스 부부가 사회적 문제로 언급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스킨십의 감소는 두 사람의 유대감과 정서적 친밀감에 빨간 불이 들어온 신호와도 같다. 특히 이 문제 때문에 한 명이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낀다면 더욱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안고, 만지고, 서로의 체온으로 채워줄 수 있는 부분까지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적어도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니 줄어든 스킨십의 횟수가 당신을 외롭게 한다면, 그래서 이 관계가 더 이상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에게 말하라. 이토록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남자라면, 그런 남자 옆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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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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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