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멋쟁이, 계한희의 취향과 스타일

서울 멋쟁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스타일을 완성할까? 그녀들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취향과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모두 개인 소장품.

의상과 액세서리는 모두 개인 소장품.

짙은 아이 메이크업과 두 가지 색으로 탈색한 헤어 스타일, 상대를 압도하는 강한 눈빛과 상반되는 느릿한 말투. 자신의 브랜드 카이를 선보인 지 5년이 흘렀는데도, 계한희는 여전히 20대이다. 계한희는 또래의 취향을 간파했고,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모든 디자이너가 원하는 탄탄한 길을 걷고 있다. 이는 그녀의 취향에 동시대가 원하는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매사에 담담하고 초연한 듯 보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젊은 시대의 전형 말이다.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에 스트리트 컬처를 믹스해 실용성을 추구하고, 양면성의 공존을 사랑하며, 좋아하는 것에 선을 긋지 않고 포용하는 것, 계한희의 취향이다.

패션 에디터는 옷을 보면서 ‘이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이럴 거야’라고 생각하곤 해요. 말투도 느릿느릿하고 뭔가 초연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카이 옷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당신이 쓴 책 <좋아 보여>에서도 그렇고, 예전 인터뷰 때에도 그렇고 의외로 노력파라는 걸 느꼈어요.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덤덤한 성격이 디자인에 많이 반영되요. 컬렉션의 주제도 현재 관심사를 쉽게 풀어내고 싶지 거창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트렌드나 세일즈는 분명 신경 써야 하지만 컬렉션 자체는 계산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어요. 제 성격도 그래요. 인상이 강해 보이는 것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죠. 사실 화장을 지우면 되게 밋밋하게 생겼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한 것보다 고집이 있거나 까다롭지 않다고 말해요. 그런데 진짜 원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해야 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노력파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전 대립되는 상황을 싫어해요. 그래서 반항아는 아니었죠. 그런데 미적인 부분이나 외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고집스러웠죠.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하셨고, 아버지도 예술 쪽에 조예가 깊으셨어요. 집안 분위기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 쪽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전 패션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생 때도 옷을 찢거나 어설픈 바느질로 오브제를 달아보고 그랬죠.

취향에 대한 고집이 분명한 사람들은 간혹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죠. 어때요?
패션 쪽에서 일하다 보면 까다롭고 명확하게 행동해야 할 때가 많죠. 저 역시도 좋고 싫고가 분명하기는 하지만 유연하게 사고하려고 노력해요. 전 평화로운 게 좋거든요.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소통의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취향이나 미적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좋은 취향이란 까다롭고 예민해서라기보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것 같아요.

스타일 면에서 어떤 고집이 있나요?
제 옷장 속은 한 사람의 옷장 같지 않아요. 관심사가 방대해서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도 사두곤 해요. 온갖 것이 뒤섞여 있어요. 누가 제 옷장을 보고 빈티지숍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브랜드를 믹스하거나 상반되고 이질적인 것을 조화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제는 진부한 스타일링이 되버렸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엄마 모피 코트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것을 좋아했어요. 마담 취향이죠. 하하. 어릴 때부터 별명이 계마담이었어요. 지금도 나이키, 조거 같은 스포츠 브랜드에 하이엔드 브랜드의 질 좋은 코트, 백 등을 매치해요.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서 의상은 스포티하게 입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춰요.

그 마담 취향이라는 게 뭐죠? 
어머니들이 좋아할 것 같은 글래머러스한 것들을 좋아하는 거예요. 화장을 할 때도 붉은색으로 입술을 칠하고, 자연스러운 것보다는 드라마틱한 무드를 추구해요. 연예인을 예로 들자면 걸그룹보다는 엄정화 언니 쪽인 거죠. 언니의 메이크업, 음악을 엄청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범위가 방대하긴 한데 좀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죠.

엄정화라고 하니 확 와 닿아요! 
글램록을 하던 시절의 데이비드 보위 스타일인 거죠. 글래머러스하고 과장된 것. 그런데 나이가 드니 지나치게 과장된 건 싫어지더라고요. 요즘은 극과 극의 요소를 조화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중화해 입는 편이에요.

절대로 입지 않는 옷이 있을까요?
팔다리가 굵은 편인 데다 피부가 하얘서 민소매 의상은 입지 않아요. 액세서리를 할 때에는 귀고리면 귀고리, 반지면 반지 한 아이템만 하되 여러 개를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해요. 지금도 작은 귀고리만 10개 넘게 한 것 같아요.

개인적인 취향에 시대의 흐름, 즉 트렌드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요? 카이는 트렌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이너다 보니 트렌드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죠. 어차피 패션이라는 게 처음부터 새로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계산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트렌드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이게 유행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정말 몇 년 후에 유행하곤 했죠. 그런 쪽으로 감이 발달한 것 같아요. 카이가 트렌디하다면 그건 본능에 가까운 것일 거예요.

요즘 빠져 있는 패션 아이콘이나 디자이너가 있나요?
스포츠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라인에 빠져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글램한 요소에 실용적으로 균형을 맞출 때 스포티한 요소가 도움이 되거든요. 게다가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하고 다녀서 의상까지 신경 쓴 티가 나는 건 경계해요. 그럴 때 트레이닝 쇼츠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되요. 스포츠 브랜드 의상을 즐겨 입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도 하게 됐어요. 내년 봄 즈음이 될 것 같은데, 상업적인 협업이라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협업이 있어요. 피케이 엠 갤러리에서 미국 작가와 영상물 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9~10월엔 대림미술관 마당에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죠.

패션에 관한 신조가 있나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패션이어야 해요.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 후회하거나 자신감이 떨어지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패션쇼 피날레 무대에서 인사할 때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아요.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자꾸 개선할 부분이 눈에 들어와서예요. 사실 제 시간 대부분을 옷 만드는 데 쓰고 있으니 저를 좀 닦달하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힘들지 않냐고요? 힘들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젊은 열정처럼 계속 달려야 할 때인걸요.

Her Essential Items
관심사가 방대한 계한희의 옷장은 트레이닝 팬츠, 20대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화려한 모피 코트, 로커들의 전유물 같은 피어싱 장식, 그리고 소녀의 것처럼 귀여운 팔찌가 뒤섞여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극과 극의 아이템으로 완성하는 긴장감 있는 그녀의 스타일링 비법.

1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인 마잔 페조스키의 라이더 재킷을 무척 아껴요. 서로 상반될 것 같은 요소들을 함께 버무려내는, 그야말로 저의 ‘취향 저격’ 브랜드였죠. 그러나 지금은 브랜드가 없어져  매우 아쉬워요.”

자주 착용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았지만 꼭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한 지방시의 귀고리. 강해 보이는 아이템을 보면 자석처럼 이끌린다.

지난봄 비이커와 함께 만든 가방이다. 인형은 라인 스토어에서 구입했는데 미니 사이즈 백에 귀여운 인형 참을 자주 바꿔 단다.

‘카이’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컬렉션이었던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제품. 컬렉션의 모든 그래픽 프린트는 직접 디자인한다.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컬렉션이었던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제품. 컬렉션의 모든 그래픽 프린트는 직접 디자인한다.

KTZ 컬렉션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슈즈. 저 슈즈를 사기 위해 런던의 여러 매장을 뛰어다녔다.

6 “존 갈리아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들백을 내놓던 그 시기가 디올의 황금기였죠. 그 시절에 내놓은 스터드 장식의 새들백은 여러 개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해요. 그리고 비니를 좋아해서 매 시즌 카이의 컬렉션에서도 비니는 절대 빼놓지 않아요. 커다란 폼폼이 달린 큼직한 비니는  최근에 뉴욕에서 구입했어요.”

런던에 살던 시절, 스타일리스트인 친구 양승호가 선물해준 빈티지 여우 목도리.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오랜 친구가 선물해준 비즈 장식 스카프, 위트 있는 프린트에 다양한 소재의 장식을 단 것이 쿠튀르적이다.

브랜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스티븐 알란에서 구입한 목걸이와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디자이너 박혜라가 나를 위해 디자인한 HR의 팔찌.

10 지금까지 입는 옷 중 가장 오래된 오브제의 볼레로.

    에디터
    패션 에디터ㅣ남지현
    포토그래퍼
    정성원, 정원영(Jung Won Young)
    헤어
    김선영
    메이크업
    오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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