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을 수놓은 텍스타일의 아름다움
페이즐리 브로케이드, 다마스크,모로코풍의 타피스트리 카펫 등 인테리어를 위한 전형적인 텍스타일이 컬렉션을 수놓았다. 지나치게 장식적인 옷감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모던 쿠튀르의 세계로 초대한다.
가을/겨울 시즌이 시작되고 다수의 매체가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트렌드는 바로 맥시멀리즘이다. 패션의 예술성과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이너들의 열정이 화려한 장식의 시대를 불러들였고, 그 결과 패션은 연극적인 테마와 드라마로 뜨거웠던 2000년대 초반을 보는 듯하다. 이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패션 앙팡 테리블이 자취를 감추고 패션의 본질인 사치스러움에 대한 가치가 질보다 양으로 흘러가고 있는 세태를 막아보겠다는 디자이너들의 의지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지는 부르주아의 고급스러운 저택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그리하여 상류층이 향유한 윤기 흐르는 다마스크풍의 벽지, 장인들이 섬세하게 수놓은 타피스트리 카펫, 유려하게 조각된 바로크 시대 가구의 곡선이 의상 곳곳에 녹아들었다.
고전주의적인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은 이미 지난 2015년 봄/여름 프라다 컬렉션에서 시작되었다. 과거의 장인 정신을 지금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미우치아 프라다는 서른 가지 종류의 브로케이드를 선보였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패브릭을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세월과 함께 색의 깊이를 더한 벽지, 유행이 한참 지난 듯한 침구의 패턴, 나무 바닥의 패턴 등 오래된 저택의 유물 같은 옷감은 현재의 기류를 반영하는 미디스커트, 꼭 들어맞는 스웨터 등의 평범한 의상에 녹아들었고 굵고 투박한 스티지, 해진 듯 풀어진 헴라인, 그래픽적인 패치워크를 통해 현대적으로 변화했다. 그것은 부유함과 가난함, 투박함과 섬세함을 조화한 결과물이었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앞선 그리고 동시에 날 선 감각은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곳곳에 침투했다.
앨버 엘바즈는 125주년을 맞이한 랑방을 위해 자신의 기원이자 고향인 모로코의 유산을 탐닉했다. 도금한 장식끈인 파스망트리, 모로코 양탄자의 술 장식 스커트, 거대한 태슬 귀고리, 이국적인 색채와 무늬로 가득한 자카드 소재 점프슈트는 오트 쿠튀르 버금가는 기교를 보여주었다. 빈틈없이 빡빡한 고밀도의 장식은 보풀을 살린 텍스처, 날을 죽이고 흐트러트린 형태, 물에 젖어 쭈글쭈글하게 수축한 듯한 시폰 소재 덕분에 낡고 오래된 느낌을 유지하며 현실과의 균형을 이룬다. 인테리어에서 영감을 받은 찬란한 관능은 드리스 반 노튼 컬렉션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국적인 패턴 플레이의 원조인 드리스 반 노튼은 이번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떠난 이자벨라 블로우, 안나 피아지와 같은 패션 아이콘들이 옷을 입었던 방식을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형형색색의 옷감과 액세서리를 멋들어지게 조합한 맥시멀리스트의 방식을 쿨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만든 열쇠는 치노 소재! 러시아 제정시대를 연상시키는 금박 브로케이드, 은박으로 반짝이는 동양의 구름 모티브, 금사 프린지 장식, 입체적으로 수를 놓고 무지갯빛 비즈를 달아 피어난 꽃 장식으로 점철된 의상은 카키 치노의 오버사이즈 팬츠, 유틸리티 셔츠와 맞물려 판타지와 상업성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화려함과 기교를 태연하게 그려낸 드리스 반 노튼 식의 쿨한 표현주의는 에트로, 토리 버치의 컬렉션으로 이어진다. 베로니카 에트로는 “인테리어의 즐거움에 빠져버렸어요. 통제된 맥시멀리즘이죠. 많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형태는 단순해요.” 대지를 담은 톤온톤 컬러의 인타르시아, 오래된 트위드와 브로케이드, 에트로의 상징인 페이즐리 패치워크는 에트로 가문 저택의 기다란 소파에 누워 있는 디럭스 보헤미안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토리 버치 역시 모로칸 인테리어에서 영향을 받아 마라케시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뉴욕 첼시의 우아한 감성을 더했다. 꼭 그녀의 집 안에 깔려 있을 것 같은 럭셔리한 카펫과 벽지의 패턴이 실용적인 스카프 블라우스, 리조트 웨어로 제격인 카프탄 드레스에 드리워졌다.
두말할 것 없이 장식주의는 새로운 모더니티이다. 가장 동시대적인 런던의 디자이너인 마르케사 알메이다, 마리 카트란주, 에르뎀, 매튜 윌리엄슨이 인테리어에 서 영향을 받은 휘황찬란한 장식을 컬렉션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넝마처럼 해진 데님 시리즈로 팬덤을 이끌고 있는 마르케사 알메이드는 날것 같은 소재와 더불어 드레스업하기 딱 좋은 번쩍이는 이국적 패턴의 브로케이드 향연을 펼쳤다. 에르뎀은 어떠한가? 빈티지풍 벨벳 소파, 타자기를 올려둔 책상, 이국적인 화분,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커피 테이블 등으로 로빈 브라운의 설치미술 ‘더 컬렉터’를 재현한 무대 위로 풍부하고 복잡한 패턴의 옷감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를 설파했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모던의 장치가 존재한다. 일상의 무드를 더해줄 웨스턴 부츠와 캐멀 코트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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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패션 에디터ㅣ남지현
- 포토그래퍼
- 김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