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브랜드의 협업이 너무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화장품에 또 지갑을 열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화장품 브랜드는 왜 협업에 이리도 집착하는 걸까. 흔해도 너무 흔해진 뷰티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하여.
컬래버레이션, 즉 협업이라는 단어에 설레던 시절도 있었다. 맥의 시크한 블랙 케이스의 팩트 위에 자리 잡고 있던 핫핑크색 키티는 아직도 그 이미지가 또렷하게 기억날 만큼 인상 깊었고, 대표적인 스파 브랜드인 H&M과 도도한 프랑스 패션 하우스 랑방과의 만남은 거의 충격적일 지경이었다. ‘애증의 콜라보’라고 불릴 만큼 갖고 싶어 안달이 나게 하던, 이 매력적인 한정판을 손에 넣기 위해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매장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로움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도 수십 건씩 각종 브랜드의 크고 작은 컬래버레이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과거 홀리데이 에디션이나 몇 주년 기념 컬렉션 등 정말 ‘특별한’ 이벤트성으로만 진행되던 화장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흔해도 너무 흔해진 것이다. 그래도 귀여운 캐릭터를 얹은 화장품은 여전히 SNS를 뜨겁게 달군다. 갖고는 싶지만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컬래버레이션의 아이러니. 화장품 브랜드는 어쩌다 이렇게 컬래버레이션에 집착하게 되었나.
왜 컬래버레이션의 시대가 되었나
KT 경제경영 연구소 디지에코 보고서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 컬래버레이션 마케팅’에서는 컬래버레이션을 ‘익숙하지만 희소성 있는 상품', ‘내일도 살 수 있지만 오늘 꼭 사야만 하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하는 마케팅 수단이라고 평했다. 그렇다. 컬래버레이션이 갖는 매력이 특별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 이미 익숙해진 제품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 브랜드가 갖고 있지 않은 색다른 이미지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그래서 컬래버레이션으로 인한 효과가 더하기 아닌 곱하기라고 평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소비자를 공략해 타깃 고객층을 확장할 수 있다. 기존의 고객에게는 계획에 없는 소비를 하게 하고, 새로운 유입 고객에게는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더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다. 협업대상과의 계약 관계상의 문제 등으로 대부분 한정 판매되는 특성상, 희소성이라는 치명적인 매력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손에 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형성해서 제품에 대한 매력을 더욱 높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공략해서 SNS 등 모바일 노출도 쉽게 증가한다. 따라서 브랜드의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자발적인 입소문 확산이 보다 쉽다. 한마디로 언제 대박이 터질지 모르는 잭팟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키 아이템인 신제품 에센스의 제품력을 홍보하기 위해 모바일 광고 비용을 대거 지출했는데, 막상 소비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어요. 그런데 귀여운 캐릭터가 더해진 제품을 출시했더니,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사진이 SNS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지더군요. 매장 문의도 빗발치고요. 컬래버레이션 자체가 효과적인 홍보 수단임을 저절로 학습하게 된 거죠.” 최근 협업으로 쏠쏠한 매출 증대를 경험한 화장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화장품 브랜드뿐 아니라 패션, 식음료, 자동차, 커피 체인까지 종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브랜드가 협업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 있다.
화장품 브랜드의 생존 전략이 된 협업
사실, 화장품 브랜드들에게 컬래버레이션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는 화장품 제조기술의 발전으로 품질 측면에서 볼 때 제품 간 차별화 요소가 적어졌다는 것. 최근 컬래버레이션의 대표 제품이 된 것이 바로 쿠션 팩트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비슷한 제품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바로 ‘그’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제품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때 특정 캐릭터,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이미지가 더해진 패키지가 셀링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성분의 업그레이드, 제형의 변화 등 제품력을 위한 투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눈에는 바로 보이지 않지만, 일단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컬래버레이션은 그에 비해 투자 시간과 비용이 좀 더 적다. 한마디로 제품 투자 비용보다 컬래버레이션에 드는 비용이 오히려 더 싸고 순간 파급 효과도 더 크다. 새로운 이미지가 더해진 것만으로 새 제품의 이미지를 더해주므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마케팅 방법인 셈이다.
컬래버레이션의 긍정적인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협업을 통해 제품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고 사고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장품 브랜드의 협업 형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단 캐릭터나 패션 브랜드, 아티스트 등 이미 고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협업 대상에게 이미지를 받아 패키지에 붙이거나 새겨 넣는 방식이 있다. 내용물은 똑같은데 패키지에 특별한 일러스트나 그림, 사진을 더한 크림이나 립스틱을 상상하면 쉽다. 가장 쉽고 흔한 방식이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컬래버레이션 화장품이 대부분 이런 제품들이다. 둘째는 제품의 텍스처나 컬러 등 내용물까지 브랜드 간 협업을 통해 변화를 주는 것. 맥이나 브이디엘 등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아예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성분 개발이나 제형 변화가 어려운 스킨케어 제품보다는 컬러 개발이나 컬러 조합의 변화 등으로 다른 이미지를 더하기 쉬운 메이크업 제품에서 주로 많다. 물론 이럴 경우 서로의 이미지와 철학을 더하고 절충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의 기획부터 매장 디자인, 마케팅까지 전 과정에서 협업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마지막은 제품이 아니라 판촉물에만 컬래버레이션 개념을 도입하는 형태다. 일정액 이상 화장품을 구입하면 특정 캐릭터나 패턴이 그려진 파우치나 소품을 증정하는 형식. 협업 대상과의 조율 과정이 최소화되므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가장 쉬운 컬래버레이션 방식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컬래버레이션, 즉 협업은 현재 화장품 업계에서 그리 흔하지 않다는 말이다.
누구를 위한 협업인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컬래버레이션이 화장품의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협업 대상에게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받아서 사용하는 경우, 그중에서도 유명 캐릭터나 아티스트와의 협업인 경우에는 화장품 브랜드가 비용해야 할 부담이 더 커진다. 사실 이런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협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협업의 이익이 화장품 브랜드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상상해보라. 해외의 유명한 캐릭터를 화장품에 얹는다고 할 때, 캐릭터가 부수적으로 갖게 되는 이익은 거의 없다. 이럴 경우는 화장품 회사에서 지불하는 라이선스료가 유일한 이익이 된다. 따라서 이 가격 부담은 제품의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경우에는 브랜드에게,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경우에는 소비자에게로 돌아간다. “문제는 화장품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라이선스료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협업을 원하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는 늘어가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요. 심지어 같은 캐릭터, 같은 아티스트가 다른 브랜드와 동시에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해요. 상도에 어긋나지만 협업 대상을 잡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한 화장품 브랜드의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컬래버레이션이 협업 대상 간의 철학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가 또 다른 브랜드에게 일방적으로 이미지를 ‘파는’ 방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문제는 또 있다. 컬래버레이션이 뷰티 업계의 필수 마케팅이 되면서 희소성을 위한 과도한 노력이 오히려 희소성을 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1년에 딱 한 번 나오던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1년 12달 내내 나오면 더 이상 신선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물론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캐릭터나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제품을 출시하면, 그렇지 않은 제품보다 소비자 반응이 빨리 와요. 하지만 너무 빈번한 횟수 때문에 과거에 비해 반응이 시들한 것도 사실이에요.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투자 시간과 노력 대비 효과가 미미한 거죠. 내부적으로 이런 마케팅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한 화장품 브랜드 홍보 팀장은 말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 컬래버레이션도 문제다. 사실 전혀 다른 성격, 이미지를 가진 다른 브랜드와의 만남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브랜드 간 이미지가 잘 맞는가, 각자의 철학이 상충하지 않는가, 소비자 층의 접점은 있는가 등등. 전략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남을 수 있다 . 사실 굳이 이 작은 화장품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애매하게 들어가 있어야 하나 의문이 들 때도 많다. 컬래버레이션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협업 대상을 보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론은 명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오기 때문에 화장품 브랜드들의 컬래버레이션이 계속된다는 것. 그래도 딱 한 가지만은 바라고 싶다. 화장품 브랜드들의 진짜 협업, 즉 서로에게 이미지로도, 경제적으로도 윈윈 전략이 되는 진정한 컬래버레이션을 좀 더 많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패키지뿐 아니라 그 속의 철학과 내용물까지 함께 공들여 만든 진짜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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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이미현
- 포토그래퍼
- 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