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카펫 위 스타들의 메이크업
연한 살구빛과 장미색으로 자연스럽게 물들인 뺨과 입술, 부드러운 갈색의 음영을 은밀하게 더한 눈매 그리고 보송하게 마무리한 피부까지. 레드 카펫 위 스타들의 메이크업은 화려함을 벗은 채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아하게 빛났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고 취재 열기는 변함없이 뜨거웠지만, 정작 지난 연말 시상식의 여자 스타들은 차분했다. 약속이나 한 듯 무채색의 단조로운 컬러들이 레드 카펫 위에 펼쳐졌다. 화이트, 베이지 등 단정한 컬러나 블랙과 같이 심플한 색조의 드레스가 주를 이뤘으며, 소재나 디자인도 단아하고 정갈해졌다. 시상식 하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오던 그 흔한 ‘파격 노출’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덩달아 메이크업도 누구 하나 튀는 컬러 없이 은은했다. 확실히 보는 재미는 줄었지만 덕분에 여배우들 본연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났다.
지난 연말 시상식들의 메이크업 공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부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보송하게 표현할 것. “어리고 풋풋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베이스를 한 톤 밝게 바르고 루즈 파우더로 피부의 유분기를 제거했어요. 환한 조명 아래 서야 하기 때문에 자칫 피부가 번들거려 보일 수 있거든요.” MBC 연기대상의 사회자로 선 배우 김소현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혜련은 레드 카펫 입장부터 시상식까지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연말 시상식에서는 피부를 얇고 매트하게 표현하는 것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피부 윤기가 지나친 번들거림으로 카메라에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SBS 연기대상에 참석한 김태희의 피부 역시 보송했다. “광택이 없는 차분한 스킨 컬러의 드레스에 맞춰 피부도 파우더로 정돈했죠.”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손주희 원장은 입술 역시 코랄 립스틱으로 매트하게 마무리했다. 피부와 입술은 보송한 대신, 눈가에는 퍼플 컬러의 아이라인과 붉은 브라운 섀도를 발라 부드러운 음영을 더했다. 둘째, 눈가에는 진한 블랙 대신 브라운이나 레드 컬러를 선택했다. 청룡영화제에 참석한 설현은 그윽한 골드 여신 메이크업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설현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순수의 강미 원장은 브라운 섀도로 눈꼬리를 가볍게 빼주고 아이라인을 도톰하게 연출해 부드러운 눈매를 강조했다. “브라운 컬러로 음영을 살리고 샴페인 골드로 반짝임을 더한 눈매 덕분에 설현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동양적인 이목구비가 더 매력적으로 부각되었어요.”
SBS 연기대상의 배우 유인영 역시 브라운 컬러의 젤 아이라이너로 아이라인을 그린 다음 연한 브라운 컬러의 아이섀도를 언더라인까지 연결하듯 발라 자연스러운 음영을 살렸다. 배우 김유정은 레드 섀도를 눈꼬리까지 날렵하게 펴 바르고, 언더라인에 밝은 골드 섀도를 발라 애교살을 강조했다. 거의 화장을 안 한 듯 극도로 자연스러운 음영을 눈가에 입힌 것이다. 청룡 영화제의 성유리, 박보영 그리고 고아성까지 브라운 음영 메이크업의 예외는 없었다. 셋째, 뺨 역시 원래 자신의 홍조인 듯 은밀하게 물들여야 한다. 피치 컬러가 가장 사랑받았다. 김태희, 이성경 모두 아주 연한 피치 컬러로 뺨에 컬러감이 스치듯 표현했다. 아이돌 스타들의 메이크업도 다르지 않았다. 소녀시대 태연은 피치 컬러 블러셔로 사랑스러운 홍조를 만들었고, EXID 하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무대나 예능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얼굴 위에 컬러감을 자제하고 뺨과 눈매, 입술 모두 은은한 로즈 컬러로 혈색만 더했어요 .”하니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알루의 서아 실장이 말했다. 입술은 좀 더 과감하게 표현했다. SBS 연예대상의 구하라는 빨간 드레스에 맞춘 듯 입술을 붉게 물들였고, 송지효 역시 블랙 오프숄더 드레스에 붉은 입술을 매치해 고혹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붉은 입술 덕에 피부는 더 밝고 깨끗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녀들은 과감한 메이크업 대신 부드러운 음영 메이크업을 선택했을까? “고화질 HD TV의 일반화가 그 이유 중 하나예요. 메이크업을 많이 하면 할수록 뭉치고 들뜨는 느낌이 화면에 더 잘 드러나니까요. 게다가 화장이 옅을수록 더 어려 보이고, 화장해서 예쁜 것이 아니라 원래 예쁜 자연 미인처럼 보이니 진한 화장은 기피하게 되는 거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혜련은 설명했다. 과유불급, 즉 과하면 어김없이 여론의 반응이 안 좋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진한 아이라인이나 버건디 립에는 어김없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응을 보고도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스타가 몇이나 될까. 의상 역시 마찬가지다. 국“ 내에는 파티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브랜드들이 국내에 들여오는 드레스 샘플이 많지 않아요. 때문에 시상식용 드레스를 웨딩드레스 숍에서 대여하는 경우가 많죠. 시상식에 화이트나 베이지, 연한 핑크 드레스가 주를 이루는 이유예요. 해외의 셀럽처럼 턱시도 슈트 등으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의상의 경우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대부분 안전한 스타일을 고수하죠.” 한 유명 스타일리스트는 말했다. 악평에 시달릴 위험이 적은, 안전한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이 대한민국 시상식의 불문율이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 LA에서는 제73회 골든글로브 어워즈가 열렸다.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것은 해외 셀럽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과감한 슬릿이 들어간 레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제니퍼 로렌스, 새빨간 립스틱으로 클래식 무드를 완성한 에미 로섬과 엠버 하드처럼 전형적인 레드 카펫 룩을 보여주는 스타도 여전히 많다. 극도로 우아하고, 모두 평균 이상의 아름다운 메이크업을 선보인 지난 연말 시상식, 하지만 올해는 좀 더 개성 있는 과감한 시도를 보고 싶다. 그래야 레드 카펫다운 거니까!
최신기사
- 에디터
- 이미현
- 포토그래퍼
- 정성원, 이정훈, Indigital, Courtesy of Roger Vivier, SBS, 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