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숲에서 만난 배우 박은빈
웹드라마 <초코뱅크>에서 사랑스러운 쇼콜라티에를 연기한 박은빈을 봄날의 서울숲에서 만났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어쩐지 자꾸 말을 걸고 싶은 그녀는 유치원보다 촬영장에 먼저 간 데뷔 17년째 배우이자 오늘도 수업과 과제를 마친 학생이다. 어느 것도 놓칠 생각이 없다.
인터뷰를 위해 스케줄을 묻자 그녀는 자신의 시간표를 보내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운동과 촬영, 미팅으로 가득 찬 배우의 스케줄이 아닌 새 학기를 맞아 꽤 공들여 짠 ‘강의 시간표’. 이것만으로도 새삼 놀라운데, 주 3일도, 주 4일도 아닌 주 5일 동안 빼곡히 들어찬 강의라니. 그래서 우리 는 ‘휴강’으로 가장 일찍 끝난 목요일 오후 서울숲에서 만났다. 일곱 살에 김종학 감독의 드라마로 데뷔해서 <태왕사신기>, <선덕여왕>을 비롯한 45편의 드라마를 촬영한 박은빈은 스물다섯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되었다. 수업을 빠지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원칙 때문에 ‘풀타임 학생, 파트타임 여배우’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서울숲에 착륙한 것 같은 이 신기하고 어여쁜 생명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박은빈에 대한 호기심이 봄의 꽃망울처럼 톡톡 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업이 많은데 <초코뱅크>는 어떻게 촬영했어요?
음, 촬영 기간이 아주 짧아서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방학 동안, 그것도 6일 만에 촬영했거든요. 나중에 보니 6일 동안 딱 8시간 잤더라고요.
6일 만에 촬영이 가능한가요?
남자주인공인 ‘김은행’ 역을 맡은 엑소의 카이 씨가 워낙 바쁘셔서 촬영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정신없이 휘몰아치면서 찍었는데 밝고 유쾌한 드라마라 촬영장 분위기도 좋고, 모두 즐겁게 촬영했어요.
금융위원회가 제작한 드라마였죠? 스토리가 발랄해서 좋던데요?
저도 대본이 재미있어서 했어요. 캐릭터도 진취적이고 귀여웠어요. 1996년에 데뷔하고 한 해도 작품을 쉰 적이 없었어요. 2014년에 혜경궁 홍씨를 맡았던 <비밀의 문> 촬영이 끝나고 처음으로 아무 작품도 하지 않은 해가 작년이었어요. 워밍업하듯 밝은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저를 사극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현대적인 밝은 역할에 끌렸어요.
이제는 “옛날에는 방송 3사밖에 볼 채널이 없었단다…”라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질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채널이 생기고, 웹드라마부터 웹예능까지 새로운 플랫폼이 생기고 있는데 배우로서도 흥미롭게 보고 있나요?
웹드라마라는 형식이 제게는 신선한 도전이었어요. 일단은 빨리 뭔가 결과물이 나와서 좋더라고요. 그런데 1회가 10분 분량이다 보니 아직 보기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촬영이 있는 오늘 은근히 수업을 빠지길 종용했거든요. 그러다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당신의 원칙을 알게 되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땐 제게 4년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20년동안 열심히 연기를 했고, 제 자신을 재정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학 시절이 저의 앞으로 살아갈 가치관을 형성하고, 제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틈틈이 작품을 해오지 않았나요?
졸업할 때까지 4년간 일을 안 할 생각도 했었는데 감독님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중간중간 할 수 있었어요. 방학에 맞춰서 일정을 잡아주시거나, 영화 촬영은 주말로 미뤄주시기도 하셨어요. 어쩔 수 없을 땐 휴학도 했었어요. 그래서 아직 졸업을 못했어요. 하하.
좋은 작품을 많이 놓치기도 했겠어요?
못한 작품이 너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늘 생각했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나의 직업은 학생인가, 배우인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고민하지 않았는데 대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당신에게는 ‘엄친딸’이라는 수식이 자주 붙는데, 학업을 병행한다는 이유로 다른 여배우들에게 붙지 않는 수식어가 생긴 것 같더군요.
그런 수식어도 제가 바란 건 아니에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그 고민을 하다 보니까 거꾸로 제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남들이 어떻게 보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배우 활동을 하긴 했지만 학생이었고, 남들만큼 알지 못하는 게 싫어서 성실하게 살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타이밍 때문에 작품을 놓치기도 했지만, 그 대신 얻은 것도 많겠죠? 자랑할 시간 드릴게요.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또 정말 배운 게 많아요. 제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제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연기를 하는 데에도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 같아서였어요. 어릴 때 데뷔한 배우들은 특별한 삶을 살잖아요. 배우 중에 ‘팀플’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작년 2학기 때에는 팀플이 다섯 개가 걸린 거예요!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어린 시절부터 활동했지만 수련회나 수학여행, 소풍도 다 갔었고, 학생 회장도 해봤어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다시 현장에 가면 웬만한 성인 연기자보다 많은 경력을 자랑하는 배우가 되고요?
전환이 좀 빨리 되는 편인 것 같아요. 일할 때 저의 모습과 학교에서의 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요. 사실 전 제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생각보다 기분파예요. 평소에는 생각도 많고 걱정이 많은데 일할 때는 저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섭게 단순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대작을 많이 했는데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나요? 데뷔작인 <백야 3.98>,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등도 그렇고요.
정통 드라마를 많이 해서, 어른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는 건 좋았지만, 또래와 연기하는 시간은 적었어요. 어떤 작품이든 작품을 마치면, 작품 하나하나가 마음으로 느껴지고, 경험으로 쌓이는 것 같아요.
예전에 장국영이 인터뷰에서, 연기는 적금과 같아서 계속 적립하다 보면 언젠가 거금을 찾게 된다고 했죠. 당신은 아직 적금을 넣는 중인가요?
오, 정말 좋은 말이네요. 언젠가 제대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늘 화보 촬영도 설렜지만, 인터뷰가 더 기대되었어요. 무슨 얘길 나눌까 막 상상하고요.
하하. 인터뷰를 꺼리는 배우도 많은데 말이에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서 연기를 하는 동안은 무의 상태로 돌아갔다가 완전히 작품이 끝나면 그게 어디인가 제 안에 잔존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제가 말하는 동안 정리를 하는 기분이에요. 인터뷰를 안 하면, 계속 뭔지 모르는 상태로 함께 가는 거죠. 제가 연기를 계속 해온 건,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게 떠올랐어요.
대화를 하다 보니 석사 학위까지 따겠다고 할까봐 걱정 아닌 걱정이 되네요.
사실 석사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내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여전히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제가 성인이 된 모습은 많이 못 보여드린 것 같아서요. 제가 열아홉 살 때까지 드라마를 마흔다섯 편 했는데 그 이후로는 다섯 편 정도밖에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공부는 그만 해요.
역시 그렇겠죠? 오늘 날씨처럼 색깔 있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 에디터
-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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