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광고
옆집 웃긴 언니 같은 개그우먼이 화장품 모델이 되고, 진지했던 화장품 광고에도 먹방, 짤방이 더해졌다. 디지털의 시대에 맞춰 화장품 광고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2014년, 개그우먼 이국주가 화장품 모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병맛’을 자처하는 UV의 노래는 신선 그 자체였고, vtN이 예능 프로그램 <음악의 신>에서 젠틀한 이적과 존박을 4차원적인 예능인으로 변신시켰을 때는 그 반전의 재미에 감탄했었다. 출근길 버스 좌석에 붙은 편강한의원의 어이없는 만화 광고를 보고 낄낄대기 일쑤였지만, 마음속 한켠에는 여전히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도 뷰티 모델이라면 대중이 동경할 만큼 완벽한 미모에 신비로움을 갖추고 있어야 해!’ 겨우 2년이지났을 뿐인데, 2016년 판도는 완벽하게 달라졌다. 핸드폰의 단체 카톡방에는 친구들이 퍼다 나르는 온갖 웃긴 영상들의 링크가 끊이질 않고, 드라마나 예능은 안 챙겨봐도 요즘 유행한다는 짤방, 먹방은 꼭 챙겨본다. 언더 문화로 치부되던 ‘병맛’. ‘B급’ 정서는 당당히 대세 문화가 되었다. TV를 틀면 기꺼이 망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 연예인들이 넘쳐나고, 모바일 세상의 광고는 개그맨이나 예능인들이 장악했다. 멋진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웃긴’ 광고 영상에 더 열광하는 요즘의 우리. 완벽한 미모의 스타들 외에는 절대 틈을 허락하지 않던 화장품 광고도 달라졌다!
최근 화제는 단연 이국주의 먹방 쿠션이다. 이니스프리의 ‘국주 맘대로, 마이쿠션!’ 영상은 공개 3일 만에 100만 뷰를 돌파하더니 이제 350만 뷰를 넘어섰다. 유튜브 공식 계정만 이러한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 그리고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퍼 나르는 횟수까지 감안한다면 아마 800만 뷰는 넘어설 것이라 예상된다. 클리오는 쿠션 팩트의 촉촉함을 강조하기 위해 쿠션을 바를 때마다 얼굴에 물보라가 이는 영상을 만들었고, 에뛰드하우스는 젤 틴트를 광고하기 위해 눈썹이 없는 앵그리 버드를등장시켰다. 또 김숙은 40세가 넘은 나이에 생기수분송을 부르며, (아마도) 에뛰드하우스의 최고령 모델로 등극했다. 개그맨 장도연과 허경환은 잇츠스킨의 모델로, 오나미는 아가타 코스메틱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김느안느’ 김성주와 안정환, 스타 셰프 군단인 최현석, 미카엘, 이원일 그리고 으‘ 리’ 넘치는 김보성과 강균성, 안재환까지 온라인 화장품 모델을 거쳐간 사람은 이제 셀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다 모바일 세상에서의 이야기다. TV를 틀면 여전히 송혜교, 김태희, 전지현과 같은 초미녀들이 화장품 광고의 여신으로 군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크리스탈과 김숙, 윤아와 이국주가 각각 같은 브랜드의 모델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드 가 이중 마케팅 전략을 펼치기 때문이다. TV나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브랜드의 철학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 온라인이나 모바일 등에서는 짧은 호흡으로 치고 빠지며 이슈몰이를 하는 바이럴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 인터넷에 익숙한 요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구분해 연령대별로 달리 공략하는 셈이다. 따라서 TV에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변할 수 있는 예쁘고 신뢰도가 높은 모델을 고수하고, 모바일에서는 예쁘고 진지하지 않더라도 단기간에 이슈를 집중시킬 수 있는 화제성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다. 메인 모델은 보통 계약 기간이 ~1 2년 단위임에 반해, 바이럴 마케팅의 경우에는 ‘핫함’이라는 절대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3개월이나 6개월 정도로 단발성 계약에 그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짧고 재미있는 영상 형식으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요즘 가장 핫한 트렌드인 B급 정서를 담는 경우가 많다.
입소문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내 친구의 콘텐츠’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바이럴 마케팅이 주로 로드숍 브랜드나 온라인 전용 브랜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신세계 쓱~’을 패러디한 영상을 내놓은 맥, 피키캐스트와 협업하여 박나래의 분장쇼를 선보인 SK-Ⅱ 등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백화점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아직 소극적이다. 이유는 뭘까. “유통 채널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20대를 메인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들이 그렇다고 봐야 옳아요. 브랜드는 타깃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 마련인데, 20대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모바일이니까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거죠. 스낵 컬처에 익숙한 세대를 공략하다 보니 어렵고 진지한 워딩보다는 가볍고 재미있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거고요.” 이니스프리의 마케팅 팀장인 박소희 차장은 말했다. 이슈몰이 외에도 이러한 바이럴 광고의 장점은 꽤나 많다. 우선 가벼움과 날것이 주는 매력이 광고를 광고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런 광고 영상의 경우, 인기 유튜브 채널에 비용을 지불하고 틀게 되는데,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기 전 반드시 봐야 하는 광고 영상인 트루 뷰(True View)가 바로 이것이다. 보통 광고의 7초에서 15초 정도를 의무 관람한 다음 건너뛸 수 있는데, 재미있는 영상일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듀레이션, 즉 광고의 시청 시간도 늘어나고 링크를 타고 브랜드 공식 계정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많다. 재미있을수록 광고 효과가 높아지는 것이다. 자발적인 확산도 가능해진다. 재미있으면 자신의 SNS 채널에 퍼 나르고, 친구를 소환해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다. “‘좋아요’ 수나 댓글의 숫자를 보면 광고의 반응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요. 또 광고 영상을 타고 몇 명이 공식 계정에 유입되었는지, 또 이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얼마나 매출이 이뤄졌는지 바로 집계되죠.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들이 이런 바이럴 마케팅을 계속한다는 건 매출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해요 .”에뛰드하우스 홍보팀 임해리 차장은 말했다. 아가타 코스메틱의 마케팅기획팀 홍석영은 바이럴 영상이 제품에 대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20대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 방법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생소한 제품이나 번거롭게 느껴졌던 제품 사용법을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역할도 해요. 흥미로운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하는 거죠.” 물론 문제도 많다. 화제성에 집중하다 보니, 자칫 브랜드의 이미지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일회성으로 휘발된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한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바이럴 영상 마케팅이 많아지면서, 영상의 질, 차별화가 더 중요해졌어요. 모바일 기기를 통해 SNS에서 소비되는 영상이라 해도 제작 비용이 TV CF의 70%까지 이르기도 해요. 그렇다고 TV CF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브랜드로서는 광고 비용의 부담이 더 커진 셈이죠. 또한 화제성에 집중해서 모델을 선정하다 보니 자칫 모델이 예상치 못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 오히려 브랜드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참이슬과 딩고뮤직이 올해 봄부터 시작한, 가수들이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슬라이브’ 영상을 보며 감탄했었다. 재미와 제품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자극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위해서는 누구를 기용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흥미 코드를 얼마나 잘 버무리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자칫 그냥 웃긴 영상으로만 치부되기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기사를 처음 취재하며, 왜 화장품 브랜드들이 이토록 병맛 마케팅에 열을 올리냐고 물었을 때 한 화장품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 병맛’이 아니라 ‘내 친구의 콘텐츠’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우리가 메인 타깃으로 하는 20대, 즉 밀레니얼 세대들은 쉽고 재미있는 것을 원해요. 진지한 말보다 친근한 사람의 입을 통해 유치하더라도 사실적이고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고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광고를 제작한 거죠. 그런데, 이걸 병맛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걸까요?”
- 에디터
- 이미현
- 포토그래퍼
- Lee Jeo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