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파랑
탐미주의자들은 여름부터 크루즈 컬렉션으로 이어지는 내년 봄까지 빨강과 파랑의 조합에 심취해 있다. 대립이 난무하는 세상에 조화의 가치를 전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원색으로의 회귀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예쁘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앞둔 리우데자네이루의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에서 열렸기 때문일까? 루이 비통의 2017년 크루즈 컬렉션의 오프닝은 빨강, 파랑, 흰색, 블랙의 그래픽적인 컬러 블로킹 드레스를 시작으로 스포티즘과 현대미술에서 발췌한 기하학적인 컬러가 버무려진 의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구찌의 크루즈 컬렉션에서도 원색에 가까운 푸른색과 붉은색의 뚜렷한 대비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무려 96개의 룩 중 30개가 넘는 룩에서! 파랑, 빨강, 흰색이 조화를 이룬 유니온기를 펑크풍으로 해석해 스웨터와 슈즈 위에 그려냈고, 자신들의 시그니처인 웹 스트라이프를 빨강, 흰색, 파랑의 조합으로 보타이, 가방, 재킷의 깃과 밑단의 트리밍에 적용했다. 이는 마치 웹 스트라이프의 다양한 버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런던을 선택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2월, 2016년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에서도 같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구찌가 그 시작이었다. 크루즈 컬렉션이 펑크적이었다면 가을/겨울 컬렉션은 복고풍 스포티즘에 가까웠다. 마르니, 막스마라도 ‘테일러드 스포티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청량한 파랑과 강렬한 빨강의 매치를 제안했다. 역동적이면서도 스마트한 이미지를 주는 건 바로 상반된 감정을 전달하는 색의 조화 때문일 터이다.
여름이면 으레 등장하는 흰색,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검정, 사랑스러운 룩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분홍과 같이 특정한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두 가지 색의 조합이 유행이라는 점, 게다가 그것이 우리가 촌스럽고 일차원적이라고 여겨왔던 빨강과 파랑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우선 빨강과 파랑의 유행이 시작한 2016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부터 그 흐름을 읽어보자. 파리에서는 샤넬이 파랑과 빨강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비행을 주제로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 프랑스를 연상시키는 컬러군을 보여준 것. 흰색 바탕에 파란색 물감과 빨간색 물감으로 필력이 느껴지는 붓터치를 남긴 드레스와 비행기를 지오메트릭 패턴으로 변형시킨 파랗고 빨간 줄무늬 스웨터 팬츠, 유니폼을 연상케 하는 빨강과 파랑 라이닝의 트위드 스커트 슈트는 굉장히 프랑스적인 인상을 풍겼다. 파리에 샤넬이 있다면 뉴욕에는 프린지가 달린 카우보이 재킷에 성조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뼛속까지 뉴요커, 마크 제이콥스가 있다. 메탈릭 소재 위, 시퀸 장식으로, 웨스턴 부츠와 줄무늬에 적용된 빨강과 파랑은 글래머러스하고 키치한 분위기로 이것이 지금 유행하는 색임을 밝혔다. 마크 제이콥스와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소재에 빨강과 파랑을 접목해 팝적인 룩을 선보인 이는 지암바. 인디고 데님에 빨강과 파랑의 스트라이프 스팽글, 빨간 하트와 파란 별이 그러한 무드를 더욱 짙게 드리웠다. 알렉산더 왕 역시 미국적인 색채를 빨강과 파랑으로 드러냈다. 하나의 룩에 이 두 가지 컬러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파랑을 주 컬러로 사용하고 빨강을 강조 색으로 칠해 쿨한 미국식 스포티즘과 스트리트 룩을 풀어냈다. 알렉산더 왕과 정반대의 것을 추구하는 에르메스도 컬러만은 그와 같은 노선을 택했다. 디자이너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도 짙은 파란색과 주황에 가까운 밝은 빨강을 뉴트럴 컬러와 함께 주요 컬러로 사용했다. 소매와 밑단에 간격을 달리한 파란색 줄무늬와 몸을 리드미컬하게 가로지르는 빨간색의 선과 면은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고요하고 우아한 스포츠 룩에 대한 정의를 확고하게 하는 장치였다.
시각적으로 빨강의 보색은 녹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빨강과 대조되는 색을 파랑이라고 생각한다. 색이 전하는 느낌은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쌓아온 일반적인 경험, 피부로 감지하는 감각(불은 뜨겁고 물은 차가운)을 바탕으로 한 사고에 깊이 뿌려 박혀 있는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반대 색인 빨강과 파랑은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정열적이고 이성적인 반대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상반된 컬러의 조합은 이질적이고 상대적인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지금의 미학을 반영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두 색의 조합이 낯설고 신선하며 예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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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남지현
- 포토그래퍼
- InDigital, James Cochrane, Lee Soo Kang
- 어시스턴트
-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