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세련된 블루
어떻게 바르느냐에 따라 한없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컬러 블루. 블루 컬러를 가장 아름답고 세련되게 소화하는 방법을 런웨이에서 찾았다. 파랑의 색감이 대담하고 영리하게 펼쳐진 봄/여름 시즌 백스테이지 속으로.
“딴 얼굴이고 싶어서, 딴 사람이고 싶어서 그래서 마구잡이로 칠했어. 그럼 좀 나아질까 하고.” 파란 눈 화장에 빨간 입술을 한 그‘ 냥 오해영’(서현진)이 말했다. 드라마 <또 오해영> 속 갈등이 폭발하는 그 순간, 드라마 내내 진한 컬러 없이 맑디맑은 눈매를 고수하던 서현진은 눈가에 하늘색 섀도를 칠한 채 나타났다. 만약 그 순간 그녀의 눈매가 평소처럼 깨끗하게 빛났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조금은 덜 짠해 보이지 않았을까? ‘그냥 오해영’의 파란 눈 화장은 분명 그녀를 더욱 처연하게 만드는 기폭 장치였다. 피에로의 눈물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하필 파란색으로 눈가를 칠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파란 눈 화장이 요란하고 촌스러운 화장의 대명사 같은 것이기 때문일 거다. 공들여 치장한 듯 보이지만 한국인의 이목구비나 피부에는 잘 어우러지지 않는, 근본적인 어색함과 촌스러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자신의 상황에 넌더리가 난그 ‘냥 오해영’은 요란한 눈 화장으로 자신을 감추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수많은 메이크업 컬러 중에서도 파랑은 유독 한국인에게는 녹록지 않은 색깔이다.
블루는 분명 어려운 컬러지만, 원칙을 깨닫는다면 눈가에서 가장 매력적인 색이 되기도 한다. 봄/여름 시즌, 런웨이에서 수없이 보여진 블루 컬러가 이를 증명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기억하는 포인트는 이것이었다. 간결함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 가장 쉬운 방법은 파란색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이다. 파란색 크림 아이섀도로 아이라인을 그린 제닉팩햄이나 휴고 보스, 모니크 륄리에 쇼를 참고하라. 눈을 떴을 때 파란색이 살짝 드러나도록 아이라인을 평소보다 조금 두텁게 그리면 된다. 드리스 반 노튼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처럼 파란색 글리터를 사용해도 좋다. 그의 설명처럼 눈가에 화려한 ‘메이크업 액세서리’가 되어줄 테니까. 아이라인의 고단수라면 여백의 미를 활용한 필립 림 쇼의 블루 라인 활용술을 추천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란셀 달리는 눈꼬리에서 눈동자까지만 이어진, 댕강 잘린 듯 끊긴 아이라인을 눈 아래쪽으로 정교하게 연결했다. “이것은 밝은 블루 라이너로 표현한 새로운 로맨티즘이에요. 피부는 민낯에 가깝지만, 눈가의 색감이 주는 대범함이 있죠.” 노란 피부의 한국인이라면 연한 파스텔톤 블루보다 청색이나 청록색 등 진한 블루가 잘 어울린다. 하얀 피부라면 미쏘니나 록산다 일린칙 쇼와 같은 펄 없이 맑은 파란색을, 어두운 피부라면 지암바티스타 발리 쇼처럼 펄이 강한 진한 블루를 포인트 컬러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그래도 눈가에 파란색을 얹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마스카라부터 도전해볼 것. 진한 파란색 마스카라는 평소에는 까맣게 보이지만 햇볕이나 조명 아래서만 파란색임을 드러낼 뿐 만 아니라, 눈의 흰자위를 밝고 하얗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리 카트란주 쇼에서는 블루 마스카라를 눈 중앙에만 발라서 인형 같은 분위 기를 연출했고, 애슐리 윌리엄스 쇼에서는 눈썹까지 색을 감춘 완벽한 누드 스킨에 파란 마스카라만 발라 은밀하게 컬러감을 드러냈다.
블루에 다른 컬러를 섞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는 보색인 녹색과 은색이 궁합이 잘 맞는다. 안대 모양처럼 넓게 하늘색 섀도를 펴 바른 샤넬 쇼의 모델들은 눈 밑에는 실버 라인을, 손톱에는 반짝이는 은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는 메탈릭한 파랑과 녹색 섀도가 어우러지게 해서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신비로운 블루 메이크업을 선보였다. 눈썹까지 파란 아이섀도로 적시듯 눈두덩에 넓게 펴 바르고, 눈 앞머리에 은색 글리터를 포인트로 얹은 토가 쇼 모델들의 눈매도 아름답다. 물론 가장 안전한 방법은 검정이나 회색을 함께 사용한 블루 스모키 메이크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조나단 선더스 쇼에서는 블랙 아이라이너로 눈 위아래에 라인을 그린 다음 그 위에 파란 섀도를 자연스럽게 펴 발라 검은 아이라인의 강렬함을 분산시켰다. 반대로 소니아 리키엘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루치아 피에로니는 먼저 블루 아이라이너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스머징한 다음, 그 위에 블랙 아이라인을 그렸다. 눈가에 파란색의 면적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과하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이쯤에서 모두 눈치 챘을 것이다. 파란색을 가장 안전하고 아름답게 소화하는 방법은 눈가 외에 입술과 볼, 피부의 색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입술이나 뺨에 붉은 기가 더해지면 바로 촌스러워진다. 굳이 색감을 더하고 싶다면 오렌지 컬러가 무난하다. 눈두덩이 넓고 평평해 입체감이 떨어지는 한국인의 눈매라면 속눈썹이나 아이라인 등에만 파란색을 포인트 컬러로만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그 ‘냥 오해영’에게 돌아가보자. 만약 그녀가 빨간 립스틱 대신 누드 베이지 컬러로 입술의 컬러를 완화했더라면, 또 만약 그녀가 하늘색 아이섀도를 넓게 펴 바르는 대신 진한 청색으로 날렵한 아이라인을 그렸더라면 짠한 오해영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오해영이 되지 않았을까. 촌스러움과 도도함을 넘나드는 블루의 그 한끗 차만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다.
- 에디터
- 이미현
- 포토그래퍼
- James Cochrane, Lee Jeo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