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영화
지금부터 아래 영화를 볼 때에는 잠시 방문을 잠가도 좋다. 긴긴 밤을 함께 지새워줄 19금, 어른들의 영화 10편. 섹시한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준비했다.
1 나인 하프 위크(Nine 1/2 Weeks, 1986) “당신 눈을 가려도 되겠어요?” 여자와 남자는 몽롱하고 강렬한 9주일 반 동안 사랑을 나눈다. 수갑에 묶이거나, 개처럼 바닥을 기는 등 원초적인 욕망을 탐닉하는 그들의 모습은 숨막히게 섹시하다. 당시 최고의 섹시가이였던 미키 루크와 본드걸의 헤로인 킴 베이싱어가 각각 존과 엘리자베스를 맡아 연기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할 야릇함의 진수. 여전히 지식인에는 ‘<나인 하프 위크>스러운 영화 없나요?’라는 질문이 빼곡하다.
2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인 이모부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 외로운 그녀의 집에 하녀 숙희가 온다. 숙희는 아가씨를 유혹해 재산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의 계략에 이미 동조한 상태다.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이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는 아가씨와 하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를 박찬욱 감독이 스크린으로 끄집어낸다고 했을 때, 지금처럼 파격적인 수위를 예상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방울소리가 야하게 들리는 음란 마귀가 찾아온다.
3 썰만화(2016) 짬툰에서 화제를 얻은 웹툰 <썰만화>를 바탕으로 푼, 발칙한 코믹물을 소개한다. 남녀의 ‘썸’과 ‘썰’에 관한 적나라한 보고서랄까? 실화를 주제로 웹툰을 그리는 작가가 독자를 만나 ‘므흣’한 상상이 시작된다. 첫 번째는 권태기를 맞이한 부부가 다시 사랑의 불꽃을 태우게 된 사연. 두 번째는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자가 치킨을 배달시켰다가 고등학교 동창과 만나 ‘치킨 먹고 갈래?’를 성공한 사건. 마지막은 잘나가는 토익학원 선생님이 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일이다. 여자가 주도하는 야릇한 소재를 맛깔 나게 버무렸기 때문에 성인영화지만 접근하기 별 부담이 없다.
4 몽상가들(The Dreamers, 2003) 파리의 1968년은 혁명의 해로 기억된다. 당시 프랑스에 만연했던 권위주의와 보수체제 등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이 거세진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던 그해 봄,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를 만난다. 세 사람은 청춘과 영화, 사랑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지미 핸드릭스로 대변되는 록 음악과 히피, 자유의 정신, 육체에 대한 호기심은 아슬아슬한 청춘의 한 조각으로 포착된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도 아슬아슬하다.
5 19곰 테드(Ted, 2012) 어린 시절, 외톨이로 지낸 존이 소원을 빌자 곰인형 테드는 생명을 얻는다. 말하고 걷는 테드는 슈퍼스타가 되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법. 대중에게 잊혀진 테드는 음주가무와 여자 꼬시기가 특기인 백수 한량으로 전락한다. 귀여운 곰인형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음담패설과 욕설을 일삼는 발칙한 곰 테드와 절친한 존. 이들이 우정도 찾고 사랑도 얻는 과정이 섹시하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6 데드풀(Deadpool, 2016) 19금 딱지를 붙이고 출격한 마블 히어로는 데드풀이 처음이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 에이드 윌슨은 암 치료를 위한 비밀 실험에 참여했다가 슈퍼 히어로 데드풀로 거듭났다. 하지만 온몸이 일그러지는 부작용을 얻은 그는 실험한 자를 찾아 복수를 도모한다.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미국영화협회에서는 마찬가지인 R등급을 매겼다. 강한 폭력과 언어 사용, 성적인 콘텐츠와 그래픽 누드를 사용했다는 이유. 여기에 시종일관 미국식 유머를 쏘아댄다.
7 은교(Eungyo, 2012) 시인 이적요는 명예를 거머쥔 채 평생을 살았다. 곁에는 시인의 세계를 동경한 17살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싱그러운 관능은 그에게 젊음에 대한 갈증을 일깨우고, 소녀와 시인은 서로 갖지 못한 세계에 넋을 잃는다. 여기에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가 있다. 세 명의 탐욕과 질투는 선과 악을 꿀꺽 삼켜버린다. <은교>의 금지된 사랑은 영화 <롤리타>를 연상케 한다. 과감함이 돋보인 신인 김고인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됐다.
8 셰임(Shame, 2011) 뉴욕 맨해튼의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급 오피스텔에서 살면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삶. 여피의 인생은 누가 봐도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에 마스터베이션과 포르노그래피, 원나잇, 콜걸, 음란전화만 가득 찬 섹스중독자다. 감독 스티브 맥퀸은 그를 통해 진지한 관계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공허한 인생 연기를 소화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제68회 베니스 남우주연상을 꿰찼다.
9 에브리바디 원츠 썸!!(Everybody Wants Some!!, 2016) 배경은 198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구부 숙소로 이사 온 신입생 제이크가 주인공이다. 전국 최고의 야구팀으로 구성된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마친 그는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느라 여념이 없다. 텍사스 청춘의 거침없는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라는 영화의 소개보다 <비포 선라이즈>, <보이후드>로 이름을 알린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이라는 소식이 더 눈에 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과 골든글로브 감독상, 작품상을 휩쓴 그가 19금 코미디에서 펼칠 활약을 기대해보길.
10 세크리터리(Secretary, 2002) 평범한 20대인 리 할로웨이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야만 위로가 되는 습관 말이다. 변호사 사무실의 개인비서로 취직한 그녀는 우연히 자신이 모시는 상사, 근사한 중년의 변호사 에드워드 그레이가 자해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다소 무겁고 기괴한 소재는 매끄러운 연출과 영상이 감싼다. 영화는 단순히 고통을 쾌락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쾌락에 따르는 수치심을 보듬는다. 맞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 에디터
-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