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썸만 탈까?
진득한 연애보다는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는 짧은 만남만을 고집하는 사람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상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만 즐긴다. 말로는 연애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관계가 진지해지면 주저하고, 꼬리 내리는 당신을 위한 조언.
나는 7년째 연애 중이다. 그와 통화를 할 때면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그의 눈빛을 보면 지금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일? 물론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은 연애하기 직전인 ‘썸’을 타던 시기인 것 같다. 나는 그를 원하지만, 그가 나를 원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룬 나날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졌다면 우리의 관계는 지지부진해지고 , 결국엔 그저 그런 ‘썸남썸녀’로 끝났을 것이다. 며칠 전 1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사귀는 남자가 뭔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연애가 불만족스러워서도 아니었다. “썸 탈 때의 그 설렘이 없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와 눈만 마주치면 소개팅을 해달라고 말하는 주변의 무수한 싱글 친구, 선후배들 주변엔 왜 그토록 ‘괜찮은 남자’가 없을까 . 혹시 그들은 애초에 연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건 아닐까? 심지어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의든, 타의든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는 이를 두고 심리학 용어인 ‘고슴도치 딜레마’ 를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와 친밀해지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깊은 관계를 맺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남녀를 떠나 사람 관계는 깊어질수록 피곤하고 부담스럽죠. 상대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연애가 아닌 ‘썸’ 타는 관계만 반복하는 사람들은 ‘카르페디엠’ , 즉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을 완전히 빠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을 두고 상황 자체를 인정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서두르거나 포기해버리는 것이죠.” 연애 컨설턴트 이명길은 ‘썸’ 타는 관계에만 머무른 채 연애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두고 차를 소유하는 것과 빌리는 것으로 비유한다.“ 마음에 드는 값비싼 차를 리스로 타고 다니는 건 좋지만, 막상 사려고 결심하면 부담스러운 것과 비슷해요. 썸 타는 관계는 실제로 연애하는 건 아니지만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죠. 굳이 번거로운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특히 30대가 넘어갈수록 연애와 결혼은 샴 쌍둥이처럼 따라오기 때문에 진실한 감정을 느껴서 연애를 시작하는 게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늘 연애의 출발선에서 주저앉게 되는 사람들에게 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오늘도 외롭다며 연애하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 당신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TYPE 1 간만 보다 끝난다
K는 소개팅 전부터 주선자에게 상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한다. 직업, 학벌, 연봉등은 물론이고 어떤 차를 타며 어디에서 사는지, 현재 재산 상태는 어떤지 등까지 파악한다. 소개팅에 나가서도 상대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작업은 쉴 새 없다. 그가 만나자고 하는 장소, 그가 주문하는 메뉴 등 모두가 테스트 과정이다. 소개팅을 하고 난 후, K는 상대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절대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다. 상대의 연락 횟수, 간격으로 애정도를 가늠한다. 연락이 뜸해진다 싶으면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며 혼자 관계를 마무리한다. 요리로 치자면 엄선해서 값비싼 재료를 고르지만 간만 보다가 끝내버리는 꼴이다. 요리하면서 간을 보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맛있게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좋은 셰프는 그저 그런 재료로도 제법 맛있는 음식을 완성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TYPE 2 풍요 속의 빈곤을 즐긴다
C는 예쁘장한 외모와 상냥한 성격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같은 여자가 봐도 샘 날 정도로 흠 하나 없는 그녀지만 도통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입으로는 “외롭다”고 말하며 주변에 소개팅 자리를 물어보지만 그녀는 쉴 틈 없이 남자를 만나고 있다. 새로 개봉한 영화는 빠짐없이 보고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맛집도 주말마다 찾는다. 물론 그때마다 그녀 곁에는 늘 누군가가 함께 있다. 그녀가 한 남자에게 정착하기엔 세상에 남자는 많고, 만날 남자도 많다. 반복적으로 썸만 타고, 정작 연애를 하지 않는 싱글 중에는 주변에 이성 친구가 많은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늘 바쁘지만 한편으론 외롭다. 그러다 상대가 관계를 진지하게 발전시키려고 다가서면 뒷걸음질 친다. 아직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사랑에 빠질 만큼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TYPE 3 조급하게 관계를 규정 짓는다
S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는 3년이 넘었다. 가볍게 만나는 남자는 있었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썸에서 연애로 넘어가려고 할 때 그녀가 자주 하는 실수는 상대에게 “우리는 무슨 관계야?”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다른 일에는 느긋하지만 유독 마음에 드는 남자 앞에서 그녀는 조급해한다. 두세 번 정도 데이트를 하고,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다가도 관계를 규정 짓고 싶은 불안함에 힘들어한다. 조급해하는 그녀를 두고 어떤 남자는 “너는 뭐가 그렇게 급해?”라고 물었고, 다른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잠수를 타버렸다. 물론 S가 만난 남자들이 진지한 관계를 맺는 데에 신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상대의 조건을 보며 만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상대가 ‘이 사람은 내가 좋아서 연애를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연애를 하고 싶어서 나를 만나는 걸까?’ 라는 의심을 걷어야지만 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다.
TYPE 4 ‘썸’은 연애가 아니다
J는 2주 전 소개팅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처음 만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세 번 데이트를 했다. 그랬던 남자가 3시간째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걸까?’ ‘다른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그러나 얼마 있다가 그에게서 “회식이 있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문자가 오자 안도했지만 걱정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요. XX씨는 담배까지 피우니까 더 걱정되네요. 12시 전에는 들어갈 거죠? 집에 갈 때 연락주세요. 걱정되니까.” 물론 연인 사이라면 상대에게 이 정도 걱정을 품을 수 있고, 상대 역시 고마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정 수준을 지키지 못했을 땐 상대에게 부담이 된다. 연인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대의 연락에 집착하거나 이미 사귀고 있는 사이인 것처럼 구속하면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구속’도 연애 초반에만 먹히는 법, 반복되면 질린다.
TYPE 5 연애가 귀찮다
10년간의 긴 연애를 끝낸 L은 더 이상 연애에 흥미가 없다. 어차피 허무하게 끝나버릴 남녀 관계, 연애를 해봤자 뭐 하나 싶다. 연애 허무주의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데이트를 하는 상황은 무척 즐겁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 좋다. 지지부진했던 관계를 정리하고 찾아온 늦바람. 오랜 연애로 지쳐 있던 그녀에게는 연애 휴지기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그녀에게 연애하자고 한다면 선뜻 응할 생각은 없다.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연애의 과정이 너무 귀찮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썸 타는 정도의 가벼운 관계야말로 특효약이다. 연애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TYPE 6 평온한 상태가 좋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P .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남자 만날 기회도 많았고, 썸도 꽤 많이 탔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남자가 연락하고, 데이트 신청을 하면 기꺼이 그 자리에 나간다. 점점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면 그녀는 연락두절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하는 성격의 그녀는 타인이 자신의 일상을 흔들어놓는 걸 못 견뎌한다. 호감을 느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간질거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싫다. 자의가 아닌 타인에 의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너무 괴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열심히 썸을 타고, 연애를 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가까이 온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P 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불 같은 사랑이 아닌 잔잔한 호수처럼 안정적인 사람이 잘 어울린다.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처럼 다가와 천천히 서로의 일상에 스며드는 남자가 좋겠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연애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느긋하고 무던한 성격의 사람들은 대체로 연애의 시작이 늦다 . 횟수도 적다. 그 대신 한 방에 괜찮은 남자를 만나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성격답지 않게 조바심 내지 말고 자신과 잘 맞는 남자를 찾는 데에 집중하시라. 연애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길
당신이 ‘썸’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
1 일주일에 1회 이상 소개팅을 한다.
2 한 사람과 3개월 이상 관계를 지속하면 지루하다.
3 혹시 몰라 불안한 마음에 동시에 여러 이성과 연락한다.
4 나만 상대에게 연락한다고 느낀다.
5 연락 횟수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확인한다.
6 연애는 좋지만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는 부담스럽다.
7 상대방이 먼저 연락하면 승자가 된 것 같다.
8 내가 갖기엔 싫고, 남 주기는 아까운 이성이 있다.
9 누군가에게 호감은 쉽게 느끼지만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
10 솔직히 지금 이대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