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_김정한 <3>

섬세한 손끝으로 유행을 창조하는 헤어 아티스트. 그 중에서도 ‘신의 손’이라 불리는 톱 헤어 아티스트를 <얼루어>가 직접 만났다. 당신이 이미 봐온 수많은 광고나 컬렉션의 헤어 스타일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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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HIS PROFILE 26년의 경력으로 한국 프리랜스 헤어 아티스트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헤어 뉴스라는 살롱에서 스태프로  일하다가, 91년 한 디자이너 컬렉션의 백스테이지 어시스턴트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헤어 아티스트의 길을 시작했다. 1997년, 파리에 잠시 유학을 떠났을 때 한국판 <보그>와 크리스찬 디올 화보를 촬영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후 수많은 패션 매거진과 함께 작업했다. 크리에이티브하면서도 리터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섬세한 작업으로 특히 유명하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하여 <도둑들>, <후궁>, <순정>, <헤어화> 등 수많은 영화 포스터 작업 및 뮤지컬 <프리실라>의 오리지널 헤드 피스 제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헤라, 이니스프리, 리리코스, 한율, 문샷, 비오템, 미쟝센, 려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뷰티 광고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광고 작업을 했으며, 푸시버튼, 슈콤마보니, 앤디앤뎁, 럭키슈에뜨 등의 백스테이지 헤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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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루어]와 함께한 2013년 4월호 뷰티 화보. 크리에이티브한 헤어 연출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2 [보그]의 2016년 11월호 뷰티 화보. 3 [보그]의 2015년 8월호 커버를 장식한 틸다 스윈튼과의 작업물. 4 2005년 작업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

– 살롱 소속이 아니라, 프리랜서로서 활동한 아티스트 1세대다.
90년대 초반, 서울 을지로에 쁘랭땅 백화점이 있었는데, 매주 트렁크 쇼가 진행되었다. 거기서 스타일리스트 박형준을 만났다. 당시는 주로 백화점에서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가 대구 동화 백화점, 대전 엔비 백화점 등에 나를 소개해줬다. 처음에는 살롱 소속으로 일하다가 자연스레 프리랜서로 혼자 활동하게 되었다.

– 당시 한국에서는 어떤 헤어 스타일이 유행했나?
솜씨를 제대로 발휘한 듯, 인위적인 헤어 스타일을 선호했다. 앞머리를 높게 세우고, 번의 형태를 과장되게 살리는 등 헤어에 조형적인 요소가 많았다. 반면, 그때도 자연스러움에 대한 욕구도 강했다. 아주 과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공존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온통 자연스러운 헤어 일색이지만.

– 요즘은 다시 공들이지 않은 듯 부스스한 헤어가 유행이다.
지금의 유행이 버진 헤어, 즉 본연의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원시적 자연스러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가공된 자연스러움이다. 대부분 직모인 동양인의 모발에 이 가공된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 자연스러움이 패션이나 뷰티의 키워드가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패션의 판타지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헤어 스타일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십여 년 전, 한 의상학과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국내 디자이너 컬렉션의 헤어 스타일은 항상 과정되었냐고. 패션의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서라고 답했었는데, 사실 그때는 쇼의 무대가 너무 넓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 학여울 무역센터에서 쇼를 진행했는데, 무대가 너무 커서 무대 위 모델들이 작아보이기 일쑤였다. 모델과 의상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레 머리를 부풀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서울 컬렉션을 보면 자연스러운 헤어 스타일 일색인데, 쇼장이 작아진 것이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놈코어 패션 등 패션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면서 헤어나 메이크업도 덩달아 자연스러워진 것도 이유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쿨한 시대가 아닌가.

– 매거진과의 화보 촬영에서 항상 드라마틱한 헤어 스타일을 연출해왔다. 특히 리터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섬세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사진 작업이 디지털화되고, 리터칭이 가능해진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리터칭의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꼼꼼히 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잡지를 보면서 그 정도 퀄리티를 한국에서도 구현하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섬세함만이 해결책이었다.

– 그러고 보니 벌써 26년 차다. 이토록 오랫동안 헤어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패션에 대한 사랑. 옷도 좋아하지만, 패션 업계 특유의 분위기를 너무도 사랑한다.

– 그래서인지 당신이 연출하는 헤어 스타일은 언제나 패셔너블하다. 상상을 초월한다.
<보그>와의 인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선호하는<보 그>와 함께 자주 작업하면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대한 훈련이 많이 되었으니까. 또 평소 해외 컬렉션을 정말 열심히 본다. 아마 80년대 말부터일 거다. 그중에서도 디올, 꼼데가르송의 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의상을 보며 모티브를 떠올리고 이에 어울릴 만한 소재를 찾아 헤어 스타일에 접목하곤 했다.

–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헤어 아티스트로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하다.
30주년이 되었을 때, 그간 작업했던 것들을 정리해서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3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또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헤어 아티스트들을 위해서.

– 헤어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비율을 가장 많이 본다. 비율에 따라 모발의 길이를 먼저 결정하는데, 사실 헤어 스타일에는 이런 물리적인 요건뿐 아니라 그 사람의 취향 등 정신적인 요건 등이 많은 영향 을 미치지 않나. 제일 좋은 것은, 그 사람을 여러 번 본 다음 어느 정도 성향을 파악한 뒤 조언해주는 것이다.

– 2017년에는 어떤 헤어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 전망하나?
셀프 헤어가 유행할 것이다. 예전 같으면 망친 머리라 여겨졌을, 얼룩덜룩한 염색이나 삐뚤삐뚤한 앞머리가 유행이다. 이제는 염색을 해도 한 톤으로 깨끗하게 염색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굳이 살롱에 가 서 돈 주고 머리를 할 필요가 적어졌다는 의미다. 패션도 각이 잡힌 옷보다 늘어지는 옷이 유행하는 것처럼 헤어 역시 더욱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에디터
    이미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Courtesy of Agency 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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