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기억하다 <2>

도시를 이루는 대표적인 풍경이 된 대단지 아파트. 낡은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서 사라지는 건 사람들의 추억만이 아니다. 아파트의 재건축을 둘러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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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 동안 울창하게 자라나 하늘을 가득 메운 나무들.

ㅡ제가 이곳을 떠난 게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그사이 나무가 더 어마어마하게 자랐어요. 처음부터 숲 속에 아파트를 지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요. 요즘 아파트 단지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녹지가 많죠.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다니면서 곤충을 잡고, 야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어요. 바로 뒤에 둔촌 습지가 있어서 과학 시간에 개구리 알 채집도 했죠. 정말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죠. 도롱뇽 키웠던 것도 생각나고요. 이곳의 자연환경이 유독 특별했던 것도 있지만, 다른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도 아마 잘 자란 나무가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사진집의 제목을 <아파트 숲>이라고 지었어요. 흔히 ‘아파트 숲’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진짜 숲이 있는 것이죠. 도시 전체로 봤을 때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는 것은 숲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어요.

ㅡSNS 채널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데, 저도 지켜만 보다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었죠“.이 나무들은 어떻게 되나요?”라고요. 나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상할 정도로요. 그제야 비로소 고향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죠. 나무가 워낙 크다 보니 이식하기보다는 베어버리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이 더 경제적이겠죠.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이 그런 이유로 너무 쉽게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재건축에서는 사업자 선정 같은 게 중요하지, 나무의 행방은 관심이 덜하겠죠.
고덕주공아파트 철거하는 것을 여러 번 가서 봤는데 꽤 많은 나무를 옮기더라고요. 그래도 살리는 나무가 반 이상은 되어 보였어요. 다음 작업은 그런 나무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좀 지켜보고 싶어요. 저 역시 나무를 좋아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없기 때문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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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말, 빨간 단풍 위에 첫눈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린 둔촌주공아파트의 풍경.

ㅡ아파트가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의 고향이라는 취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유명해졌잖아요? 다른 주공아파트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주었고요. 재건축하면 수몰 지역처럼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건 분명하거든요.
SNS를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면서 저도 많이 알아갔던 것 같아요.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파트 단지, 다른 동네에 살던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어요. 자신이 살았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사실 서울에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예정된 실향민 처지나 마찬가지죠.

ㅡ그런데 사람들의 고향이면서 동시에 다른 생명의 터전이기도 해요.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많이 살았지만, 이곳만큼 지렁이, 송충이, 하늘소, 잠자리와 나비가 많은 곳은 없었거든요. 같은 반 남학생들이 장수풍뎅이로 장난 많이 쳤죠.
아파트 단지가 생태계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비가 오면 지렁이가 꽤 나오죠. 수많은 새와 청설모도 있고, 고양이도 무척 많아요. 캣맘도 많고요. 이분들은 정말 고양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고덕동도 철거 이후,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러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재건축을 떠올리면 아파트가 사라지는 걸 많이 생각하는데, 그것 말고도 사라지는 것들이 정말 많잖아요. 고양이, 나무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네트워크도 한번에 끊어지는 것이죠. 1 단지 쪽에는 늘 함께 앉아 나물 다듬으며 소일하시는 할머니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많이 걱정되죠.

ㅡ둔촌아파트는 올해가 마지막일까요?
올해 이주를 시작한다는 말이 나도는데 할 게 너무 많아요. 우선 고양이들의 현황 조사를 위한 고양이 지도부터 만들려고 해요.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Ryu Jun 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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