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난자가 알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산부인과 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지만, 1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은 두렵다. 서른 살이 넘어가니 슬슬 이후의 삶도 걱정된다. 난자를 냉동한다는 말이 결코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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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냉동난자’에 대해 들은 건 2년 전이다. 직장 때문에 페루에서 몇 년 살다 온 친구가 현지에서 친하게 지낸 04대 한국인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조언 삼아 했을 때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싱싱한(!) 난자를 냉동해두라는 것. 그때 나의 첫 마디는 “너무 오버 아냐?”였지만 지금은 그 오버가 현실이 되고 있다. 요즘 심심치 않게 실시간 검색어에 냉동난자가 오르고 있다. 관련 뉴스는 차고 넘친다. 게다가 최근에 자신의 난자를 냉동 보관 중이라고 말한 연예인 덕에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애초에 냉동난자 시술의 목적은 암 환자를 위한 것이었다. 항암 치료에 앞서 혹시 모를 불임, 난임에 대비해 미리 난자를 채취해 보관하고, 건강이 회복되어 임신을 시도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유방암에 걸린 30~40대 젊은 여성들 중에 난자를 냉동 보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항암 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손꼽히는 불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미국에 비해 냉동난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연구도 시술도 활발하다. 이처럼 의학적인 용도로 냉동난자를 활용하는 사람들과 달리 사회적인 이유로 시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데다 산부인과 관련 질환도 많아지고, 조기 폐경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기 폐경 이전 단계인 조기난소부전 증상이 있는 20~30대 여성은 10%가량으로 추정 되고 있다. 서른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난소의 나이는 30대 후반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건강검진 패키지에 난소 기능을 평가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옵션처럼 들어가 있기도 하다. 냉동난자 시술을 고민하기 전에 내 난소의 나이를 알아보는 것이, 어쩌면 더 시급한지도 모르겠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를 얼려두라는 지인의 조언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정경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난소는 25세 이후에 노화가 시작 돼요. 그리고 30세를 넘어가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37세 때는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죠. 난자를 냉동 보관하려면 38세 이전에 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세계적으로 냉동난자 시술을 가장 많이 시도 하는 연령은 37세다. 물론 40세가 넘어서 임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런 이유로 ‘건강한데 굳이 미리 난자를 채취해서 얼릴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노산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설사 그 낮은 확률에 내가 포함됐다고 해도, 유산과 출산 후 합병증에 대한 우려 등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

냉동난자 시술 비용은 2~3백만원이다. 난자를 얻기 위해 투여하는 주사 비용, 난자 채취 및 처리, 냉동과 보관을 위 한 비용을 포함한 액수다. 사람마다 난소 반응과 상태가 달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웬만한 직장인 월급 수준이니, 아예 엄두를 못 낼 금액은 아니다. 4만 달러에 육박한다는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냉동 보관 기간은 5 년이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 가능하고, 냉동난자 시술은 난소에서 난자를 직접 뽑아야 하기 때문에 초음파 기구로 질을 보면서 진행한다. 물론 진통제나 부분 마취를 한다. 배란일도 맞추고, 난자가 성숙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술을 준비하는 데에는 2주가 걸린다. 채취 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거의 없지만, 출혈이나 감염 등이 생길 수 있어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한다.

후유증 외에 윤리적인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의학계와 종교계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데 비해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생겨 날 것을 걱정한다. 구글, 애플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여성 직원을 대상으로 난자 냉동 보관 비용을 지원하는 등 복지 혜택으로 장려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권장하지 않는다. 난소 출혈이나 감염 등에 대한 우려나 수정란이나 태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미온적이다. 제재도, 권장도 하지 않는다. 냉동난자 시술은 정부 가 바뀔 때마다 떠안게 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는 반면, 생명 윤리에 대한 고민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냉동난자 시술은 개인의 선택이 되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냉동난자 시술이라는 보험에 가입할 것인가?

    에디터
    전소영
    포토그래퍼
    Lee Jeong Hoon
    도움말
    정경아(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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