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어머니들 <1>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은, 그 시대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대중들에서 연기라는 진검승부를 펼쳐온 ‘드라마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뒤늦은 찬사.
나문희, 호박고구마는 잊어라
많은 이들에게 배우 나문희는 ‘호박고구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고구마호박이 아닌 호박고구마를 외친 게 벌써 십 년 전인데도, 이 호박고구마는 여태껏 나문희를 소환해낸다. 배우로서 이게 정말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문희에겐 그다지 나쁘지 않다. 적어도 극중 자신의 이름 그대로인 ‘나문희’로서 호박고구마라 소리친 것이 세대 불문 사람들에게 ‘나문희’라는 배우의 이름을 명확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전에 나문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70년대 성우를 거쳐 티브이 연기를 시작하면서 <상도> <내 이름은 김삼순> <장밋빛 인생> 같은 굵직한 드라마, 영화부터 스쳐가는 일일드라마까지 그는 쉼없이 누군가를 연기했다. 상환(<주먹이 운다>), 남우(<굳세어라 금순아>), 교인(<마리 이야기>)의 할머니, 문수(<영어 완전정복>), 석중(<너는 내 운명>), 미옥(<여선생 vs 여제자>)의 어머니.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자신이 말기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치매 시어머니에게 같이 죽자며 울부짖던 며느리. 나문희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할머니, 며느리, 어머니였고, ‘우리의 어머니상’ 같은 좋고도 지루한 수식어까지 얻었다. 그러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나문희는 본격적으로 캐릭터의 이름으로 자리했다. 마치 누구의 엄마로 불리다가 몇 십 년 만에 자기 이름을 찾게 된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권순분, 이말순, 김정자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정아’(<디어 마이 프렌즈>)가 되었다. ‘왜 맨날 넌 사는 게 그렇게 힘들어!’라는 희자(김혜자)의 말은 고단한 정아의 시간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정에, 목침 베고 돌아누운 그의 등에, ‘나는 새처럼 훨훨 날아서 길 위에서 죽을 거야’라고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대로 녹아 있고, 지나치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나오는 그 드라마에서조차 나문희는 독보적이다. 굳이 ‘한국에서 나문희만큼 연기 잘하는 배우는 없다’라는 윤여정의 말이나 ‘40년 넘게 연기하면서도 여태 대본을 최소 50번은 봐야 안심한다’는 나문희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번도 그의 연기를 의심해본 적 없다. 여기에 ‘인간 나문희는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작가 노희경의 술회까지 더하면, 지금껏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하던 나문희가 그 나문희 맞다 싶다. 다행이다, 정말 좋은 배우를 좋아해서. – 이현수(미디어2.0 편집장)
김혜옥은 소녀 같은 엄마의 대명사 격인 배우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비롯해 전형적인 악역의 카테고리에도 능란하게 발을 들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꿈꾸는 듯한 눈동자와 꿈을 현란하게 말하는 고운 입술이다. 배우 김혜옥의 개성이 만천하에 만개했던 대표작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혜옥은 언제라도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준비된 싱글이었다.
예쁜 팬티를 좋아하고 햇살 좋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지는, 일상의 고비들을 경쾌한 왈츠처럼 건너가는 신선하고 기분 좋은 캐릭터였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초인가족>의 조 여사 또한 그레이 로맨스라고 하기엔 그 빛깔이 너무 형형한 연애를 했다. 극중 남편과 사별하고 딸들을 키우느라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던 그녀는 연하남 마도김(남경읍)과 연애의 설렘과 확신이라는 정석의 코스를 밟아가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중년 여성 배우가 누군가의 엄마, 혹은 할머니의 위치만 담당한다는 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전개는 이렇듯 훌륭하고 노련한 배우들을 기능적으로 배치하는 데서 기인한 것도 크다. 메릴 스트립이 얼마나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는지를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들이 얼마큼 과소평가를 받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배우 김혜옥은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개성과 매력으로 이 험난한 세상의 한계를 조금씩 넓혀온 배우다.
개봉을 앞둔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에서 김혜옥은 배우 한예리와 함께 마치 케이퍼 필름의 여주인공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에피소드를 완전히 채운다. 두 배우가 사연과 호기심을 주고받는 그 테이블에서 늘 반짝이던 배우 김혜옥의 눈빛이 조금 다른 질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장르는 그저 외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김혜옥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뼛속부터 패셔니스타였다는 말이다! – 진명현(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이휘향을 처음 어느 드라마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휘향 씨에 대한 원고 첫 마디가 이 말이라 죄송스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1989년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아니면 1994년 <딸부잣집>이나 같은 해의 <종합병원>에서였을까, 2001년 <여인천하>, 2003년 <천국의 계단>, 2004년 <아일랜드>에서였나? 임성한 드라마의 전성기였던 2007년의 <아현동 마님>이었나? 아니면 <맨또롱또똣>이나 최근작인 <불어라 미풍아>였나?
답을 구하자면 이휘향은 1982년 <수사반장>으로 데뷔했다. 그 이후 2017년 2월에 종영한 <불어라 미풍아>까지 출연했다. 그녀가 36년 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는 한국어 위키피디아 이휘향 항목 기준 59편이다. 쉬지 않고 계속 일했다. 직업인으로의 배우에 충실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휘향의 이름을 안다. 출연작까지는 몰라도. 이 자체가 그녀의 카리스마와 성실성을 증명한다. 이휘향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그녀는 1990년과 1999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을 받았다. 카피라이터가 굉장한 기세의 신종 직업이던 시절이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카피는 의류 브랜드 베스띠벨리의 것이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그렇듯 이휘향은 아름다운 프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여배우는 운동선수처럼 필연적으로 시든다.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 은퇴도 포지션 변경의 일부다. 이휘향 주변의 여배우들은 포지션을 바꿨다. 예능에 나가거나, 감독을 잘 만나 영화배우가 되거나, 고운 이미지를 남기고 서서히 대중과 멀어지거나. 이휘향은 어떤 길도 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연기했다. 90년대에는 이휘향이 시대정신이었다. 당당하고 능력 있는 미녀. 병원의 여의사, 카이스트의 천재 교수. 2000년대의 이휘향은 독할 정도로 강한 여자였다. 시대가 이휘향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했다. 이휘향은 성실히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질렀다. 이휘향은 그러고도 소모되지 않았다. 여전히 주요 배역을 연기한다. 여전히 성실하다. 강한 악역이 되어 여전히 극을 끌고 간다. 35년 동안, 59편의 드라마에서, 한결같이.
이휘향의 모든 드라마가 명작이었던 건 아니다. 무리한 설정과 자극적인 장면만 남아서 주부들이 다림질을 할 때나 보는 드라마도 많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에도 기꺼이 출연했다. 타고난 눈빛과 성실한 연기로 그 장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휘향 폭풍 싸대기’ 장면이 어느 드라마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드라마를 짧은 동영상으로 쪼개서 소비하는 시대. 망작은 사라지고 남은 건 이휘향의 연기뿐이다. 어디서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이휘향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다시 한번 중얼거려본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 박찬용(<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