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 Waves
‘도자기 인형’처럼 인간의 것이 아닌 인위적인 피부 표현은 잊길. 이번 가을/겨울의 창백한 피부 표현은 그야말로 사람답게 아름다우니까.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그리고 19세기 조세핀 황후와 시녀들의 그림을 보면 여러 질감을 표현한 화가의 집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화가가 각별히 공을 들인 건 바로 이 부인들의 피부였다. 도자기처럼 창백한 피부는, 그림 속에서 그야말로 ‘파우더리’하게 표현되어 있다. ‘도자기’ 같은 피부를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이러한 그림에 가까울 것이다.
가을/겨울 시즌, 그림에서나 존재할 법했던 창백하고도 보송한 피부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발렌시아가 쇼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표현으로서 창백한 피부를 밑그림으로 선택했다. 발렌시아가의 사라 무어는 이것을 ‘우아하고 쿨하다’ 라고 표현했다. 파우스토 푸글리시 쇼의 발 갈렌드는 이것을 1990년대의 사진에 비유했다. “마치 90년대 초의 스티븐 마이젤의 사진과 같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한 피부에 또렷한 눈썹이면 충분하죠. 하이더 아커만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잉에그 로나드 역시 이번 시즌 창백한 메이크업 예찬자 중 하나였다. “매우 창백한 피부와 하이라이트를 얹은 얼굴과 몸, 마스카라를 하지 않은 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눈썹. 하지만 그들은 대단히 아름다웠어요.”
이러한 메이크업은 영국 고딕 소설에 나올 법한 유령, 또는 낭만주의 소설에서 좋은 장치가 된 결핵에 걸린 비련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런 유령이나 질병이 만들어내는 창백함과는 다르다. 때로는 눈썹, 때로는 립컬러로 창백함은 생동감을 얻고, 바로 현실이 되니 말이다. 앤 드묄미스터 쇼를 보라. 이들이 행한 것은 오직 눈썹을 살려 빗어주는 것뿐! “깨끗하게 피부 표현을 마무리한 후, 입술과 볼에 아주 조금씩 혈색과 자연스러운 광을 더합니다. 아주 조금만요. 덕분에 인형처럼 보이지 않죠.” 록산다 쇼의 미란다 조이스의 팁이다. 어린 시절의 판타지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시몬 로샤의 쇼도 한 예다.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내적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메이크업을 제외했고, 입술 역시 본래의 분홍빛을 약간만 더 강조했습니다. 피부는 매트하고 부드럽게 마무리했죠.” 샘 브라이언트의 말이다.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테리 바버는 피부 표현을 마친 후, 눈에만 살짝 핑크 컬러를 더해서, 막 일어나 눈을 문지른 것처럼 생기를 부여했다. 운이 좋게도 잡티가 없는 피부라면, 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피부 표현을 완성할 수 있다. 기 라로슈는 두터운 메이크업을 덜어내고 커버가 필요한 영역에 아주 시어한 파운데이션을 사용한 후 파우더로 마무리했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포츠1961 쇼에서는 틴티드 모이스처라이저와 하이라이터가 힘을 발휘했다.기억해야 할 것은 이 창백함이 곧 ‘하얀 피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번 시즌 트렌드와 정반대되는 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가 바로 쇼의 주제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패션계의 다양성에 대해 업급한 안나 윈투어의 말처럼 모든 것은 고유의 피부색 위에서 빛난다. 나스의 여형석 프리미어 아티스트 팀장은 우리 고유의 피부색을 멋지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파운데이션의 컬러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란 피부를 가리기 위해 핑크 베이스를 고집하면 자연스러우면서도 도자기 같은 피부는 완성되지 않죠. 골드빛이 도는 파우데이션을, 브러시 또는 손으로 바르면 고유의 피부색과 결을 동시에 살릴 수 있습니다.” 영감을 얻고 싶다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캐스팅을 보여준 미우미우의 쇼를 보라. 국적을 불문하고 캣워크 위를 걷는 모델의 얼굴은 그 자체로 이번 시즌의 주제나 다름없었으니까!
-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James Cochrane, Kim Myung 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