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New Faces
사랑하는 무대로 돌아간 조정석은 요즘 모차르트 생각뿐이라 했다. 이번에는 또 자신 안의 어떤 얼굴을 슬쩍 꺼내 고이 빚을까. 연기가 곧 숨쉬는 행위인 듯한, 조정석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이란, 아마도 십중팔구 영화 <아마데우스> 속 천박한 하이톤의 웃음을 흩뿌리는 ‘앙팡 테리블’의 모습일 테다.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는 아마 영화사에서도 손꼽히지 않을까. 이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의 뿌리는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에 있다. 신에게 선택된 재능을 가진 작곡가 모차르트와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평범함을 고통스러워하며 질투에 사로잡히는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의 이야기. 그 오리지널 스토리가 2월 27일부터 국내에서 공연된다. 그리고 배우 조정석이 광기 어린 천재, 모차르트가 된다.
항상 맡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파고드는 그에게 모차르트는 거대하고 끝을 알 수 없는 탐구 주제일 터. 화보 촬영을 하면서도 그는 모차르트처럼 움직였다. 조정석이 모차르트가 궁금하듯 우리는 조정석이 궁금하다. ‘A 또는 B’, 그에게 선택지를 던졌다. 그를 조금이라도 가늠해보려고.
# 조정석의 모차르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배우 조정석은 어떤 사람에 가깝나요?
모차르트는 비범하고 천재적인 작곡가예요. 내게도 모차르트 같은 비범함이 있으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하지만, ‘천재적인’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죠. 항상 연기에 재능 있는 사람은 있어도 ‘천재는’ 없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란 건 살리에리에 가까워요.
배역이 가지는 매력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중 어느 쪽을 고를까요?
공연을 하다 보면 확실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살리에리의 삶이 얼마나 비통했는지를 알고 보니, 그 감정에 더 빠져들고 싶은 순간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살리에리가 사회자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공연의 완성도 면에서 그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여러 면에서 아주 탐나는 인물이죠. 하지만 나는 모차르트니까, 모차르트를 선택하겠습니다.(웃음) 괴짜 같은 성격, 천재적 기질을 캐릭터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배우로서 누구나 욕심 낼 만한 역할인 건 확실해요. 모차르트의 삶을 최대한 완벽하게 대변할 수 있도록, 밀도 있게 접근하려 합니다. 물론 부담감도 크지만요.
가장 마음을 울린 모차르트의 대사는 뭔가요?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죠. 작곡가들은 그 다른 생각을 한번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4중창은 5중창이 되고, 5중창은 6중창, 7중창이 되어서 그렇게 넓게, 넓게 소리가 배가되고, 함께 치솟아 새로운 음을 창조하는 겁니다. 그 수백만 개의 음들이 하나가 되어 높이 울려 퍼져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음악이 되고, 그 소리를 저 신께 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작곡가들이 할 일이지요. 바로 그것이 음악입니다.” 모차르트가 관중 앞에서 하는 음악에 대한 연설이에요. 모차르트는 그 당시에 굉장히 패셔너블하고 독특했어요. 시대를 앞서나갔던 거죠. 그의 이 연설 역시 당시 신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던 대중들에게 너무나 낯설고 엉뚱하게 다가갔을 거예요. 모차르트의 음악도 그랬지만, 그의 사고 방식이나 마음도 훨씬 더 시대를 앞서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사 같아서 인상적이에요.
조정석만의 모차르트,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조정석의 몸을 빌려 모차르트의 비범하고도 비극적인 삶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이 목표예요. 요즘 같아선 ‘모차르트가 내 몸에 한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극과 극을 치닫는 대사와 행동 때문에 연습하며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이지?’ 할 때도 종종 있거든요. 참 어려워요. 일반적인 인물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표현해서도 안 되잖아요. 온전히 내 것이 되어야 정말 조정석답게 희귀하고 특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니, 요즘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어요.
# 조정석의 시간
올해 30대의 마지막을 맞이했네요. 20대와 30대, 언제가 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나요?
항상 열심히 했고 만족스러웠지만 다사다난했던 20대를 잘 넘기고 30대를 얻었기 때문에 20대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때 인생의 굴곡이 꽤 심했거든요. 왠지 30대가 더 좋았다고 하면 20대의 소중함이 좀 퇴색되는 느낌이 들어서, 20대를 택하고 싶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20대 때는 또 10대가 더 좋았다 생각했어요. 마냥 고민 없이 학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면 행복하던 그때요.
그럼 다가올 40대는 두려운 쪽인가요, 기대하는 쪽인가요?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솔직히 두려운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20대 때 인터뷰에서 종종 ‘빨리 나이 들고 싶다’는 말을 했었어요. 주름이 하나씩 늘고, 배우로서 나이 든 내 모습이 기대되고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어쩌면 그때 내가 상상한 나이는 30대 정도였던 것 같아요. 막상 40대를 앞두니 마냥 반갑거나 즐겁지만은 않네요.(웃음)
영화 <건축학개론>이 2012년 작품인데, 관객의 입장에선 왠지 더 오래된 느낌이에요. 그 이후 시간의 속도는 어땠나요?
지난 5~6년간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제법 긴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내겐 ‘순삭’한 것처럼 느껴져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요. 어찌 보면 ‘납득이’ 이후가 제2의 인생일 텐데, 적응력이 빠른 편이라 잘 적응한 것 같아요. 힘들거나 길었다 느껴지지 않거든요. 나는 적응력도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유리멘탈’은 아니에요. 비유하자면, 한 상 가득 잘 차려진 음식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며 먹은 게 아니라, 거침없이 확 쓸어먹고 ‘아, 잘 먹었다’고 하는 느낌이에요. 30대의 장면들은 모두 화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는 데 비해 20대는 한 해 한 해 모든 장면이 다 선명하게 기억나요.(웃음) 많이 소중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한 템포 늦추고 호흡을 다잡으려 해요. 나이도 그렇고, 시기도 그렇고, 지금이 그래야 할 때인 것 같아서요.
선배인 나와 후배인 나, 어느 쪽이 더 좋아요?
후배인 게 좋아요. 집에서도 막내라 후배일 때가 훨씬 편해요. 후배들 앞에선 왠지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고, 롤모델이라는 말 때문에 부담이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선배들과 함께한 영화 <마약왕> 현장이 더 좋았어요. 송강호, 이성민 선배 덕분에 너무 즐겁게 촬영했거든요. 여름에 개봉할 예정인데,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되네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인생의 보편적인 단계를 경험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20대 초반에는 진심으로 빨리 결혼하고 싶었어요. 이건 어쩌면 내 가정사와 연관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이 내가 어린 시절에 결별하셨거든요. 그 모습을 보며 반대로 ‘나는 절대 안 저럴 거야’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결혼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내겐 ‘꼭 해야 하는 것’이 되었어요. 첫사랑을 할 때도 그 사람과 결혼할 것 같았고, 그 다음 연인과도 그랬어요. 언제나 내 사랑의 종착지를 늘 생각하며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내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빠도 되고 싶어요. ‘인생의 단계’라는 의미보단 그저 행복하고 싶어요. 결혼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결혼이 불행의 시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혼자가 아닌, 누군가 같이 있을 때 인간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오래 생각해왔어요. 물론 ‘확신’은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확신을 주던 주변의 커플들이 헤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20대는 굴곡이 많았던 만큼 모든 장면이 하나하나 선명하고 소중하게 떠올라요. 그에 비해 30대의 장면들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고 거침없이 헤쳐온 느낌이죠. 요즘 들어서는 한 템포 박자를 늦추고 호흡을 다잡으려고 해요. 지금이 딱 그래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조정석의 취향
최근 자극받았던 연기나 작품이 있나요?
최근에는 연습하느라 솔직히 새롭게 본 작품이 없어요. 항상 차기작을 기대하는 존경하는 배우들은 있죠. 메릴 스트립과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을 때면 <철의 여인>, <우아한 세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작품들을 다시 봐요. 내가 배우이다 보니, 감독의 연출력을 너머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고, 연기 속에 투철한 고민이 보이는 작품을 만났을 때 굉장한 자극을 받아요.
화면 속 나와 무대 위 나, 누가 더 좋아요?
무대요. 내가 지금 무대를 준비하고 있으니까.(웃음) 개인적으로 카메라 앞 연기보다 무대 위 연기가 훨씬 더 만족도가 높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호흡이 짧은 편집 예술인 데 비해 무대는 배우가 쏟아내는 에너지가 크고 연기의 호흡이 길기 때문이죠. 한번에 클라이맥스까지 감정을 이끌어가 폭발시키고 탁 털어버리는, 그 느낌이 좋아요.
쉴 때 취미 생활같은 활동으로 자신을 충전하는 편인가요, 아무것도 안 하고 방전시키는 편인가요?
솔직히 얼마 전에는 방전되고 싶은 시기가 잠깐 있었어요.(웃음) 원래 나는 쉴 때도 절대 정적이지 않거든요. 운동이든 뭐든 챙겨서 하는 스타일인데, 드라마 <투깝스>를 끝내고 바로 연극에 합류해서 그런지 살짝 방전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하지만 오랜만에 편한 동료들과 연습실에서 부대끼다 보니 거기서 에너지를 다시 얻었어요.
친구들과는 ‘소주 한잔’ 하는 편인가요, ‘커피 한잔’ 하는 편인가요?
당연히 ‘소주 한잔’이죠. 지금은 친구들이 내 시간에 맞춰주는 단순한 이유로 모임의 중심이 되곤 하지만, 20대 때는 ‘야, 오늘 다 모여. 빨리 와!’ 하고 진짜로 술자리를 만드는 편이었어요. 주량은 1병 반에서 2병 정도.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많이 못 마셔요. 아마 내 인생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신 게 서른 살 때였을 거예요. 사람마다 안 좋은 시기가 있을 텐데, 당시가 내게 그런 시기였고 딱 서른이 된 시점이었죠.
문자가 편해요, 통화가 편해요?
통화요. 문자로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얘기할 게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어쩌다 문자를 쓰다가도 답답해서 통화 버튼을 누르는 스타일이죠. 어쩔 수 없이 문자로 얘기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장문의 문자로 써서 보내는 편이에요.
아침 7시와 새벽 1시 중 더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예요?
새벽 1시.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올빼미형 인간이었던 시기에 집중력도 좋고 창의력도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새벽 시간에는 대부분 차분히 대본이나 책을 읽는 일이 많은데, 나는 TV나 음악도 틀지 않고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 읽는 편이에요. 그렇게 책을 펼쳐 훅 빠져들어서 읽고, 다 읽었다 싶으면 탁 덮어요. 그리고 TV를 켜서 볼 것만 딱 보고 끄는 식이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않아요. 잘 때도 아주 조용해야 잘 수 있어요. TV를 켜놓고 자거나 책을 읽다가 잠들거나 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에요.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요.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뭔가요?
정말 내내 모차르트만 들어요. ‘레퀴엠’, ‘피가로의 결혼’, ‘마술 피리’, ‘돈 지오반니’ 등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요. 들을 때마다 소름 끼칠 정도로요. 내가 기타를 쳐서 그런지 음악을 들을 때 악기의 소리를 찾아서 듣는 편인데, 모차르트의 곡들을 듣다 보면 놀라워요. 특정 시점에서 오보에가 나오고, 그 다음에 클라리넷이 등장하는 것들이 정말 천재적이에요. 듣다 보면 ‘이건 모차르트가 장난치다 작곡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곡도 있어요. ‘바라바라밤’ 하고 시작되는 터키행진곡(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작품331) 같은 건, ‘이건 정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요. 작품을 할 때 배역에 흠뻑 취하는 편이라, 요즘 내 생활은 전부 모차르트예요.(웃음)
항상 나는 사랑의 종착지를 생각하며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내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당연히 결혼도 하고 싶고, 아빠도 되고 싶어요. 특별히 ‘인생의 단계’라는 의미보단 그저 행복하고 싶어서요. 결혼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거라고 굳게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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