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 정세운
두 번째 앨범 <AFTER> 발매 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세운을 만났다. 흰 도화지처럼 말간 얼굴을 한 청춘의 이야기.
세운과의 만남은 이상하게 여운이 길었다. 그 특유의 나른함은 촬영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만큼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진 못할 거다. 스튜디오를 꽉 채우던 노래 소리가 공기의 흐름을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옆자리에 앉은 세운은 앞에 놓인 책상에 팔을 올리고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듯 몸을 늘어뜨렸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내내 슬로 모션으로 반복되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지난 1월 말, <AFTER> 앨범이 나와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요. 라디오, 행사, 공연을 병행하고 있죠.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췄는데, 아직 안 찍어본 프로그램 중에 욕심 나는 거 있어요?
저는 아직 먹방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방송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방송하는 콘텐츠에서도 먹방을 안 해봐서 한번 해보고 싶어요. 먹는 것도 좋아하고 정말 잘 먹거든요.
앨범을 듣다 보면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아요. 장르도 다양하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보면서 대중이 저한테 원하고 기대하는 부분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여러 장르에 도전해보면서 어떤 걸 더 잘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알 수 있어서 얻는 게 많았거든요.
언젠가 먼 미래에 앨범을 낸다면 그때는 일관된 분위기의 곡이 실린 앨범이 나올 수도 있을까요?
나중에 저의 색깔이 진하게 드러나는 음악을 하게 되더라도 앨범의 몇 곡 정도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한 앨범에 여러 곡이 실리는데 저에 대해 잘 모를 경우에는 그걸 다 듣기가 쉽지 않잖아요. 타이틀곡 정도만 들어보는 경우가 많죠. 사실 저도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라고 해도 수록된 곡이 열댓 개가 있으면 한 번에 다 듣기가 힘들거든요. 근데 앨범 내에서도 좀 다른 느낌의 곡이 있다면 호기심에 한번쯤은 들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장르의 곡들 중에서도 소화하기 편한 스타일이 있나요?
사실 편한 건 없어요. 노래할 때 편하다고 생각하면 곡의 디테일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늘 신경 써서 부르게 돼요.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잘 맞았던 스타일도 있었어요?
발라드요. 발라드 부르는 게 자신 없었는데,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나요?
<AFTER> 앨범에서 저의 색깔이 더 진해진 거 같아요. 이번 앨범에 들어간 자작곡을 정말 원 없이 썼거든요. 파트 원에서는 대중적이고 재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트 투에서는 다른 것에 구애 받지 않고 하고 싶던 이야기나 곡 스타일을 맘껏 해봤기 때문에 그에 따른 만족이 커요.
이번 앨범에는 직접 쓴 손글씨가 들어갔어요. 혹시 평소에도 일기를 쓰는 편인가요?
아예 안 쓰는 날도 있고 엄청 많이 쓰는 날도 있어요. 생각이 나거나 떠오르는 게 있을 때 적는 편이지, 숙제처럼 일기를 쓰진 않아요.
스케줄을 처리하거나 이동할 때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뭐예요?
노래나 멜로디 같은 경우에는 음성 녹음을 하는 편이고, 문구나 단어나 문장은 휴대폰에 먼저 저장해두었다가 나중에 공책에 다시 쓰는 편이에요.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서 증발해버린 적도 있나요?
되게 많죠. 그래서 이렇게 메모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웃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뭐예요?
‘연습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기타를 주 악기로 해서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요. 아는 게 많고,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그 범위가 늘어날 테니까요.
앨범을 발매한 후의 반응에 신경 써요?
아무래도 대중 가수다 보니까 이런 곡의 반응은 어떻고, 저런 곡을 했을 때 반응은 어떤지 모두 찾아보는 편이에요. 모니터링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어떤 건가요?
수록곡까지 다 듣고 싶게 만든다는 말이요. 지금 다양한 음악을 해보는 과정에서 제일 듣기 좋은, 감사한 답변인 거 같아요.
지켜보는 팬들이 생겼다는 게 음악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치기도 하나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팬들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니까 보답하고 싶어요. 데뷔했다고 해서 안주하지 않고 하던 대로 음악을 하는 게 저도 그렇고, 팬들도 좋아하는 방향인 것 같고요.
말 나온 김에 궁금한 게 있어요. 세운 씨 팬 사인회를 보면 팬들이 정말 다양한 의상을 준비해오더라고요. 혹시 기억에 남는 코스튬이 있나요?
되게 많아요. 정말 코스프레 대회 같은 느낌이 들정도예요. (웃음)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은데 특히 강렬했던 건 해리포터 의상이랑 왕의 옷을 입은 거였어요. 진짜 안 해본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정말 별걸 다 해봤어요. 심지어는 무지개 가발도 써봤어요. 팬들한테 나중에 어떤 스타일의 머리를 해보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제가 포스트잇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무지개, 장발이라고 썼었거든요. 정말 다음에 바로 가발을 가져와주신 거예요. 그것도 기억에 남아요.
유독 세운 씨한테 그런 요청이 많은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평소에 나른하고 침착한 이미지가 강하니까 오히려 팬들이 그런 걸 많이 해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그때가 아니면 머리띠나 가발을 쓸 일이 없으니까요.
하긴 실제로 만나보니 잔잔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도 그래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음악 작업의 경우 오히려 감정 기복이 심할 때 곡에 몰입하기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복이라는 게 조절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정의 높낮이가 있다고 해도 일을 할 때, 방송을 할 때는 조절을 해야 하잖아요. 가까운 사람들이 볼 때는 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완전히 고요하진 않아요.
곡 작업을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가요?
아니요! 아직은 곡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요. 제가 음악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혹시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서 느끼는 부담도 있어요?
있었죠.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단계를 넘은 거 같아요. 제 이야기를,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걸 감사해요. 물론 쉽지 않고, 힘든 점은 있지만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고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심리적 압박을 느끼기도 해요?
예전엔 많이 그랬어요. 음악을 막 시작했을 때 <K팝스타>에 나갔거든요. 그때는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 곡을 쓰고 노래를 했으니까 매번 숙제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시작을 그렇게 하다 보니까 ‘무조건 곡을 써야 돼’, ‘무조건 이걸 끝내야 돼’ 하는 압박감 때문에 <K팝스타>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곡을 못 썼어요. 지금은 그런 게 조금씩 없어졌죠. 영감을 빨리 얻고 싶어 조급해했는데 요즘에는 안 풀리면 ‘여기까지 적어두고 다음에 해야지’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감이 필요한 거 같긴 해요. 그런 게 있어야 더 하려는 마음도 생기고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예요?
제 노래로 위로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요. 저도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힘도 얻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동기부여도 되고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음악에 담으면서 솔직한 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요. 저도 지극히 평범한 20대거든요. 아이스크림도 되게 좋아하고.
그러고 보니 오늘 인터뷰에서도 음악 얘기만 했네요. 다음에는 시시콜콜하고 지극히 평범한 얘기도 해요.
와, 저는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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