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출간 석달 후 작가는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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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열세 살 소녀 팡쓰치는 문학 선생 리궈화에게 강간당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 없고, 또한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던 소녀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선생의 말을 믿기로 한다. “선생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몇 번씩 되뇌지만 5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그녀의 미약한 삶과 영혼은 망가져간다. 게다가 팡쓰치는 한 명이 아니다.

대만 작가 린이한이 이 소설을 출간하자 대만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팡쓰치는 누구인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출간 석 달 후 작가는 자살했고, 유족은 이 소설이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히며 가해자로 유명 강사를 지목했다. 대만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총명한 린이한은 자신의 삶을 견디지는 못했다. 책의 제목인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지독하게도 아픈 농담이다. 첫사랑일 리 없고, 낙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문학을 좋아해 섬세했고,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한 소녀가 여자에게 강압적이기로는 한국 못지않은 대만에서 자신의 성폭행 경험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족도 소녀의 편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크게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팡쓰치, 쓰치의 친구 이팅, 이들과 친한 이원 언니, 그리고 리궈화에게 강간당한 후 대학생이 된 샤오치가 있다. 이들은 제각기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폭력 남성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원이 있고, 세상에 고발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는 샤오치가 있고, 모든 걸 껴안고 다만 살아가려는 이팅이 있다. 그리고 팡쓰치는 미쳐버렸다. 작가는 이들에게 각각 자신의 조각을 나눠주고는 세상을 등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척하며 살 수는 없다고, 세상에 비명 같은 책 하나를 남긴 채 말이다. 너무나 여성의 삶이기에, 또한 문장과 깊이는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이 책은 더없이 잔인한 책이 된다. 린이한의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불기소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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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옆의 사람들

문득 보면 재능을 수십 가지나 가진 사람들이 있다. 최동민은 거기다 겸손하고 인품까지 좋아서, 샘을 내기도 그런 사람이다. <더 드라마>, <책 읽는 라디오> 등의 팟캐스트와 오디오 클립 등의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최동민은 위대한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럼에도 가려진 사람들을 <작가를 짓다>를 통해 조망한다. 로맹의 어머니 니니와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 리시,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세계도 혼자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 건 작가의 팬에게는 작가를 좀 더 이해하는 기회를 주고 대개는 평범한 사람인 우리를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NEW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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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장강명은 본래 기자 출신이다. 이 책은 르포, 즉 기자로서의로 경험과 노하우가 빛나는 책이다. 주제는 ‘문학상’이다. 4개 문학상을 석권하며 유수의 출판사들이 탐내는 작가가 된 장강명이 문학공모전이라는 제도와 시스템의 현실과 한계를 낱낱이 고발한다.
저자 장강명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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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의 장편 소설. 어린 딸과 살고 있는 사야카는 사물을 만지면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집마당에 중요한 게 묻혀 있다는 편지가 온다. 모두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죽음을 주제로 바나나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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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가방>
기대 없이 페이지를 펼쳤다가 어느 순간 콧날이 시큰해졌다. 서울 살이 중인 딸이 어머니가 사는 고향 제주에 방문해 함께 고사리를 캔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땅에서 움튼 귀여운 고사리, 해석이 달린 제주 방언. 억지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아도 담담하게 잊고 있던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저자 김성라 출판사 사계절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Jeong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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