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취미는 유죄입니까?

달콤함과 죄책감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길티플레저.’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어쩐지 하고 있는 그 습관을 7명의 칼럼니스트가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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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비용

“빨래는 대체 언제 갤 셈이야? 속옷 하나, 수건 하나씩 그렇게 홀랑홀랑 빼서 쓰기만 하고 건조대는 언제까지 펼쳐둘 거냐고?” 때는 5 주 전, 동거인과의 다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둘이 살며 가사 분담의 균형을 유지하던 우리 집의 평화는 나의 이직을 기점으로 기울었다. 밤늦게 돌아오면 가방을 던지는 동작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간신히 씻으러 가는 패턴이 몇 주째 이어졌다. 평소에는 부족한 정리 정돈과 청소 지분을 요리로 만회하는 편이었는데, 회사에서 하루 세 끼를 먹으며 야근하다 보니 장을 보고 불을 피울 의욕이 주말까지도 살아나지 않았다. 혼자라면 게으름이 차곡차곡 쌓인 채로도 밖으로는 표 안 나게 지낼 수 있지만, 규율이 어그러진 단체 생활은 구성원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줄어든 한 사람 손만큼을 더 감당해야 했던 친구가 소리를 지르며 폭발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집도 넓은데 건조대 좀 펼쳐두면 안 되나, 차례로 하나씩 입고 나서 또 새 빨래 해서 널면 귀찮지도 않고 좋은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건 비밀이지만.

맞벌이 가정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에 대한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남성은 하루 19분, 여성은 그보다 2시간 14분 길었다. 19분이라니, 소파에 누운 채 테이프클리너 한번 굴리고, 누가 차려줘서 먹은 밥그릇 물에 담가놓고, 샤워하고 난 다음 빨래통에 옷 갖다 넣는 시간만 조각 모음해도 19분은 될 것 같다. 똑같이 사회인으로서의 한몫을 할 텐데도 내조의 대상은 남자들이다. 퇴근하면 정돈된 집에 밥이 차려져 있고, 다음 날 입고 나갈 셔츠가 다려져 있고,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가 채워주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 속으로 홀랑 들어가서 살고 싶다.

아내를 갖지 못한 나는 대신 돈을 쓰기로 했다. 가사도우미 서비스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고 방문 청소를 신청한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노동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일은 예상보다 불편해서 첫 주에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아주머니와 함께 청소를 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의탁해 내 생활을 돌본다는 게 여전히 떳떳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 안락함에 의지하기 시작하니 달콤한 쾌락이 찾아왔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바닥에서 윤이 나고 빨래가 차곡차곡 개어져 있다니, 너무 짜릿하고 중독적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세요.’ 가사도우미 앱의 카피 문구다. 남자건 여자건 지금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아내건 어머니건 동거인이건 누군가의 가사노동에 대해 죄책감과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가사도우미가 방문하는 4시간 동안 나는 밖에 나가 책을 읽고,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신다. 한 달 19만원, 한 번의 쇼핑이면 금세 사라질 금액으로 가정의 평화를 샀고 동거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주중에 지친 몸과 마음에 약간의 여유와 즐거움을 샀다. 1회에 4만5천원, 이보다 잘 쓰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돈이다. 없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 황선우(젠틀몬스터 브랜딩 본부) 

싫은 사람 팔로우하기

내가 아는 어떤 남자 선배는 상식이라는 잣대로 바라볼 때 노출이 심하다. 그의 바지는 너무 짧아서 어떤 경우에는 하의가 실종되기에 이른다. 아마도 그는 그의 기다란 팔과 다리를 사랑하여 그 곧은 팔과 다리를 페친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의 페친이다. 그의 노출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 소스라칠 때도 많다. 이런 식으로 반응할 거면 친구 삭제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그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그의 페이스북이 업데이트되기만을 기다린다.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나여, 나는 변태인 걸까.

내가 아는 또 다른 선배는 상식이라는 잣대로 바라볼 때 나르시시즘이 심하다. 그의 연주는 스스로에게 너무 도취되어서 어떤 경우에는 노래가 실종되기도 한다. 아마도 그는 그의 감성과 목소리를 너무 사랑하여 그 아름다운 것들을 페친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와 페친이다. 그의 도취를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실수로라도 ‘좋아요’를 누를까봐 한 손을 붙들고 있어야 할 지경이다. 이 정도로 싫어할 거면 친구 삭제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늘은 또 어떤 도취가 업데이트될지 기다린다.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망쳐주기를. 비난하면서 좋아하는 나여, 나는 변태가 확실하다.

SNS가 사적 매체인가 공적 매체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할 생각은 없다.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사적인 것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현대 자본의 가장 흔한 크로스임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다만 그사이에 내 부끄러운 사생활이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나는 공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의 사적 기록을 보는 것이 싫은 동시에 좋다. 그들이 공개한 사생활의 이미지가 그들의 공적 퍼포먼스와 일관되면 일관될수록 내가 느끼는 희열은 더 커진다. 비난할 수 있는 소스가 많아지기 때문일까. 그들에 대한 사적 판단이 그들에 대한 공적 판단에 확신을 주기 때문일까.아무려나 내가 마음놓고 싫어하고 비난하라고 그런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므로 나는 또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내 손은 또 그들의 계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나의 부끄러운 즐거움이다.
– 박혜진(문학평론가) 

참을 수 없는 댓글의 가벼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한 날이다. 갑자기 왜 정치 이야기냐고? 정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댓글 이야기는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댓글을 본다. 댓글을 보며 혀를 차고 욕도 하고 화를 낸다. 다시는 안 본다며 침을 퉤퉤 뱉었다가, 어느덧 다시 본다. 핫한 뉴스가 뜨면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댓글부터 확인한다. 없으면 얼마 후에 다시 온다. 무슨 댓글들이 달렸나 보러 오는 것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이 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손가락으로 싸놓은 똥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드루킹의 범죄 행각은 주로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이자 뉴스들의 서식지인 네이버에서 일어났다. 부정한 방법으로 댓글에 대한 추천을 반복하여 순위권에 안착시켜 그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혼탁하게 한 혐의이다. 수사의 계기는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며 여론몰이를 한 데에 대한 여권의 고발이었다. 나도 그 댓글을 보았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 세상엔 참으로 쓰레기가 많아. 하하, 라임은 참 좋네. …알긴 알았었다. 그것이 전체 여론은 아니라는 것. 댓글창은 때로, 아니 대부분 혐오와 망상의 각축장이 된다. 그럼에도 ‘그걸 아는 것’과 ‘그래도 하는 것’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착 붙어서 쉽게 뒤집힌다. 오늘도 스크롤 내리는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인다. 무슨 댓글이 달렸나 궁금해하면서. 그 댓글을 보고 있는 나를 부끄러워하면서. 킹크랩이니 매크로니 하는 짓들의 범죄 소명과 그에 따른 법 집행이야 고매하신 법조인 영감들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만, 인신공격에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누리꾼(!)은 오늘도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이야기하려 하겠지만, 그리고 나는 그것들에 눈살 찌푸리겠지만….

방금도 보고야 말았다. 이런 뉴스다. “폭염 속 ‘여성 7만 명’ 분노… 광화문 집회 무엇이 달랐나.” 그리고 이어진 댓글, “저게 7만 명? 합친 몸무게 말하는 거지?” 아아, 정말이지 댓글은, 특히 네이버 댓글은 ‘길티’가 맞다. 익명성 속에서 무책임하고, 다양성 속에서 비윤리적이다. 네이버는 이런 범죄적 혐오 발언에 일말의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그보다, 나는 왜 이것들을 보고 있을까? 겨드랑이의 땀을 훔친 후, 손끝의 냄새를 굳이 맡아보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 이유를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그 손끝으로 스크롤을 내린다. 댓글부터 확인하러.
– 서효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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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른 거리를 밟아

바이크를 처음 탄 건 23살 때였다. 2008년, 8월. 당시 군인 월급이 코딱지보다 더 작았는데 그걸 2년 동안 안 쓰고 모아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비트>의 정우성이 따로 없었다. 혼다의 ‘에이프 100’과 함께라면 천안 어디든 활주로가 됐다. 천하의 벼락 맞을 놈이 훔쳐가지만 않았어도 그 오토바이를 지금도 계속 탔을 거다. 그렇게 몇 년을 뚜벅이로 지내다가 첫 월급을 타자마자 또 오토바이를 샀다. ‘서울은 주차도 힘들고 복잡하잖아’라며 구구절절 핑계를 댔지만,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오토바이는 베스파 구형 모델이었는데, 뭔가 에디터라는 직업과도 잘 어울렸다. 안전운행을 철칙으로 삼아도 결국 오토바이는 속도가 생명이라 자연스레 법규를 어기곤 했다. 교통체증에 발이 묶이면 갓길로 새치기를 하고 중국집 배달부처럼 차 사이로 칼치기도 했다. 아무 데나 세워놔도 견인하거나 딱지를 뗄 일이 없어 그야말로 무법자처럼 5년을 보냈다.

결국 사달이 났다. 밤늦게 홍대 근처를 달리다가 공사로 움푹 파인 도로를 못 보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는 피투성이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어디에 부딪힌 것도 아니고 혼자 넘어졌으니 보험 처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갈비뼈에 금이 갔고 병원비만 수십만원이 나왔다. 결국 오토바이는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처분했다. 그 뒤로 한동안은 엔진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칠 정도로 오토바이를 멀리했다. 프리랜스 에디터를 한 지 6개월 차, 취재가 있어 강남에 올 때마다 울화통이 터졌다. 이유는 신사역부터 강남역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공사 구간. 차들이 기어 다니다 못해 걷는 것보다 더 느리게 움직였다. 택시를 타고 30분 동안 강남역에서 논현역까지밖에 못 갔을 때, 그때 택시비가 무려 1만2천3백원이 나왔을 때, 다시 결심했다. ‘반대쪽 갈비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토바이를 타야겠다.’ 차 살 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월세살이도 서러운데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주차장에 모닝 한 대가 들어갈 틈은 없어도 신형 베스파 한 대가 딱 들어갈 만한 공간은 있었다. 결국, 그 난리를 치고 또 오토바이를 샀다. 아니, ‘당기면 나가는 맛’이 그리웠던 걸지도. 그래서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취재를 다닌다. 카카오택시 앱은 지운 지 오래다. 카카오 블랙인지 레인보우인지 알게 뭐람. 5천원어치만 주유하면 서울 시내 어디든 30분 안에 갈 수 있다. 신사역 공사 현장도 코웃음 치며 옆길로 우회해서 달린다. 역시 복잡한 서울에서는 오토바이가 최고다. 아, 다친 뒤로는 최대한 안전 운행하려고 노력 중이다.
– 박한빛누리(프리랜스 에디터)

게으르게 살 자유

매달 발간하는 잡지를 만들면서, 매달 마감을 하며 10년을 보냈다. 책에 일일이 담을 수도, 담고 싶지도 않은 수십 가지의 일을 다 해결하고 나면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달의 책을 만들기 위해 한 일을 모두 꼽아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 몇 날을 고민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일부터 클릭 한 번으로 1초 만에 끝나는 일까지, 여하튼 그땐 매일매일 할 일이 어디서든 솟아났다. 그날 할 일의 길고 긴 리스트를 만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우면서 절망과 희열의 시간을 오가며 어떤 게임에 중독되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후에야 드디어 마감 없는 삶을 살 용기가 생겼다.

일단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갔다. 거기서 꽃을 배웠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이라고는 꽃을 꽂는 게 전부인 날이 시작됐다. 어쩌다 수업이 없으면 심지어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날들. 할 일 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그때 당연히 그만뒀다.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데도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게 신기했다. 나는 지루한 걸 못 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웬걸, 10년 동안 몰랐던 자아를 드디어 찾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게 됐고, 그때부터는 한층 더 게으른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평화롭고 고요한 베를린의 분위기에 휩쓸려 더 천천히 걷고, 더 천천히 먹고, 더 천천히 생각했다. 일주일에 몇 번 꽃을 꽂는 시간 말고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종종 요가를 했고, 마음 내키는 대로 천천히 걷다가 마주치는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거실 창문을 열어놓고 소파에 누워서 구름이 지나가는 걸 가만히 봤다. 하루하루 그 게으른 시간이 흥미진진했다. 그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건 내가 사실은 믿을 수 없이 게으른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완벽히 익숙해졌을 때, 다시 서울로 왔다.

돌아온 서울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바쁘고, 모든 게 빠르다. 하지만 나는 베를린에서 그랬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 꽃을 꽂고, 남는 많은 시간에 특별한 뭔가를 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심지어 꽃도 천천히 꽂는다. 요가를 하고,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활짝 열 순 없지만) 소파에 누워서 창밖을 보는 시간도 여전하다. 이렇게 시간을 게으르게 보내는 데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게 들 때도 물론 있다. 여기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서 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니까. 하지만 다시 그렇게 바쁘게 살 생각은 여태 없다. 마음이 분주했을 땐 절대 보이지 않던,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찬찬히 보고 느끼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미 알아버렸으므로.
– 이윤주(플라워플리즈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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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음식의 칼로리

고칼로리 음식에 작별을 고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서른 살 이후로 무럭무럭 살이 올랐는데, 건강검진 결과 서른 살 때보다 몸무게가 15kg 늘었다. 검진 이후로도 더 찐 게 분명하지만 햄버거보다 체중계를 먼저 끊어서 현재 몸무게는 모르겠다. 작년에 입던 바지의 지퍼를 올릴 수 없을 만큼 쪘다는 것만 안다. 비만 공식 인증을 받고 나서 다이어트의 시급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음식 조절의 필요성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닥치는 대로 먹었다. 고칼로리 음식을 먹지 말자고, 내일부터는 먹지 말자고 다짐하며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었다.

20대 때는 몸무게를 관리했다. 과식하면 먹은 만큼 뛰었고, 안 먹어도 무작정 걸었다. 차가 없어서 걸었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좋아서, 또 노을이 아름다워 한참을 걸었다. 감성은 서서히 지방으로 변해갔다. 업무 스트레스는 음식으로 풀었다. 의자에만 앉아 있는 시간이 나날이 길어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 의자에 앉아 컴퓨터만 한다. 의자에는 바퀴가 달려서 어디든 갈 수 있다. 사실상 다리는 화장실 가거나 점심 먹으러 갈 때 빼고는 딱히 쓸 일이 없다. 야근도 잦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팩트는 야근 시 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당분이다. 밥은 연료다. 빠른 차가 고급유를 많이 먹듯이, 많이 일하려면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야식 먹는 법은 간단하다. 번거롭게 의자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다. 앱으로 주문하면 삼십분 뒤 내 책상으로 배달된다. 빅맥세트 라지와 아메리카노, 맥너겟이 책상에 ‘뿅’하고 생긴다. 이게 마법이 아니라면 세상에 신기할 게 하나도 없겠다.

고칼로리 음식의 특징은 섬세한 배달 서비스다. 나 같은 비만인들이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소모할까봐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지방을 축적할 수 있게 도와준다. 피자, 치킨 그리고 그것들을 질리지 않게 해주는 윤활제 콜라를 곁들인다. 살찌려고 먹는 것은 아니다. 브레인에 부스트 효과를 주어 더욱 열심히 일하기 위해 먹는다. 잘 살려다 보니 살만 쪘다.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탄수화물 끊고 바나나만 먹고 있다. 지난달 회사 앞에 치킨집과 고깃집이 개업했는데, 저녁이면 사무실로 냄새가 들어온다. 그럼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치킨의 바스락거리는 튀김옷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나나로 허기를 달랜다. 매일 바나나를 한 송이씩 먹고 있다. 이제 바나나는 뭘로 끊어야 하나 고민이다.
– 조진혁(<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로맨스의 추억

시시한 로맨스물은 드라마도, 영화도 안 보는 편이다. 나는 어떤 콘텐츠든 잘 만든 게 좋다. B급 좀비 영화는 영화대로,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대로, 독립영화는 영화대로 완성도 높은 것이 좋다. 그런데 그 ‘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무작정 끌리는 장르가 몇몇 있는데 홍콩 로맨스 영화다(그 다음으로는 일본 청춘 영화쯤 되려나).

홍콩 영화 세대는 아니다.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소비하는 10~20대 시절,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이미 홍콩 영화는 찬란한 한때를 남기고 몰락한 후였다. 영화는 보고 싶지만 청소년의 사정으로 볼 수 없는 영화는 많았던 그때에는 영화를 책으로 읽곤 했다. 영화 잡지와 책, 홍콩 영화 세대였던 이른바 ‘씨네필’이 남긴 저작물에는 홍콩의 향기가 가득했다. <영웅본색>을 보지 못했지만 그 영화 속에서 주윤발이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인다는 것, <천장지구>의 오천련은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사이 그들의 추억은 어느새 나의 추억으로 ‘인셉션’이 되어 내 한구석에 자리 잡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묘한 끌림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문화를 담당하는 에디터인 나는 항상 봐야 할 영화가 너무나 많다. 영상미와 스토리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가는 요즘 영화들을 제치고 촌스럽고도 촌스러운,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도 희미해져 가는 홍콩제 로맨스 영화를 아직도 보고 있다.

장국영, 금성무, 장백지, 유덕화 등은 스크린 속에서 여전히 청춘으로 살아 간다. 원영의가 남장 여자로 활약한 <금지옥엽>이라거나, 금성무의 순애보를 그린 <심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중 하나였던 장백지를 절절하게 사랑하는 ‘영혼’이 등장하는 <성원>이라거나 여명과 서기가 만나고 헤어진 <유리의 성> 같은 영화들.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에는 다른 영화에 끌려서 비디오로나 볼까 말까 했던 영화를 요즘은 무심히, 때로는 유심히 한참을 보곤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보니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때의 그 정서가 좋다. 막장 코드도 없고, 과도한 콘셉트도 없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자연스러움이. 여전하면서도 지금과는 그 정서가 사뭇 다른 홍콩의 풍경이. 어쩌면 사라져간 모든 것들이.
–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 

    에디터
    허윤선
    일러스트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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