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라면 꼭 가봐야 할 홍콩 맛집
사람들이 가끔씩 묻는다. 왜 이렇게 홍콩을 자주 가냐고. 이렇게 되물어본다. 홍콩 음식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이 홍콩을 방문하진 않았을 거라고. 잠들지 않는 도시 홍콩. 마찬가지로 홍콩의 맛 역시 결코 잠들지 않는다.
홍콩 누들 로드
홍콩에 갈 때면 조식을 예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텔에서 한걸음만 나가면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가득하고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하니까. 홍콩에 머물 때면 하루쯤은 센트럴과 셩완 사이에 위치한 란콰이퐁 호텔을 예약한다. 이곳은 쇼핑을 하기에도 좋지만 센트럴과 셩완 지역의 미식을 즐기기에 최고의 위치기 때문이다. 센트럴 지역에 숨어든 스피크 이지 바를 투어하는 바 호핑까지 모든 것이 도보로 가능하다. 물론 술이 과해 가파른 언덕길에서 구르고 넘어져 새 구두를 찢어먹는 후배도 있었지만 말이다. 란콰이퐁 호텔에 머물 때, 나는 아침 9시쯤 친구를 재촉하며 지금 당장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 바로 뒤편이 그 유명한 싱흥유엔과 카우키(구기우남)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침이라 카우키는 폭풍 전야처럼 한산했다. 하지만 한두 시간 후면 양조위도 좋아한다는 소고기 국수를 먹기 위해서 줄이 족히 100미터는 늘어선다. 대신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싱흥유엔을 선택했다. 이곳은 연유를 바른 번과 토마토 국수, 밀크티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이면 홍콩 사람들, 경찰 아저씨들까지 앉아서 토마토 국수를 들이켠다. 달걀, 베이컨, 소시지, 스팸 따위를 고명으로 더할 수 있는 토마토 국수는 국수에 홀토마토 통조림을 푼 시큼한 맛이지만 묘하게 매력이 있다. 그럼 카우키는 언제 먹냐고? 아무리 식탐이 많은 나지만 홍콩의 여름 더위 속에 100미터나 되는 줄을 설 자신은 없기에 ‘테이크아웃’을 외친다. 입구에 붙은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면 5분 만에 입구를 동여맨 국수 그릇이 턱 나온다. 부드러운 소고기 사태 국수와 매콤한 카레 도가니 국수가 맛있다. 양조위도 사실은 테이크아웃을 해서 먹는 거라고 홍콩 친구가 말했다. 카우키도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국숫집은 틴하우 역에 있는 시스터와(Sister Wah)다. 여기도 줄을 서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훨씬 친절하고 깔끔한 맛인 데다 소양이라거나 무, 힘줄 부분을 추가할 수 있어서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늘 뉴발란스를 신은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고 “롱 타임 노 씨”라고 인사할 정도. 요즘 왜 뜸했냐, 한국으로 돌아간 거냐고 가끔 묻는데, 사실 한국에 살고 홍콩엔 가끔 올 뿐이라고 차마 말을 못했다. 홍콩에 왔는데 완탕 누들을 안 먹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홍콩의 완탕은 웬만하면 다 맛있으니 굳이 찾지 말고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먹기를. 그럼에도 유명한 곳을 찾는다면 막스누들, 침차이키, 호흥키 등을 찾아가보길. 홍콩의 누들 로드는 이 밖에도 계속되는데, 최근 몇 년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운남식 국수도 그중 하나다. 맵고 시큼한 국물에 동그랗고 탄력 있는 쌀국수를 넣은 운남 미시엔은 홍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싱럼쿠이(성림거)가 운남국수로 유명한 곳. 맵기와 신맛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는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대개 ‘신맛 없음’을 선택하지만 운남국수다운 맛을 즐기고 싶다면 맵기는 어떻든 신맛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곳곳에 체인을 갖고 있는 탐자이, 탐자이 삼거 국수를 더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탐자이에는 오이 무침, 목이버섯 무침, 피단 무침 등 국수 외에도 간단한 사이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운남국수까지 섭렵했다면 다음에는 홍콩 카트 누들과 피시볼 누들을 경험해보길. 홍콩은 갈지 않고 으깨는 방식으로 만든 홈메이드 어묵이 유명한데, 피시볼 누들은 바로 그 어묵을 넣은 국수다. 애버딘 피시볼 앤 누들 등에서 애버딘 지역의 어부들이 즐겨 먹던 신선한 어묵을 곁들인 누들과 조주식으로 자잘한 굴을 넣어 만든 콘쥐를 맛볼 수 있다. 1950년대 홍콩을 휩쓸던 카트 누들은 복고풍 바람을 타고 다시 인기를 누리는 중인데, 옛 홍콩에서 카트, 즉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팔던 국수를 말한다. 우리나라 분식집처럼 간단한 식사 거리로 좋다. 육수와 국수를 고르고 원하는 토핑을 얹으면 완성된다. 홍콩에서도 떠오르는 동네인 사이잉푼에 위치한 하이 스트리트 카트 누들은 여고생들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후루룩먹고 가는, 바로 그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홍콩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면 좀 더 모험심을 발휘해보길. 아침 식사로 광동식 죽 ‘콘쥐’를 먹는 건 어떨까? 셩완에 위치한 상기 콘쥐는 신문을 보며 아침 식사로 콘쥐를 먹는 홍콩인들 사이에서 진짜 광동식 죽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신선한 생선살과 돼지 내장 등 다양한 죽을 판매한다. 이 죽을 한번 맛보면 왜 홍콩에서는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아도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아침 시간이 여유롭다면 전통식 찻집에 가보길. 딤섬은 본래 아침식사로 먹던 것이라, 아침 일찍부터 딤섬이나 볶음 국수 등을 차와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 어디서나 보이는, 창가에 즐비한 닭, 오리, 거위 바비큐도 맛보길 권한다. 한국에도 좋은 중식당이 많지만, 홍콩 어디에서나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광동식 바비큐를 먹는 건 여전히 어려우니까(있더라도 매우 비싸고 양이 적다). 돼지고기, 거위, 오리 제각각 맛이 다르기에 1가지 또는 3가지를 밥 위에 올린 덮밥 메뉴가 흔하다. 모험가라면 오리 혀, 근위, 선지 등의 특수 부위를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진짜 로컬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몽콕이나 삼수이포에 가보기를. 홍콩의 임대료가 점점 인상되면서 완차이, 셩완, 사이잉푼은 점점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몽콕, 삼수이포는 옛 홍콩다운 모습이다. 단, 이곳에서 영어와 영어 메뉴는 기대하지 말기를. 그러다 보면 문득 옆 자리에 주윤발이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몽콕에서 특히 자주 목격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가 옆에 있어도 눈치 채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파산을 해도 한번쯤 경험해봐야 할 파인 다이닝
탕코트, 서머팰리스, 렁킨힌, 틴렁힌… 이 이름이 익숙하다면 아마 당신은 광동식 정찬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홍콩 사람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정통 광동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파인 다이닝 리스트는 20개쯤 적을 수 있다. 물론 이 레스토랑은 비싸기 때문에 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장국영 역시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푹람문(Fook Lam Moon)의 음식을 좋아하지만 매일 갈 수는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인테리어, 맛, 서비스와 분위기를 모두 찾는다면 더 페닌슐라 홍콩의 레스토랑 스프링 문(Spring Moon)을 권한다. 청나라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홍콩의 광동식 레스토랑 중에서도 가장 정통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비밀 조리법으로 만들어지는 XO 소스도 유명하다. 손님들 대부분도 나이가 지긋한 홍콩 어르신인 데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덕분에 옛 홍콩을 엿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프랑스 레스토랑이 와인 리스트에 신중을 기하듯 고급 광동 레스토랑은 차 리스트에 심혈을 기울인다. 티 소믈리에가 존재하고, 식사 내내 티팟이 비워지지 않게 딱 좋게 우려낸 티를 계속 따라준다. 차를 고르는 건 정말이지 와인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데 스프링 문에서는 와인 페어링처럼 티 페어링이 가능하다. 차에 흥미가 있다면 티 페어링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에 맞게 계속 바뀌는 다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는 고기와 버섯, 콩으로 속을 채운 오리 요리, 찻잎으로 훈제한 크리스피 치킨이다. 반 마리 기준 각각 460홍콩달러, 280홍콩달러로 2인이 먹고도 남는 넉넉한 양이다. 그 외에 딤섬과 요리,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 6코스 딤섬 세트 런치가 550홍콩달러, 6코스 테이스팅런치 코스가 750홍콩달러다. 한 번의 식사로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레스토랑을 나설 수 있다.
광동식을 좋아하지 않거나, 아직 홍콩 음식에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들은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것으로 여행의 추억을 만들곤 한다.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애프터눈 티라는 것을 먹어보자!’며 향한 곳도 이곳이었다. 리츠칼튼 홍콩의 카페 103, 어퍼하우스 호텔의 카페 그레이 디럭스의 애프터눈 티 세트도 유명하지만 홍콩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페닌슐라 홍콩의 애프터눈 티는 늘 줄을 설 정도로 인기다(투숙객에 한해서만 예약할 수 있다). 세월이 느껴지는 은식기와 삼단 트레이에 담긴 애프터눈 티는 늘 그대로의 맛이다. 페닌슐라만의 블렌드 티를 선택할 수 있는데, 발로나 초콜릿 조각이 느껴지는 초콜릿 드링크도 별미다. 페닌슐라 홍콩의 주방에는 은식기만 다루는 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은식기에 담긴 애프터눈 티는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또한 추석 시즌에만 선보이는 선물용 월병은 홍콩 사람들에게 명물로 손꼽히니 이 시기 홍콩을 방문했다면 꼭 맛보기를. 헬리콥터로 홍콩 섬을 한 바퀴 도는 헬리콥터 투어 역시 홍콩의 숨은 즐거움 중 하나인데,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것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클래식한 매력의 객실, 고풍스러운 공간에서의 아침식사와 헬리콥터 투어 등을 포함한 플라이 하이 패키지를 권한다.
다양한 세계의 맛
만약 가이세키 요리를 좋아한다면 홍콩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 가장 정통의 가이세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또한 수준 높은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홍콩은 프랑스인의 거주 비율이 높아 파인다이닝뿐만 아니라 셩완, 완차이 등의 골목골목에서 맛있는 프랑스 가정식과 치즈 등을 쉽게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포시즌스 홍콩의 카프리스는 셰프의 어머니가 프랑스에서 직접 기른 토마토부터, 싱가포르인 아내에게서 영감을 받은 듯한 락사 소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주류세가 없는 홍콩이기 때문에 와인도 우리나라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하다. 식사를 마치고 위장에 여유가 있다면 모둠 치즈를 먹겠다고 해보길. 4인용 식탁보다 더 큰 돌로 만든 플레이트 위에 20여 종의 치즈를 만나게 될 것이다. 색깔도 모양도 물론 맛도 다른 치즈들이 마치 융단 위의 까르띠에 반지처럼 놓여 있다. 1년에 몇 덩이 만들지 않는다는 치즈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그 치즈를 홍콩까지 가져온 것일까? 치즈 장인을 협박이라도 한 걸까? 확실한 건 프랑스 산골짜기에 가지 않고 아시아에서 이런 치즈 컬렉션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당신처럼 부자가 아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때로 형벌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맛있는 걸 많이 아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많이 아는데!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한 나 역시 한 끼에 5만원에서 20만원을 호가하는 돈을 지불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홍콩을 방문하면 한 번쯤, 두 번쯤은 기꺼이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한다. 음식이 주는 기쁨과 황홀을 만나기 위하여. 미식은 우리의 오감을 총동원한 감각으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 중 하나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니까.
홍콩에서 미식을 즐기는 법
홍콩에서 진짜 맛을 찾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오픈라이스 홍콩의 오픈 테이블. 홍콩 사람들이 바이블이라고 말할 만큼 홍콩에서 먹고 사는 것의 모든 것이 이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 등재되지 않은 곳은 홍콩에 있는 곳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한다. 사용자들의 리뷰와 별점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홍콩 친구는 별점 4개 이상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본다고 할 정도.
미쉐린 가이드 홍콩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신뢰도는 아시아에 진출한 미쉐린 가이드 중 가장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미쉐린의 별을 받은 곳은 수준 높은 다이닝임이 분명하고, 등재된 곳은 한번쯤 가볼 만한 로컬 맛집인 경우가 많다.
럭스 가이드 손바닥만 하게 착착 접히는 럭스 가이드는 무엇보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낸다. 선별된 정보만 소개해 바쁜 출장 여행자와 고급 취향의 여행자에게 사랑받는다. 시간 낭비 없이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것만 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럭스>의 심미안을 신뢰해도 좋다.
정대리의 홍콩 이야기 비슷비슷한 곳에서 비슷비슷한 여행을 하는 수많은 네이버 블로그에 질렸다고 해도 이곳은 예외다. 홍콩관광청이 직접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로, 여행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저렴한 맛집을 자주 소개한다.
-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HKTB, Coolaspect, The Peninsula Hong Kong, Four Seasons Hotel Hong 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