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슈트를 입을 수 있어서, 여자라서 행복해요!
슈트가 실루엣을 드러내고 몸을 긴장시킬 때 한층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입으면 된다.
패드를 두 개 이상 넣었을 법한 어깨 라인에 오버사이즈 슈트를 입은 여인을 보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아니, 당당한 것도 좋고, 남녀평등도 좋고, 젠더리스도 다 좋은데 말이야. 그냥 여자의 장점을, 그 실루엣을 살려서 옷을 입으면 안 되는 거야?” 최근 사회적으로 젠더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됨에 따라 옷차림이나 태도 등의 관념에서 퍽 자유로워졌는데, 오히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겠다고 ‘투머치’하게 행동하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같은 세력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패션 디자이너들은 슈트를 만들어도 다르다. 하긴 당당함이 그저 넓은 어깨 라인이나 낙낙한 품으로 완성될 일이었다면 1966년 입생로랑이 선보인 전설의 슈트 ‘르 스모킹’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성의 턱시도 정장을 여성의 몸에 잘 맞게 재단해 소개한 르 스모킹은 벨벳이나 새틴 소재를 사용하고 시어한 소재의 블라우스를 매치해 여성의 장점을 부각했다. 팬츠가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케 한 대신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 몸을 긴장시켜 그것 자체로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다시피, 이번 시즌 관능적인 포인트로 힘을 드러내는 슈트가 주목을 받는다. 언제나 모던한 실루엣과 조형미, 컬러 매치에서 해답을 찾는 사라 버튼은 2018 가을/겨울 알렉산더 맥퀸 컬렉션을 통해 볼륨 숄더, 잘록한 허리, 매끈한 각선미가 돋보이는 팬츠 슈트를 소개했다. 실루엣의 대비가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재킷 아랫단에 잘린 듯한 디테일, 그 안에 검은색과 대비를 이루는 강렬한 빨간색 안감이 시선을 자극하며 여성의 관능미와 힘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르 스모킹과 같이 턱시도 스타일의 이브닝 슈트를 선보인 것은 샤넬이다. 다른 점은 벨벳 대신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트위드 소재를 사용한 점, 속이 비치는 블라우스 대신 두터운 머플러를 친친 둘러맸다는 점이다. 뾰족한 앞코의 레이스업 구두와 양쪽 귀와 팔에 두른 실버 액세서리만이 그녀의 여성성을 잊지 않고 설명하는 듯한데, 이 모든 조화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애티튜드와 어우러져 쿨하고 멋져 보였다. 한편 관능의 왕이요, 글램의 형제인 톰 포드는 이번 시즌 역시 파격적인 글램 룩 카드를 꺼내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층 페미닌한 요소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모델들이 착용한 헤어밴드는 물론, 보다 유려해진 실루엣, 각양각색의 패턴, 특히 ‘푸시 파워(Pussy Power)’라고 레터링 장식한 가방과 신발은 톰 포드만의 페미니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스커트 슈트와 원피스나 코트 형태의 테일러드 슈트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알렉산더 왕은 슈퍼 아이콘인 모델 카이아 가버에게 테일러드 원피스를 입혔다. 아래로 누운 칼라에 일렬로 배치된 단추는 단정한 느낌이었으나 살이 비치는 검정 스타킹, PVC 소재 샌들과 매칭은 무척 새로운 분위기를 선사했다. 칼라와 브라톱, 소매 부분을 패턴으로 나누어 디자인한 재킷(실루엣을 극대화하는 페플럼까지!)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매치한 톰 브라운의 스커트 슈트는 하얀 양말과 구두를 함께 연출해 고전적인 분위기와 전위적인 분위기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줄타기를 했다. 그 밖에 채도가 높은 레드 컬러의 자카드 패턴으로 장식한 팬츠 슈트를 선보인 돌체앤가바나는 골드 액세서리와 망사 스타킹, 빨간 입술, 골드 체인백까지 더해 조금 과한 듯했으나 명확한 관능의 힘을 보여주었고, 에르뎀은 꽃무늬 재킷과 슬릿 스커트 사이 도트 패턴 스타킹으로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우아하고도 세련된 여성의 모습을 연출했다. 아무튼 맥퀸의 여인도 에르뎀의 여인도 찬 바람과 함께 성숙하게 여물어가는 완연한 슈트의 계절이다.
- 에디터
- 김지은
- 포토그래퍼
- Indigital Media, Courtesy of Antonelli, Chanel, Emporio Armani, Isabel Marant, Monica Vinader, Sonia Ryk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