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구찌, 프라다의 성공비법
과거에서 답을 찾아 미래를 향한 활로를 모색하는 하우스 브랜드의 오늘. 시그니처를 향유하며 더 큰 내일의 패션을 기대한다.
현재 패션계는 한 디자이너의 철학이나 실력으로 유지되기보다 탄탄한 경영 프로 세스를 바탕으로 한 기업의 비즈니스에 의해 성장한다(물론 스타 디자이너의 발 굴과 행보는 중요하다). 간혹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상충하는 퍼포먼스, 대 중이 외면하는 사업 등은 잔인하리만큼 냉정하게 정리되는 것이 이 필드의 현실 이다. 하루아침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는 패션 하우스의 상황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루 앞날도 예측할 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패션계에서 갈수록 지갑을 꽁꽁 싸매는 고객, 진부한 아이디어에 등을 돌리는 밀레니얼 세대 의 패션 피플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과거 에서 답을 찾다’이다. 하우스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형성했던 시그니처를 다 시 들춰내는 것. 그것을 현대의 감성으로 버무리고 새로운 것과 믹스해 비슷하지 만 전혀 다른 것을 창조하는 것. 현재 패션 하우스는 이것을 얼마나 잘하고 못하 는지에 따라 브랜딩의 척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베르사체를 이끄는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오빠 지아니 베르사체가 이뤘던 베르사체의 영광을 깊이 연구했다. 이번 시즌 선보인 다양한 원색과 이국적인 패 턴이 믹스된 칵테일 드레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술을 장식한 드레스는 각종 입 체 재단과 랩 스타일 등 디테일을 더했다. 허리 부분은 지아니 베르사체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크풍 메탈 장식을 더한 벨트로 조였다. 컬렉션 중간중간 대문자로 쓴 베르사체 레터링 로고 역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베르사체의 전성기를 보는 듯 관능과 유머가 모두 느껴진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2000년 중반에 중단한 이후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스포츠 라인 리니아 로사의 시그니처, 빨간 고무 로고를 부활시켰다. 초창기에 선보인 나일론 소재, 역삼각형 로고와 함께다. 아울렛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아이템들이 버젓이 런웨이를 장악했다. 레트로 패션 트렌드의 흐름에서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다. 스타일링 역시 베트멍의 스타일리스트로 잘 알려진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와 협업으로 진행해 더 큰 관심을 모았다. 로고 재사용이라면, 펜디의 더블 F, 구찌의 더블 G, 샤넬의 더블 C 역시 모범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펜디는 이번 시즌 더블 F, 즉 주카라 불리는 클래식한 패턴을 이용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요즘 의상을 소개했고,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힙스터들이 입을 만한 중성적 코드의 의상을 내놓았다. 칼 라거펠트가 샤넬을 위해 창조한 무수히 많은 더블 C의 변주를 우리는 옷과 가방, 액세서리를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그뿐 아니라, 17년간 버버리를 이끈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그의 마지막 버버리 컬렉션에서 클래식한 버버리 격자무늬와 헤리티지 로고를 전면에 내세워 기본적이고도 완성도 있게 끝인사를 전했다. 기존 하우스가 보다 쿠튀리에였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시즌 뎀나 바잘리아가 이끄는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여러 겹 겹쳐 입은 듯한 코트의 실루엣은 1950년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선보인 풍성한 실루엣의 이브닝 코트와 닮아 있다. 건축적인 실루엣으로 마법과 같은 재단을 보여주던 그의 노하우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카이브를 통해 잘 보존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듯 시그니처는 익숙함, 그리움이라는 친숙한 감정과 함께 언제 꺼내보아도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과거로 회귀가 아닌, 과거에 현재가 더해진 미래로 가는 열차이기에 가능하다. 열차는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아름다운 것을 탐닉하지만 쉽게 질려 하는 탑승객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고자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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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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