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목소리, 정승환
다시 겨울이다. 정승환의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반갑게도 매일 밤, MBC FM4U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다>에서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그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오늘 들을 음악을 고르는 일은 작은 행복감을 준다. 선곡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 는 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으니까.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가을의 잎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정승환의 노래를 듣는다. 사람들은 그를 ‘신승훈, 성시경, 나윤권, 규현’을 잇는 ‘발라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해 정승환은 정규 앨범<그 리고 봄>, 드라마 <나 의 아저씨>와 <라이프>의 OST 그리고 방송에서 부른 기타 음원 3곡으로 감미로운 노래들을 선보였다. 3월과 5월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는데, 12월에 또 한번의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바쁜 한 해를 보낸 그가 MBC 라디오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 다>의 DJ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제 매일 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라디오 DJ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일명 ‘숲디’죠.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스럽지 는 않았나요?
물론 부담감이 컸어요. 라디오 DJ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맡는 거라고 생각했거 든요. 저는 나이도 어리고 아는 것도 많지 않고요. 그런데 일단 몇 개월 해보니 재미 있어요. 새벽 1시 방송이라 웃고 떠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요. 조용히 사람들 의 이야기를 듣고, 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기도 해요. 처음보다는 조금씩 자연스 러워지고 있습니다.
좋은 DJ가 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요?
라디오를 시작하기 직전에 전설로 불리는 라디오들을 다시 듣기 했어요. 요즘은 유 희열 대표님의 라디오를 듣고 있죠.
라디오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찾아 듣기보다는 제가 속한 공간에 늘 라디오가 자연스레 틀어져 있었어요. 학교 등 교하기 전에 어머니께서 부엌에 라디오를 틀어놓으셨거든요. 학교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요. 누나들이 과거에 슈퍼주니어의 팬이어서, ‘키스 더 라디 오’를 들었던 기억도 많아요.
DJ를 해보니 가장 재미있는 점은 무엇이에요?
물론 녹음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니 마치 직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MBC 출입증도 나왔고요.(웃음) 매일 같은 시간에 불특정다 수를 만난다는 자체가 저한테는 흥미로운 일이에요. 다양한 사람의 사연을 들으면 서 많은 걸 깨달아요.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다들 비슷하면서도 다 르게 살아가는구나’ 하고요.
많은 청취자가 정승환의 목소리에 위로를 받는다고들 해요. 반대로 정승환이 큰 힘을 받을 때는 언제인가요?
때때로 청취자들이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들 해주세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별거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니, DJ는 정말 좋은 직업 같아요. 어쩌면 모두가 이야기 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싶어서 긍정적인 책임도 갖게 됐고요.
새벽 한 시 방송이에요.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나요?
원래 깨어 있을 시간이에요. 저에게는 한창 뭔가를 시작할 때죠. 원래 야행성이라 대 부분 해 뜨는 걸 보고 잠이 들어요. 집에서는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영화도 보면서 뒹 굴뒹굴 놀아요. 밖에서는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요. 아 !물론 음악을 열심히 합 니다. 작업실에 주로 있어요.
라디오 DJ 소개란에 ‘야행성이다’라는 말 외에도 ‘뭔가 적는 걸 좋아한다’라고 써 있었어요. 대체 뭘 적는 거예요?
일기는 아닌데,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둬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휴대 폰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어요. 나름대로 현재 정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들 을 적어두는 거죠. 일상을 열거하는 일기와는 또 달라요. 시처럼 쓰고 있어요. 이때 가 가장 집중력이 좋은 시간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일 중 하나예요.
기록을 즐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사진 앨범을 펼쳐놓고 이날 뭘 했지 하고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각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거예요. 이맘때쯤에는 내가 우 울했구나, 행복했구나, 마음의 표정을 볼 수도 있어요.
일상에서는 무엇을 좋아하나요?
요즘 복싱에 푹 빠졌어요. 어릴 때 잠깐 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어요. 재미도 있고 스트 레스도 해소되고요. 맥주를 마시면서 혼자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물론 여유가 있으면 여행 을 떠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와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할 때는 ‘치밀한 계획파’인가요, 아니면 ‘무계획파’인가요?
치밀한 무계획파입니다. 말 그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가요. 저만의 여행 철칙도 있어요. 사람 이 많을 것 같은 관광 명소는 절대 가지 않아요. 시야에 높은 빌딩이 3채 이하인 곳에만 가죠.(웃음)
정승환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요?
자연과 사람이요. 직접적인 음악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주는 사 람들이 있어요. 안테나 뮤직 식구들이 그래요. 꼭 아티스트가 아니라 직원분들에게서 영감을 얻 기도 하고요. 뮤지션 중에는 유승우나 ‘눈사람’을 쓴 작곡가 제휘와도 친해요. 서로 많이 안다 고 생각하지만,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처음 좋은 음악을 접하게 된 게 누나들 덕분이었다면서요?
어릴 때부터 작은 누나의 취향이 남달랐어요. 듣는 음악이나 보는 영화 같은 것들이요. 어깨 너 머로 영향을 받으며 자랐죠. 고등학교 1 학년 때 라디오헤드의 ‘Surprised’의 전주를 듣고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군가를 흉내 내고 싶어졌고요.
뮤지션으로 성장하며 무엇이 가장 달라졌어요?
그때보다는 노래를 잘하게 됐죠. 아는 음악도 많아졌고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주변에 음악을 하는 동료들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데 개인의 역량만 작용한다고 생각하 지 않거든요. 음악을 함께 만드는 스태프들과 동료들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유희열 대표님은 조언에 항상 열려 있어요?
‘조언왕’이에요.(웃음)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를 함께 고 민해주세요. 항상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시죠. 오히 려 그걸 경계하세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시는 거죠. 이건 제작자가 갖기 힘든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 외적으로 배우는 점도 많아요.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예요?
아무래도 좋은 피드백을 들을 때죠. 공연장이 꽉 차 있을 때도 기쁘고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다 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닿을 때도 좋아요.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느껴질 때요.
차트의 순위가 좋을 때는요?
당연히 좋죠! 아무래도 앨범을 발매하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주 차트를 열어보게 돼요. 한 시 간 주기로 계속 열어보는 제가 싫을 때도 있어요. 오기로 일부러 안 볼 때도 있고요.
요즘 정승환의 플레이 차트 1위는 뭐예요?
영국 가수인 폴 부캐넌의 ‘Mid Air’요. 영화 <어바웃타임>의 OST로 쓰인 곡이에요. 폴 부캐넌의 목소리를 굉장히 좋아해요.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요. 어떤 계획이 있나요?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동안 연세대학교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그동안의 공연을 통해 제가 마냥 진중하고 묵직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렸어요. 너스레도 잘 떨고요, 지난 공연에서는 춤도 췄어요. 이번 공연에서도 다양한 교태와 잔망스러움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성격과 음악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저는 참 유쾌하고 쾌활한 사람입니다! 콘서트에 오시면 종잇장처럼 가벼운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3일 모두 같은 가벼움은 아니니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유독 정승환의 새 앨범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음 앨범은요?
지금도 계속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곡도 쓰고 있고요. 좋은 곡이 생겼을 때 얼른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이거다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앨범을 낼 생각이에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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