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ddenly at night
지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우상>의 배우로 참석한 천우희. 낮에는 레드카펫을 걸었던 이 배우는, 밤에는 톰 포드 뷰티의 센슈얼 룩을 입고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이 내린 베를린을 걸었다. 순간적인 몰입과 집중. 그녀는 매번 그렇게 한다.
베를린에서 작별 인사를 한 게 두 달 전이었죠.
2월 중순이었죠? 정말 시간이 금방 갔어요. 지난주 같은데요.
베를린, 또 가고 싶은 곳인가요?
정말 또 가고 싶어요. 분위기도 그렇고, 베를린은 낯선 곳이라서 불편한 게 아니라 낯설어서 더 좋은 곳이었어요. 초반에는 드레스 입는다는 생각 때문에 잘 못 먹었는데, 영화제가 끝나고 화보 촬영도 하고 자유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또 ‘톰 포드 뷰티’와 함께 화보를 찍었죠. 밤의 광장을 누비면서요.
한밤중에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찍는 것도 무척 즐거웠어요. 어떻게 나왔을지 너무 궁금해요.
영화 <우상>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우리가 거기서 만나게 된 거죠. 호텔에 머무는 동안 설경구 배우를 비롯해 영화팀을 자주 마주쳤는데, 그 설렘과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영화제 전까지 감독님이 편집본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영화를 베를린에서 처음 본 거예요. 촬영 기간도 길었고, 후반 작업도 길어서 오랫동안 기다려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영화 때보다 설렘이 컸어요. 이제야 뭔가 세상에 나오는구나 싶기도 하고.
배우들은 어떨 때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나요?
관객들 반응도 크고요, 또 본인 스스로 만족감이 크면 뿌듯한 것 같아요. 예전엔 관객들 반응 위주로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과정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이수진 감독과 <한공주> 이후 두 번째 만남이기도 했어요. 반가운 재회였나요?
아주 많이요. 감독님 영화로 제가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 보답하고 싶은 맘도 컸고, 욕심이 있었어요. <우상>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잘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감독님은 <한공주> 이후 제게 다시 작품 하자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었어요. 그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정말 감동했어요. 줄곧 기억을 하고 계셨던 거니까.
아무래도 좀 더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가 한 시간이 지나도 당신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하하. 제 지인들도 다들 언제 나오냐고 궁금해했어요.(웃음)
한 시간을 걸려 만난 ‘최련화’는 많은 외신이 찬사를 보낸 것처럼 강렬한 인물이었어요. 동물적이기도 했지요. 개봉이 마무리된 지금 시점에서는 인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한 마리의 짐승이죠. 본인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당해왔고, 되갚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배운 거겠죠? 독특하기도 하고 본 적 없는 막강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분량을 떠나 ‘임팩트’가 커서 제 역할을 많이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저도 영화를 세 번 넘게 봤는데 볼 때마다 인물의 포인트가 달라지긴 했어요. 보면 볼수록 생각하는 부분도 달라지고요.
각자의 욕망과 그 밑바닥을 그린 영화잖아요.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제 자신의 욕망을 많이 돌아봤죠. 하하하. 제겐 우상이랄 것이 따로 없었어요. 종교도 없고, 좋아했던 아이돌도 없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절 돌아봤거든요. 우상화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배우라는 직업이 제일 크고, 연기가 제게 너무 큰 부분이긴 한데, 또 그것이 온전히 1번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게 1번이면 너무 괴로울 것 같고…, 이 직업에 지치거나 환멸을 느껴서 오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우상은 지금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큰 건 물론 연기긴 해요. 개인적인 욕망으로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언제쯤 알게 될 것 같아요?
죽을 때, 눈 감기 전에.(웃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돌이켜볼 것 같아요.
‘최련화’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는 인물이에요. 실제로는 어떤 쪽인가요?
자책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앙갚음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려다가 몸이 더 아플 타입이에요. 용서까지는 아닌데 관심 자체를 끊는 것 같아요. 나의 에너지를 쏟기도 싫으니까.
작품을 고를 때에는 머리와 가슴 중에 어느 쪽을 따르나요? 고른 후에 후회한 적도 있어요?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인기와 흥행과 나은 기회를 위해서는 이걸 해야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매번 옳은 선택이라고 믿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 같고요. 확신을 가지면서 했던 선택들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더라고요. 어떤 선배님이 그때의 너는 옳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마음에 와 닿았어요. 또 <우상>에서 선배들을 만나면서 조급함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아요. 나 스스로 의심하고 조급하고 불안했던 것들이 누구나 겪는 일이고, 겪을 나이구나 싶으면서 좀 더 여유로워졌어요.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 영화였는데, 궁금한 건 없었나요?
감독님께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으세요.(웃음) ‘련화’는 전사가 많지 않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여쭤보면 항상 대답이 똑같았어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감독님 성향 자체가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으세요. <한공주> 때도 그랬었어요. 영화는 예술이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잖아요.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또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의문이 있는 작품을 저도 몇 번 해봤는데, 그때마다 관객분들의 해석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배운 점도 많고요.
<우상>이 어떤 작품으로 남았어요?
저를 돌아보게 만들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요. 좋다, 나쁘다는 아니고 어떤 자세로 작품에 임해야 하는지 재정비를 한 기분도 들고요. 제겐 <한공주>가 굉장한 의미이기 때문에 이수진 감독님의 두 번째 영화라는 것도 중요했어요.
소속사 홍보팀에 연락하면 항상 작품 촬영 중이에요. 지금도 새 작품 촬영 중이고요.
영화를 자주 하고 있고, 장기 프로젝트를 되게 많이 했어요. <곡성>도 2년, <우상>도 2년, <한공주>도 2년.
쉬지 못하는 성격이죠?
항상 휴식의 중요성을 누누이 이야기하긴 하는데.(웃음)
그 휴식이 한두 달이면 되는 것 아니에요? 다른 배우들은 1년, 2년도 쉬는데요.
그렇죠. 하하. 한두 달 그 이상 쉬면 저는 아마 병 날 거예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재미도 부족함도 느끼니까 빨리 작품을 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받는 힘이 엄청 크거든요. 그걸 느끼고 싶은 것도 없지 않아 있고, 현장이 제일 즐겁고 좋아요.
짧은 기간이지만 현장에서 벗어나면 평범한 일상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것 같아요. 베를린에서도 매니저와 둘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잖아요?
하하하. 혹시 기자님이 저 때문에 일을 더 하실 수도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담 주는 것을 싫어해요. 너무 즐거웠어요. 낯선 곳에서 자전거 탄 것도, 다 같이 레스토랑에 간 것도요.
갑작스러운 고백인데 <해어화>에서 직접 부른 ‘조선의 마음’을 아직도 자주 들어요.
하하! 왜 듣는 거예요? 아, 쑥스러워! 이제는 저작권료가 안 들어오더라고요. 영화를 TV에서 해줄 때 쏠쏠하게 들어왔는데, 이제 없더라고요.
왜긴요, 노래가 좋아요. 직접 가사를 쓰고 부른 곡이었죠? 음악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기회만 되면 해보고 싶어요. 역할과 연관이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가사도 전혀 쓴 적 없어요. 그때는 작품에 최대한 감정이입하고 싶어 도움을 얻기 위해 제가 직접 썼던 거죠.
새 작품 <멜로가 체질> 촬영 중이죠. <스물> 이병헌 감독의 첫 드라마인데, 인연이 있다면서요?
감독님이 <써니> 스크립터셨어요. 그리고 강형철 감독님과 각색 작업을 하시기도 했고요. 그땐 제가 분량이 별로 없었고, 배우가 스크립터 분과 대화를 나눌 일이 별로 없어서 잠깐 뵈었는데 감독님과 배우로 다시 만나게 되니까 신기해요. 감독님이 정말 글을 잘 써서 감탄해요.
<스물>도 동시대 남자의 심리를 잘 담아냈다고 호평받았는데, 이번에는 30대 여성이 주인공이에요.
여자판 <스물>이라고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고 현실적인 면이 많아요. 30대 여성들의 일, 사랑, 생활이 담겨 있어요. 쿨하고 재미있고 담백해요. 감독님 특유의 유머 코드라든지 위트가 좋아요. 제 역할은 작가인데, 격하게 코미디를 해야 해서 텐션을 엄청 올려야 되거든요. 저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라 걱정이 되면서도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돼요. 사람들이 싫어하진 않을까, 앞으로 내가 진지한 연기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도레미파솔 중에 항상 솔 상태예요. 하하.
제목은 <멜로가 체질>인데 지금까지 멜로 작품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이유가 있어요?
사실 멜로라는 장르를 아예 안 했었죠. 제 성향도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위 말하는 오글거림을 잘 못 견디는 성격이라, 멜로를 하고 싶다고는 하면서도,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제 코드는 다른 쪽인 거예요. 그런데 이번 멜로 같은 경우는 기존의 일반적인 멜로나 로코와는 달라서 끌렸고 그래서 선택했던 것 같아요. 진짜 도전이에요.
이 작품으로 ‘천우희는 멜로는 아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요?
그럼 이제 안 하거나, 다른 종류의 멜로를 해보거나. 세 번까지 해보고도 아니면 그만둬야죠.
멜로 작품을 보는 건 좋아해요?
인기 있었던 영화들은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좋아했고요. 요 근래 <그녀>를 다시 봤는데 그것도 제가 예전에 느꼈던 느낌이랑은 또 다르더라고요.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도 독특하면서도 뭔가 하나를 콩 때리는 것이 있었어요. 되게 좋았어요.
TV를 보는 사람들은 즉시 평가를 하잖아요. 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배우에게도 부담스럽나요?
실시간 댓글 문화가 굉장히 새로우면서 좋아요. <아르곤> 때 그걸 처음 느껴봤는데, 실시간으로 반응을 본다는 게 굉장히 신선하더라고요. 충격적이면서도 좋았어요.예전의 저였다면 되게 겁냈을 거예요. 이번엔 이상하게도 좀 달랐어요. 해보고 아니면 다음에 더 잘할 수도 있는 거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다음부터 안 하면 된다라고 개념이 좀 바뀌었어요.
하하. 그런 것을 30대의 여유라고들 해요.
그런가 봐요. 20대와는 확실히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요. 행동도 생각도 그렇고 저를 더 돌보게 되고 제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의 이야기나 평가보다 나 좋으면 그만. 그런 점에서는 강해졌달까…?
지금 인터뷰 과정을 촬영하는 중인데, 당신의 유튜브 채널 ‘희희낙락’에 저도 나오는 건가요? 솔직히 유튜브를 시작한 건 의외였어요.
네, 오늘도 열심히. 주변에서도 다 그랬어요. 제 성격을 아는 지인들도 놀라고 얼마나 하겠냐 했는데, 얼마나 할지는 모르지만 유튜브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배우를 하면서 움츠러들었던 것이 많았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해소하고 있어요. 아마 20대 때에는 못했을 거예요. 지금은 저도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해지고, 사람들의 반응도 제게 더 편해진 부분이 있어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유튜브는 각 개인이 콘텐츠 제작자예요.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할 텐데요.
처음엔 되게 어색했고, ‘좋아요’를 눌러달란 이야기도 머쓱하고 쑥스러웠죠. 제가 제 웃음소리 듣고 깜짝 놀랐어요. 원래 그런 걸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요. 연기하는 카메라 앞에서는 뭐든 다 괜찮거든요. 근데 연기하는 것 이외의 것들을 하면 너무 어색해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하기로 한 건 용감하게 하자는 주의인가요?
하면 해요. 맡은 바는 열심히 하려고 해요. 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해요. 그렇게 하기까지가 어렵긴 하지만요. 결과물을 만들 때에는 아쉬움이 없게끔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적당히 하는 것은 안 좋아해요.
배우 중 소문난 주당이라는 설이 있다던데. 술 방송 한번 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럼 아침 8시까지 해야 하는데.(웃음) 저도 누가 말해줬는데 영화판에 술에 강한 3대 여배우가 있는데 전도연, 문소리, 천우희라고.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일이 있거나 회식이 있으면 마시니까 부산영화제 등에서 저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걸로 하자고, 전도연 선배님, 문소리 선배님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디냐고 그랬어요.(웃음)
이제 여름이면 드라마가 시작될 텐데, 실시간 댓글창에 어떤 이야기가 올라오면 반가울 것 같아요?
단순하게 ‘ㅋㅋㅋ’.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잖아요. 공감이 갈 때, 포인트가 뭔지 알 때, 그냥 봐서 웃길 때, 짠내가 날 때도요.
- 포토그래퍼
- Choi Moon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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