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 소코도모, 보이콜드
<고등래퍼>의 소코도모와 <쇼미더머니> 새 시즌의 프로듀서인 보이콜드는 각자의 이유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함께 준비한 새 작업물을 곧 들려주겠다고 했다.
{ 소코도모 }
<고등래퍼> 종영 후 어떻게 지냈나?
되게 힘들었다. 거의 4개월 동안 2주, 1주 간격으로 공연 준비하느라 잠도 잘 못 잤고. 이후에는 작업실에만 있다 보니 얘기할 사람도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 술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아졌다.(웃음)
참, 그사이 성인이 되었지. 어떤 주종을 좋아하나.
맥주도 많이 마시고 칵테일, 소주도 많이 마신다.
회사도 생겼다. 소니뮤직으로 간 이유가 궁금했는데, 보이콜드가 직접 영업했다더라.
사실이다. 보이콜드 형이 영업을 한 4개월 동안 했다. 좋아하는 곳에서도 제의가 들어왔는데 성원이 형(보이콜드)이랑 케미가 괜찮다고 생각해서 소니뮤직으로 갔다.
<고등래퍼>에 비춰진 모습이 당신에게 알려진 것의 전부다. 간단하게 ‘소코도모의 생애’를 요약해준다면?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4살 때 아버지 일 때문에 미국 앨러배마라는 곳에서 6년 정도 살다 다시 한국에 왔다. 안양 평촌에서 학교를 다니다 12살 때쯤 다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4년 정도 살았다. 2015년도에 한국에 돌아와서 양재동에 살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재즈, 보사노바를 많이 들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쇼미>를 보다가 재미있겠다 싶어서 가사를 써봤는데 잘되는 것 같진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여러 동아리를 전전하다 음악 동아리에 들어갔다. 거기서 알게 된 친구와 어울리며 재미로 다시 가사를 써봤는데 이번엔 재미있었다.
어떤 비트에 썼나?
저스트뮤직 레인샤워 리믹스라고 비트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게 있었다. 수련회 때 공연까지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한국에 와서 적응이 힘들었던 터라 음악에 눈을 돌렸다. 고2 때에는 비트 메이킹을 하는 세사미 형을 모임에서 만났고, 그때부터 음악을 하는 걸 조금씩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것 같다. <고등래퍼> 시즌 1에 나가 하차하고, 2에서 떨어지고, 그사이 <쇼미> 다 떨어진 후 3에 나가게 된 거다.
시즌 1에서 하차는 왜 했나?
그때 너무 못해서 가족 핑계 대고 하차했다. 영비는 이 정도로는 못 이길 것 같아서.(웃음) 하지만 신기하긴 했다. 모르는 애들도 있지만 아는 애들은 날 알고 있었다.
방송에서 특이한 옷과 소품을 많이 사용했는데. 다 소장품인가?
1차 때 입은 노란 옷은 아빠가 주신 옷이고. 모자는 3년 전에 한국 와서 샀다. 3만원이나 주고 샀다. 3만원이면 중학생한테 큰돈이다.(웃음) 스팀펑크 고글은 6천원 주고 샀다.
<고등래퍼3> 초반에 우승후보로 주목받고 이후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관심이 집중되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원래 즐기면서 음악을 했는데 경연은 맞출 것도 많고 기간도 너무 짧다. 원래는 작업할 때 기간을 정해두진 않았으니까….
우승을 하지 못해서 아쉽나?
우승을 못해서 다행인 것 같다. 6등을 하고 사람들에게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 모르겠다. 방송이 진짜 잘됐으면 멋있다고 생각했을지도.
<고등래퍼>로 인한 득과 실이 있다면?
얻은 건 확실히 인지도. 잃은 건 멘탈? 멘탈 케어가 힘들었고, 끝나고 나서도 힘들었다. 다들 어린데 갑자기 붕 떠버리니까 한 번쯤은 실수를 하는 것 같다. 나도 겪어봤고. 붕 뜬 걸 보면서 멋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돈 많이 번다고 끝은 아니니까. 말도 안 되는 실수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들은 안 하려고 노력했다.
스키 마스크랑 비슷하다는 얘기가 따라다닌다.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알고 있지만, 힙합을 잘 안 듣는 편이라서. 힙합만 듣다 보면 귀 호강시키고 싶은 게 채워지지 않는다. 역사가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 재즈나 보사노바, EDM, 전자음악, 딥하우스 등등.
하는 음악은 힙합인데?
하는 것도 완전 힙합이라고 생각은 안 한다. 그냥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틀 밖에 있는 게 좋다. 틀 밖에서 틀 안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문화에서 자란 건 축복이었나?
한창 난 누구지? 여긴 어디지?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아티스트로서 정말 큰 무긴데 개인적으로는 혼란이 올 수 있는 것 같다. 어딜 가도 그 문화의 정확한 걸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도 답답한 게 많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하지? 난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모든 게 다 섞여버린 것 같다. 이런 면을 제일 잘 이해해주고 멋있다고 해주는 게 예술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소니뮤직에서 싱글과 앨범을 낼 계획이라던데? 얼마나 진행되었나?
<고등래퍼>를 끝내고 EP작업을 바로 들어갔다. 성원이 형이 회사 들어오면 내 앨범을 만들 거라고 해서 그것만 믿고 들어왔는데. 그때 성원이 형은 앨범 다 만들고 쉬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쇼미>에 나가서 내가 혼자가 됐다.(웃음) 그래서 아직도 만들고 있는데 싱글 나오는 것도 그중에 같이 힘들게 고른 곡이다. 거의 세서미 형이랑 같이 작업했다. EP에는 다양한 걸 많이 해보고 싶었다. 다양한 장르가 섞인 뉴트로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보이콜드의 첫인상은 어땠나?
<고등래퍼> 하면서 처음 봤다. 그루비룸 형들이 다 너무 좋은 형이지만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작업실에서 자꾸 귀여운 형이 왔다 갔다 했다. 보이콜드라는 사람은 알았지만 그게 그 사람인 줄은 몰랐다. 첫인상은 그냥 조용하게 소파에서 담배 피우는 귀여운 형이었다.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할 때 부담스럽지 않았나? 어떤 말에 제일 신뢰가 갔나?
날 원한다는 곳이 있다는 걸 즐겼다. 성원이 형 말 중에 제일 꽂혔던 건, 힙합 신이 단체로 움직이는 게 있는 데 그걸 깨고 싶다는 거였다. 새로운 게 나와야 하는데 그런 걸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대에서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차분하고 과묵하다. 무대에서는 다른 내가 되는 건가?
무대를 하거나 작업이 잘되면 뜨거운 행복함을 느끼고 그때 ‘업’이 된다.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걸 가장 멋있게 표출할 수 있는 게 공연인 것 같다. 평소에 에너지를 아껴두다가 무대에서 쓴다.
가사에 행복이란 말을 많이 쓰지 않나. 하지만 진짜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한 생각 자체를 자주 하지 않을 것 같다.
맞다. 행복은 원하는 거다. <고등래퍼> 땐 행복하길 바랐다. 행복하지 않았거든. 일도 너무 많았고 개인적 일도 많고 적응도 해야 되고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정말 행복하고 싶다,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앨범도 원하는 것에 대해 많이 썼다.
싱글이 먼저 공개된다던데, 어떤 곡인가?
싱글 제목이 ‘Go Home’이다. 실제로 음악 접고 집에 갔으면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별로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하지 말고 집에 가라는 뜻으로 쓴 건데 그것도 내가 원하는 거다.
가사를 쓸 때는 어떤 언어가 가장 익숙한가?
영어와 한국어 섞어 쓰는 게 제일 익숙하다. 꿈도 그렇게 꾸고, 생각할 때도 그렇게 한다. 영어로도 하고 한국어로도 하고.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하나?
장점인 것 같다. 더 듣기 좋은 언어를 가져와서 쓰고 있는 거다. 나는 음악 들을 때 가사를 그냥 ‘소리’로 듣는다.
혼자 작업하다가 프로듀서와 작업하니 어떤가?
내가 100%를 주면 그 사람도 100%를 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음악이 예뻐지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걸 베이스로, 내 뼈를 가지고 있으면 거기 살을 붙여주는 역할.
프로듀서로서 보이콜드의 장점은?
일단 작업이 엄청 빠르고, 듣기 좋은 사운드가 나온다. 젤리 같은 사운드가 나온다. 먹고 싶은 소리다. 젤리나 껌 같은.
그나저나 외계인 콘셉트는 계속 밀고 가는 건가?
누구나 외계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외로울 때도 있고. 음악을 하다 보면 일반인 친구도 거의 없다. 그래서 외계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외부인을 말하는 것 같다.
{ 보이콜드 }
지난주 <쇼미더머니> 첫 회가 방송됐는데 봤나? 방송 첫 출연이었는데 자연스러워 보이더라.
작업실에서 그루비룸과 함께 봤다. 정말 많은 분량을 찍었는데 그중에 조금만 방송에 나가다 보니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첫 녹화 때에는 아무래도 긴장이 됐다. 오래 기다린 분들이니까, 최대한 집중했다.
면전에서 거절을 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목걸이가 한정적이니까. 사실 진짜 잘하는 분들은 바로 느낌이 온다.
지금까지 출연한 <쇼미> 프로듀서들과는 다르게 겸손한 태도다.
딱히 겸손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거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EP앨범 내고 공허한 시기에 섭외가 와서 반가웠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해서 최대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쇼미>에서 당신이 속한 40 크루 중 비트메이커는 당신뿐이지 않나. 불리할 거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음악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역할이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디스배틀 같은 걸 할 때는 스윙스 형이 멘토링을 해주는 식으로 음악만 만든다고 다가 아니다. 쇼를 만들어야 하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한 거다.
처음 힙합에 빠져들게 한 아티스트가 셋이 있다면?
칸예 웨스트, 빈지노, 드레이크.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했다. 그냥 시작했는데 다행히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나는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시대를 잘 만나서 서포트해주는 역할도 프런트맨으로 나설 수 있으니 좋다.
음악이 적성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
무조건 재능도 있어야 한다. 누굴 가르칠 때 이런 걸 못 따라오는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고, 반면 압도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볼 때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쇼미>에 나가는 것처럼 새로운 것들을 할 때 큰 산을 넘는 기분이다.
가장 큰 산은 뭐였나?
매 순간이 큰 산이다. 식케이와 앨범 냈을 때도 큰 산이었고 <Post Youth>도, 비와이와 ‘퍼즐’을 냈을 때, 지금 <쇼미> 출연하는 것도 큰 산이다. 버겁지만 이걸 넘었을 때 오는 쾌감이 크다.
EP앨범인 <Post Youth>는 어떻게 세상에 내놓았나?
프로듀서는 직접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Youth’라는 단어를 썼다. 내가 제대로 20대의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을 했을 때 발자취 같은 개념으로. 또 한국식 유스컬처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졸업사진 같은 개념으로 보고 싶어서 커버에 내 얼굴을 넣었다.
그루비룸과는 어떤 관계인가?
작업실을 같이 쓴 지 6년이 넘었고, 음악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같이 했다. 요즘도 대화를 많이 한다. 그루비룸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다. 형들을 만난 게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Hey Boy It’s Cold’라는 시그니처 사운드는 윤하가 녹음했지 않나. 어떤 느낌으로 주문했나?
어느 음악에나 잘 어울렸으면 했다. 다른 목소리도 섭외해서 해봤는데 잘 안 묻더라. 윤하 누나의 목소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성이 소년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오는 유니크함도 있다.
오늘은 소코도모와 함께 촬영을 했다. 언제 처음으로 만났나?
<고등래퍼>하면서 처음 만났다. 이 친구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꼭 내가 속한 소니뮤직에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청 꼬셨다.
어떤 점에 욕심이 났나?
음악을 같이 할 동료를 찾는 느낌으로 보고 있었다. 너무 힙합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거다. 소코도모는 분명 크게 될 사람이다. 그만큼 창의적이고 재능이 있다.
소코도모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봤겠다.
나는 경쟁 프로를 할 때 만들어놓은 비트를 절대 안 쓰고 무조건 상황에 맞게 새로 만든다. 그래서 승호의 상황을 보고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되 승호한테 맞춘다고 생각해서 가스펠 테마의 음악을 만들었다.
프로듀서의 눈으로 본 소코도모의 매력은?
얼터너티브한 것.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장점이고 무엇보다 창의적이다.
<Post Youth>에서 ‘라일락’이라는 곡에 소코도모를 참여시켰다. 듣기 좋은 곡이더라.
라일락은 소년미가 있어야 하는 트랙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코도모가 그걸 가지고 있었다. 내 앨범에서 제일 맘에 드는 트랙 중 하나다. 같이 한 릴러 말즈가 하이톤이다 보니까 소코도모가 잘 맞을 것 같았다.
트렌디하면서도 과거 시티팝 같은 향수가 느껴질 때가 많은데.
정확히 봤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빈티지함과 트렌디함 사이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대중들은 더 센 걸 요구할 텐데?
최근 신기록을 찍은 ‘Lil Nas X’의 ‘Old Town Road’는 컨트리하고 힙합을 섞은 건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런 걸 보면 빈티지와 트렌드를 섞은 게 가장 앞서 있는 음악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찾아 듣는 음악이 있는데 그런 곡들은 향수가 느껴지면서도 그 시대에 가장 트렌디했던 음악이니까. 그런 게 가장 좋다.
곧 소코도모와 함께한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원래 계획은 <Post Youth>를 내고 소코도모 앨범을 총괄하는 거였는데 <쇼미> 때문에 좀 어려워져서 계획을 좀 수정해 일부만 참여했다. 이제 승호도 자기 음악을 보여줄 때가 됐고 이제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니까.
좋은 비트를 남에게 주기 아까울 땐 없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다 만날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서 비트가 아까워서 빼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비트를 찍는다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비트를 만든다는 개념보다는 하나의 음악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비트메이커보다는 프로듀서라는 말이 더 좋다.
어떤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가?
비트를 만들어서 보내주면 랩하고 끝. 이렇게 이뤄지기도 하지만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가사도 상의하고 멜로디도 수정해가면서 만든 곡이 무조건 더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곡들 중 잘된 곡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다. 실력은 누구나 다 좋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내 차별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리스너들은 전체 프로듀싱보다 비트에 대한 언급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나?
유명한 프로듀서가 많아지면서 비트가 아깝다는 피드백이 최근에 많아진 건 사실이다. 달갑지는 않다. 결국엔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같이 만든 음악이 안 좋다는 거니까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다고 하는 건 옳지 않다. 비트가 아깝다는 말을 하는 사람 중에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이미지를 보고 하는 말이 더 큰 것 같다. 유명한 프로듀서가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음악이 아닌 것처럼. 반응이 좋은 곡을 조금 쓰다 보니 어떻게 하면 좋게 들릴지는 좀 알 것 같지만, 재미없어서 피하는 경우도 꽤 있다.
뮤지션이 트렌드세터인 동시에 인플루언서인 시대가 됐다.
조심스러운 부분이고, 개인적으로는 불편할 때도 있다. 나는 은둔형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모두가 하고 있는 플렉싱엔 관심 없나?
별로 관심 없는데. 최근에 키드밀리 형이 시계 커스텀한 걸 차봤을 때 뭔가 느낌이 왔다. 왼쪽 손목이 무거운 게, 이거 플렉싱 좀 하고 싶은데? 싶었다. 음원이 되는지 봐서 앞으로 방향성을 정해야겠다.(웃음)
방송에서 매드클라운이 당신을 두고 ‘이 친구도 야망 있는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야망이 있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다.(웃음) 당연히 야망이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진 않다. 돈을 좇는 스타일도 아니고 물욕도 별로 없다. 그냥 편한 게 좋다. 일단 집은 사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면 나도 플렉싱을 하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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