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기 좋은 날

지금, 서울에서 독립된 나로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은 그걸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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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울에 산다는 것

택시 뒷자리에 타면 자동 매뉴얼처럼 말한다. “이태원이요. 한남대교 건너주시고요. 순천향병원 말고, 그냥 한강진 쪽으로 가주세요. 돌아가도 상관없어요.”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느새 집이다. 11년째 이태원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 몇 해를 살고, 울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도시를 뜰 궁리만 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군만두 먹으며 탈출을 준비했다면서? 나는 급식 먹으며 그랬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땡 끝난 다음 날, 냅다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는 2년 먼저 올라온 형이 있었다. 형제는 왕십리에서 좀 살았다. 그러다가 나, 이태원 프리덤의 맛을 알아버렸네. 차비도 아끼고 체력도 비축하면 아침까지 열심히 놀 수 있을 테니까. 이태원에 살게 된 이유를 물으신다면.
4년 전에 형이 결혼했다. ‘앗싸, 드디어 완벽한 독립이구나’. 독립은 개뿔, 2억은 넘고 3억은 모자란 전세 보증금 중 내 기여도는 완벽한 ‘0’이다. 최초 부모님의 도움이 야금야금 불었을 거고, 전자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는 형도 살을 붙였을 거다.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내 돈이 되었다. 행운아인 거 안다. 서울에 혼자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친구들만 봐도 끙끙대며 1천만원 정도 보증금 모아, 월세 70~80만원을 감당하며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혼이니 내 집 마련이니 그런 말은 이제 술자리 안주도 아니다. 벌어봐야 얼마나 버는지 서로 뻔히 아는데, 월급에서 월세 빼고 카드값 나간 통장 잔고 보면 눈물도 아깝다.
아무튼, 가을이 오기 전 이사를 결심했다. 애증의 이태원도 떠나기로. <얼루어> 편집부로의 이직이 결정됐을 때 맨 먼저 한 생각이다. 그럴 때도 된 것 같았다. 더는 이태원에서 밤새도록 춤추고 노는 일이 시시해졌고, 새 직장에서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도 충만했으니, 놀아도 회사에서 놀자는 다소 충격적인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마감이니 뭐니, 새벽까지 사무실에 남는 일이 많은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 매일 한강을 건너야 하는 마음은 괜한 여행처럼 부담스럽기도 했다(매일 택시비도 상당하다). 회사에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면 좋겠다. 자기 전에 드러누워 부동산 앱을 통해 회사 근처인 강남구청역과 학동역 주변에 나온 매물을 구경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일단 만만한 전세 매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있어도 내가 가진 돈으로는 작은 원룸 오피스텔이 최대치다. 지금 사는 곳도 그렇고, 강의 북쪽으로만 넘어가도 그 돈이면 나름대로 멀쩡한 집을 구할 수 있는데 강남은 강남이구나. 대부분이 월세 혹은 반전세뿐이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80만원, 월세 1백20만원, 월세 1백80만원. 1백만원이 훌쩍 넘는 곳도 수두룩하다. 아니면 반전세. 반전세란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경우를 말하는데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월세 60만원. 어차피 월세는 나간다. 모처럼 가격, 위치, 집의 상태까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등록된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걸어 매물 번호를 말해볼까?
“xx에서 보고 전화했는데요. 매물번호 865975 아직 있나요?”
“아, 고객님. 제가 지금 다른 손님 계약 진행 중이라서요. 곧 연락드릴게요.”
10분쯤 후 몹시 아쉽다는 말투의 콜백. “고객님, 정말 안타깝지만 아까 말씀하신 매물이 지금 막 빠졌네요. 어떤 조건 찾으세요? 일단 한번 만나보시죠.” 혹은 “고객님 근데 거기 올라온 거 가짜인 게 태반인 거 아시죠? 심한 경우 두 배 생각하셔야 해요.” 장난하나, 이 더위에 밑도 끝도 없이 일단 만나자는 건 뭐고, 실제 있지도 않거나 가격차이가 그렇게 나는 매물을 올려놓는 건 사기가 아닌지 화가 치민다. 그래, 집은 발품 판 만큼이라는 어른들 말씀 이럴 땐 다 맞나 싶다. 봐둔 동네 아무 부동산이나 들어가 원하는 조건을 말하면 그 역시 “일단 한번 보시죠” 하며 부동산 차 키를 덜렁거린다. 그 말에 또 피식 웃는다. 그사이에 중대한 마음의 변화도 일었다. 이참에 기여도 ‘0’인 전세 보증금을 주인에게 반환하는 일. 원래 소유주인 부모님과 형에게 말이다. 서른을 훨씬 넘어 갑자기 철이 든 건 아니고, 태어난 지 200일 정도 된 조카 얼굴을 보는데 갑자기 완벽한 독립을 꿈꾸게 되었다.
차곡차곡 모아놓은 쌈짓돈이 있거나 믿을 구석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 나이에 비해 늦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출퇴근을 택시로 하며, 쇼핑 중독 증상도 있다. 특히 생 로랑의 부츠를 사 모은다. 부츠는 모았으나 돈은 못 모았다. 독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이란 쥐뿔도 없다는 뜻.
2017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층 1인 가구 수가 전국 188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69%가 40㎡(12평) 이하의 주택에 거주하고, 매달 20~40만원의 임차료(보증금 없는 월세의 경우)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은 꽤 무거운 사회 문제였음에도 우리는 그저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에 따른 개인 책임 정도로 여겨왔다. “그래서 누가 서울 가래?”, “누가 혼자 살래?” 하지만 최근 높은 주거비 부담과 열악한 주거 환경 등 주거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청년층 1인 가구에 대해 ‘부담 가능하고, 적정한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이 마련되고 있는 중이다.

독립적인 독립을 위하여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은행과 부동산, 자칭, 타칭 집테크 전문가들은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을 권한다. 서른즈음 한참 넘어, 이제 다시 시작인 내 선택도 이거다. 은행 대출 상담 창구에 앉았는데 괜히 떨리고 긴장되는 건 왜인지.
금융위원회가 출시한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은 연 소득이 7천만원(부부도 가능, 합산금액) 이하이면서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만 19~34세 청년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청년 계층의 다양한 주거 형태에 맞춰 3가지 종류의 저금리 상품을 지원한다. 그러니 각자의 주거 형태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연 2.8% 내외의 금리로 전세 보증금의 90%까지, 최대 7천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참고로 일반 전세자금 대출은 보증금의 70~80%만 가능하다. 전세 보증금의 만기는 계약 기간에 따라 2년 혹은 3년인데, 만 34세 이전까진 횟수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또 월세 자금 대출에 관한 내용도 포함한다. 월 50만원을 한도로 2년 동안 총 1천2백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금리는 역시 2.6%로 시중 은행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단, 이 월세 대출은 보증금이 1억원 이하, 월세 70만원 이하인 주택에만 적용되니 참고하시길.
가만히 생각해보니 특히 이 월세 대출은 지원이 아닌 대출일 뿐이다. 결국, 갚아야 할 돈이라는 건데, 최장 8년 동안은 이자만 내다가 그 이후 3년 혹은 5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알바 지옥 대신 이 대출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졸업 후 직장을 구한 다음 바로 갚으면 되니까. 하나 더, 이미 기존 높은 금리의 전월세 대출을 받고 있는 청년들도 있을 텐데, 이런 청년 가구를 위해 기존 대출을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 상품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은 가장 최신 대한민국 청년 상황과 입장을 고려, 적용한 제도이기에 덜 팍팍한 구석이 있다. 우선 청년의 끝자락 만 34세가 넘더라도 1회에 한해서는 기존 계약 연장이 가능하도록 숨통을 열어놨고, 부부 중 한 명만 34세 이하여도 대출 자격에 포함한다. 소득이 없더라도 국세청이 발급한 무소득 사실 증명원을 제출하면 차별이나 제약 없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임대인(집주인)이 동의하거나 말거나 하는 절차도 필요 없다.
내 계획은 이렇다. 우선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 제도를 이용해 7천만원의 전세 보증금을 확보,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월세(주로 택시비로 지출하던 금액)를 지출하는 반전세를 구하는 것.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형과 밥을 먹고, 형이 날 집까지 데려다줬다. 이태원역을 지날 때 형이 그랬다. “나는 여기 싫었는데 너 때문에 살았다. 이제 돈 좀 모아. 그래도 한 번씩 난 네가 부럽다.” 증거는 없는데 그럴듯하게 들렸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어차피 원하는 것은 다 서울에만 있었다. 아마 계속 혼자, 서울에 산다.

    에디터
    최지웅
    포토그래퍼
    CHOI JI W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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