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사회생활, 그때 그 최악의 상사

지금 떠올려봐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의 사회생활에서 만난 상사에 대한 기억.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낯선 사회생활 1 차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겪어내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 했을 몰라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더욱 만나서는 됐을 최악의 직장 상사들을 소개해요.

실장님은 사무실에 화초를 키웠는데 화초가 시드는 날은 저의 회사 생활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태였어요. 막내들끼리는 꽃집 가서 영양제를 사다가 화분에 꽂아두고 노심초사 화분이 시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업무 중에 하나였죠. 이건 그래도 하기 쉬운 편에 속해요. 실장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와서 책상을 닦고 컴퓨터 모니터를 놓고, 심지어 뷔페에서는 음식까지 떠다 드려야 했죠. 게다가 아침에 택시 타고 출근하실 현금이 없다며 사무실로 전화해서 2~3 원을 들고 내려오라고 하시며 팀원들이 돈을 대신 내줬을 갚는 법이 없는 분이셨죠. 참기 힘들었던 당시에 6 근무제였는데 토요일 업무가 끝나고 나서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던 실장님,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에요.” 11년차 디자이너

회사 출근 시간 만에 거래처에 소리를 지르던 사장님이 기억나네요. 무언가 굉장히 화가 나신 같았는데 아니었죠. 고함소리는 다음날도 듣고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듣을 있는 소리였어요. 거래처며 직원이든 누구라도 고함 소리를 듣는 것이 일상인 회사였고 소리에 따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다녀야 하는 곳이었어요. 50대의 어르신에게도 그렇게 고함치는 것을 보며 출근 3 만에 여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만두는 쉽지 않았어요. 대신 저는 그곳에서 데시벨이 높아질 때마다 귀로 듣고 귀로 듣는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방법을 선택했고 무려 2년이나 버틸 있었죠. ‘4차원 보통내기가 아닌 막내라는 소리는 들어야 했지만요.” 7년차 VMD

아주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었죠. 업무 구분에 대한 개념도 없고 그냥 맡겨진 일은 했고 쓰러진다 해도 맡은 일은 해내야 하는 알았어요. 제작 파트였던 제게 영업까지 시켰던 회사에서 저는 유노윤호를 능가하는 열정 만수르 시절일 때라 일을 배우는 재밌었고 물건과 시간을 들여서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기쁘기만 했었죠. 지금 그렇게 일한다면? 반년도 버티고 그만뒀을 같아요. 당시 회사 대표의 나이가 지금 나이보다도 어렸는데, 적은 돈으로 교육과 경험의 기회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심하게 부린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네요. 교육은 학교에서 받고 일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에요.” 13년차 기획자 

    에디터
    홍진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