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얼굴, 조이
페이지를 넘기며, 한 번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스스로도 누구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조이의 분명한 얼굴은 어디에서 온 걸까.
아직 2020년 12월이지만 2021년 1월호의 촬영을 마쳤어요. 잡지는 한 달을 먼저 사니까.
한 달을 먼저 산다는 말이 참 멋지네요. 올해는, 아 작년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2020년은 제가 스물다섯 살인 해였는데요. 코로나19 때문에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 같아요.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저도 오늘 촬영 덕분에 한 달을 먼저 살아서인지,(웃음) 아직 스물여섯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예요. 2021이라는 숫자 자체를 짐작해본 적도 없는 거 같아요.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나이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또래 친구들보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긴 했죠. 7년 정도 됐지만 저는 아직 한창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달릴 수 있거든요. 근데 종종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때 좀 당황스러워요. 움찔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안 하던 고민도 하게 되고요.
보통 사회생활 7년 차면 한창 지칠 때라서 그래요.
지친다기보다는요. 저는 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잘 가고 있는 건지도. 그때부터 온전한 제 삶을 살기 위해 연습하고 있어요. 회사나 매니저,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노력이요.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아봤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제가 뭘 진짜 좋아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뭘 잘할 수 있는지도요. 이것저것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배우기도 하면서요.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서운함이라는 건 그 감정의 원인을 제공한 대상이 필요하잖아요. 생각해보니까 그럴 만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어른의 역할이 주어진 것 같아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요. 제가 되게 긍정적인 편이라서요. 서운함 같은 걸 생각하기보다는 저 자신을 개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현명하네요. 화보 찍는 건 좋아하는 일이 분명하죠?
제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 중 하나죠.(웃음) 특히 2020년에 가장 크게 관심이 생긴 영역이 바로 패션이거든요. 패션만큼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좋은 방식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비슷해 보이는 옷일지라도 모든 옷은 자기만의 개성과 스토리를 품고 있더라고요. 어떤 옷을 딱 갖춰 입으면 그 순간만큼은 원래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워요.
화보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죠?
맞아요. 함께하는 스태프의 구성에 따라 또 다르잖아요. 한계를 두지 않고 이것 저것 실험하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중이에요. 사실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보다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맞춰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요. 모든 합이 다 잘 맞아서 아주 완벽한 결과물을 마주할 때면 하루 종일 고생한 걸 까맣게 잊고 뿌듯해지죠. 그 순간을 위해 함께 애써준 스태프들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몽글몽글한 마음이 밀려와요. 촬영장에서만 느껴지는 그 에너지를 정말 좋아하는 거 같아요.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일도 비슷한 희열이 있겠지만, 역시 또 다르죠.
맞아요. 무대 위에 서는 건 어떤 의미에서 좀 더 엄격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오늘 같은 촬영은 오로지 제가 좋아하는 거,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달라요.
오늘 촬영은 좀 더 특별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에디터인 저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여성이었잖아요?
스타일리스트를 빼면 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어요. 이렇게까지 새로운 분들과의 작업은 처음이에요. 솔직히 처음엔 겁이 났거든요. 콘셉트를 받아보고 눈 딱 감고 믿어보기로 했어요. 저 진짜 너무 감동했잖아요.(웃음) 최근 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스타일과 이미지가 거기 다 있더라고요. 이 정도 전문가들이라면 믿어도 좋겠더라고요.
콘셉트에 적힌 어떤 점이 당신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움직였는지 궁금한데요?
짧은 문장 하나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잠시만요. 지금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96년생 조이가 시대나 유행에 상관없이 내키는 대로 막 섞어 입는다. 당돌하고 우아하게, 관능적이고 열정적으로. 다 내 마음이야!’ 이 부분이 진짜 좋았어요.(웃음) 딱 느낌이 왔어요. 오늘 뭔가 나오겠다.
사람들이 흔히들 기대하는 당신의 얼굴이 있죠. ‘조이’라는 이름 같은 그 얼굴. 그걸 좀 배반하고 싶었어요.
저도 좋았어요. 어쩌면 내심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무대 위에 서면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제가 엄청 매혹적인 사람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 기분에 젖어서 살던 때가 있었어요. 다행히 너무 멀리 가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제 루틴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요.
뭐든 당신의 마음이죠. 당신의 얼굴이고요. 요즘은 어때요?
운동에 빠져 있어요. 눈 뜨면 바로 운동부터 해요. 필라테스와 근력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새로 승마를 시작했어요. 연기 레슨도 꾸준히 하고요. 몸과 정신 모두에 되게 좋아요. 도움이 많이 돼요.
자기 얼굴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데뷔 초에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제가 막 인형처럼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특히 처음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에 눈이 먼저 가고 집중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상처받은 적도 있어요. 예뻐지기 위해서 노력도 엄청 했던 거 같아요. 근데 남들 기준에 맞추려는 강박을 내려놓기 시작하니까 제 얼굴을 미워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좋아해요. 저를, 제 얼굴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거 진짜 진짜 중요한 일인 거 같아요.
오늘 찍은 사진 중에 강력한 클로즈업 컷이 있었죠. 눈에 확 들어와요.
흐흐. 감사합니다.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눈이죠. 완벽하지 않은 제 얼굴이 누군가에게 아름다워 보인다면 그건 눈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눈에는 또 자신감이 있습니다.(웃음)
눈이 깊은, 힘이 있다는 건 그 속에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 좋은 눈은 영광의 흉터일 수도 있어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두들 마음속 깊은 곳에 각자의 상처를 품고 산다고 생각해요. 저와 작업한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요. 그 경험을 통해 상처받으라고요. 그 상처의 흔적이 제 마음에 남아서 아주 잔잔한 결을 이룰 거라고요.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 결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기를 하든 노래를 하든 앞으로 더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요.
레드벨벳의 조이가 되기 전과 후 가장 달라진 게 뭐예요?
변한 거? 정말 많은 것이 변했죠. 제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게 가장 의미 있는 변화인 것 같아요. 제가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걸 즐길 수 있고요. 가족을 돌볼 수도 있어요. 많이 강해졌죠.
여전히 그대로인 건?
마음. 꿈을 향한 열망이요. 오로지 데뷔의 순간을 기다린 시간이 있었고, 레드벨벳이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달린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저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어요.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뭔지,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게 뭔지,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요. 그런 마음과 열망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대로예요.
오늘 함께한 사진가가 당신을 보자마자 그랬어요. “조이는 운동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운동은 정말 꼭 해야 해요. 저도 작년까진 열심히 안 했거든요. 먹는 것만 잘 조절해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으니까요. 공연을 하면 딱 느껴져요. 어느 지점이 지나면 다리가 후들거리거든요.(웃음)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면 일단 서 있을 때부터 에너지가 다르거든요. 축이 바로 서고, 뿌리가 단단하게 박혀 있는 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멘탈 관리에 최고예요. 아무것도 안 하는 날에도 운동 한 번 갔다 오면 그날 하루가 되게 뿌듯해요. ‘오늘 하루 열심히 잘 살았다’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웃음)
웃지 않는 얼굴이 좋다고 했지만, 역시 이렇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까 좋네요.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저는 자존감도 높고 활발한 이미지인 것 같아요. 진짜 저는 걱정과 염려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는 거고요. 제가 원래는 매사에 “너 이것밖에 못 해?”라는 채찍을 끊임없이 던졌어요. 그거 안 좋은 거잖아요. 저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보듬고 아껴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그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