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정주행하기 딱 좋은 드라마 추천

‘극장에 간다’는 말이 무색해진 지금, 우리는 오늘도 안전한 집에서 드라마를 본다. 다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에밀리, 파리에 가다> | 넷플릭스

잊고 있었던 <섹스 앤 더 시티>가 돌아왔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대런 스타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배경은 파리다. 파리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된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바로 그 도시, 파리를 가득 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 문화, 환경까지 모두. 에밀리가 향하는 곳곳에 향기 좋은 낭만이 흩뿌려져 있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여행이나 출장이 멈춘 지 한참이 지났다. 그땐 현실이었던 모든 일이 이젠 마치 판타지가 된 것 같을 정도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서울 집이 아닌 파리의 어디쯤 있는 것마냥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심오하거나 진지하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한가한 날, 좋아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낄낄대면서 보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지금은 그런 시간이 필요할 때. 넷플릭스에서 시리즈가 공개되자마자 시즌 2 제작이 이미 확정됐다.
– 김민선(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

<핸드메이즈 테일> | 웨이브

한동안 빠져 살던 ‘미드’에 시들해졌을 때 흥미를 느끼게 된 시리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의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를 TV 시리즈로 옮겼다. 오프닝 장면부터 굉장히 우울하고 종교적인 색이 강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자극적이고 윤리 같은 건 무시하고 지나가는 듯한 인물의 선택이 때론 껄끄럽게 느껴질 정도. 미국은 전쟁과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질병과 저출산율이 문제가 되어 혼란스러울 때 극우파 ‘길리아드’의 지배를 받는다. 이들은 성 소수자를 가차 없이 처단하고 특히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시켜 여러 등급으로 구분하는 비인간적인 억압과 통제를 일삼는다. 설정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내내 정적이고 아주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오히려 숨이 막힌다. 딴 세상 이야기 같지만 감정이입할 수 있는 건 미술과 프로덕션의 힘이다. 전체적으로 색감을 제한했고, 채도를 낮춰 무겁고 암울한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아주 제대로다. 핸드메이즈의 붉은 의상과 길리아드 부인들의 청록색 의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 이우식(그래픽 디자이너)

<퀸스 갬빗> | 넷플릭스

한국 론칭과 함께 나의 넷플릭스 시대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가 최고를 찍었다는 올해 오히려 나의 콘텐츠 소비는 다소 미미했는데, 그동안 볼 만큼 보기도 했거니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나름의 경험도 쌓였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창대해서 끝은 시시했던 게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퀸스 갬빗>은 달랐다. 고아원에서 자란 소녀는 고아원 관리 아저씨의 지하실에서 체스를 배우고 이내 천재임이 밝혀진다.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약물은 주인공의 천재성을 증폭시키지만 주인공이 점점 약물에 중독되는 결과를 낳는다. 겨우 7화인 이 시리즈는 1화부터 7화까지 시종일관 몰아친다. 마치 계단을 오르며 용을 무찌르듯, 엘리자베스 하먼은 성장해나간다. 체스의 여러 기물과 방식은 곧 인생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고, 하먼도 체스에서 인생을 배운다. 밤 11시에 1회를 시작해서 새벽 5시까지 보았고, 주인공을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의 커다란 눈이 천장을 향했을 때 나도 천장을 보았다. 마지막에는 나도 러시아 악센트로 ‘리자 하먼!’을 외쳤다. 시즌 2를 만들어줬음 좋겠다. 그럼 또 시시해질까?
–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

<미세스 아메리카> | 왓챠 플레이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대 미국 성평등 헌법 수정안 비준을 둘러싼 10년의 투쟁을 그린다. 케이트 블란쳇은 미국 보수 진영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렸던 안티 페미니스트 활동가 필리스 슐래플리를 연기한다. 그녀는 전통적 가족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남녀평등을 방해한 실존 인물이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그의 당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여성 해방 운동 진영의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흑인 여성 대통령 경선 후보자였던 셜리 치점 등 다양한 여성들의 삶 또한 깊이 있게 다룬다. 필리스의 반 페미니스트 발언 이후에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이어 붙이는 연출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남녀평등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 진영 여성들의 대립과 당대 여성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이어왔는지 말한다. 역사는 흔히 남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속설이 있지만, 적어도 1970년대 미국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자들이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싸우고 함께 연대하기를.
– 최소영(영화감독) 

<위아 40> | 넷플릭스

드라마 대신 특별한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40세란 나이가 되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집도 있고, 직업도 있고, 하고 있는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며 예감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그렸던 모습으로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유튜브만 들여다보길 며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날 새벽 <위아 40>을 클릭했다. 극작가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라다 블랭크는 그 뒤로 무대에 연극을 올리지 못한 채 40세가 되었다. 집세를 걱정하며 할렘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제 교사, 상업성이 없는 작가,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고집만 부리는 말이 안 통하는 작가 라다 블랭크.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갑자기 랩을 하기로 한다. 랩으로 자기 이야기를 담은 믹스테이프를 만들고자 한다. 비트를 타기 시작하며 그녀는 자유를 느끼지만 연극을 올리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상황도 같이 겪게 된다. 나는 라다 블랭크를 만난 새벽 유쾌하게 잠들었다. 그녀만큼 랩은 못 하는 40세가 되겠지만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고, 소중한 사람 하나 정도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40세가 뭐라고. 그냥 사는 거지.
– 서윤희(영화 프로듀서)

<위 아 후 위 아> | 왓챠플레이

사랑과 관능은 오늘날 가장 초라하게 몰락한 이상이자 비밀인지 모른다. 몇 해 전 등장해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녹이고 떠난 소박하고 조촐한 멜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주저하거나 용기 내는 몸짓을 특별히 아낀다. 현존하는 감독 중 풍경과 사람을 가장 관능적으로 담아낼 줄 아는 루카 구아다니노가 만든 8부작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는 많은 부분에서 그의 전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떠오르게 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일 만큼 따라 찍은 장면도 여럿이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키오자에 주둔한 미군 부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나라 속의 나라’에 사는 아이들을 통해 10대의 성장과 사랑,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2003년에 태어난 배우 잭 딜런 그레이저가 연기한 ‘프레이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깡마른 사지,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하고 당당하면서 불안한 눈빛을 가진 소년 엘리오를 다시 만난 것 같다(실제로 영화 <뷰티풀 보이>에서 티모시 샬라메의 아역을 연기했다). 홀로 간직하기엔 너무 큼직한 상처들에 흉이 지지 않도록,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 최지웅(<얼루어 코리아> 피처 에디터) 

    에디터
    최지웅
    포토그래퍼
    NETFLIX, WATCA PLAY,WAV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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