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뜬 날

음력 월 일 휘영청 밝은 달이 뜬 정월 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이다. 오곡밥과 묵은 나물 귀밝이술을 나눠 먹고 여기저기 불을 밝히며 새 해의 안녕을 빈다. 그 큼직한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와그작, 부럼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먹는다면, 정월 대보름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럼을 나이 수만큼 깨물어 먹는다. 겉 껍데기가 딱딱하면 딱딱할수록 만사형통이라 믿었으니 단단하기로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호두와 밤은 부럼의 대표 주자로 전해 내려온다. 부럼을 깨면서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앞으로의 일년간 부스럼과 종기 같은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일년 열두 달 무탈하고 평안하게 해달라고.

오방색의 행운

파랑, 빨강, 노랑, 희고 검은 오방색의 기원이 되는 오행에 따르면 다섯 가지 색은 빛의 방위를 뜻하고, 세상의 수많은 것은 결국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봤다. 온 세상을 대표하기에, 복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오곡밥’에 다섯 가지 색을 차곡차곡 정성껏 담는 이유다. 특히 팥의 붉은빛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풍속도 그와 같은 줄기다. 자그마한 알갱이에 샛노란빛이 감도는 조에는 찰기가 가득하다. 조는 크기도 색깔도 마냥 귀여워 보이지만 까슬거리기 십상인 오곡밥을 더 차지고 맛깔나게 만들어준다.

흰 밥의 풍요

흰 쌀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자 티 없이 깨끗하여 귀한 존재다. 밥은 생명이다. 차고 넘칠 정도로 수북이 쌓인 밥 한 그릇에는 정과 운이 넘친다. 밥은 곧 극락이라 믿었으니 아름다운 꽃으로 극진히 장엄하고 있던 셈이다. 우리는 그 밥을 먹고 저마다 자기 삶을 도모하고 생의 길을 만들어간다. 흰 쌀 위의 금두꺼비는 그야말로 풍요에 있어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온몸으로 황금 엽전을 야무지게 움켜쥐고 있는 두꺼비는 바깥 공간에 떠도는 재물의 기운을 흡수하여 안으로 쌓이게끔 만든다. 재물과 복이 아주 덩굴째 굴러 들어올 참이다.

비나이다

정월 대보름에는 들판에 모여 뭘 막 태운다. 달맞이를 앞두고 주위를 밝게 하기 위해 마른 나무와 지푸라기를 쌓아 ‘달집’을 짓고 달이 떠오르면 불을 놓는다. 땔감이 열을 내며 활활 타오를 무렵, 이를 신호로 논둑과 밭둑에 쥐불을 놓으며 논다. 불이 타오르는 열기와 달이 점점 차오르는 생산력은 곧 하나의 빛으로 이어진다. 달집을 태워서 고루 잘 타오르면 그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고,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 이웃 마을과 경쟁하여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이라는 우스개 믿음도 있다. 과학이나 이성과 상관없는 믿음도 있기 마련이다. 달이 꽉 찼다. 달 맞으러 가자. 소원을 빌자.

    포토그래퍼
    Kim Myung Sung
    에디터
    최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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