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나디아 스테이시가 재창조한 ‘크루엘라’ 이야기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의 ‘크루엘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크루엘라 드빌’이 맞지만 서로 다른 인물인 양 저만큼 또 다르다.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로 영국 아카데미 분장상을 받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나디아 스테이시가 재창조한 ‘크루엘라’ 이야기. 그는 ‘크루엘라’의 뿌리가 펑크라고 말한다.
개봉까지 한 달 남짓 남아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알려진 건 몇 장의 스틸 컷과 짧은 예고편이 전부다.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아이콘 ‘크루엘라’를 재해석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건 과거의 ‘크루엘라’와는 전혀 다른 ‘크루엘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크루엘라 드빌’의 팬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크루엘라>는 기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다르다. 19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재능 있고 저항적인 젊은 여성 ‘에스텔라’가 스타일리시한 빌런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로운 캐릭터라고 봐도 좋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다.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이었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만큼 고정관념도 쌓이는 것 같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 틀을 깨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스태프 전부가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 순간 긴장하며 노력했다. 파격적인 스타일을 다양하게 시도했다. 신기한 건 현장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크루엘라’의 얼굴에 그래피티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던지면 그걸 말리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되게 좋은 아이디어다. 한번 시도해보자!”라는 환호가 돌아오더라.(웃음)
‘크루엘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얼굴에 ‘The Future’가 적힌 스틸 컷을 보고 뭔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난생처음 보는 엠마 스톤의 얼굴이랄까?
가끔은 ‘내가 너무 과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검열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모두 한마디씩 거들더라. “아니 전혀, 지금 너무 좋아.” 그 격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 데에는 영화의 배경이 펑크가 점령한 1970년대 런던이라는 점도 한몫하지 않을까?
맞다. 당시 런던은 반항적인 펑크가 주류로 자리매김한 도시였다. 시대적 배경이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를 가져다줬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시도하고 도전하든 티끌만큼의 장애물이나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캐릭터를 상징하는 컬러가 블랙, 화이트, 레드라는 건 딱 보면 알 수 있다. 그 무슨 색보다 멋지고 강렬하지만 메이크업에 잘못 적용하면 까다롭고 위험한 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블랙, 화이트, 레드 각각의 컬러가 동시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기를 바랐다. ‘에스텔라’가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크루엘라’의 모습으로 처음 파티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 장면에선 세 가지 컬러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그토록 글래머러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룩이 그렇게 강하지만은 않다. 어떤 룩은 톤과 질감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식으로 변주를 만들었다. 같은 컬러를 사용하더라도 질감의 차이로 여러 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메이크업의 힘이다.
같지만 다른 두 캐릭터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콘트라스트를 살리기 위해 신경 쓴 지점이 있나?
‘에스텔라’의 스타일에는 펑크적인 요소가 있지만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은 심플하게 구성했다. 절제하면서도 쿨하고 에지 있는 스타일과 뱅 헤어는 1970년대 활동한 그룹 블론디의 보컬 데비 해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크루엘라’의 경우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스타일의 볼륨감이 커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캐릭터이다 보니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에도 과감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패션도 그렇고 헤어와 메이크업도 ‘크루엘라’가 등장하는 순간마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의상을 책임지기도 한 제니 비번과의 소통과 협업, 시너지도 중요했을 것 같다. 과정은 어땠나?
완벽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헤어, 메이크업과 패션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나와 제니는 모든 부분에서 근사한 파트너였다고 자부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받았다. 그가 제작한 의상을 보고 나는 좀 더 과감한 스타일을 시도할 용기를 냈고, 제니 역시 내가 완성한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에 감도를 맞춰 의상을 제작하는 식이었다. 한 번은 제니가 장난감 병정을 모티브로 의상을 준비했는데, 마침 내가 준비한 왕관과 찰떡처럼 잘 붙더라. 사전에 의견을 나눈 것도 아닌데 종종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스타일을 창조함에 있어 블론디의 보컬 데비 해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는 말이 흥미롭다. 레퍼런스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건 모든 작업자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과정이지 않나?
‘에스텔라’는 레퍼런스를 능숙하게 찾아내는 인물이다. 각종 요소를 차용하고 조합해서 결국 자기만의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낸다. ‘에스텔라’에게 일종의 유대감을 느낀 지점이 그 부분인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작업 방식을 고수한다. 18세기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당시에 유행하던 메이크업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곤 한다.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을 잘 표현하려면 그만큼 패션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존 갈리아노의 룩을 참고했다. 존 갈리아노의 컬렉션에 등장하는 메이크업 스타일은 주로 1920년대 풍인데 그의 컬렉션이 도움이 됐다. 서로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레퍼런스가 쌓이고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결국 어떤 이미지 하나가 툭 폭발할 때가 있다. 믹스 매치가 핵심인 펑크 룩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양한 분야의 레퍼런스가 영감의 원천이 됐다.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와 <크루엘라>까지 당신이 선보인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은 전형적인 미의 기준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특히 마음에 든다. 당신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모습에 온전히 솔직하고 충실할 것. 아름다운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나와 맞는다면 그게 정답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판단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 모습을 봐라.(웃음) 구글에 내 이름을 검색해봐도 좋다.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와 <크루엘라>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든 사람처럼 보이나? 나는 늘 이런 민얼굴에 손질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추구한다. 이게 나다. 자신감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당당하게 내 정체성을 표현하면 된다.
개성 뚜렷한 인물이 난무하는 시대극을 벗어나 올해 앤서니 홉킨스에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안긴 영화 <더 파더> 같은 작품의 크레딧에도 당신의 이름은 존재한다. 앞으로의 걸음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나 <크루엘라>처럼 유니크한 작업에 참여한 기회를 감사히 생각한다. 함께한 감독들이 내 비전을 믿어줬기에 가능했다. 그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는 흔치 않다. 운이 좋았다. 앞으로 굳이 특이하고 개성 강한 작품만을 고르기보다는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표현해볼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싶다.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사는 건 어떤가? 어떤 매력이 당신을 잡아끄는지 궁금하다.
나는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도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고유한 특성을 관찰하고 탐구하고 표현하는 일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 순간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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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최지웅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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