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Y OF SEEING, 안효섭

드라마 <홍천기>의 도포를 입고 별을 읽느라 여념이 없던 안효섭이 별안간 도시에 나타났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안효섭과 나눈 말들.

화이트 포켓 셔츠는 토즈(Tod’s). 화이트 쇼츠는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촬영하면서 계속 혼잣말처럼 되뇌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런 촬영이 진짜 오랜만이라고요.
맞아요. 진짜 오랜만이에요. 계속 사극을 촬영 중이라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사진을 찍은 것도 작년이 마지막이었어요.

한복을 입고 상투를 트는 데도 오래 걸리죠? 
처음엔 한 시간씩 걸렸는데 이제 손이 빨라져서 30~40분이면 해요. 제가 먼저 막 꺼내서 입어요.

일요일 오후인데 이렇게 다 모였어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었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그냥 남들처럼 쉬고 있지 않았을까요? 누워서 하고 싶은 거 하고요. 배우 일을 안 했어도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업은 안 했을 것 같아요. 규칙적인 삶보단 자유로운 게 좋아요. 저만의 규칙이 있긴 하지만요.

브라운 재킷은 벨루티(Berluti). 그린 캡 모자는 비 언더 바 바이 비이커(B-by Beaker).

안효섭만의 규칙, 뭐가 있어요? 
짠 음식 피하는 거, 술을 마시면 간 영양제 같이 먹어주기, 너무 늦게 먹지 않기, 아무리 많이 자도 8시간 이상은 안 자기…. 저는 생산적인 일을 좋아해서 항상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하루에 뭔가를 이뤄내지 못하면 만족스럽지 않아요.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나섰는데 이제 그런 자리도 익숙해요? 
아니요. 그때도 긴장되던데요?(웃음) 공식 석상에 서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요. 갑자기 긴장됐어요. 티가 났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수상자가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같이했던 도현 씨라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연예인 하겠다고 한국 올 때 가족을 설득했다면서요. 그때 무슨 말로 설득했는지 기억나요? 
형, 누나가 공부를 잘했어요. 그래서 제게도 기대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형이랑 누나까지 온 가족이 반대했거든요. 그래도 제 의지가 강하니까 못 말리시더라고요. 대신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하하. 대학에 갔으니 약속을 지켰네요. 
제 목적은 그냥 한국에 오는 거라서 일단 알았다고 했죠. 그래서 연습생 생활하면서 학업도 열심히 했어요. 이제 한국 온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엔 말도 어눌하고 발음도 이상했거든요. 일상에서 한국어 공부를 많이 했는데, 영어로는 아는 단어인데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되는 거죠. 최근엔 엄지, 중지, 검지 이런 걸 외웠어요.(웃음) 약지가 어디인지 아세요?

그린 레터링 크롭트 톱은 구찌(Gucci).

저는 알죠.(웃음) 국어에 한자어가 많아서 어렵죠. 효섭도 한자 이름이죠? 
효도 효에 불꽃 섭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열이 좀 많아요.

요즘 책을 읽을 땐 어떤 언어로 읽어요?
처음엔 영어로 읽었는데 한국어로 읽어요. 이제는 저도 미드나 영화 볼 때 자막 봐요.

한국에 오는 비행기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네요. 오래전이지만.
한국에 온 건 정말 큰 도전이었죠. 연예계 자체가 그 동네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긴, 재능 있는 분들이 모이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론은 하나였어요. 그냥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자. 운이 좋았죠. 운이 많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찾아온 첫 운은 뭐였어요? 
첫 번째 운은 아무래도 캐스팅된 것. 그게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테니까요. 지금 회사 만난 것도, 주변 사람들 만난 것도 운이고요. 제가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도 그렇고요. 노력도 열심히 했어요. 발음이 안 돼서 성우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몸이 뻣뻣해서 춤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이런 사소한 준비들이 쌓여서 운의 타이밍과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제가 지금 제 모습에 완전히 만족하는 건 아니에요. 계속해서 매일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퀘어 넥 톱, 패드록 클로저 재킷, 데님 팬츠, 실버 클립 네크리스는 모두 지방시(Givenchy).

자기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면은 없어요? 
원래 그걸 제가 잘 못했거든요. 스스로 엄격하고 제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겸손해야 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고 교육받았어요. 그래서 제 자신을 너무 작게 봤던 것 같아요. 요즘엔 제가 하는 일들이나 사소한 것들에도 스스로를 칭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엔 뭐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해줬어요? 
현장에서 연기하면 한 장면 한 장면을 열심히 하는 모습. 너무 많은 장면을 찍다 보면 가벼운 장면은 그냥 흘려보내기 쉽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려고, 항상 집중하려고 해요. 잠도 못 자고 배고프면 집중력이 깨지니까요.

밥 먹을 새도 없이 <홍천기> 촬영이 이어지나요? 
그건 아닌데요.(웃음) 이번에 촬영하면서 초반에 조금 부하게 나오는 것 같아서, 식단을 반씩만 먹었어요. 지금 3~4개월 됐는데 8kg 정도 빠졌어요. 솔직히 드라마 초반이 조금 불안해요. 잘생긴 역할인데… 잘생겨 보여야 하거든요.

<홍천기>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하람 역을 맡았죠? 하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하람은 별의 운행을 계산하거나 보는 사람이죠.

마음의 눈으로? 
그렇죠.(웃음)

재킷과 팬츠, 화이트 스니커즈는 모두 벨루티. 캡 모자는 비 언더 바 바이 비이커.

그걸 표현해야 되는 거네요. 잘되고 있나요? 
연기할 때 눈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대신 동작이나 다른 것들로 표현해야 하니까 연기가 쉽지 않아요. 한 곳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보이니까 자꾸 상대 배우 눈을 보게 되기도 하고요. 연기에 필요한 렌즈가 있는데 그것도 또 쉽지 않아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만, 하람이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이 컸어요, 원작 소설도 읽어봤고, 장태유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사극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뛰어난 연출자와 일하는 경험이 이어지고 있는데, 좋은 감독을 만나는 건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그런 의미에서도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선택하는 건 아니고, 저를 선택해주시는 거니까요. 그래도 먼저 호의적으로 다가가면 호의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것 같아요. 진심이 통하면 누구하고도 잘 작업할 수 있어요.

그런 진심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해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요.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 가식 말고 진심으로 믿어주는 거요. 사실 사람의 마음은 다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항상 솔직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굳이 안 해도 되는 얘기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감정을 얘기하지 않아요. 있는 것만 얘기해요.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편이죠. 작품으로만 대중을 만나고요. 그렇다 보니 작품을 안 하면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궁금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저도 그 지점이 아쉬워요. 그렇다고 예능에 나가기엔 제 자신이 안 돼요. 계속 충돌하는 거죠.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고요. 아는 사람들이랑 편하게 하는 관찰 예능 같은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더 반팔 셔츠와 레더 쇼츠는 모두 벨루티. 화이트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힘들거나 흔들릴 땐 어디에 기대나요? 
얼마 전에 새로운 철학자의 사상을 받아들였어요.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면서 알프레드 아들러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제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너무 좋은 책이에요. 다들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충격이었어요. 처음으로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는데요, 그 정도로 감명 깊게 봤어요.

특히 연예인 중에 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소설 <인간실격>도 그렇고, 어떤 부분을 깊게 이해받는 것처럼요. 
네, 아들러가 말하길, 인생 최대의 거짓말이 지금을 안 사는 거래요.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저희가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전하고 싶은 좋은 말은 많지만, 친구들이 어디 가서 이런 얘기 좀 그만하라고 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갑자기 <홍천기>의 하람은 당신과 어떤 부분이 닮았는지 궁금해지네요. 
좀 내성적인 거? 말을 굳이 많이 안 해요. 제가 맡은 역이 혼자 담아두고 혼자 계획하는 스타일인데 저도 제 계획을 누구한테 얘기하는 편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인물 중 가장 자신과 다른 캐릭터는 누구였어요?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유찬이요. 그렇게까지 ‘똥꼬발랄’하지는 않아요.

술을 마셔도 지금 모습과 똑같아요? 
조금 흥이 오르긴 하죠.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웃음) 취하면 친구들에게 사랑 고백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친할수록 너의 존재가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평소엔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취했을 때 해요.

스터드 팬츠와 실버 벨트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화이트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친구들이 잘 받아주나요? 
다 잘 받아줘요. 서로 안아주고요. 저희는 철학적인 토론을 많이 해요. 어떤 문제가 닥치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얘기하다 싸우기도 하는데, 되게 영양가 있는 대화예요. 일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요. 작품을 하면 할수록 많은 게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한 나무만 보이다가 할수록 점점 더 많이 보이고 끝나면 숲이었구나… 계속 뭐가 보여요. 연기는 끊임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엔 뭐가 보여요? 
요즘엔 세 번째 나무요.(웃음) 요즘엔 아무래도 사극이다 보니까 안정된 톤을 유지하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내일의 미션은 무엇인가요? 
오랜만의 휴일이에요. 오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어요. 내일의 미션은 아마도 숙취 해소예요.(웃음)

    포토그래퍼
    Kim Hee June 
    에디터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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