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HE TOP, 김희진
다시 코트에 서기 전, 잠깐 만난 코트 밖 김희진.
우연히 라디오를 듣는데, 앞 프로그램에 출연한 당신을 “잡아왔다”고 하더군요. 디제이분들의 기쁨이 느껴졌어요.
맞아요. 제가 옥상달빛 팬이어서, <별밤>을 하고 인사하러 갔다가 잡혀서 <푸른 밤 옥상달빛입니다>까지 하게 됐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반증이죠. 곧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한다면서요?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있나요?
내일은 <런닝맨>에 나갑니다! 유재석 님을 한번 뵙고 싶어서 저는 <라디오스타>와 <런닝맨> 중에 <런닝맨>을 선택했어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니 배구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배구가 제일 쉽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래전이지만 처음 배구공을 잡았을 때를 기억해요?
원래는 농구를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께서 부상이 많은 종목이니 배구가 낫지 않겠냐고 하셔서 배구를 시작했어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죠. 선택 잘한 것 같아요.(웃음) 처음에는 배구의 배자도 몰랐어요. 지금은 색깔 있는 공으로 바뀌었지만, 이전엔 백구였기 때문에 처음엔 피구공 같다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인 몸싸움이 없을 뿐이지 공격은 날카롭고, 슬라이딩도 자주 일어나요. 가끔은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배구를 처음 시작할 때 넘어지는 것부터 배워요. ‘슬라이딩’ 말고 ‘롤링’이라는 기술도 있는데 그건 정말 뛰어가서 잡고 넘어지는 기술이에요. 낙법과 비슷해 바로 일어날 수 있는 동작이라서 그걸 제일 먼저 배워요. ‘언더토스’나 넘어지는 방법, 구르는 방법 등을 배워서 그렇게 아프게 넘어지지는 않아요. 어릴 땐 요령이 없어서 많이 까지고, 아직도 까지는 경우야 많지만 넘어진다고 다치거나 하진 않죠. ‘팬케이크(슬라이딩을 하면서 손을 직선으로 쭉 펴 바닥에 밀착하여 공을 뜨게 하는 기술)’할 거리가 되나 계산하기도 해요.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는 게 쉽지 않아요. 당시 운동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어요?
소년 체전에서 1등을 하면 운동을 더 하기로 엄마한테 약속을 받아냈어요. 소년 체전에서 우승한 후에 엄마한테 전화하자마자 ‘나 운동 더 할 거야. 1등 했으니까 약속 지켜’ 이러고 끊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후 배구 선수로서 꾼 첫 번째 꿈은 뭐였어요?
국가대표가 되는 것. 프로보다 국가대표가 먼저 됐어요. 성인이 돼서 대표팀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들어가게 됐죠. 사실 윗선에서는 좀 더 일찍 하자고 했는데 선생님들께서 반대하셨어요. 너무 일찍 들여보내면 성장을 더 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하셨죠. 그래서 열아홉 살 때 대표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 다음 꿈은 무엇이었나요?
그 다음은 올림픽에 나가는 거였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나가서 이렇게 빨리 흘러가도 되나 걱정하기도 했어요.(웃음) 이게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시안 게임에서 1등 하는 건 생각보다 빨리 이뤘어요. 운도 좋았고 선수들 몸 상태도 좋았거든요.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고 나서는, 선수 생활하면서 올림픽 메달은 정말 따고 싶다고 생각했죠. 올림픽에 대한 꿈은 아직 ‘ING’죠. 이번에 저희가 정말 잘 싸웠지만 메달은 못 땄기에 제 꿈은 아직 ‘ING’예요.
국가대표의 삶만큼 프로 선수로서의 삶도 중요할 텐데요. 신생팀 IBK 기업은행의 특별지명을 받고 프로로 데뷔했어요. 신생팀의 좋은 점은 뭐였나요?
시합할 기회가 많아서 좋았어요. 신입이 특출 나지 않은 이상 워낙 좋은 선배들이 많기 때문에 뛸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저는 창단 멤버라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팀의 신입 선수들에 비해 정말 많았어요. 박정아 선수, 최은지 선수, 그리고 팀에 주축이 되는 선수들이 다 창단 멤버들이거든요.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선배 구단과 할 때 겁 없이 맞서는 것도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창단 2년 만에 우승을 달성했는데, 거기에도 당신이 있었고요. 운동선수라면 부러워할 커리어 아닌가요?
재작년 시즌까진 저도 제 선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재작년 시즌이랑 작년 시즌에 워낙 안 좋았다 보니까 ‘희진아, 그전에는 너무 좋은 길만 걸었다. 안 좋은 길도 있으니까 지난 시즌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선수로 성장해나갈지 많이 고민하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희진아, 이러면 안 된다. 팬이 없으면 구단이 돌아갈 수 없다…’ 지나고 보니 오히려 발판이 된 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프로 선수의 고민 속에서 이번 올림픽 준비를 병행한 거군요. 또 부상이 있었고요.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을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저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동 훈련 때까지도요. 그때까지도 뭘 보여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감독님이 자꾸 좋대요.
라바리니 감독은 김희진 선수의 뭐가 좋다고 했나요?
그냥 다 좋대요. 감독님께 보여드리는 퍼포먼스가 다 너무 좋대요. 자기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대요. 점프도 안 되는데 뭐가 좋냐고요…. 전 제 상태를 아니까 미치는 거예요.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다른 선수들의 기회를 뺏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얼떨결에 진천에 들어가게 돼요. 그럼 ‘빼박’이거든요. 나올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진천까지 가면 빼도 박도 못하는 거군요.(웃음)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얼굴을 맞대고, ‘선생님, 저 여기서 나갈 수 없는 거죠? 그럼 다시 마음먹고 열심히 해볼게요. 치료 많이 받고 몸 관리 잘해서 운동도 열심히 할게요. 도쿄 올림픽 잘 가보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했던 것 같아요.
트레이너 선생님이 당시엔 큰 힘이었겠어요.
‘너니까 들어왔다, 너는 할 수 있다, 옆에서 몸 상태를 관리하는 걸 많이 도와줄게’라고 하시는 게 큰 위안이었어요. 중간에 한번 너무 힘들 때가 있었는데 연경 언니가 저한테 하는 말이 ‘너의 부담감이 얼마나 큰 줄 알고 너의 몸 상태도 알고 있으니 힘들게 자책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도 된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오히려 저를 자극했던 것 같아요.
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거고 그 부담감도 다 아니까요.
동료들과 팬분들의 격려가 정말 커요. 날 믿어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게 코트 안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칭찬과 격려를 해주시면 코트 밖에서도 제가 다른 안 좋은 생각을 못하죠. 가족들의 지지도 마찬가지고요.
경기마다 선수들끼리의 유대감이 정말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여자 배구팀을 사랑한 이유 중 하나죠. 비결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모두가 한 목표만을 바라보고 갔기 때문에 좀 더 끈끈해졌어요. 시기 질투도 없었어요. 이 목표만을 위해, 이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자는 슬로건이 마음속에 하나씩 있었거든요. 어떻게든 1점이라도 점수를 따려고 하고요. 그런 게 전해져서 많은 분이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요.
또 다른 주역인 라바리니 감독은 어떤 감독이었나요?
팬분들이 ‘라버지’라고 하죠. 하하! 배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못 따라갈 정도예요. 다들 아시다시피 선수 출신이 아니세요. 그런데 그만큼 분석이나 기술 향상에 대한 모든 걸 항상 공부하세요.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선수 개인에 대한 분석도 많이 하세요. 배구 말고는 바보라고 할 정도로 다른 건 잘 몰라요. 정말 순수하고 정말 좋으신 분이고… 운동 외적으로는 아예 뒤끝이 없는 친구 같은 분인데, 자기 일에 있어선 천재적이고 열정적이죠.
그런 새로운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선수로서의 챌린지였나요?
외국인 감독님을 만난 것도 큰 변화고 배구에 대한 열정이 선수보다 더 많은 감독님을 또 오랜만에 본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많이 따르지 않았나 해요.
유독 기억에 남는 경기는 뭐였나요?
아무래도 한일전이죠. 한일전은 항상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는데, 하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기 때문에 감동을 선사한 것 같아요. 저희도 간절함을 다시 한번 느꼈고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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