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중독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주는 무엇. 요즘 <얼루어> 에디터들은 이것에 중독되어 있다고 합니다.
달콤하고 바삭한, 조청유과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이었다면 과자에 취미가 없는 나는 분명 길을 잃었을 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먹는 사람이 어떻게 살이 안 찌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은 “쟤는 단것을 안 먹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 답을 구하곤 한다. 어릴적부터 엄마가 과자를 안 사줘 버릇해서 그런 걸까? 군것질과 주전부리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내가 최근 과자의 맛에 눈을 떴다. 어디 프랑스산 고급 과자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난 신상품도 아닌, 농심 조청유과에 빠져버렸다. 바삭한 질감에 코팅된 조청의 달콤함… 와삭와삭 먹다보면 어딘가 구수한 추억까지 떠오르는 것 같다. 편의점에 꿀꽈배기만 있고 조청유과가 없을 때면 크게 실망한다. 꿀꽈배기만 비치한 편의점에 시정을 요구하고 싶다. 이거나 저거나 비슷하지 않냐고? 꿀꽈배기는 1972년생이고 조청유과는 1998년생으로, 의외로 과자의 Z세대다. 칼로리도 조청유과가 더 높은데, 칼로리가 높은 것이 맛있는 법이다. 하루를 마칠 때쯤 조청유과를 슬그머니 개봉한 뒤 1/4 정도를 먹고 이케아 밀폐 집개로 밀봉하면서 웃는다. 내일도 먹을 수 있다.
– 허윤선(피처 디렉터)
다 같은 색이 아니라고요, MLBB
나는 익숙한 것이 좋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매 시즌마다 구입하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색깔별로는 물론, 같은 컬러의 옷이라도 여분이 있으면 옷이 해질 것을 대비해 여러 벌 구입해놓기도 한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직업 때문에 다양한 화장품을 테스트해보고 있지만, 그중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는다면 여러 병 비울 정도로 꾸준하게 쓰는 편이다. 이러한 내가 주야장천 모으는 화장품이 있다면 바로 MLBB 컬러의 립 제품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20대에는 입술을 오히려 파데로 한 번 눌러 창백하게 연출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니 MLBB 컬러의 붐이 반가울 수밖에. 에디터의 화장대에는 다양한 질감과 미세하게 다른 컬러의 MLBB 립 제품이 족히 50개는 넘게 쌓여 있다. 그 컬러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냐고? 푸른 색소가 한 방울 더 들어갔냐, 붉은 색소가 한 방울 더 들어갔냐, 브라운 색소가 한 방울 더 들어갔냐에 따라 다른 그 차이를 모른다면 공감할 수 없을지도. 하지만 오늘도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를 외치며 핑크색 블라우스와 어울리는 웜톤의 MLBB 블러 립 제품을 신중히 골라 입술에 바르는 나만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 서혜원(뷰티&콘텐츠 디렉터)
매일 만보 여행, 만보 걷기
조금은 쌀쌀한 듯 선선한 바람과 불쾌지수 0%의 맑고 건조한 공기, 높고 푸른 하늘까지. 그야말로 쾌청한 날씨의 연속이다. 모두 합치면 일년에 2주는 되려나? 이토록 멋진 가을날을 꽉 채워 즐겨야 하는데, 만끽하기에 안타깝게도 아직 제약이 많다. 집에만 있기엔 날씨가 아까워 아침, 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걸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던 산책 코스를 길게 바꾸거나, 새로운 골목을 찾아 들어가 보곤 했다. 생각해보니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여행지에서 늘 하루 2만 보씩 걷곤 했다. 그저 걷다 갑작스럽게 마주치는 낯선 풍경에 환호했고, 힘껏 걸은 후 나른하게 잠드는 기분을 좋아했다. 잊고 있던 여행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여행하듯 걸으니 매일 20분이었던 산책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 1~2시간을 웃돌게 됐고, 그 언젠가 다이어트를 위해 다운받아뒀던 걸음 수 측정 앱을 켜보니 어느덧 하루 평균 걸음수 1만 보가 훌쩍 넘었더라.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새에 걷는 즐거움에 숫자를 채워 넣는 쾌감에 중독된 듯하다. 덤으로 반려견의 행복한 미소와 무한한 신뢰까지 얻었다.
– 황선미(콘텐츠 에디터)
다이어리 대신 신발 꾸미기, 지비츠 참
올여름 생애 최초 크록스를 ‘내돈내산’했다. 그동안 나는 이 브랜드를 신고 벗기 쉬운 어린이용 신발, 못생겼지만 착용감이 편한 ‘슬의생’ 슬리퍼 정도로 여겨왔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크록스에 눈길이 가게 된 건 바로 6cm라는 엄청난 키높이 효과 때문! 이 구매는 결국 이니셜 알파벳, 캐릭터, 화려한 보석과 같은 지비츠 참 소비로 이어졌다. 원하는 대로 붙였다 떼어 나만의 클로그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워 액세서리처럼 마구 구매했다. 어떤 날은 한시라도 빨리 받아보고 싶어 회사로 주문하기도. 이렇게 알록달록 지비츠는 미처 페디큐어를 받지 못한 못난이 발톱도 감쪽같이 숨겨준다. 페디큐어와 맞바꾼 소비치고는 꽤나 합리적 아닌가? 곧 가을 지나 겨울이다. 보송한 털을 장식한 새로운 크록스를 장만할 생각에 벌써부터 맘이 설렌다.
– 김민지(뷰티 에디터)
돌돌 굴린다, 돌돌이 테이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후자에 속하지만, 청소광들의 마음이 이해될 때가 있다. 바로 돌돌이 테이프와 함께할 때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고 방바닥에 깔아둔 러그에 앉아 돌돌이 테이프를 굴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멋대로 흩어져 있던 먼지와 머리카락이 끈끈이에 붙어 나온다. 금세 깨끗해진 러그는 얼굴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보송보송하다. 이것만 있으면 청소가 이토록 쉬운데, 복잡한 머릿속은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까? ‘아까 이 말은 하지 말걸’, ‘전남친은 잘 사나’, ‘내일 써야 하는 원고가 이만큼이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끄러운 마음이 돌돌이 테이프를 굴리는 것처럼 쉽게 정리되길 매일 밤 바라본다.
– 신지수(뷰티 에디터)
오늘도 본다, OTT
OTT 서비스가 무제한 시청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전 재산을 탕진했을 거다. 매달 자동 결제되는 넷플릭스, 왓챠, 티빙, 유튜브가 야금야금 잔고를 털어가고 있지만 그저 뷔페에서 뽕을 뽑는 기분이라 뿌듯할 따름이다. 내가 쉬는 날 온전히 집에 있다면, 그럼에도 연락이 잘 안 된다면 친구들은 ‘쟤 또 영상 본다’며 확신하듯 말하는데 대부분 그 확신이 맞다. <종이의 집> 새 시즌부터 <우주전쟁>, <환승연애>, <D.P.>, <오징어 게임>, <갯마을 차차차> 등… 보고 있지 않은 영상을 나열하는 게 더 빠를 테니까. OTT 서비스의 알고리즘이 나를 중독자로 만든 게 틀림없다. 한 장르물에 슬쩍 발을 담가볼 참이었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음 콘텐츠를 추천해주니 밤을 꼴딱 새울 수밖에. 폭신한 침대에 누워 바퀴 달린 테이블을 끌어놓고 패드를 켜는 그 순간이 가장 설렌다. 누구는 병원 같다고 말하지만 이만큼 최적의 세팅이 없는걸.
– 황혜진(뷰티 에디터)
내적 댄스 유발자들, 스우파
대한민국이 이토록 춤바람에 흔들렸던 적이 또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나도 이 시류에 휩쓸렸는데, 이게 다 ‘스우파’ 때문이다. 최고의 스트리트 우먼 댄스 크루를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가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첫 방송을 본 후부터 이거다 싶었고, 이는 심각한 중독 현상을 발현시켰다. 본방 사수는 물론, 본방 후 재방은 기본이다. 방송에 비치는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다)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반하고, 서로를 리스펙트하는 태도에 함께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땐 주책바가지가 따로 없다. 덕질의 기본이 늘 그렇듯 이는 곧 그중 ‘원픽’의 과거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발전하는데, 마약보다 무서운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밤을 새우는 것도 다반사다. 이 단계가 지나면 어느덧 ‘나도 스트리트 우먼 댄서!’ 나도 그녀들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고개를 까딱까딱, 오늘도 서서히 리듬을 타본다. 아무도 모르는 내적 댄스를.
– 이하얀(패션 에디터)
내가 녹슬지 않도록, 필라테스
골골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시간을 아끼고 쪼개 다니고 있는 운동, 필라테스 덕분이다. 보통 운동은 체력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에겐 멘탈 힐링의 효과가 더 크다. 뇌를 중심으로 눈, 손가락만 주야장천 사용하다 온몸의 근육을 움직이면 전반적인 밸런스가 맞춰지는 기분이랄까?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정신적 고통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조금 떨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팔다리는 조금 후들거리지만, 머리와 마음엔 활기가 돈다. 필라테스는 내게 ‘건강한 고문’ 같은 것이다. 3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으니 제대로 중독되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앞으로 끊을 생각이 없기도 하고.
– 이정혜(뷰티 에디터)
십분의 계절, 인센스 스틱
독립을 위한 첫 이사를 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인센스 스틱을 샀다. 새로운 공간엔 새로운 향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익숙해져서 존재감이 흐려져가는 디퓨저와는 달리 반짝 타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과시하는 가느다란 막대를 우수수 사 모으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샤워를 하러 가는 것이 밤의 루틴이다. 뜨거운 물에 잔뜩 노곤거리는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일렬로 떨어진 재와 공기를 은은히 맴도는 향만이 남아 있다. 스틱을 태울 때마다 환기를 잘하라는 주의가 따르지만, 그 여운을 오래도록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일부러 창문을 닫는 날도 있다. 요즘은 낙엽 냄새와 대추의 단 향을 닮은 오이뮤의 ‘추계’를 열심히 태우고 있다. 10분이 지나면 쌉쌀하면서도 들큰한 가을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맹렬히 돌아가는 공기청정기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 십분의 계절을 건너뛸 생각은 없다.
– 정지원(피처 에디터)
그저 듣기만 하세요, ASMR
매일 밤 힘든 전쟁을 치렀다. 상대는 불면증. 따뜻한 차를 마셔보고, 자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등 별 짓을 다 해봐도 새벽 네다섯 시에 잠들기 일쑤였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ASMR 영상을 보게 됐다. 피부관리를 해주는 에스테틱 ASMR 영상이었는데, 그날 밤 비로소 광명을 찾고 말았다. 스르륵, 톡톡톡, 찹찹… 뇌까지 두드리는 듯한 맑은 소리들. 팩이 올려지는 순간의 쾌감! 귓속까지 간지러운 ‘팅글’이라는 신세계를 겪으니 내 안에 숨어 있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한 듯했다. 가장 좋은 점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곯아떨어져 꽤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는 것. 이후 온갖 일인칭 롤플레잉을 섭렵하고 이제는 소위 ‘고인물’이 되어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도 ASMR을 듣는다. 최근에 정착한 소리는 모닥불 소리.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에 숙면을 방해하는 잡생각을 함께 태워버리는 느낌이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김없이 4시. 다시 에어팟을 꽂는다. 오늘도 장작을 태워야 하니까.
– 박민진(패션 에디터)
오늘도 다 새거다, 치실
안주로 나온 오돌뼈를 씹는데 뭐가 ‘와장창’ 거참 과격하게도 씹히는 거다. 술기운에 꿀떡 삼킨 그거 다름 아닌 나의 오른쪽 어금니였다는 사실을 날이 밝은 후에야 알아챘다. 황홀한 치통의 연속. 치과 공포증 환자는 치료 대신 통증을 택한다. 몇 년을 미루다가 올해 초 마음먹고 텅 빈 어금니 자리에 임플란트를 박아 넣었다. 임플란트 관리의 핵심은 치실이라는 의사의 완강함에 난생처음 치실을 사용하게 됐다. 처음엔 영 낯설고 불편하더니 이제 흥부의 톱질처럼 성실하고 능숙하게 치아 사이를 오갈 줄도 안다. 치실을 거르고 잠자리에 누우면 양치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 들어 벌떡 일어날 정도. 입속에서 무언가 실오라기가 풀려나가는 것처럼 술술 풀려나가는 듯한 그 개운한 기분에 빠져버렸다. 매일 밤 뜨끈한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보디로션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듬뿍 바른 다음 자정 뉴스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무중력 흔들의자에 앉아서 치실을 한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내일로 미룬 채. 은밀한 그 시간을 좋아한다.
– 최지웅(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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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MYUNG JUN, 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