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로 / 윤계상

윤계상이 자꾸만 웃는다. 특유의 웃음기를 문자로 옮겨 적을 방법을 궁리하며 한대수의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재킷, 쇼츠는 렉토(Recto).

그린 셔츠는 프라다(Prada). 슬리브리스 톱은 르메르(Lemaire). 네크리스는 오프화이트(Off-white).

니트 베스트는 렉토. 블랙 와이드 팬츠는 더로우 바이 10 꼬르소 꼬모(The Row by 10 Corso Como).

재킷, 팬츠, 링은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슈즈는 아일랜드 슬리퍼(Island Slipper).

작품을 마무리하고 홍보 활동하는 토요일 밤, 어때요?
저는 이렇게 홍보할 때가 좋아요. 아직 작품에 대한 반응이라든지 이렇다 할 결과가 다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는 지금 마음이 좋아요. 설레기도 하고요.

지치거나 피곤하지는 않아요?
전혀요. 작품에 관한 흥행이나 피드백이 들려오기 시작할 때부터 딱 피곤해지는 편이에요.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똑같이 피로함을 느껴요. 아마 긴장이 풀려서인 것 같아요.

현장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하는 배우도 있잖아요. 좀 다른가요?
사람마다 다르죠. 저는 막상 현장에서는 치열한 편이에요. 편안한 거랑은 거리가 멀어요. 잘해내야 하니까요. 내 직업이니까. 책임감과 긴장감, 부담감이 저를 이렇게 눌러서 현장에 있을 때 썩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꼭 무슨 경주마 같아요.

인터뷰는 어때요? 데뷔 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했잖아요.
인터뷰 좋아해요. 화보 촬영도 그렇고요. 인터뷰는 나를 말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잖아요. 그게 도움이 많이 돼요. 내 생각을 말하는 동안 포커싱이 제게만 딱 맞춰져 있으니까 오히려 좀 편안한 게 있어요. 또 이렇게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잖아요. 누구에게나 쉽게 생기지 않는 기회라는 걸 알아요. 굉장히 행복한 작업이죠.

아직도 인터뷰를 흥미롭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요.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요. 저는 좀 관종인 것 같아요. 저도 인정해요. 하하. 끊임없이 드러내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피드백이 없으면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힘들게 일할 때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막상 한 달 정도 놀면 괜히 불안하고 우울한 거예요. 잊히는 게 두려워서 뭐라도 막 하고 싶어져요. 작품이든 인터뷰든 화보든 뭐라도 해서 관심 받고 싶어요.

세간의 관심을 꺼리는 것 같은 이미지인데 좀 의외네요.
원래는 그게 맞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저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어요.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도 있겠지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 저는 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어요.

최근 <크라임 퍼즐>과 <유체이탈자>, <키스 식스 센스>까지 쉼 없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도 그와 같나요?
지오디(god)로 데뷔했을 때가 20대 초반이에요. 이제 마흔다섯이거든요. 이쯤 되니까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게 느껴져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지니고 있는 매력이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래도 사람들이 윤계상이라는 배우를 찾아주고 관심을 줄 때 최대한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영원할 줄 알았거든요? 으하하. 어릴 때는 그런 착각을 하고 살았어요.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남기고 싶어요.

그럼에도 선택은 윤계상의 몫이죠. <키스 식스 센스>를 선택한 이유는요?
최근에 주로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했잖아요. 지금쯤 좀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회사의 의견이 있었어요. 소속사 직원들 말로는 대중이 윤계상에게 달콤하고 로맨틱한 모습을 기대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래 보여요?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시도해봤어요. 뻔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멜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풋풋하기도 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극대화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봐줄지 잘 모르겠네요. 저도 궁금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왔다는 표현은 어떨까요? 굳이 하나의 축을 찾자면 어떤 의미로든 늘 소수인 인물에 눈길을 뒀다고 생각해요. <죽여주는 여자>를 꼭 언급하고 싶고요.
사실 어떤 마음을 먹은 건 아니고 그냥 한 거예요. 소수인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 자체가 정말 좋게 와닿았거든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돌아보면 정말 너어어무 많이 존재해요. 바로 옆에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아요.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 모른 척 못 본 척 시치미를 떼요. 너무 웃기죠.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것 같아요.

재킷, 카디건, 쇼츠, 슈즈는 모두 프라다(Prada). 슬리브리스 톱은 르메르.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보리 카디건은 바레나 바이 비이커(Barena by Beaker). 와이드 팬츠는 르메르.

재킷, 집업, 팬츠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너로 착용한 슬리브리스 톱은 아미(Ami). 슈즈는 아일랜드 슬리퍼.

윤계상 씨는 뭘 보세요? 뭘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나요?
이야기요. 그때그때 그 순간 윤계상이 꽂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을, 어떤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을 때, 제 마음에 들어오면 저는 그걸 해요. 재미있다, 재미없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그나저나 세월이 흘러도 얼굴이 참 한결같네요. 특히 눈빛요.
아주 잘하는 피부과를 알아요. 열심히 다닙니다.(웃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에너지 하나는 변함없이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지오디의 쭌이 형도 보면 그대로잖아요.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디 이상한 데 에너지를 안 쓰니까 얼굴이나 표정이나 눈이 그대로인 것 같아요. 그냥 철이 들지 않아서 그래요. 철이. 하하.

윤계상의 에너지, 그건 어떤 모양이에요?
여기 안에 있는 것들이 쉼 없이 막 휘몰아쳐요. 장난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욕심이 많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요. 너무 잘하고 싶어. 너무 너무 너무.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타협한 적이 없어요. 지오디를 그만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제가 가수로서는 ‘지이이인짜’ 끼가 없거든요. 활동하는 내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견디기 힘들었고요.

만나기 전까지는 아주 예민하고 까다로운 인터뷰이일 거로 생각했어요.
으하하. 말이 많죠? 제가 이래요. 중간이 없어요. 환경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요. 이 자리가 좋으니까 자꾸 말을 많이 하게 되네요. 오면서 촬영 시안을 봤는데 거기 적힌 문장이 다 흥미롭더라고요. 윤계상과 뭘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 아주 쉽고 분명한 말로 적혀 있는데 참 좋았어요. 그래서 그래요.

유머와 웃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아, 이거 너무 꼰대 같은 말이죠? 살아보니까 매사에 너무 진지한 태도로 사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면 돼요. 요즘은 그런 태도로 삶을 살고 있어요. 이상한 개그도 자주 하고 그러면서요.

주변 반응은 어때요? 저는 그런 개그를 좋아합니다만.
오! 역시. 저 확실히 개그 센스가 있지 않아요? 나름 유머 코드가 분명히 있어요.(주변의 스태프를 쏘아보며) 아니 근데 왜 이 사람들은 맨날 날 무시하는 거야? 이제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을 곁에 두고 싶지가 않아요. 누군가에게 그런 기운을 전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결혼은 이미 했지만, 결혼식은 닷새 후죠. 어때요?
아무 일 없이 그날에 잘 도달하면 좋겠다?(웃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이라는 게 참 묘해요. 준비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참 많아요. 많은 걸 다시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는구나. 그런 느낌이에요. 결혼식 이후에 이 대화가 나갈 테니 살짝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와이프를 위해서 축가를 해요. 무대 공포증이 있는 윤계상이 공개된 장소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연습하면서 벌써 몇 번 대성통곡을 했어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해야죠. 할 거예요.

사랑의 힘이란. 지난 10여 년간의 인터뷰를 다 찾아 읽었어요. 어떤 시절엔 이래도 되나 싶게 반항하듯 거칠더군요. 그때그때 달라진 마음도 투명하게 읽혀요.
꽤 불안한 영혼일 때부터 다 찾아보신 거네요. 어때요? 저 진짜 이상한 사람이죠? 아, 나 진짜 이상해!

하하. 앞으로는 어떨 것 같아요?
이제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갈 거예요. 오로지 내 안의 우주를 확장하면서 단지 솔직한 윤계상으로 살 생각이에요.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그토록 단호한 확신과 다짐과 믿음의 근거는 뭐예요?
와이프요. 친구들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친구들 모두 자기 삶을 정말 솔직하게 살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영향과 자극을 많이 받아요. 상승의 기운이 이렇게 하나로 뭉치는 것 같아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할래. 솔직하게. 그러면 행복하잖아. 지금 저는 거기에 완전히 꽂혀 있어요.

에디터
최지웅
포토그래퍼
MOK JUNG WOOK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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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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