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IMAGINATION / 서현진
오직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는 배우 서현진과 스코틀랜드의 유산을 간직한 캐시미어 니트 브랜드 배리(Barrie)가 조우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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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모티프 재킷과 톱으로 활용한 스카프는 배리(Bar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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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 엠블럼 장식의 브이넥 라인 니트 톱과 화이트 팬츠는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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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무늬 장식 베스트와 재킷, 팬츠 셋업은 모두 배리.
2003년에 기억나는 장면 있어요? 서현진은 그해 뭘 하고 있었어요?
여대 실용음악과 학생이었는데, 밤샘 합주를 하고 학교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수업을 듣는 그런 전통이 있었죠. 하지만 소개팅에는 끼워주지 않더라고요. 네가 밀크 멤버였던 걸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때의 마음은 뭐였어요? 배우 준비생?
학생이었어요. 그냥 학생. 그때는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어떤 계기로 그 생각이 바뀌었나요?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한 게 계기가 됐어요. 개인 연습실을 하는 연기 선생님을 만나서, 4년 동안 조교처럼 배웠어요. 기획사가 있는 친구들이 연기를 배우러 오면 제가 상대역을 하고는 했거든요. 1인 다역을 했어요. 연기를 배운 건 그때 한 번이었어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나 봐요.
서현진의 진로가 그렇게 바뀐 거네요.
그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소속사 분 중 한 분이 ‘연기는 재미있니?’라고 물어보셨을 때, 그때 알았어요. ‘아, 내 진로가 바뀌었네.’ 기분이 이상했죠.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는 건, 2003년 창간한 <얼루어>가 이달 19주년을 맞았기 때문이죠.
와, 지금 약간 소름 돋았어요. 저로 괜찮으신 건가.(웃음)
괜찮냐니 무슨 말인가요?(웃음)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오수재는 어디 가고…
자신이 늘 없죠. 있어본 적이 없어요, 자신 같은 거.
하하. 19년간 꾸준했고,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는데요.
그게 참 감사하면서도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씀이겠지’ 했는데, 몇 년째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거라면 정말 고마운 일이구나 싶어요. 연기를 꾸준하게 한 건 2010~2011년 무렵부터였고요. 그전엔 다른 신인처럼 무명이었으니까요.
무명인 서현진, 역시 떠오르지 않네요.
어디 가서 ‘저 무명 생활 10년 정도 됩니다’ 하면 무시는 당하지 않는다?(웃음) 우리끼리 얘기할 때 짬밥이 좀 있다, 좀 굴렀다, 고생 좀 했다는 의미는 있어요.
뒤를 잘 돌아보는 편이에요? 아니면 앞만 보는 편인가요?
질문을 받으면 생각해보는 거죠. 그때만 한 번씩 생각해보는 편이에요. 과거를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후배가 너무 어릴 때 가끔 상념에 젖죠. ‘네가 97년생이라고? 그때의 나는…’ 식으로.
아, 윤상(배인혁 분)이 정도군요? 스물다섯인가 그래요.
그런 분들과 로맨스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걔랑은 로맨스 안 해요.(웃음) 로맨스는 공찬(황인엽 분)이랑 하고 있죠. 인엽이는 그정도는 아니에요.
지금 한번 생각해봐요. 19년 동안 변화하고 성장한 스스로가 맘에 드나요?
자기 자신은 변한 걸 잘 못 느끼잖아요.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좋은 거죠.
뭐랄까. 점점 무던해지는 것 같아요. 20대에는 더 감정적이고, 훨씬 날이 서 있었어요. Yes 아니면 No. 흑백 구분이 확실했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조금 유연해진 것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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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 컬러 캐시미어 드레스와 어깨에 두른 니트는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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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컬러의 쇼트 재킷과 스커트는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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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무늬 니트 풀오버와 스커트는 배리.
‘오수재’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람이에요. 반면 내면엔 상처도 있어요. 오수재의 어떤 면이 좋았어요?
주인공이 착하지 않은 게 가장 좋았어요. 지고지순하거나 착한 여주인공 캐릭터가 많은데, 그게 아니라서 좋았고, 사연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더 좋았어요. 그러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독하게 굴거나 나쁜 말을 뱉는 것도 내 안에서는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요.
오수재 같은 사람과 서현진은 친구가 될 수 있나요?
계기가 있어서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다가가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알게 되면 수재는 ‘츤데레’ 스타일이에요. 오수재는 누구랑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연기하는 게 달라지는 인물이기는 해요.
특히 최태국(허준호 분)을 마주할 때 긴장감이 좋아요. 노회한 인물인 그에게 굴하지 않는 오수재를 보면 저절로 집중하게 되죠.
저도 선생님이랑 하는 신들이 다 재미있었어요. 분량도 지배적이십니다.(웃음) 선생님이 맨날 하는 말이 ‘내가 얘 이럴 줄 알았어’였어요.
오수재를 두고 한 말인가요? 서현진에게 한 말인가요?
음…, 둘 다 같아요. 지지 않고 계속 쳐다보고 이러니까요. “내가 무서운 척하면 뭐 해, 얘는 이렇게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데. 얘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연기할 때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배우로서 믿게 된 때가 있었나요?
없어요. 지금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늘 없어요.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어요. 늘 잘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요. 그 자신 없음이 늘 동력인 것 같아요.
세상의 찬사는 별로 소용없어요?
잘 안 들려요. 칭찬은 속삭임처럼 들리고 비난은 천둥처럼 들린다잖아요. 제가 좀 그런 타입인 것 같아요.
천둥처럼 들린다니. 결국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데요?
저는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편인데, 현장에서 연기하거나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가 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굉장히 오래 후회해요. 그래도 현장에서 제가 만족한 컷이 실망스럽게 나갈 확률이 낮거든요. 그래서 만족할 때까지 찍으려 하고, 웬만하면 한두 컷 안에 만족스러운 걸 내려고 그전에 집중해요. 그게 숙달이 됐어요. 만족하는 순간 퇴화하는 거 아닌가요?
출연작 중 <블랙독>을 좋아하는데, 그 작품을 보면서 생각했죠.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진짜 배우다.
<블랙독>을 봐주셨다니! 아직도 저는 흥행에 중점을 두지 않고 대본을 고르는 것 같아요. 제가 재미있고, 좋아하는 걸 해야 그 마음이 화면을 뚫고 보시는 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흥행과는 거리가 좀 멀더라고요.
<블랙독>을 선택한 이유는 뭐였나요?
일순위가 로맨스가 없는 대본을 고르는 거였어요. <뷰티 인사이드>를 찍고 나서 로맨스를 또 찍을 에너지가 없더라고요, 제 안에. 제 안에 사랑이 없었어요.
없는 건 만들 수 없나요?
없는 걸 꺼내면 그건 다 가짜일 거예요, 분명히. 로맨스가 없는 걸 찾다가 <블랙독>을 만나 읽고 4부까지 봤을 때 너무 좋아서 결정했어요. 배우도 흥행과는 상관없이 내가 좋았던 작품은 따로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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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컬러 팔레트의 캐시미어 니트 재킷과 스커트는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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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모티프 재킷과 팬츠, 톱으로 활용한 스카프는 모두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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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원피스로 활용할 수 있는 스티치 장식의 롱 재킷은 배리.
어떨 때 만족스러워요?
작품성이 좋을 때 훨씬 마음에 들어요. 저는 완전히 과정주의자거든요.
과정을 생각해보면 <왜 오수재인가>는 어땠나요?
정말 치열했어요, 현장이.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느꼈어요. 다시는 극 중 이름이 제목에 걸려 있는 드라마는 하지 않겠다…. 분량이, 정말 죽을 뻔했어요.(웃음) 제가 그런 작품을 세 편이나 했더라고요. <제왕의 딸, 수백향> <또 오해영> <왜 오수재인가>.
촬영은 진작 마쳤고, 방영도 거의 끝나가는 지금은 어떤 마음이에요?
촬영 마친 지 3주쯤 됐거든요. 저는 일상으로 거의 돌아왔지만, 아직 후반 작업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어요.
참, 촬영할 때 노래하고 춤춘다면서요?
하하. <블랙독>을 함께한 미란 언니가 주크박스예요. 끝도 없이 노래를 해요. 같이 하다 보면 그렇게 되죠. 사실 평소에도 합니다. 쿵짝이 잘 맞는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해요.
다정하고 세심한 일화가 많아요. 반면 독특하게도 SNS를 안 하고요.
그게 요즘은 독특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인간관계가 좁아요. 좁고 깊어서 개인적으로 카톡하고 연락하고 만나면 충분해서…. SNS는 뭔가 저랑 잘 안 맞아요.
SNS에 대해 항상 질문받죠?
하하. 맞아요. 특히 요즘요.
SNS 유무보다 소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이런 인터뷰도 대중이 배우 서현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죠.
인터뷰를 다시 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사람은 늘 생각이 바뀌는데 이런 인터뷰는 계속 내 말이 남잖아요. 내가 한 말을 나 스스로 기억 못할 수도 있고, 그때의 나는 지금 달라져 있는데 그 당시의 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지는 때가 올 수도 있잖아요.
지금 우리의 대화는 어때요?
솔직하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없는 말은 안 해요. 정말 솔직하게 해요.
큰 프로젝트가 끝났는데,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도 하나요?
예전엔 여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침구류를 샀어요. 좋은 침구를 쓴 지 몇 년 안 됐는데, 침대 안으로 들어갔을 때 행복감이 달라요. 코로나19가 시작된 후에는 요리를 즐겨 하게 됐는데, 살림템을 좋아해요.
수상 소감으로 “롤러코스터 탄 것 같아요”라고 한 적이 있죠. 롤러코스터 잘 타요?
그해가 그런 해였어요. 바이킹을 좋아하고 롤러코스터까지는 탈 수 있어요. 근데 자이로드롭은 못 타요.
롤러코스터 같은 삶,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어떤 파문도 일지 않는 호수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웃음) 매일이 똑같은 삶요. 지금 일 년 반 만의 첫 휴식이어서요. 집에 가만히 있고 싶어요.
쉬다 보면 <얼루어>가 불쑥 세상에 나옵니다. 뭐부터 볼 것 같아요?
표지부터 볼래요. 부끄러워서 서점에 가서 놓여 있는 걸 보지는 못할 것 같고요. 화보는 아직 제게 도전이고, 아주 특별한 이벤트거든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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